The Calling 부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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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서론: 부르심으로 수련회 주제를 정한 이유
전도사님이 약 두 세달전에 장신대 신대원에서 기도를 했다. 하나님 이번 우리 고등부 수련회 주제를 정해야하는데 어떻게 정하길 원하십니까? 무슨 주제를 해야합니까? 라고 기도했다. 새벽기도를 하고 있는데 몇일째 되는 날인지는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마음 속에 Calling이라는 단어가 훅 떠올랐다. 그 단어가 감동이 되었다. 아, 하나님이 우리 학생들을 부르시고 계시는구나,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위에 기반한 삶길 원하시는구나. 그런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이사야 55 장의 말씀이 생각났다.
이사야 55:1–3 (NKRV)
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자,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시는 음성이 들리는가? 여러분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내게 나아오너라. 콜링하고 계신다. 하나님 외에 이 땅에 양식먹기에만 급급하여, 자신을 위하여 살아가는 인생들아!!, 배부르지 못하게 할 것들에 모든 초점을 맞추는 인생들아.. 내가 너희를 부른다. 내게 와서 들으라!!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서 들으라. 그래야 산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이 콜링의 말씀이 전도사님의 마음에 감동이 되었다.
자, 다음 그 밑에 하반절이다.
이사야 55:6–9 (NKRV)
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지금이 여호와를 만날 만할 때이다. 지금이 여호와를 만날 최고의 때이다. 지금 우리 주님이 가까이 계신다. 지금 이 집회를 통하여 우리는 그분을 불러야 한다. 악인들은 불의한 생각을 회개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오라. 그러면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실 것이다. 너그럽게 용서하실 것이다.
왜 회개해야 하는가? 내 생각과 주님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내 뜻과 주님의 뜻이 다르기때문에. 어리석은 나의 계획과 생각들을 회개하고 우리는 그분의 음성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사는 것이다. 인생은 내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다. 아멘!? 아멘을 크게 합시다. 그것이 영적공기를 바꾸는 것이다. 말에는 권세가 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말에는 권세가 있다. 아멘을 크게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아멘?! 수련회이다!
왜 회개해야하는가?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이 너희의 길보다,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보다 높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가?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나의 차원과 하나님의 차원이 다르다. 땅에서 저 하늘의 차원을 다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다. 개미와 2차원적 존재가 우리 인간의 차원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차원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성경은 그분이 좋으신 분이다. 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신뢰하며 따라갈 수 있는 것이다.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신 존재, 우리는 그분 앞에 나아가야 산다. 아멘!?
오늘 우리를 ‘오라’ 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콜링 앞에 서길 바란다. 우리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서 하나님의 생각을 들어야 한다. 그분의 길을 걸어야한다.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서야 하는 것이다. 할렐루야.
자 본문 말씀을 보자.
디모데후서 1:9
디모데후서 1:9 (NKRV)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여기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셨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소명’은 원어로 ‘부르심’ 같은 말이다. 그러니까 소명과 부르심은 같은 말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른 것은이라는 의미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첫번째, 구원하기 위해 부르신 것이다. 구원하기 위해 불렀다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과 연관된다.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신 것입니다. 아멘!?
이 구원으로의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를 따라 구원하신 것이 아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행위로 나는 하나님 앞에 구원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 사람이 있나요? 전도사님도 행위로 구원함을 얻어야 한다면, 이 자리에 서지 못합니다. 바로 탈락합니다. 그래서 은혜에요. 이 자리에 설 자격이 없는데,,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전부터 그리스도께서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전도사님 여러분을 만나고, 그분의 은혜로 전도사님은 여러분에게 설교하고 있습니다.
저기에 있는 고은향기 선교사님은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저 친구랑 기독교학교를 같이다녔는데요. 저친구는 너무 홀리해. 맨날 기도하고 예배만 하시며 사시는 분이십니다. 저는 행위로는 따라갈 수 가 없습니다.ㅋㅋㅋ
그렇지만 저렇게 사시는 분도 행위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왜? 본질적 죄인이기때문에. 이것은 행위의 문제가 아니에요. 존재적인 문제요. 이해되세요? 행위가 아니라 우리는 본질적으로 죄인으로 태어났다는 겁니다. 왜요? 하나님이 창조하신 최초의 아담과 하와가 죄의 유혹으로 타락했기때문에, 그의 자손인 우리 또한 타락한 본성을 갖고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행동으로 의롭게 사는 사람들이 아마 제일 인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내가 왜 죄인이야?라는 질문이에요. 그러나 그것이 인정이 되어야 구원받습니다. ‘내가 왜 죄인이야? 나 이렇게 착하게 사는데?”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지금 ‘행위’에 포커스 맞춰져 있습니다. 그 행위로 말미암아 나의 ‘의’가 높은 사람이에요. 여러분 오늘 회개기도 하실때, 하나님 제가 회개해야할 것들이 무엇인지 다 생각나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해보세요. 성령하나님께서 회개할 것들을 어마어마하게 생각나게 하실 것입니다.
전도사님도 여러분의 나이때에 수련회 장소인지, 어떤 예배인지 기억은 안나는데, ‘하나님 제가 지었던 죄들은 무엇인가요? 생각나게 해주세요 회개하겠습니다. 라고 하는데 끊임없이 회개할 것들을 떠올려주시더라구요. 그래서 한참 회개기도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 이밤 이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길 바랍니다. 성령이 오셔서 가장먼저 하시는 사역은 여러분의 죄를 회개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회개가 있어야 구원의 부르심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회개는 돌이키는 것입니다. 죄라는 뜻은 하마르티아 - 과녁에서 빗나가다 라는 의미에요.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 내멋대로 산 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죄들을 지었던 죄에서 돌이켜 마음을 고쳐서 다시 하나님의 뜻에 정조준하는 것입니다. 그 잘못됨을 돌이켜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정렬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밤 진짜 회개가 일어나길 바랍니다. 회개가 일어나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죄를 그분 앞에 낱낱이 고백하세요.
내가 죄인임을 인정못하는 사람들있나요? 죄인인 것을 가장 쉽게 인정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릴까요? 바로 여러분의 생각을 점검해보세요. 1년 아니 6개월 아니 1달 아니 오늘 하루 동안에도 여러분에 죄된 생각들을 점검해보세요. 저사람이 밉고, 때리고 싶고, 원망스럽고, 어떤 음란한 생각이 들었는지 생각을 점검해보세요. 우리는 죄에서 자유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죄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어떻게?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 없으신 그분께서 여러분의 모든 죄를 다 끌어안고 죄에 대한 댓가를, 죄없으신 그분이 십자가로 다끌어안고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했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것입니다. 오늘 이 사랑이 믿어지길 바랍니다. 그렇기에 여기에 있는 모든 한사람 한사람이 다 귀한 존재입니다. 가치 없는 존재가 없는 것입니다. 왜? 그분의 피로 사셨기 때문에.. 할렐루야. 여기에 우리의 정체성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먼저 부르심에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1)하나님의 자녀
요한1서 3:1 (NKRV)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받았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과 같이 되도록 부름 받은 것이다. 부르심이라는 단어에는 ‘부르다’ ‘이름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모든 친구들 개개인 한명한명을 이름으로 부르고 있어요. 나의 자녀 “소진아, 진영아, 민석아’라고 부르시는 것이다. 자녀로 부르시고 계시는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엄숙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받았다.
여러분을 자녀로 부르시고, 하나님의 이름을 받고 거룩한 자가 되도록 부르신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부르심이다. 여러분의 부르심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로부터 부르신 것이다. 자녀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이름이 여러분 안에 있는 것이다.
여러분 살다보면 우리 자녀들이 잘못하거나, 불량한 행동으로 망신을 당할때 사람들은 누구를 욕하는가? 아버지와 부모를 욕하지 않는가? 왜? 아버지의 이름이 자녀에게 있기 때문에 그렇다.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시고 자녀로 삼으셨기 때문에, 여러분의 존재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담겨있는 것이다.
다음 말씀을 보자.
이사야 43:7 (NKRV)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이 말씀 구절에서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부름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러분의 정체성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있다. 그렇기에 이 땅에 가치 없는 인생은 없다. 성경을 보라. 진리를 보라. 써있지 않는가? 성경을 믿는가?
여러분의 정체성의 가장 깊은 비밀이 그분 안에 있다. 오직 하나님만이 여러분의 진짜 이름을 알고 계시고, 바로 그 이름으로 여러분을 부르신다. 참된 정체성은 사람들과의 관계 가운데 확립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인정과 칭찬을 통해, 아 나는 이런 사람이야!!!가 아니다. 그 인생을 불쌍하다. 얼마나 피곤한가. 인정과 칭찬 받기 위해 스스로를 계속 채찍한다. 그렇게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사람은 필여적으로 우상숭배에 빠지게 된다.
그것이 우상숭배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의 정체성이 아닌,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칭찬과 인정을 통해 자신을 세우고자 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기초를 두지 않는 것은 다 우상숭배가 될 수 있다.
인간에게 참된 정체성을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관계, 그것은 바로 창조주요 구원자와의 관계다. 하나님은 단순히 어떤 역할을 부여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자랄 때 비로소 여러분 여러분 자신을 알게 된다.
베드로후서 3:18 (NKRV)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예수를 아는 지식, 그 지식은 끝이 없다. 하나님은 평생 우리가 알아가야 할 분이다. 나 교회에서 하나님에 왠만큼 경험해볼만큼 다 경험해봤어, 교회 다 알아.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들은 이미 그 신앙이 종교화 되었다는 것이다. 종교화는 무엇인가? 형식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형식적인 종교생활로 변질되었다는 것이다.그렇기에 기도회,수련회, 예배 다 내가 경험해 봤어.라고 말하면서 구경꾼이 된다. 어떠한 기대감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은 생명력이 있다. 기대감이 있다. 열정이 있다. 왜? 하나님을 날마다 경험하기 때문에. 믿음이 경험할 수록 커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분을 경험할 수록, 그분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증가한다. 더 하나님을 따라가는 믿음의 여정을 선택한다. 왜? 하나님을 경험할 수록,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그분이 얼마나 좋으신 분이신지 맛보아 알기 때문이다.
시편 34:8 (NKRV)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신앙은 맛보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맛보아라. 그분의 선하심을 맛보아라. 그분을 알아가는 지식을 맛보며 성장하라. 할렐루야! 그분을 알아가는 지식이 클수록, 그분안에서의 ‘나’가 누구인지 선명하게 보인다. 그분을 알아가는 지식이 깊어질수록, 나를 아는 지식이 커져간다. 그럴때 점점 더 건강하고 단단한 정체성을 가지며 살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렇기 때문에 친구들이 여러분을 뭐라고 평가하고, 부모님이 뭐라고 하든, 기죽지 마라.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다. 오늘 이 자녀의 정체성을 갖고 아버지 되신 그분께 우리의 죄들을 회개하자.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지 않았던 모든 것들.. 아버지의 뜻에서 벗어난 모든 것들.. 모든 죄들을 생각나게 해달라고 고백하며 회개해야하는 것이다.
2. 창조안에 담긴 부르심 <나를 어떻게 고유한 모습으로 창조하셨는가?> 은사를 통한 발견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은 그분을 섬기도록 부르심을 입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주님을 섬기는 성직자, 목사, 선교사가 되라고 말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것의 주인이시다. 이것은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는 모든 소명이 그리스도께서 주신 일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 일까? 하나님의 최대 관심은 ‘사람’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신다. 그분의 형상으로 지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땅에서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셨다. 왜? 사랑하시기 때문에. 사랑은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다. 예수님의 사랑은 추상적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긴 것이다.
예수님은 가난한자, 눈먼자, 앉은뱅이, 중풍병자, 수가성 여인을 찾아 그들의 필요를 육적, 영적 필요를 채우셨다. 가난한자 들과 죄인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의 필요를 채우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신을 희생하시고 사랑하셨다. 그리스도께로 회심했다고 해서 직업이나 사회적 직분을 갑자기 바꾸어야 할 필요는 없다. 순종의 길은 그리스도인이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 사람들에게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면서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라고 권면한다.
세상이 발전하고 좋아지면서 직업의 가지 수도 엄청 많아졌다. 이것은 무엇이냐? 부르심이 직업 선택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특별히 예외적인 경우가 있어서 주의 종으로 부르심을 입어 하나님의 사역자로 삼아 말씀을 전파하게 하시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초자연적으로 부르심을 입는 경우는 일반적이지 않은 사례다.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은 모두가 사도바울처럼 다메섹 도상에서 빛으로 현현하시 예수님을 만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도바울에게만 있었던 경험이었다. 그러나 여러분도 그러한 경험을 하고 싶다면 사모하여 구하라.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다 할렐루야.
전도사님이 전에 비전과 꿈을 명사로 정하지 말고 명사나 형용사로 생각해보라고 했다, 예를 들면 요리사가 될꺼야보다 어떤 요리사가 되어서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해보는 것이다. 여기에서 어떤과 무엇을 할꺼야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이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한 여성이 고무장갑을 만드는 공장에서 검사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하자. 이것이 세상적인 일인가? 그렇지 않다. 작업대에 앉아 수술용 장갑들을 집어 들고 팔목부터 돌려 보며 바람을 불어넣어서, 흠집이나 새는 데가 있는지 검사하는 일이다. 이 일은 단조롭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흠집이 있는 장갑은 수술할 때 감염의 위험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단조로운 일이다. 그래서 그는 한 발짝 앞으로 더 나아가서 자신의 진짜 직업을 그 안에서 찾았다.작업대에서 일하느라 지친 사람들을 위해서 음료를 대접하고, 대화를 건낸 것이다. 예수님이 그 직업을 갖고 일하셨다면 어떻게 일하셨겠는가 생각해보는 것이다. 이해되죠? 하나님 자녀의 정체성으로 어떤 간호사, 요리사가 되어서 무엇을 할 것인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고민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직업 가운데 그리스도인이 절대 택해서는 안되는 직업들이 있다. 죄와 관련된 직업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직업들이다. 불법을 행하는 사업들, 성접대 하는 업소등.. 죄와 관련된 직업은 피해야한다. 왜냐하면 그 일이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데 사용되기 때문이다.
에드먼드 클라우니 목사님은 여러분의 받은 은사 안에 부르심이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하나님은 각 사람마다 고유하게 자신의 은사를 나누어 주시는데, 이것을 통해서 섬김의 자리에 나아갈 때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우리에게 주신 은사, 즉 선물, 재능들이 하나님의 부르심과 연관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좀 더 확장해보자면 하나님의 창조안에 우리의 부르심이 담겨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을 각기 다른 모습으로 유일하고 특별하게 창조하셨다 . 70억명의 인구들이 다 각자 고유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세상에는 나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다른 그 누구와도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존재이다. 70억명의 인구중에 나랑 똑같이 생긴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일란성 쌍둥이 조차, 인격은 다르다.
전도사님은 야곱과 에서는 아버지 이삭과 어머니 리브가로부터 쌍둥이로 태어났는데 어떻게 늙어서 시력이 떨어졌다고 해도 아들을 구분하지 못했을까 좀 비현실적이지 않나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근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일란성 쌍둥이라서 야곱과 에서과 분장만으로 헷갈릴수도 있었겠다라는 생각을 해보게되었다. 그렇지 않은가?
자, 이렇게 일란성 쌍둥이들 조차 성격은 제각각이다. 야곱은 조용히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한 반면, 에서는 나가서 활동적이며, 사냥을 즐기는 상남자 성격을 갖고 있다. 이세상에 나와 똑같은 인격체는 단 한명도 없다. 하나님이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그렇게 고유하게 창조하신 것이다.
그렇기에 그 한사람 그한사람이 하는 모든 일도 고유하다. 수많은 설교자와 작곡자가 있는데 왜 전도사님은 설교를 써내며, 곡을 써내는가? 그것은 다른 모든 사람과 대체 할 수 없는 고유한 나만의 것이 있기때문이다. 사람마다 특정한 고유의 은사가 있다. 성경은 어떤 사람에겐 5달란트, 어떤사람에겐 2달란트 어떤사람에겐 1달란트, 각자 다른 은사와 재능들을 주셨다.
다음 본문을 보자.
마태복음 25:14–30 (NKRV)
14.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6.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19.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20.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2.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3.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4.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26.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28.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29.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우리는 그 달란트를 가지고 서로 비교하며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받은 달란트를 각자 개발하고 단련해서 사람들을 섬기면 되는 것이다. 나에게 허락하신 특별한 은사가 부르심과 연결될 수 있다. 그 은사들, 선물들을 개발하라.
전도사님은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음악적인 달란트가 참 부족하다고 느꼈던 사람이다. 성경에서 보면 1달란트나 2달란트 받은자가 아니였을까 생각이 된다. 그런데 이 은사를 개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보니, 달란트가 개발이 되었다. 기타를 치는 것과 노래하는 것이 개발되었다. 설교도 개발되고 있다. 하나님 앞에 받은 달란트와 은사를 계속해서 개발해내는 것이다.
아직도 완성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전도사님은 더 개발해서 프로페셔널한 전문성을 갖출것이다.
이렇게 여러분들에게도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들이 부르심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성경에 나온 한달란트 받은자처럼 나는 한달란트 밖에 없다고,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게으른 사람이 되지 않길 바란다. 땅에 파놓고 묻어서 자포자기하는 불쌍한 인생이 되지 않길 바란다… 24절을 보라. 이 사람은 아버지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이다. 아버지를 오해했다.
성경을 읽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자신의 생각으로 관념화 한다. 하나님을 알려면 성경을 읽어야한다. 기도를 해야한다. 성경을 읽지 않고,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으로 형상화 한 하나님을 믿는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을 믿으라. 그래야 바른 믿음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성경공부도 필요하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 하나님을 잘알아가기 위해서이다. 할렐루야.
자, 어찌 됐든 하나님은 우리를 고유한 존재, 다른 누구와도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존재로 지으셨다. 그렇기에 비교하지마라. 사단의 장난이다. 나는 대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존귀한 작품이다. 그러므로 내게 주신 은사로 하는 모든 행동도 고유한 창조활동이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사와 선물을 개발하라.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가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3. 공동체와 섬김의 자리에서 발견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부르심을 확인할 길이 없다. 우리의 부르심은 섬기는 그 자리 안에서 발견이 된다. 공동체와 관계 안에서만 나의 개성과 고유성이 의미를 갖게되고 발견하게된다. 우리는 관계적 존재로 지음받았다. 따라서 몸된 교회를 섬기면서 부르심을 발견할 수 있다. 나 혼자 있을때 나의 고유함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섬기는 영역에 있다보면, 다른 이들의 필요가 보이고, 섬겨야 할 영역들이 보인다. 그리고 저들을 돕고 싶은데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하나님의 마음이 보이기 시작한다. 섬김의 자리에서 발견하는 나의 십자가를 보게 된다. 집에서 가만히 앉아서 우두커니 있다가 직통 계시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섬김의 자리에서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된 공동체를 섬김의 자리, 학교의 자리, 직장에서 여러모양의 삶의 자리에서 발견하게 되는 부르심이다. 부르심은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 섬김의 자리를 피하지 마십시요. 몸된 교회의 공동체를 섬기는데에 나와서 경험해보십시오. 우리 민석이는 찬양팀을 섬기면서, 자신의 음악적 은사와 달란트를 발견하고 실용음악을 기도하면 준비하고 있습니다. 축복합니다. 더열심히 연습하고 준비해서 하나님 앞에 프로페셔널하게 준비되어지길 바랍니다.
우리 소진이는 신혼부부 모임하는 동안 아기들을 돌봐주는 섬김을 했었습니다. 거기에서 아이들 돌보는 것에 자신의 적성과 맞고 은사가 있다고 생각해서, 유아교육과 아동복지과를 전공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여러분 홀로 있지 말고, 섬기는 자리로 나아가서 많이 경험해 보십시요. 거기에서 자신의 은사가 무엇인지 발견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전도사님도요 . 여기에 여러분들을 섬기러 온 이요한 전도사님, 고은향기 선교사님, 최은총 사모님, 최낙천 목사님, 신명혜전도사님들과 기도모임을 통해서 캠퍼스를 위해 기도하다가, 죽어가는 청년 캠퍼스 청년들을 살리는 교회를 개척해야겠다는 비전을 갖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섬기는 자리로 나아가서 공동체를 섬겨보십시요.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섬기십시요. 하나님이 발견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베드로후서 1:10 (NKRV)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자, 내가 이 땅에서 살아감에 있어서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고 그분의 자녀로 삼으셨다는 부르심과 정체성, 나를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셨고, 그분의 제자로 삼으셨다는 부르심과 택하심을 명확히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바로 우리는 이 부르심과 정체성안에서 삶의 모든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전도사님과 목사님들도요, 하나님이 나를 부셨다는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지 않으면 흔들립니다. 왜? 가난할때도 있거든. 생계걱정의 문제가 오거든, 그럼 그때 이 질문이 떠오릅니다. 아,, 이 길이 아닌가…?
그럴때에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해야합니다. 그래야 실족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그분의 자녀로 부르셨고, 복음을 전하는자로 부르셨다. 그분의 양들을 돌보는 자로 부르셨다.나에게 이러한 고유한 은사들을 주시고 개발하게 하심을 통해 지금 이 자리로 나를 부르셨다. 하나님이 지금 내게 이일들을 맡기시고 부르셨다..
그러면 버티고 가는겁니다. 날마다 힘든때만 있겠습니까? 그러다면 기쁠때가 올 것입니다. 웃게하실 때가 올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여러분의 삶에 걸어감에 있어서,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십시요. 하나님의 자녀로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실족할 수 없습니다.
오늘 이 시간 성령을 함께 구합시다.
에베소서 1:17–19 새번역
17.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신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여러분에게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여러분의]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속한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상속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19.또한 믿는 사람들인 우리에게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여러분이 알기 바랍니다.
바울의 기도인데요. 지혜와 계시의 영이 임할때 하나님을 알게되고, 마음의 영적눈이 띄어지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속한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되고, 예수의 피로 거룩하게 된 성도들, 즉 우리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상속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되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믿는 사람들인 우리에게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여러분이 알기를 바란다고 바랍니다. 바울이 지금 전한 이 기도속에 바울이 경험하고 있는 하나님이 느껴지십니까?
이 하나님을 알기를 바랍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은 성령님을 뜻합니다. 성령하나님은 지혜의 영이시고, 계시 즉, 감추었던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시는 영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 그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하나님을 구함을 통해 이 모든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길 기도합시다. 찬양하겠습니다
1. 회개기도
2. 예수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
3. 성령을 구함 (지혜와 계시의영)
4.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시는 정체성과 택하심
5.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발견하게하시고, 그 은사를 개발함을 통해 하나님께 쓰임받게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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