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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삼상8:1-10

제목: 진부한 죄
창세기 3장은 동산 중앙의 나무 실과를 먹는 날에는 눈이 밝아 진다고 말합니다.
눈이 밝아 진다는 이말은 앞을 잘 보는 시야가 좋아 진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창세기 3장에서는 그 눈이 밝아지는것이 곧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눈은 앞으로 보기 위해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신체의 한 기관입니다. 그 눈은 멀리 있는것, 가까이 있는것을 보는데 사용이 됩니다.
그리고 눈은 사람의 마음이라고 표현을 해서 눈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신체의 한 부분이 눈이기도 합니다.
구약 성경에 눈에 해당되는 말이 눈도 되지만 샘도 되는 단어입니다. 다시말해 눈이라는 동일한 단어가 그 뜻이 샘이라는 뜻도 갔고 있습니다.
샘에서 물이 흘러 나오듯 사람의 눈에서 모든 것이 나온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3장에서는 황당한 유혹이 인간에게 주어져 있었다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방금 말씀 드린 데로 눈은 피아를 식별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 눈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3장 5절에 보시면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5 “God knows that your eyes will be opened as soon as you eat it, and you will be like God, knowing both good and evil.

나무 실과를 먹는 날에 “ Will be like God” 처럼 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나무에서 먹은 실과는 미각을 통해 식도를 통해 위로 내려가 필요한 영양분을 대장에서 흡수후 배설 되는 것이 나무의 실과 입니다.
그런데 그 실과를 먹으면 “ 하나님과 같이 “ 된다고 말을 합니다.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것은 피조물이 아니고 창조자가 된다는 말이 됩니다.
창조자가 된다는 것은 신이 된다는 말이 되는데 실과를 먹었다고 신처럼 되는 것은
다소 억지 인데 문제는 그 억지를 인간이 받아 들이고 따라갔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신이 될 수 없는데 인간안에는 신처럼 되고 혹은 신을 조정해서 나를 위해 사용해 보고 싶은 마음들이 있습니다.
창세기 3장에 등장한 신처럼 되고 싶은 인간은 우상을 만드는것을 통해 신이 되고 싶어 했고, 신을 조정하고 싶어했습니다.
인간은 갖고 있는 죄 가운데 같아지고 싶은 죄의 유혹은 참을 수 없는것 같습니다.
하나님과도 같아지고 싶었던 인간을 보면 다른 무엇은 더 같아지고 싶었을 것입니다.
오늘 사무엘 성경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이 아닌 다른 나라처럼 왕을 같고 싶다고 말을 합니다.
다른 나라처럼 왕을 갖게 해 달라고 요청하는 장면이 등장하는 성경입니다.
이스라엘 주변에 있는 왕들 처럼 왕을 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사무엘은 늙었고, 사무엘의 아들들은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를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리더십에는 두가지의 문제점이 있었는데 하나는 1) 이익 2) 판결 굽게 였습니다.
지도자에게 있어 이익만을 따진다는 것은 매우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이익을 따른다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계산하는 사람이 사무엘의 아들들 이었습니다.
아버지와 비교할때 참 많이 비교가 되는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익을 따른다는 것 내면에 숨겨 있는 마음을 뭔지 아세요? 욕심이 가득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욕심이 나 욕심 많아라고 말하지 않지만, 내가 뭔가를 계산하고 타진을 한다는것은 그 사람 안에 욕심이 많고 손해보기 싫은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맥락에서 보면 이익을 따라 재판을 했다는 것은 재판의 결과가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 아니 되는지까지 결정해 준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욕심 가득한 사무엘의 자식들에게 다스림을 받던 장로들이 더 이상 참지를 못하고 “ 계산빠른 리더십”에 질려서 참다 참다 늙은 사무엘을 찾아 오게 된 장면이 바로 오늘 장면입니다.
그리고 나서 장로들이 사무엘에게 요구한 것이 “ 다른 열방 처럼 우리에게도 왕을 주옵소서” 였다. 분명 왕을 요구하기 전에 이스라엘이나 장로들이 처한 상황은 당연히 요구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사실은 그들에게는 이미 왕이 있었지만, 그 왕을 인정하거나, 그 왕이 기뻐하는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왕을 요구하기 전에 문제는 접고라도 지금 이들이 왕을 요구하는 이유를 보면 “ 다른 나라들 처럼” 입니다.
다시말해, 다른 나라들 처럼 왕이 다스리는 나라안에서 살고 싶다는 말이 됩니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는 왕이 다스리는 나라는 어떤 특징때문에 눈에 보이는 왕을 요구하고 있을까요? 왕이 있다는 것은 1)강함 2)안정적 3)미래를예측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즉, 왕이 갖고 있는 그 강함이 나의 강함이 되어 죽지 않고 오래 살 수 있다는 보장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왕이 있다는 것은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왕이 있다는 것은 지금의 현실 너머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왕이 주는 혜택이라면 혜택이다.
문제는 이들이 말한 “ 다른 나라 처럼” 이라는 이 말은 다른 나라와 같이 되고 싶다는 말이 된다.
오늘 설교 서두에 창세기에 등장한 하나님과 같아 지려는 인간을 잠깐 살펴 보았습니다.
인간은 지속적으로 ~과 같아지려고 합니다. 이렇게 창세기 부터 시작된 ~같아지려는 죄를 저는 개인적으로 “ 진부한 죄”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진부한 죄는 오래되고 낡고 그리 세련되지 못한 죄로 오랜 시간동안 인간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은 끊임업이 ~과 같아지려고 합니다. 하나님과도 같아지려고 했으니 인간안에 ~과 같아지려는 그 에너지와 노력과 열정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라고 하는데 그 본 받다는 말은 세상을 복사해서 그대로 따라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오늘 사무엘 성경에 등장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나라가 왕을 가지고 있어서 누리는 강함, 안정감 그리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들도 그러한 왕이 있길 바랬습니다.
왕을 요구하고 , 다른 나라들 처럼 왕의 통치를 받고 싶어하는 인간을 오늘 잠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인간은 누군가와 혹은 어떤 대상과 같아지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수술도 하고, 화장도 하고, 심지어 머리를 자를때도 이 사람 처럼 해 주세요라고 말을 합니다. 옷을 살때도 이 사람이 입은 옷처럼입고 싶어요라고 말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을 닮고 싶어 하세요?
여러분은 누구를 따라하려고 하세요?
여러분은 왜 그렇게 본인의 모습이 아닌 다른 그 무엇을 흉내내면서 살려고 하세요?
솔로몬의 말을 빌리지만 모두가 헛된 것들입니다 그런 헛된 것들에 사람들은 돈을 투자하고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갖고 있는 가장 진부하고 오래된 죄가 뭔지 아세요? 그것은 바로 “ 하나님과 같아지려고했던” 죄입니다.
누군가와 같아지려고 하는 그 모습은 오늘 성경에서 “ 다른 나라의 왕” 을 요구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오늘 사무엘 성경은 이렇게 다른 나라 처럼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에게 “ 결국은 하나님을 버린 모습” 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누군가와 같아질고, 어떤 교회와 같아지려고, 어떤 삶의 영역을 같아지려고 할때 우리가 잃어 버리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이다.
~ 무엇과 같아지려는 이 진부한 죄가 가벼워 보이지만, 인간이 가장 먼저 범한죄로 그 힘은 아담과 하아 이후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 삶에 깊이 숨겨져 있고 삶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같아지려고, 집도사고 옷도사고, 차도 사고, 직함도 사고, 등등 인간은 같아질 수만 있다면 뭐든 다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가장 오래된 죄, 그래서 너무 진부해 보이고 너무 고리타분해 보이는 죄지만 그렇게도 오래된 자가 바로 ~과 같아지려는 모습입니다
인간안에 얼마나 ~와 같아지려는 욕망이 큰지를 알았으면 그것으로 유혹을 해 왔겠습니까?
왕을 요구한 강해지고 싶고, 안정적이고 싶고 그리고 미래를 보고 싶은 그 인간안의 심리와 욕망은 결국 다른 나라와 같이 왕을 찾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인간안에 있는 약하고 싶지 않은 심리, 불안한 삶은 싫은, 그리고 미래를 알고 가고 싶은 그 심리는 지금도 왕을 찾고 왕을 요구하는 삶이 되고 말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왕이라는 것을 모르는 신앙인은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은 나의 왕이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인간은 그 하나님이 왕이라는 사실을 잊고 그분이 왕이 아닌것 살고 있을까요?
왜 인간은 멈추지 않고 새로운 왕, 새로운 힘을 가진 왕, 새로운 안정을 보장할 수 있는 왕을 그래서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예측해 낼 수 있는 왕을 찾고 있을까요?
저는 그 답이 오늘 성경안에 잘 들어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8장 3절에 나와 있습니다. 3절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왜 이스라엘 장로들이 새로운 왕을 새루운 지도자를 찾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3 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문제의 핵심은 “ 아버지의 길을 따르지 않음” 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지적을 합니다.
아버지의 길을 따르지 않은 아들들의 문제였다는 것을 더 분명히 하기 위해 오늘 성경 8장 5절을 보시면

5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두곳에서 “ 사무엘 아버지의 길을 따르지 않았다고” 지적을 합니다.
문제를 보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로들은 새로운 지도자를 찾고 있었고 요구를 했습니다.
이 지점에서 저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새로운 힘, 새로운 안정, 새로운 미래를 찾게 된 지점을 보게 되면 그것은 “ 문제” 였습니다.
다시말해 ~ 열방의 왕 처럼 왕을 달라고 한 결정적인 인간의 내적인 출발은 “ 문제” 라는 것이 새로운 왕을 찾게 만드는 결정적인 동기 부여 였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곧 왕을 찾고, 문제는 곧 새로운 지도자를 찾는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의 아들들의 문제가 해결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왕이 생기면 그들은 그런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고 그렇게 새롭게 왕이 세워지면 강력한 힘도 갖고, 안정적인 삶도 갖고, 우리가 보지 못하는 미래도 봐 줄 수 있는 왕의 다스림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최소한 우리가 성경에서 인간은 누가와 같아지려는 욕망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속에 등장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른 주변 나라들 처럼 왕을요구한 이유는 문제를 보았고, 문제가 가지고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안에 문제를 다른 그 무엇과 같아지려고 해서 해결이 된다고 생각 하시나요?
내 안의 문제를 다른 그 어떤 사람, 상황,교회와 같아지면 그 문제가 해결이 된다고 생각을 하시나요?
누군가와 같아지는 출발이 문제였다는 것만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제시해 보고자 합니다.
내 안에 어떤 사람이나, 대상과 같아지려고 하는 것은 내 안에 문제를 보았고 그 문제를 풀어내고 싶은 마음때문에 새로운 힘이나 안정적인 위치를 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계속해서 누군가를 그 무엇을 따라하려고 한다면 ~ 다른 나라들처럼 왕을 요구하고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 안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 문제를 내 가 사용했던 방법이나 도구로는 해결이 되지 않으니 새로운 나라의 방식과 방법을 가지고 오면 그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고 생각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새로운 왕을 찾고, 새로운 방식, 새로운 모델을 찾기 전에 먼저 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내가 문제를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문제를 세상의 그 어떤 왕이나 방식이 아닌 하나님이 더 잘 아신다고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그 문제를 해결 받는 여러분이 될 수 있길 축복합니다.
시간이 가면 갈 수록 같아지고, 닮아지고, 따라하는게 늘면 늘수록 그것은 내 안에 문제가 남아 있고, 그 문제가 풀려지지 않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더 나아가 그 문제를 하나님 앞에서 풀기 보다 다른 왕을 통해 해결 하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는 시간이 될 수 있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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