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회복하는 믿음의 능력

창세기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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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1 아브라함, AG2 예수님 AP 아비멜렉, CP 사라, PW 회복(중생 이후 죄문제), MIW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SC 삶의 회복은 믿음의 회복, A 신뢰, C 의심

Notes
Transcript
창세기 20장 1-18절(창세기 20-1)

S1. 환영과 인사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 시간에 함께 하신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우리 좌우에 계신 분들과 ‘믿음 충만하세요’하고 인사 나눕시다.
네 감사합니다. 코로나가 여전히 극심한 중에도 지난 주간에는 대학부가 여름 수련회를 교회당을 중심으로 가질 수 있었습니다. 외부 강사를 모시고 은혜 가운데 소명을 새롭게 하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8월 중순 말에 청년부가 수련회를 가지면 올해 여름의 모든 일정들이 마무리가 됩니다. 아쉬운 것은 여름 휴가철에 선교지나 시골 교회 봉사를 위한 모임들을 가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점입니다. 내년에는 코로나가 잘 극복이 되어서 이런 사역들도 이룰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싶습니다. 아무튼 여름 일정이 은혜 중에 잘 마무리되고 교회의 젊은이들이 온전한 영적인 만남과 믿음을 새롭게 하는 복된 시간이 되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S2. 주제 제시

다음 주부터는 창세기 강해를 멈추고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교회에 대해 묵상하려고 합니다. 교리 표준이 되는 신앙고백서의 가르침과 교회 헌법에 명시된 직분에 대해 함께 살피면서 직원 증원을 준비하고자 함입니다. 오늘은 창세기 20장의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 말씀은 지난 특별새벽기도회 시간에 개략적으로 살핀 적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소돔 고모라 사건 이후에 갑작스러운 일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18-19장을 통해 명년 이 맘때 그들에게 아들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약속이 큰 위기를 맞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빼앗았기 때문입니다. 본문 1, 2절 말씀입니다.
창세기 20장 1, 2절
1. 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며 2.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
아브라함 부부는 그랄 지역에 살면서 자신들을 오누이라고 말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로 인해 그랄 왕 아비멜렉은 사라를 취하여 자신의 아내로 삼고자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직접 나서셔서 이 위급한 상황을 해결해 주십니다. 3절 말씀을 봅시다.
창세기 20장 3절
3.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하나님은 꿈에 아비멜렉에게 사라는 남편이 있는 여인인데 데려와 아내를 삼으려 하기에 그를 죽이겠다고 위협하셨습니다. 그러자 아비멜렉이 변호합니다. 4, 5절입니다.
창세기 20장 4, 5절
4. 아비멜렉이 그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가 대답하되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5. 그가 나에게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아비멜렉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자신들을 오누이라고 했기 때문에 자신에게는 아무 죄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타당하게 여기셔서 모든 진노를 거두셨고, 사라를 돌려보낼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날 아침 아비멜렉이 신하들을 불러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모든 이들은 두려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을 불러 책망과 취조를 합니다. 9, 10절을 같이 봅시다.
창세기 20장 9, 10절
9.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느냐 내가 무슨 죄를 네게 범하였기에 네가 나와 내 나라가 큰 죄에 빠질 뻔하게 하였느냐 네가 합당하지 아니한 일을 내게 행하였도다 하고 10. 아비멜렉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뜻으로 이렇게 하였느냐
이유를 묻는 아비멜렉에게 아브라함은 놀라운 대답을 합니다. 11, 12절을 봅시다.
창세기 20장 11, 12절
11. 아브라함이 이르되 이 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12. 또 그는 정말로 나의 이복 누이로서 내 아내가 되었음이니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곳 사람들이 자신을 죽일까 무서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혈연적으로만 보면 두 사람이 오누이임을 밝혔습니다. 물론 이미 결혼한 부부가 오누이라는 혈연관계만을 밝힌 것은 결코 옳은 행동이 아닙니다. 분명한 사실은 그가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더 놀랍게도 그는 이것이 비단 그랄에서의 일만이 아니었음을 인정합니다. 13절입니다.
창세기 20장 13절
13. 하나님이 나를 내 아버지의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 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었노라
아브라함은 고향을 뒤로하고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났던 대단한 믿음의 사람이었으나 그는 가는 곳마다 항상 죽음의 위협을 느끼고 살았습니다. 아브라함 부부는 단지 성경에 나타나는 두 번의 사건만이 아니라 이삭을 낳기 직전까지 가는 곳곳마다 담대한 믿음이 아니라 관계를 속여 거짓말로 안전을 도모하는 방식을 의지했던 것입니다.

S3. 문제 제기

우리는 이런 아브라함의 모습에 충격을 받게 됩니다. 그의 조카 롯은 비록 술에 취해 모르는 중이었지만 딸들을 통해 자녀를 낳는 죄를 범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브라함이 가는 곳마다 거짓말하고 다녔다는 사실까지도 다 드러납니다. 어떻게 믿음의 사람이 다니는 곳곳마다 거짓말을 하고 다니며, 결과적으로는 경우에 따라 불신자들에게 죄를 범하게 유도하는 행위들을 하고 살 수 있는 것일까요? 더하여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아브라함에게 벌을 주지 않으시고 오히려 아비멜렉의 집안에 태를 닫으시며 사라에게는 많은 재물을 주게 하셨을까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만약 오늘날도 목사나 장로님들이 거짓말을 하고 다닌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까요? 하나님처럼 상을 줄까요? 아니면 매를 들고 때려야 할까요?

J1. 하나님의 마음, 속성, 그리고 방법

우리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사랑하시고 그를 우상을 섬기는 땅에서 건져 내셔서 믿음의 조상을 삼아 주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죄성을 유전하고 있기는 롯만이 아니라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일이 있기 전 아브라함을 긍휼히 여기시고 그를 불러 내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주시고 그를 의로운 자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은혜를 받은 아브라함에게 여전히 죄성은 남아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하신 아들을 지금까지 안 주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들을 준다고 하셨는데 안 주신 하나님이 자신을 보호해 주실 것에 대해 100% 믿을 수 없었습니다. 자구책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다 믿을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죄의 잔재입니다. 믿음을 가진 이들도 때때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J2. 하나님이신 예수님

하나님은 이런 아브라함도 사랑하시고 받아 주십니다. 어떻게 받아 주십니까? 아브라함은 죄를 지어도 괜찮다면서 받아 주십니까? 그렇다면 그건 하나님의 공의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사랑은 약속을 믿는 믿음을 북돋워 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잘해야 구원을 주시는 조건적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죄의 책임과 형벌을 그에게 묻지 않고 오실 중보자에게 전가하시고 그를 용서하신 것입니다. 믿기 전에 지은 죄도 그리스도께 다 전가가 되지만 믿고 난 후에 지은 죄도 주님께 다 전가가 되는 것입니다.

J3. 사람이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어 장사지낸 바 되신 후 지옥의 심판의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고도 여전히 범하는 그 모든 죄악까지도 대신 지신 사랑의 섬김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아비멜렉을 통해 아브라함의 죄를 드러내십니다. 죄는 감추이지 않고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나 이는 심판코자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이로 인해 거짓말하는 그 습관을 깨닫고 회개토록 하역서 예수님 안에서 용서와 고침을 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W1. 예수님은 죄를 드러내심으로 아브라함을 치유하십니다.

우리는 본문의 이야기에서 아비멜렉이 억울하고 아브라함 부부는 악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물론 아브라함 부부의 거짓말이 아비멜렉을 유혹한 것은 분명한 죄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아비멜렉의 죄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아비멜렉은 그랄의 왕으로 그 권세를 이용하여 사라와 강제적으로 결혼을 하려고 했습니다. 이미 아내들이 있고, 자녀들도 있는데 그는 욕심을 가지고 아브라함의 누이와 결혼을 원했던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아브라함의 불신이 거짓말을 통해 드러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비멜렉의 욕심를 통해 아브라함의 마음 깊이 숨겨 둔 두려움을 드러내시고 고쳐주신 것입니다.

W2. 참된 회복은 습관적인 죄들까지도 온전히 해결받는 은혜입니다.

아비멜렉은 사라를 돌려보내며 아브라함에게 양과 소와 종들을 주고는 그에게 원하는 곳에 거주할 거주의 자유를 주었습니다. 14, 15절입니다.
창세기 20장 14, 15절
14. 아비멜렉이 양과 소와 종들을 이끌어 아브라함에게 주고 그의 아내 사라도 그에게 돌려보내고 15.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내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네가 보기에 좋은 대로 거주하라 하고
그와 함께 아비멜렉은 사라의 수치를 가려 주었습니다.
창세기 20장 16절
16. 사라에게 이르되 내가 은 천 개를 네 오라비에게 주어서 그것으로 너와 함께 한 여러 사람 앞에서 네 수치를 가리게 하였노니 네 일이 다 해결되었느니라
여기 ‘네 일이 다 해결되었다’는 아비멜렉의 선언은 왕이 아브라함 부부에게 보상을 함으로써 그들이 무죄하다는 사실을 선언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아비멜렉이 자신의 욕심과 실수를 면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아브라함과 사라가 무죄하다는 사실을 선포해 주셨던 것입니다. 사람의 관계에서 아비멜렉은 두 부부가 무죄하고 자신이 죄를 범한 것임을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W3.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회복시키십니다.

하나님은 아비멜렉의 보상을 통한 무죄 선언에 더하여 아브라함의 불신을 온전한 믿음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아브라함의 불신은 약속하신 자녀를 안주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불신이었습니다. 이런 불신이 자신의 안전을 하나님이 아닌 자기보다 약한 아내 사라에게 은혜를 구하는 비겁하고 연약한 모습으로 나타났고, 아비멜렉을 죄로 유혹한 원인이었습니다. 분명 아브라함은 잘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아비멜렉 집안에 닫으셨던 모든 태를 여심으로 아브라함의 권위를 높여 주십니다.
창세기 20장 17, 18절
17.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출산하게 하셨으니 18. 여호와께서 이왕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일로 아비멜렉의 집의 모든 태를 닫으셨음이더라
아브라함 부부에게는 아직 두 사람을 통해 태어난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닫힌 태의 문을 여는 기도를 하게 하십니다. 불임의 고통을 안고 사는 아브라함은 이제 태를 여는 선지자가 되어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합니다. 그 결과는 아비멜렉 집의 회복과 함께 아브라함 내면에 있던 불신으로 인한 불안이 소망으로 바뀌고, 그의 거짓말하던 습관은 신뢰로 변하여주시겠다는 자손의 약속을 믿음을 회복케 된 것입니다.

T1. 아브라함은 이 큰 회복의 체험 이후 자녀를 얻는 복을 누립니다.

창세기 21장은 아브라함이 마침내 사라를 통해 아들을 얻었다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아들 이삭을 주시기 전에 먼저 그의 깊은 불신과 두려움, 그 결과 지금도 지속되는 거짓말을 치유하셨습니다. 이제 이후로 아브라함이 더이상 사라를 누이라고 부를 이유가 없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난 이삭이 있고, 무엇보다 더이상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불신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주시고 우리를 의롭게 하신 후에도 여전히 사랑으로 일하십니다. 연약한 믿음으로 거짓말하다 위기를 맞았을 때조차도 하나님은 사랑으로 아브라함을 찾으셨고, 그의 불신을 치유하여 불안으로 인해 생기는 거짓말하는 습관을 고쳐주셨습니다.

T2. 세상은 옳고 그름의 눈으로만 삶을 바라봅니다.

오늘날 죄인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세상은 윤리와 도덕, 혹은 법의 눈으로만 삶을 봅니다. 물론 성도들도 바른 윤리와 도덕, 그리고 법적 삶을 살기 위해 힘을 써야 합니다. 그러나 도덕과 윤리의 눈으로만 삶을 바라보면 자칫 참사랑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성을 아시고 윤리적으로 부족한 아브라함을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그의 거짓말을 심판하기보다는 그에게 참믿음을 회복하는 놀라운 기회로 삼아 주셨습니다. 세상과 사탄은 이런 기회를 통해 오히려 아브라함을 넘어뜨리고자 하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은혜를 통해 아브라함을 회복하십니다.

T3. 성도는 믿음을 회복함으로 삶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삽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온전히 회복함으로 새로운 변화의 삶을 열매 맺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거짓말을 드러내심으로 그의 믿음을 온전케 하셔서 거짓말이 그를 떠나게 만드셨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는 위기를 통해 오히려 안전한 거처를 주시고, 큰 재물의 보상을 통해 영광을 주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가장 의지할 주인이 되셨습니다. 비록 지금은 자식이 없으나 태를 열고 닫으시는 권한을 가지신 아버지만을 신뢰하게 되어 마침내 약속의 아들도 얻게 되었습니다.

L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도 여전히 불신으로 인한 두려움에 허덕이고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브라함과 같이 나이가 들고 신앙생활은 오래 했어도 여전히 습관적인 죄를 떨치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하기도 하고, 남을 속이기도 하고, 하나님보다는 사람을 더 신뢰하고 살지는 않습니까? 때로는 십자가보다는 돈을 더 사랑하기도 하고, 기도하기보다는 염려와 두려움에 매여있지는 않습니까? 그렇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굳건하지 못한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이 평생 같은 혹은 비슷한 죄를 반복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신뢰를 못붙들기에 이런 불안과 두려움으로 인한 습관적인 죄가 우리의 삶에도 함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L6.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통해 하나님을 온전히 두려워하고 신뢰하는 믿음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믿는 자들의 습관적인 죄와 두려움까지도 온전히 치유하시고 참된 회복을 우리 가운데 주시는 분이십니다. 때로는 위기의 환경과 고난을 통해 나의 불신과 두려움을 드러내시면서 습관적인 죄들도 깨끗이 떠나도록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가 은혜의 선물이신 예수님 안에서 있으면 해결되지 않아보이는 모든 죄들까지도 깨끗이 씻음을 받고 약속의 말씀을 신뢰하여 하나님만을 온전히 두려워하며 사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마태복음 10:28 NKRV
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아브라함은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는 이 온전한 믿음을 회복했습니다. 습관적 죄 속에서 불안에 떨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통해 온전한 믿음을 회복하고 습관을 물리치는 큰 놀라운 은혜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의 모든 죄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회복하시는 복된 은혜를 풍성히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옛 습관에서 벗어나 경건과 거룩을 온전히 이루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배 후 찬양

찬송가 287 예수 앞에 나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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