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으로 승리하는 성도

사무엘상 강해 시리즈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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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새벽기도에 오신 성도님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지난 주 본문은 다윗이 골리앗과의 일기토를 준비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사울의 갑주가 아닌 일상의 영성으로 무장한 다윗이 골리앗에게 나아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드디어 다윗이 골리앗과 대치를 하는 장면입니다. 분문은 다윗은 과연 어떤 수단으로 골리앗을 어떻게 상대했는지 이야기 합니다.
1- 성도의 무기는 신앙고백이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성도의 무기는 신앙고백이라는 것입니다. 41절을 보시면 블레셋 사람이 방패든 사람을 앞세우고 다윗에게 점점 가까이 나아간다고 말합니다. 이 블레셋 사람은 골리앗입니다. 굳이 블레셋 사람이라고 한 것은 다윗과 골리앗의 대치가 공동체적인 성격을 띄기 때문입니다. 개인과 개인의 싸움이 아닙니다. 고대의 전투는 각자의 진영에서 제일 뛰어난 장수가 나와 소위 일기토라고 하는 대결을 펼쳤습니다. 중세시대에도 기사가 한 명씩 나와서 마상전투를 펼쳤습니다. 대표가 나와서 이기면 이긴 진영의 사기가 충천해서 전쟁에 이길 가능성이 더 높아집니다.
고대인들은 전쟁을 단순히 국가간의 분쟁으로 생각하지 않고 신과 신의 싸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나라가 A라는 신을 믿고 다른 나라가 B라는 신을 믿는다고 한다면 두 나라는 자기 신의 이름으로 다른 나라를 저주합니다. 우리 A신이 너희를 무찌를 것이다. 노예로 다 잡아들일 것이다. 우리 B신이 너희를 하나도 남김 없이 다 죽일 것이다 이런식으로 저주를 하고 붙습니다. 이렇게 싸웠을 때 A신을 믿는 나라가 이기면 고대인들은 단순히 그 국가가 이기거나 진 것이 아니라 A라는 신이 B라는 신보다 힘이 더 세기 때문에 이겼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것이 고대인들의 관점입니다. 실제로 이것이 성경적인 사고방식은 아니지만 당시 고대인들의 관점을 사용해서 성경을 읽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이 거짓된 우상신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분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전쟁의 구성은 지금 어떻습니까?
블레셋 사람이라고 기술된 골리앗은 블레셋을 대표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세력을 대표합니다. 복음에 대적하는 세력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이스라엘을 해하려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사역, 복음에 대적하는 세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세력은 궁극적으로 사탄의 권세를 대표합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을 대표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합니다. 신구약의 교회를 대표합니다.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중에 어떤 일을 하실지 이 전쟁을 통해 미리 보여줍니다. 사탄의 세력을 멸하시는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이 싸움은 다윗과 골리앗의 개인적인 싸움이 아니라 교회와 사탄의 세력의 싸움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지키려는 교회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려는 사탄의 싸움입니다. 그리고 성도의 싸움이 어떠해야 하는지, 이 싸움이 우리의 모범이 될 것입니다.
41절을 보면 골리앗의 모습이 굉장히 위풍당당합니다. 아마 온 몸을 튼튼한 갑주로 무장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방패를 든 사람을 대동해서 이동하고 있습니다. 덩치가 큰 거인입니다. 얼마나 압도적인 기세를 가지고 있었겠습니까? 그에 비하면 다윗은 거인도 아닙니다. 그의 외모는 42절에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웠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거기다가 막대기와 물매 그리고 돌 다섯 개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이런 모습을하니까 골리앗이 다윗을 만만하게 생각하여 멸시합니다. 상식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전투입니다. 골리앗이 보기에 이 싸움은 누가 승리할지 뻔한 싸움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골리앗과 버금가는 체격을 갖추고 누가 봐도 용사처럼 생긴 그런 사람이 나와야 할텐데, 그가 보기에 여리여리한 소년이 나오니까 42절 말씀대로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골리앗은 그가 믿는 블레셋 신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합니다. 아마 다곤 신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다곤 신이 이미 언약궤 앞에서 목과 손목이 절단당한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알고 있으면서도 블레셋은 또 어리석은 도전을 하고 있고 이스라엘 백성도 이 이야기를 알고 있으면서도 다윗이 오기 전에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상을 부순 이야기를 남겨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인 자들이나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들이나 이 이야기를 통해 교훈을 얻지 못하고 이상한 대치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하튼 골리앗은 다곤 신의 이름을 빌어서 다윗의 시신을 새와 짐승에게 먹이로 주겠다고 선언합니다. 너무 현실적인 선언입니다. 충분이 이 선언이 이루어질 것 같습니다. 공중의 새와 들짐승에게 시신을 먹이로 준다는 것은 저주의 맥락에서 주로 쓰이는 문구 입니다. 티벳이라는 나라는 풍장이라고 해서 시신을 나무에 걸어 놓으면 새가 뜯어먹어서 그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게 하기도 하지만 고대근동에 풍장은 생소합니다. 이스라엘 같은 경우 고인의 시신을 동굴 같은 곳에 안치하지 않습니까 먼저 떠난 가족들과 함께 묻히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시신을 먹는 부정한 짐승들에게 먹히는 것은 굉장히 불명예스럽고 부정한 일입니다.
다윗은 이 위협적인 선언 앞에서 자신의 신앙고백을 합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골리앗의 무기는 칼과 창과 단창입니다. 칼은 단거리에서 창은 중거리에서 투척용 단창은 원거리 전투에 능합니다. 골리앗은 최고의 방어 조건과 다양한 공격의 옵션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윗은 그걸 다 알면서도 오직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간다고 말합니다. 골리앗의 무기가 칼과 창이라면 다윗의 무기는 여호와의 이름임을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이름과 영광을 위해 다윗이 이기게 하실 것이라 고백합니다. 그리고 다윗은 골리앗에게 더한 저주를 내립니다. 골리앗 뿐 아니라 블레셋 군대 전체의 시체를 짐승들에게 주어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심을 선포하겠노라 합니다. 다윗은 지금 눈 앞에 골리앗과 싸우기도 전에 이미 블레셋 군대 전체가 패배할 것이라 선언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47절에 고백처럼 여호와의 구원은 칼과 창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인 관점으로 보면 다윗에게는 골리앗을 이길 어떤 근거도 없습니다. 우리는 고백이라고 하지만 세상적인 관점에서는 그냥 말뿐입니다. 입만 산 것입니다. 이 말을 실제로 이룰 능력이 있어야 말에 권위가 있는 거지 그냥 말만하면 아무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세상적인 관점에서는 골리앗의 말이 더 설득력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말은 그냥 말이 아닙니다.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담은 고백입니다. 이 고백은 블레셋의 칼과 창에게 맞서는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적용)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우리의 가장 큰 무기는 물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고 권력도 아닙니다. 우리의 가장 큰 무기는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지키신다는 그 고백이 우리의 가장 큰 무기가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고백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예배당에서만 만나는 신이 아니라 우리를 선택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 삶 가운데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유일한 아들 예수님조차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고백하며 세상 가운데 나아갈 때 세상이 물질로 인간관계로 그 외에 두려운 것들로 우리를 억압하고 누르려고 해도 우리는 만유의 주인이신 하나님만 믿으며 나아가고 세상에 절대 지지 않고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2- 성도의 신앙고백은 세상을 능히 이긴다.
실제로 다윗의 고백이 무기가 되는지 계속해서 본문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아마 저 같이 주일학교 출신의 남자들은 어릴 적에 이 본문을 다 좋아했을 것입니다. 48절에서 51절은 마치 한 편의 액션영화와도 같은 장면입니다. 다윗이 재빨리 달려서 그 와중에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돌멩이를 꺼내서 물매에 돌멩이를 장전했습니다. 돌팔매를 날리려면 물매를 계속 돌려야 합니다. 달리면서 이 동작을 다 했다는 것이 참 대단합니다. 돌팔매를 날렸는데 이 돌멩이가 골리앗의 이마, 그것도 투구를 쓰고 있었을텐데 아마 투구가 가리지 않은 틈을 노려서 이마를 맞췄습니다. 돌멩이가 이마에 박힐 정도로 강력한 위력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시지 않았다면 절대 이렇게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골리앗이 쓰러졌습니다. 다윗이 재빨리 골리앗을 밟아서 골리앗의 칼을 칼집에서 빼서 골리앗의 머리를 베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골리앗의 죽음을 보고 도망갔습니다. 이스라엘은 다윗의 고백이 실제로 이루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공동체에 강력한 믿음이 형성되었습니다. 고백은 공동체에게 힘을 부여합니다. 공동체를 하나로 만듭니다. 이스라엘은 이때 깨달았을 것입니다. 쓰러질리 없을 것 같았던 저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것을 고백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의 능력이 이뤄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교회의 공동체는 이런 고백을 통해 능력을 얻고 세상이 할 수 없는 것들을 이루게 됩니다. 세상을 이기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고백하는 그 고백안에서 하나되고 힘을 얻어 도망가는 블레셋을 쳤습니다. 구약의 교회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을 파죽지세로 쳐서 이겼습니다. 41절부터 47절까지의 다윗의 고백은 그냥 말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의 칼과 창을 대적할 수 있는 무기였습니다. 그리고 이 무기는 세상의 칼과 창을 대적할 뿐 아니라 완벽하게 이겼습니다. 세상은 성도의 고백대로 하나님의 이름 앞에 무너졌습니다. 세상이 든 칼이 결국 자기 목을 베는 아이러니한 일이 생겼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반석위에 세운 교회를 음부의 권세가 해하지 못합니다. 고백이 무기가 되어 세상을 이겼습니다.
우리는 교회로부터 고백을 전수 받습니다. 예수님이 구원자가 되신다는 단순한 형태로부터 사도신경처럼 발전된 형태도 있고 장로교 표준 문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처럼 아주 체계적이고 짜임새있는 고백도 있습니다. 이 고백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읽을 수 있게 돕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깨닫게 합니다. 우리 신앙의 뼈대가 됩니다. 고백은 다른 말로 교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설교를 통해서 성경 공부를 통해서 고백을 전수 받고 교리를 자연스럽게 익힙니다.
이 고백은 공부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고백은 기도로 소화해서 삶의 현장에까지 들고 나가야 합니다. 이 고백은 세상적인 것들, 세상의 문화와, 비성경적인 생각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무기가 됩니다. 하나님이 다윗의 고백을 통해 역사 하시듯이 지금도 성도의 고백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성도의 고백은 하나님의 능력을 일으키는 무기가 됩니다.
세상이 골리앗처럼 너무 크고 무섭게 다가올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 때 이스라엘처럼 벌벌 떨기만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냥 대치만 하고 소모전만 계속 펼쳐야 합니다. 이 소모전을 끝내기 위해서는 고백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세상이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나아올 때 우리는 고백으로 나아가서 세상을 무너뜨리고 밟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해야 합니다. 세상이 자기가 믿는 신이 우월하다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얕보고 우리를 저주합니다. 그랬다가는 들짐승에게 먹히는 것처럼 의미없이 죽게 될거다. 그 하나님 믿지 말고 우리처럼 세상에게 먹혀 살아라고 그렇게 유혹합니다. 하지만 성도님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고백하는 고백이 반드시 세상을 이깁니다. 교회에서 나온 고백은 세상을 이기기에 부족함이 없을 줄로 믿습니다.
결론
설교를 맺겠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성도의 무기는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고백입니다. 물질이나 인맥이나 학력이나 이런 것들이 우리의 무기가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다 사울이 주는 무기요 갑옷입니다. 우리의 무기는 고백입니다. 비록 그것이 돌팔매처럼 막대기처럼 초라해 보여도 그 고백에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백은 세상을 이깁니다. 세상이 완전무장해서 우리를 향해 두렵게 다가오지만 이 고백에 세상 이길 하나님의 능력이 있어서 우리는 고백하며 담대하게 나아갑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오늘 하루도 교회로부터 전수받은 고백으로 세상을 이기는 하루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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