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산에 거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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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viewsAG1 다윗, AG2 예수님, AP 율법, CP 악을 행하는 자. PW 주의 장막에 머무는 자, MIW SC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 A 믿음, C 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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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 환영과 인사
S1. 환영과 인사
수요 기도회에 함께 하신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가 충만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우리 좌우에 계신 분들에게 ‘순종하며 사십시오’하고 인사 나눕시다.
네 감사합니다. 부교역자들이 휴가를 가지는 관계로 오늘 제가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여름 무더위가 한참인데 오늘부터 열대야가 시작된다는 말들이 있습니다. 코로나도 기승을 부리는 중이라 우리의 삶이 힘이 드는 시간입니다. 이런 때 일수록 더 영적으로 마음을 새롭게 하고 말씀으로 자신을 온전히 세워가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S2. 주제 제시
S2. 주제 제시
오늘은 ‘다윗 시’라는 제목이 붙은 시편 15편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을 주제로 말씀을 살피고 기도하고자 합니다. 은혜로 구원받고 사는 성도는 말씀을 순종하며 살게 됨으로써 믿지 않던 이전의 삶이 변하여 새로운 삶의 모습을 가지게 됩니다. 구원은 한편으로는 은혜이기 때문에 이런 변화는 내 속에서 저절로 일어나는 영적인 변화의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삶은 내가 힘써서 달려가야 하는 삶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의 자녀로 불러 주시고는 우리 안에 성령님을 주시기 때문에 믿는 자는 성령님을 힘입어 거룩한 변화의 삶을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동시에 성령님은 우리 안에 자발적인 마음을 주셔서 내 의지를 연단하여 복음에 합당한 삶을 향해 달려가도록 나를 격려하고 인도하십니다. 다윗은 시편 15편을 통해 우리에게 믿음으로 인해 주시는 새로운 삶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이를 향해 힘쓸 것에 대해 격려해 줍니다.
S3. 문제 제기
S3. 문제 제기
먼저 다윗은 하나님께 질문을 합니다. ‘누가 주의 장막에 머무를 수 있고, 누가 주의 성산에 사는 자입니까?’ 하고 하나님께 여쭈어봅니다. 우리 1절 말씀을 같이 봅시다.
시편 15편 1절
1.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다윗 왕은 ‘주의 장막’, 혹은 ‘주의 성산’으로 알려진 ,예루살렘에 와서 예배드리는 사람들을 보고서 시를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금 주의 성산인 예루살렘에서 예배드리는 자들 중에 어떤 사람은 진심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삶이 온전하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을 대적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까닭에 왕은 성산을 찾아 예배하러 온 이들을 보고, 진정으로 주의 장막, 곧 주의 성산에 사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하고 하나님께 묻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 우리도 그렇습니다. 같이 예배는 드리는 데, 혹은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데 어떤 이는 진실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누가 진짜 예배자이고 누가 진짜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일까요? 몸은 제사의 자리에 참여하고 있고, 자신도 제물을 가져와 예배를 드린다고는 하는데 그것이 진정한 성도임을 증명하는 것일 수 있을까요?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 묻고 대답을 듣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인정하시는 자,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함께 거하시는 자는 어떤 사람인지 말씀을 통해 살피고 우리고 그런 은혜 안에 거하기를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W1. 그렇다면 장막에 머물고, 성산에 사는 자는 누구입니까?
W1. 그렇다면 장막에 머물고, 성산에 사는 자는 누구입니까?
본문에서 다윗이 말하고 있는 주의 장막에 머물고, 주의 성산에 사는 자는 간단하게 말하면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를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을 말합니다. 다윗은 장막을 지어놓고 실로의 법궤를 예루살렘 자기 궁전 앞에 모시고 있었습니다. 성산은 곧 하나님의 법궤가 있는 예루살렘을 말합니다. 이런 까닭에 오늘날로 말하면 이들은 곧 참된 하나님의 성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우리 말이 누구라고 묻고 있습니다만 그 의미는 어떤 사람인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정말 하나님과 장막에 머물고 주의 집이 있는 성산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인가요?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이 질문에 오늘 우리가 읽은 15편 2-5절 상반절까지 하나님 자녀의 참된 모습을 알려 주십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먼저 성도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결과적으로는 성도의 삶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믿는다’고 하는 것은 어떤 개념이 아닙니다. 오히려 믿는 자는 삶이 변해 새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삶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우리 안에 성령님이 거주하시는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에 우리 안에 믿음이 생길 때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새로운 삶을 격려하시고 촉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일까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면 어떤 삶의 모습으로 살게 될까요?
W2. 먼저 믿는 자는 자신의 내면과 외면을 지키고 이웃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삶을 삽니다.
W2. 먼저 믿는 자는 자신의 내면과 외면을 지키고 이웃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삶을 삽니다.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자는 먼저 외적으로 온전한 길을 걷고, 의를 행하며, 내적으로는 마음에서부터 진실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이에게 말로써 해를 입히지 않는 사람입니다. 2, 3절을 봅시다.
시편 15편 2, 3절
2.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3.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본문 2절과 3절은 표현 방식이 대조를 이룹니다. 2절은 긍정적인 세 가지 삶을, 3절은 부정적인 세 가지 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2절에 보면 정직, 공의, 진실을 강조합니다. 여기 ‘정직하다’는 말은 ‘온전하다’는 뜻이고 ‘행한다’는 말은 ‘길을 걷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성도는 하나님께 부름을 받아서 삶이라는 새로운 길을 걷는 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이 삶의 길을 온전하게 걷고, 공의를 행하며 삽니다. 그리고 마음에는 진리를 담아 입술로 진실을 말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하지 않는 것이 있지요. 3절은 성도가 하지 않는 세 가지를 설명합니다. 첫째는 말로 사람을 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에게 악을 행하지 않구요. 주변 사람들에게 불명예를 안기지 않는 것입니다. 즉,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새 방식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세 가지 긍정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생이라는 길을 온전히 걸으려고 힘써야 합니다. 성도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 때문에 온전함을 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님이 온전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비록 내 안에 죄성이 있어 부족한 모습이 있지만, 성도는 항상 온전하기를 힘써야 하고 힘쓰게 됩니다. 더하여 행동을 할 때는 공의롭게 행해야 합니다. 공의는 재판에서 의롭다고 선포되는 행동들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어기지 않고 순종하여 행하는 삶을 말합니다. 그리고 마음에는 진리를 품고 말해야 합니다. 마음에 진리가 있을 때 바른 말이 입에서 나오고, 그것으로 진실하게 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혀는 남을 욕하고 탓하며 비난하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에 참 진리와 진실함을 갖고 형제를 욕하지 않도록 입술을 경계해야 합니다. 입술을 경계한다는 말은 곧 마음을 지킨다는 뜻입니다. 입술을 지켜서 마음을 보존해야 합니다. 이것이 잠언의 가르침이었습니다. 더하여 친구에게 악을 행하지 말고, 결코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 법정도 무고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지금 다윗은 자신을 무고하는 자들이 겉으로는 경건한 척하며 예배 자리에 앉아 예배하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다윗을 위로하시며 말씀하십니다. 그 예배가 그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참된 예배는 형제를 무고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마음을 진실하게 지켜서 말과 행동이 온전하도록 힘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여호와의 전에 거하고, 여호와의 성산에서 함께 여호와 사는 자들입니다. 이런 삶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W3. 더하여 믿는 자는 이웃과 바른 관계를 가질 줄 알고, 나아가 손해볼 줄 아는 삶을 삽니다.
W3. 더하여 믿는 자는 이웃과 바른 관계를 가질 줄 알고, 나아가 손해볼 줄 아는 삶을 삽니다.
본문 4절에는 사람의 바른 관계를 알려 줍니다. 어떤 관계는 피해야 할 관계가 있고, 어떤 관계는 존대해야 할 관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경제 활동에서나 모든 것에서 이익도 보아야 하겠지만, 손해볼 줄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본문 4, 5절 상반절 말씀을 같이 봅시다.
시편 15편 4, 5절
4.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5.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
먼저 성도는 망령된 자를 멸시할 줄 아는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여기 망령되었다는 말은 하나님, 혹은 타인을 무시한다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교만한 사람을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성도가 되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한다면 먼저 교만한 사람을 싫어할 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노골적으로 이런 사람을 함부로 대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달라지고 변화되면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이들, 혹은 사람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자들을 나도 마음으로 피할 줄 알아야 합니다.
반대로 여호와를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자는 존대할 줄 알아야 합니다. 본문에서 원어적으로 보면, 여호와 경외하는 이들을 무겁게 대할 줄 안다고 했습니다. 삶을 사는 데 있어 자신을 자랑하고 하나님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더이상 참된 믿음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본문의 배경으로 본다면 다윗과 같이 하나님이 세운 왕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교만한 자들, 그런 이들을 나도 싫어하고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대신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들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무겁게 여겨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악인의 말이 즐거웠으면 이제는 이런 하나님이 세운 사람들의 삶과 말이 더 귀하고 무겁게 여겨지는 것, 그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보면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들, 목사님들, 장로님들, 혹은 직분자들, 구역장들, 혹은 부속회의 회장들 등 이런 사람들을 존귀히 여기고 좋은 관계를 가지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더하여 하나님은 맹세가 자신에게 분리해도 그것을 지키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약속을 하고 나에게 손해가 되어도 쉽게 물리지 않아야 함을 말해 줍니다. 우리 말 속담에 화장실 갈 때 마음하고 나와서 마음이 다르다는 말이 있습니다. 급하게 돈을 빌려서 내가 몇 부로 갚을 께 하고 말했으면 그 말을 끝까지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손해가 된다고 말을 바꾸고 산다면 그것은 좋은 삶의 방식이 아닙니다. 그리고 성도는 이자 때문에 돈 빌려주고, 뇌물 때문에 죄없는 사람을 해치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성산에서 여호와와 함께 거하는 사람은 결코 다른 사람을 해하려고 불의한 계획을 꾸미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정당한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경제 관계에서 남을 착취하거나 속이는 것이 아닙니다. 약한 자라고 해도 바르게 하지 않은 것을 일부러 봐주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아야 옳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의 삶은 부당한 이자를 위해, 혹은 뇌물 때문에 불의하게 약한 자를 넘어뜨리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여호와의 성산에 사는 자의 바른 모습입니다.
W4. 결과적으로 믿는 자는 여호와와 함께 거하며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삽니다.
W4. 결과적으로 믿는 자는 여호와와 함께 거하며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삽니다.
감사한 것은 이런 성도의 삶에는 영원한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신 것만도 우리 모두에게 너무도 큰 복인데, 이런 복된 삶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은혜의 복이 있습니다. 우리 본문 5절 하반절을 같이 봅시다.
시편 15편 5절 하)
5. ...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하나님은 여호와의 장막에서 우리를 영원토록 거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 구원받은 자는 결코 흔들리는 세상의 삶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장막에 거하며 그의 성산에 사는 성도들은 새로운 삶을 온전히 열매맺고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복을 얻게 됩니다.
L5. 그리스도의 해답
L5. 그리스도의 해답
그런데 우리는 이런 말씀을 들으면 오히려 마음이 불안해 질 수 있습니다. 아니 나는 믿는 사람이지만 그렇게 못사는데 어떻게 하지요? 하는 불안이 찾아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삶을 원하시지만 나는 그렇게 못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렇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말씀에 다 순종하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 사람들보다 더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서 우리에게 말씀이 필요하고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말씀을 들으며 내가 이런 의인이 못 되는데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주셨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도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이 말은 행위가 필요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실은 성도들도 행위로 구원을 얻습니다. 성도가거룩해 지는 행위는 우리의 행위가 아닌 예수님의 행위를 믿음으로 붙들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은 다 죄인이기 때문에 아무도 하나님이 주신 이 말씀을 다 행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자라 하더라도 우리의 행위는 완전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의를 행하신 것입니다.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이 되셔서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시며 공의를 행하시고 정직하게 사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그 모든 순종이 부름받은 죄인인 우리의 의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셨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진리를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로마서 5장 19절입니다.
로마서 5장 19절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예수님이 순종하심으로 우리는 의인이 된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믿음을 통해 예수님의 행위를 나의 행위로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감사하면서 그 주님의 모습을 닮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바른 믿음은 내게 새로운 행위의 옷을 입혀 주신 예수님을 따라사는 믿음입니다. 비록 부족하지만 예수님의 선하신 삶 때문에 우리들도 여호와의 성산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내 삶에도 주님의 모습이 드러나도록 그렇게 순종하며 말씀을 따라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L6.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L6.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예수님의 순종이 나의 행위가 되었으니 이제 나는 아무렇게나 살아도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성령님이 그 안에 거하는 성도는 이 예수님의 행위를 이제 내 삶에 순종하며 살게 됩니다. 예수님 안에서 은혜를 입어 성령님을 힘입고 사는 사람은 정직하고 공의롭고 진실하게 살려고 힘쓰게 됩니다. 말로 다른 사람을 욕하지 않고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고, 나아가 그의 명예를 깎아내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망령된 자들과의 관계를 피하려고 하고, 여호와 경외하는 자들과 새로운 교제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약속은 손해가 되어도 반드시 지키십시오. 이자나 뇌물 때문에 이웃을 해하는 삶을 살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성도는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장막에서 여호와와 함께 흔들리지 않는 참된 새 세상을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이런 삶을 기대하고 소망하면서, 내 속에 이 은혜로운 삶이 열매 맺도록 기도하고 그렇게 힘쓰시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