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과 아벨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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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찬송 : 찬송가 144장
찬송 : 찬송가 144장
본문: 창4 1-8
1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창세기 4 장은 죄로 오염된 세상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범죄로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은혜로 가인을 낳게 됩니다.
그리고 가인의 동생 아벨도 낳게됩니다.
동생 아벨은 양 치는 자가 되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가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3절에
창4 3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다고 말씀한다.
여기서 세월이 지난 후에 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를 직역하면, 날들의 끝에 라는 뜻입니다.
가인은 날들의 끝에, 요즘 말로 하면 끝물에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습니다.
자기 쓸 것 다 쓰고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그러나 아벨은 4절에
창4 4 “4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 다고 말씀합니다.
양의 처음 난 것을 제물로 드립니다. 기름은 최상의 것을 뜻합니다. 최상의 것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습니다.
하지만 5절에서
창4 5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십니다.
이 사건을 신약성경은 이렇게 해석합니다.
히11 4 “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아벨은 믿음으로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죄악으로 물든 세상에서 둘 다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이유를 배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첫째 아들 가인은 믿음이 없었고, 아벨에게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이 믿음은 어디 왔을까요?
히브리서는 믿음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2
믿음의 주라는 말은 author 즉 창시자 라는 뜻입니다. 믿음을 시작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로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아벨의 믿음을 일으키신 분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구약 성도들이 구약 성경을 통해 오실 메시야 즉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구원을 받는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아벨의 믿음을 불러일으키신 분께서 양의 첫 새끼와 최상의 것인 기름을 드리는 것을 통해 예수님을 바라보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이시지만, 우리를 위해 우리의 큰 형이자 하나님의 장자로서 제물이 되셨습니다. 하나님께 가장 귀하고 최고인 분이 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지셨습니다.
아벨은 히브리어로 헤벨인데 뜻은 허무입니다. 전도서의 핵심 단어인 헛되고 헛되다는 말이 바로 이 단어입니다.
하와는 가인을 얻을 때에 득남의 기쁨으로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했다는 뜻으로 가인을 지었는데, 그의 동생 아벨에게는 허무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아벨은 자신의 이름의 뜻을 알았을 것이고,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 없는 인생의 허무를 깨달았을 것입니다.
시편39 5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헤벨)허사뿐이니이다”
아벨은 그 인생의 허무를 깨닫고 오실 메시아께 소망을 두며, 하나님을 예배한 것입니다.
죄로 물든 부모님의 모습에서, 형과 자신의 모습에서 인생의 허무를 깨닫고 믿음의 원리를 따라 주님안에서 안식을 구했을 것이다.
결국 그는 믿음의 삶으로 피흘려 예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해 뿌리실 피를 미리 보여주었습니다.
히12 24 “24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여기서 ‘더 나은 뿌린 피’는 곧 예수님의 피를 말합니다.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이 예수님의 피라고 하면서 그의 순교적 삶을 예수님과 비교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죽었으나 여전히 그의 믿음으로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셨으나 살아나셔서 우리의 믿음을 불러일으키신 것처럼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pointing) 인생, 증거하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이러한 인생을 살도록 피흘리셨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죄때문에 피를 뿌리신 예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가인처럼 최상의 것이 아닌 적당한 것으로, 적당한 마음으로, 적당한 시간에, 적당한 물질로 하나님께 드린 죄가 있음에도 우리가 지옥 불에 던져지지 않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피를 쏟으셔서 우리가 받을 벌을 다 받으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십자가에서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기꺼이 아벨처럼 우리 삶의 가장 좋은 것을 주님께 드리길 원합니다.
하루의 첫시간 그리고 최상의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선물인 재능과 기술과 지식과 경험과 영향력을 모두 주님을 위해 사용하길 원합니다.
특별히 우리 청소년, 청년 성도들이 다음주 수련회를 통하여 인생의 허무함을 깨닫고 예수님을 바라보며 인생의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기로 결단하는 은혜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 없는 인생이 얼마나 비참하고 불행하고, 허무한지 깊이 깨닫게 하시고,
오직 우리를 그러한 비참과 허무에서 건지시는 주님께 소망을 두는 복된 시간이 되도록 은혜를 주시길 기도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