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이라는 의미

레위기  •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17 views
Notes
Transcript
그리스도인이라는 의미 /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기에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서론]
저번에 청문회 보니까 어떤 장관후보자의 아내가 영국에 있을 때 도자기를 많이 모았다가 한국에서 팔았다는 이유로 큰 비난을 받아 그 장관후보자가 낙마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영국에서 남편이 주재원으로 있으니까 도자기들을 모은 것인데 그것이 좀 숫자가 많아서 한국에서 팔았던 것입니다.
남편이 장관후보자인데도 아내의 도덕성에 문제가 있어 결국 장관에서 낙마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일반인들이 그렇게 했다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을텐데 장관후보자였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정치인이나 고위 공무원을 뽑을 때 흠없는 사람을 뽑으려합니다.
그래서 장관같은 경우는 청문회를 통해 그들의 자격을 검증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에게 본이 되는 사람을 뽑으려합니다.
우리는 더 높은 지위일수록 더 높은 도덕적 윤리적 자질을 요구합니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는 도덕적 자질이 매우 중요하게 요구되는 직업들이 있습니다.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라든지, 공무원이나 종교인들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직업이나 지위입니다.
그럼 그리스도인들은 어떨까요?
로마시대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인, 유대인, 이방인 다양했습니다.
그리고, 지위도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부터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까지 다양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직업, 지위, 배경 이런것이 자신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자신이 로마 귀족이든, 이방인 노예이든 상관없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높은 도덕적, 윤리적 기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영화에서도 본 것과 같이 로마시대는 매우 향락적인 문화가 유행했습니다.
그림이나 벽화같은 것을 보면 음란한 행위들이 적나라하게 묘사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로마 귀족사회에 성병과 유전병이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남자만 걸린게 아니라 여자들까지 많이 걸린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혈통에 대한 걱정이 되어 그들이 찾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로마 귀족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철저한 성적 순결함을 지킨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처녀들을 자신들의 배필로 찾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에서 왕따같았던 사람들이 이제는 가장 귀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자기 정체성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렇다면 나에게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무엇이며, 어떻게 드러나야 할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본론]
레위기는 1-17장까지 제사장들이 지켜야할 제사법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18장부터는 백성들이 거룩함을 위해 일상 속에서 지켜야할 명령들을 다룹니다.
결국 모두 거룩과 관련된 주제입니다.
제사와 삶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다시말해서 예배와 우리의 일상이 결코 분리되어서는 안된다는 의미입니다.
거룩하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라면 일상 속에서도 거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볼 말씀에는 백성들의 대표라고 말할 수 있는 제사장이 거룩함을 위해 일상 속에서 지켜야 할 명령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약에서 제사장이라고 하면 흔히 지금의 목회자만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생각입니다.
신약에 들어오면 모든 성도들을 제사장이라고 부릅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분명히, 신약에서는 우리를 왕과 같은 제사장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제 목회자만 제사장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과 세상을 섬기는 제사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은 목회자인 저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닙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할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제사장이 지켜야 할 거룩한 삶의 모습을 장례식과 결혼식의 예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장례식, 결혼식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인생의 사건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전쟁이 많고, 수명도 짧았으니까 얼마나 장례식이 많았겠습니까?
결혼식은 앞으로 후손을 갖게 되는 통로라서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다뤄졌습니다.
물론 이 두가지는 지금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인생의 사건들입니다.
이렇게 두가지 대표적인 케이스만을 예로 든 이유는 그 나머지 일상에서는 더더욱 그래야 한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먼저, 제사장, 대제사장에게 있어 가장 특징적인 거룩한 삶의 모습은 장례식에 참여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1절에 보시면, ‘제사장은 누구든지, 백성의 주검을 만져 자신의 몸을 더럽히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이 죽었을 때 그 장례식에 참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얼핏보면 이 명령은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제사장이 백성들의 대표인데 백성들의 아픔을 함께 하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지 않습니다.
제사장으로서 백성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더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주님은 왜 이처럼 비상식적인 명령을 하셨을까요?
4절입니다.
제사장들이 백성들의 어른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제사장들이 지도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들이 백성들의 지도자이기 때문에 더 높은 수준의 거룩한 삶이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거룩의 본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럼 왜 장례식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요?
죽은 사람을 만지면 부정한 상태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시기 때문에 그 생명과 가장 멀리 있는 상태가 바로 죽음입니다.
빛과 어둠이 함께 할 수 없고, 생명과 죽음이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제사장들은 거룩하신 하나님,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기에 죽음을 멀리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레위기 11장에 보면 동물의 사체를 만지는 백성도 부정해지고, 사람의 시신을 만지는 백성은 더 부정해집니다.
그래서 동물의 사체를 만지면 하루동안 부정한 상태가 되지만, 사람의 시신을 만지면 일주일동안 부정한 상태가 됩니다.
물론 백성들은 장례식에 참여할 수는 있지만 일주일동안 정결해지는 기간을 거쳐야 합니다.
그렇지만 제사장은 아에 참석하지 못하게 금지하고 있습니다.
백성들보다 더 엄격한 기준이 요구되는 것은 제사장들이 본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사장들에게도 예외는 있습니다.
제사장들 자신의 가족들 장례식은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2-3절에 그 이야기가 나옵니다.
제사장들도 다행히 가족들 장례식은 치룰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제사장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11절입니다.
그는 어떤 주검에도 가까이해서는 안된다.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가 죽었을 때에도, 그 주검에 가까이하여 몸을 더럽혀서는 안된다.
대제사장은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그 장례식에 참여할수가 없었습니다.
왜 제사장은 되는데 대제사장은 안될까요?
그것은 대제사장이 제사장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거룩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일반백성들보다 제사장에게 요구되는 거룩의 수준이 높듯이, 제사장보다 대제사장의 거룩의 수준이 높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사장은 수가 많아서 다른 사람들이 대신해서 성소를 섬길 수 있었지만, 대제사장은 1명이라서 대체해줄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이 부정해져서 섬기지 못하면 그 일을 대신해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엄격한 기준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또한 장례식에서 애도하는 모습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5절에 보시면 제사장들은 머리털을 밀어 대머리가 되거나, 구레나룻을 밀거나, 몸에 칼자국을 내면 안됩니다.
도대체 이게 거룩과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요?
이것은 당시 이방인들의 풍습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방인들은 죽은 사람을 애도할 때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머리털을 밀어 대머리처럼 되거나 수염을 깎았고, 또는 자해를 해서 몸에 상처를 내곤 했습니다.
주님은 이것이 죽은 사람을 숭배하던 이방인들의 풍습이었기 때문에 금지하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제사문화도 죽은 사람을 숭배하는 문화와 관련되어 있기에 그리스도인들은 하지 않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은 어떨까요?
10절입니다.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으며 애도해서도 안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대제사장의 머리에 기름을 부었고, 예복도 거룩하게 구별하신 옷이었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에게는 제사장보다 더 높은 수준의 거룩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죽었는데 장례식장에도 가지 못하고 슬픔을 표현할 수도 없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렇지만, 하나님께 기름부음받아 하나님의 소유가 된 사람이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처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 그의 첫번째 정체성은 누구의 아들이 아니고,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었던 것입니다.
그럼 제사장과 대제사장의 결혼은 어떨까요?
7절입니다.
제사장들은 부정한 여자와 결혼할 수 없었습니다.
몸을 파는 여자라든지, 간음으로 인해 남편에게 이혼당한 여자와는 결혼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과부와는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9절에 보면 제사장의 딸이 만약 음행을 저지르면 아버지를 더럽힌 것과 같이 여겨져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백성들의 경우 간음하면 남여 둘다 돌로 쳐 죽이게 되어 있는데, 제사장 딸이 그럴 경우에는 더 끔찍한 화형을 시키니 훨씬 더 엄격한 것입니다.
그럼 대제사장은 어떨까요?
대제사장은 기준이 더 까다롭습니다.
과부도 안되고 무조건 처녀만 아내로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아내가 과부나 이혼한 여성일 경우 아이가 누구의 자식인지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은 혈통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순수혈통을 유지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게 오늘 말씀에서 제사장들이 지켜야할 하나님의 명령들입니다.
어떻습니까?
이런 제사장과 대제사장의 장례방식과 결혼방식을 지금 우리도 따라야 할까요?
그럼 우리 역시 장례식장에도 가지 말아야하고, 결혼도 처녀하고만 해야 할까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부정해질까봐 장례식에 가지 않겠다고 한다면 누가 이해하겠습니까?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순수한 처녀하고만 결혼해야한다고 하면 누가 이해하겠습니까?
지금의 가치관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우리가 이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구약에서 말하는 이런 율법들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성취하셨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히브리서를 통해 배웠습니다.
우리가 동물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듯, 이런 율법들도 따를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이런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본질적인 의도만 알면 되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명령의 본질은 바로 거룩한 삶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거룩한 삶의 방법은 구별됨에 있습니다.
이 구별됨이란 무조건 세상 사람들과 다른 행동을 해야한다는 게 아닙니다.
그냥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세상과 구별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이란 무엇을 말할까요?
수없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의 원리는 우리 삶의 최우선순위를 하나님 섬기는 일에 두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장례와 결혼이 가장 중요한 의식이지만, 제사장에게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최우선입니다.
그래서 부모님 장례식에도 가지 못하고, 함부로 슬픔을 표현하지도 못하고, 신부도 까다롭게 구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왕같은 제사장인 우리의 정체성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의 최우선 정체성이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을 위하는 일에 우리 삶의 우선순위가 확고해야만 합니다.
예전에 조수미씨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조수미씨는 아버지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아버지 장례식날 공연이 있었기에 어머니가 미리 알리지 않은 것입니다.
어머니는 조수미씨에게 전화해서 관객과의 약속인 공연을 다 마치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조수미씨는 아버지 장례식날 독창회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성악가라는 정체성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어머니는 내 딸이라는 정체성보다 성악가로서의 정체성을 우선시 하신 것입니다.
너무 심한 예인가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어떤 정체성이 나의 가장 우선순위 정체성입니까?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4장 26절입니다.
누구든지 내게로 오는 사람은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내나 자식이나 형제나 자매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14장 33절에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 가운데서 누구라도,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와, 이거 완전히 급진적이고 극단적인 말씀아닙니까?
이 말의 의미가 진짜 가족들 다 미워하고 내 재산을 다 버리라는 의미일까요?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랬나요?
베드로는 장모님이 열병에 걸렸을 때 예수님이 오셔서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집에서 복음을 가르치신 일이 많으셨습니다.
제자들이 실제로 가족과 재산을 다 버린게 아닙니다.
이것은 제자의 첫째 조건이 바로 삶의 우선순위, 마음의 중심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내 목숨보다도 우선에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일상에 많은 중요한 일들이 있지만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우리 삶의 최우선 순위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나의 최우선순위 정체성이 바로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라이프 스타일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단지 예배드리고, 기도한다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게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따라 거룩한 삶을 살기 원한다면 댓가를 치뤄야만 합니다.
삶의 최우선 순위가 주님을 따르는 삶이기 때문에 무엇인가는 희생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희생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기서 말하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는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먹고사는 많은 것들이 들어갑니다.
예수님 잘 따른다고 이 세상에서 손해만보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주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레위기의 핵심입니다.
거룩한 삶을 열망하십니까?
그렇다면 구별된 삶, 다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되시는 다카포 식구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