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회 둘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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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책감과 수치심, 연민과 분노, 용서와 회개

상처받은 인간의 실존

성경은 사람들을 양에 비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눈이 어둡고, 겁이 많고,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양의 특성이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에게 나타나는 특성과 아주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단절되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자연인에게 나타나는 특징은
먼저 두려움과 불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소속감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두번째는 수치와 죄책감입니다. 그래서 건강한 자존감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세번째는 우울과 분노입니다. 그래서 삶을 지켜낼 힘과 자제력이 필요하게 됩니다.
이 결과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갑니까?
서로를 물어뜯고 상처주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지구촌교회 이동원 목사님은 요즘 사람들은 양이 아니라 고슴도치 입니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지만 다가갈 수록 상처만 주고 받는 고슴도치 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나중에는 자기 자신 조차도 사랑할수 없는 외롭고 고독한 존재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죄책감과 수치심의 올무

제가 대학 다닐때 복학생 형님 한분이 계셨습니다.
이 형님은 세상에서 방황하다가 어렵게 주님 품으로 돌아온 케이스 였습니다.
세상에서 방황할때 하나님이 싫어하실만한 일들을 많이 했는데
그중에 그 형님을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이 무엇인가 하면
수많은 여자들과 잠자리를 가졌던 겁니다.
술먹고 여자랑 자는게 힘들고 재미없는 세상에서 유일한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방황하는 삶을 살다가 주변의 도움으로 하나님을 다시 찾게 되었는데
하나님을 다시 만나는데 가장 큰 장애물이 뭐였는지 아세요?
수치심과 죄책감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싶은데, 계속 음란하고 방탕했던 순간들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를 않고
공동체 자매들을 볼때도 자꾸만 이전에 잠자리를 같이 했던 여자들의 벗은 몸이 떠올라서
처음에는 눈도 잘 마주치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놀랍게도, 이 형님이 2주간 진행되는 ltc 수련회에 들어와서 집회에 참석하다가
정말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된 겁니다.
그 마음 속에 있던 수치심과 죄책감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어 주신 겁니다.
형님이 얼굴이 활짝 펴서, 그날 부터 수련회 기간 내내 미친 사람 처럼 히죽~ 히죽~ 웃으면서 다니는데
만나는 사람 마다 붙잡고 뭐라고 하고 다녔는지 아세요?
사~랑 받고 싶다. 용균아 나 사~랑 받고 싶다. 누구야 나 사~랑 받고 싶다. 누구 누구야 나 사~랑 받고 싶다.
복학생 형이 그러고 다니니까
사실 좀 보기 민망한 면도 없지 않았지만
그렇게 사람 눈도 못 마주치고 수치심과 죄책감에 짓눌려 살다가
하나님 만나고 하나님 사랑 경험하고 나니까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 형님이 깨달은 거에요. 자기가 그동안 왜 그렇게 술과 여자에 의지하고 살았는지.
우리 인간의 내면에는 친밀감에 대한 깊은 갈망이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채울수 있기 때문에 세상의 것들로는 아무리 채워도 절대로 채워질수 없어서
채우면 채울 수록 공허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 많이 들어 보셨죠?
이것이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그 공허함으로 인해 괴롭고
괴로움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모르는 이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온전한 사랑을 경험해 본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상처주지 않는 사람도 아무도 없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온전한 가정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 아십니까?
아무리 화목하고 좋아 보여도 그 가정에 안에 온전한 사랑이 없기 때문에
치유받고 회복되어야 할 상처받은 감정과 외곡된 사고방식(완벽주의 같은)이 반드시 있습니다.

마귀의 공격 뛰어 내리라

마귀가 예수님을 거룩한 성 성전 꼭대기에 새워놓고 딱 한마디 합니다
뛰어 내리라.
마귀의 이 한마디는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묘한 자극을 줍니다.
삶이 너무 외롭고 마음에 공허함과 상처가 가득한데
마귀가 우리 마음에 계속 이런 말을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너무 끔찍하고 무서운 시험입니다.
여러분 20대 청년 사망율 50%가 자살이고
한해 자살로 죽는 사람들 중에 20대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실제로 자매들을 상담해 보면 자살 생각을 한번도 안해본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이것이 이야기해 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청년의 때에 하나님을 만나고 반드시 치유받고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 아닙니까?
마귀가 예수님에게 이 말을 했을때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마귀가 시험하고 있는 것이 바로 예수님과 하나님 사이의 애착관계를 시험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만일 니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뛰어 내리라.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마귀가 시편 91편의 말씀까지 인용해 가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을 흔들어 놓으려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에 응하지 않으시면서 하나님을 시험하지도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전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우리 삶이 벼랑끝에 몰린 것 같은 마음일때가 있지 않습니까?
의문이 들때가 있죠.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고백하지만
정말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지 모르겠을때가 있지 않습니까?
아까 선배 형님의 경우 처럼 내가 죄책감과 수치심 가운데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때 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죄로 인해 육체적 정신적 영적으로 심각하게 상처받고 회복 불능에 있을때
하나님이 과연 나를 사랑하시는지
도저히 믿을 수 없을때가 있지 않습니까?
너무 괴로워서 밤마다 술을 마시고, 수면제를 잔뜩 털어 넣고 간신히 잠에 들면서
내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이렇게 주님 품안에 안겼으면 좋겠다.
하지만 자살하면 천국에 못가니까…
이런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서 괴로움 당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어린 시절에 충분히 사랑받지 못하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애착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 중에 많이 경험하는
양극성 장애라는 것이 있습니다. 조울증이라고도 하는데
이 증상이 나타나면 극단적인 경우에 버림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니가 날 떠나면 나 죽어버릴꺼야.
이것은 사랑입니까 집착입니까?
사랑 아니에요. 불안이고 집착입니다.
다만 안전하게 사랑받고 싶은 절박함이 간절한 것입니다.
우리 삶에도 인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할수 없는 절박한 상황들이 많습니다.
제 친구만 해도 아버지가 술만 먹고 들어오면 혁대를 풀어서 매질을 했습니다.
또 어떤 친구는 어렸을때 아버지의 외도로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어요. 딴살림을 차린 아버지가 집에 한번도 생활비를 가져다 준 적이 없습니다.
또다른 친구는 아버지가 노름 빚을 져서 집안 살림 다 거덜내고 대학생 딸 이름으로 대출을 받아서
졸업도 하기 전에 빚만 8천만원을 졌습니다.
이 뿐이 아니에요.
성폭행 당한 아픈 기억때문에 그 상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결혼을 준비하는 자매였는데, 수치심과 죄책감 때문에 너무 괴로워했어요.
또 한 친구는 어렸을때 아버지가 집에서 자살한 것을 직접 목격한 친구도 있었어요.
마귀는 이런 우리의 취약한 육체적 정서적 영적인 약점을 절대로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조롱하고 학대하고 시험하고 충동질 합니다.
뛰어 내려라! 포기해라!
하나님은 너에게 관심이 없어!
못 믿겠다면 뛰어 내려봐!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아니.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셔
나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을꺼야.
여러분, 예수님도 상처투성이에 힘들고 어려운 어린시절을 보내셨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성령으로 잉태했을때, 사람들을 피해 숨어야 했습니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자마자 헤롯대왕이 죽이려고 해서 애굽땅으로 도망갔습니다.
이후에는 폭군 헤롯 아켈라오가 정권을 잡자 돌아가지 못하게 됬어요.
그러고는 힘들게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이내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십니다.
맏이인 예수님은 졸지에 소년 가장이 되었어요.
어려서 부터 먹고 사는 문제에 부닥쳐야 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어린 시절이 부러우십니까?
전혀 부럽지 않죠.
예수님이 우리 아픔과 상처 하나님을 불신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모르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

이런 예수님께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 하신 일이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너무나도 잘 아시는 겁니다.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약의 하나님을 보고 폭군적인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입을 다물게한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입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을 확신 하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 하시기 위해 지신 것이 십자가 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의 모든 상처를 치유하시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자기 생명을 내어주시기까지 하면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렇게 사랑하신다고 말씀해 주신 사건
여러분 모두 아시지 않습니까?
성경은
죄책감과 수치심, 분노와 자기 연민에 갖힌 우리를 치유하고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의 사랑의 결정체인 십자가를 보게 하시고
그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하시고
이제 회개와 용서의 길로 가라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상처는 상처로 끝나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게 됩니다.
가시돋힌 나는 나 자신에게도 상처를 주게 됩니다.
고립되게 하고 고통가운데 있게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 마음속에 분명히 이런 마음이 드실겁니다.
목사님 참 긍정적이시네요. 이상적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아무도 이해 못해요.
그러나 이것은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믿느냐 안 믿느냐의 문제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확인 해야 합니다.
윌마 루돌프라는 흑인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는 1940년 미구 테네시주에 22남매 중 20번째로 태어난 윌마 루돌프
1.8kg 몸무게로 태어나 폐렴과 성홍열, 소아마비를 앓고 다리에 심각한 소아마비 진단을 받게 된다.
의사는 이아이는 절대로 걸을 수 없을 거라고 했지만
당시 흑인 가정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지독한 가난으로 치료조차 제대로 받기 힘들었지만
어머니는 그를 포기 하지 않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헌신적인 어머니의 도움으로 윌마는 왕복 두시간 거리를 오가며 치료를 받았고
4년 후 보조기를 차고 간신히 걷게 되었으며, 11살에는 기적적으로 보조기 없이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윌마는 언니들의 뛰는 농구팀에 들어가 벤치멤버가 되었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았고 3년간의 훈련을 거친 후에 결국 팀의 선발 가드가 되었다.
윌마의 활약으로 팀은 주대회 우승을 했고
당시 여자 육상의 선구자인 에드 템플의 눈에 띄어 테네시 주립대학 육상팀에 들어가게 된다.
1년 간의 훈련 뒤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서 400미터 계주에서 동매달을 수상하였는데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4년 후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100미터와 200미터, 400미터 계주에서 금메달을 획득해 세계최초 여자 올림픽 금메달 삼관왕의 기록을 남겼다.
로마 사람들은 그를 검은 가젤이라 불렀다.
상처는 고통스럽지만 극복하면 아름다운 면류관이 된다.
새로운 그리스도인은 마치 카본 덩어리와 같다. 볼품없고 잘 부서진다. 그러나 일정한 시간과 압력이 가해지면 단단하고 아름다운 다이아몬드가 된다.
카본 덩어리는 다이아몬드가 아닐 지라도, 카본은 100퍼센트 다이아몬드가 될 수 있는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카본 속에 진흙과 카본이 섞여 있으면 다이아몬드가 될 수 없다.
뱉어 내고 토해 놓아야 한다.
진주가 만들어지는 과정도 똑같다.
부드러운 속살에 들어온 이물질을 뱉어내기 위해 흘린 조개의 분비물, 눈물이라 하자. 이것이 모여 영롱하게 아름다운 진주가 된 것이다.
이 수련회 기간 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자유함을 얻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예수 나의 치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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