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07 새벽]
Notes
Transcript
Sermon Tone Analysis
A
D
F
J
S
Emotion
A
C
T
Language
O
C
E
A
E
Social
찬송 250[구주의 십자가 보혈로]
본문 고전1:18-25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인 ‘십자가의 도’의 이중성에 대해 설명하고, 그에 따라 세상 지혜의 어리석음을 지적한다.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는 그들이 영적 분별력이 없음으로 미련한 것으로 취급되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믿고 기다리는 신자들에게는 그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심을 말함으로, ‘십자가의 도’는 그것을 대하는 자의 태도에 따라 그 성격을 달리하는 이중적 성격을 갖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사실 십자가의 도는 불신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사도바울은 그 이유에 대해 유대인과 헬라인이라는 민족의 특성과 관련시켜 설명한다. 유대민족은 출애굽시절부터 예수께서 사역할 당시까지 끊임없이 이적과 기사의 역사속에서 살아왔는바, 그들의 종교 역시 표적을 통해 성립되고 확립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참 표적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고, 오히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사도들의 많은 증언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인정하기를 거부한다. 그런 의미에서 십자가는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 되었다. 사실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오시면 자신들을 이 로마의 억압에서 해방하여 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러한 유대인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고, 도리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러다보니 유대인들에게 예수의 십자가는 거리끼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했다.
한편 헬라인, 곧 고대 그리스인들은 일찌기부터 철학이 발달했다. 그래서 그들은 철학적 사고와 지혜 속에서 만물의 근원을 캐고, 인생의 해결책을 찾으려 했으며, 당연히 이성적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것들은 배격했던 것이다. 따라서 헬라인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는 복음, 곧 ‘십자가의 도’ 는 그들의 흥미를 끌어주지 못했다. 그들의 지적 욕구를 충족하지 못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은 그저 미련한 소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바와 같이 죄인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십자가의 도 밖에 없다. 표적을 구하며 복음을 배척하는 유대인들이나, 자신의 지혜를 자랑하며 복음을 미련한 것으로 여기는 헬라인들은 멸망할 수 밖에 없는 반면,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믿고 기다리는 신자들에게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요 참 지혜가 된다.
여러분, 인간의 지혜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세상 지혜로 하나님을 깨달아 알 수 없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구원 방법 또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위대한 십자가의 도를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21절 처럼 ‘전도’처럼 미련한 것이 또 없다. 십자가의 도를 전파하는 전도만큼이나 미련하게 보이는 일이 또 없는 것이다. 여기서 전도가 미련하다는 것은, 전도 자체가 미련하다는 것이 아니라, 겉모양만 화려하게 보이는 인간의 철학이나 지혜에 비교해 볼 때 단지 외적으로 그렇게 보일 뿐이라는 것이다.
제가 충주에 이사를 오면서 사실 거의 본 적이 없다. 제가 살던 서울에서는 가끔 번화가나 지하철역 주변에서 오늘날에도 “예수천당 불신지옥" 이라는 피켓을 들고 전도하시는 분들을 종종 마주하곤 했다. 그들의 전도방법을 보면서 세상사람들은 혀를 찬다. 어떤 종교라도 열심히 믿으면 구원받는 것인데, 유독 교회만 저렇게 이기적이고도 배타적으로 군다고 손가락질을 한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도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표어를 보면서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라는 부드러운 표어도 있는데 저렇게 과격한 표어를 사용하면서 혐오감을 조장한다고 혀를 찬다.
오늘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아니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행위를 미련한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어떤 시각으로 보던지, 그들이 우리에게 어떤 다른 것을 요구하든지, 교회가 전할 것은 무엇인가? 오직 십자가의 복음 아니겠는가? 교회가 십자가의 도를 전하지 않고 다른 것을 전파한다면 그곳이 어떻게 교회라고 부를 수 있을까? 우리는 죄인이며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자라고 그 죄를 폭로하지 않는다면, 영원한 진노와 사망 가운데 놓인 자라고 선포하지 않는다면, 하지만 유일하게 살 수 있는 길인 십자가의 도를 전파하지 않는다면, 그곳이 어찌 교회라고 할 수 있는가?
22-24절을 함께 읽어보자.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이적과 표적, 세상의 지혜를 구하는 자들에게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은 핍박과 조롱의 대상이 될 것이 너무나도 자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바울은 초지일관 십자가의 복음만을 전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참된 표적이요 지혜일 뿐만 아니라, 그 외에는 어떠한 구원의 길도 없기 때문이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여러분,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 두 가지로 말씀드린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진정한 구원의 길은 천하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에서 오랜 시간동안 신앙생활 해왔던 분들 중에서도 이 사실을 확신하지 못하는 분들이 계실 수 있다. 예배의 자리는 빠지지 않고 늘 참석해왔지만 이 진리를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여 늘 구원에 있어 불안해하는 분들이 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 십자가의 도 외에 구원의 길은 어디에도 없다. 내가 교회에서 오랜 시간 봉사해오고, 예배를 빠짐없이 잘 참석해왔으며, 오랜 기간 기도에 힘써왔다 할지라도 내가 지금 붙들고 있는 것이 십자가의 도가 아니라면, 그 분은 지금 잘못된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모래 위에 집을 지어올린 것이기에 지금이라도 무너뜨리고 다시 쌓아올려야 한다. 우리가 은혜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오직 십자가의 도 뿐임을 확신하라. 이것만을 붙들라.
둘째로, 이제 우리가 십자가의 도만 붙들고 확신한다면, 오직 그것만이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이기에 우리는 전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분, 당연한 것 아닌가? 내 자식이 학교에서 전교1등을 해왔다. 얼마나 기쁜가?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겠는가? 직장에서 승진을 하고 연봉도 오르고 성과급도 엄청 받았다. 친구들에게 자랑하지 않겠는가? 이번에 새 집으로 이사도 하고, 좋은 차도 새로 뽑았다. 친구들에게 자랑하며 한번 태워주겠다고, 한번 집에 놀러 오라고 자랑하지 않겠는가? 마찬가지로 우리가 세상에서 찾을 수 없는 아주 귀한 진리를 발견하고 소유하게 되었다면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으랴. 이것을 널리 전파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겠는가?
여러분, 전도는 구걸이 아니요, 애걸복걸 부탁하는 것도 아니다. 오직 천하에 예수의 이름 외에 다른 구원을 주실만한 이름이 없음을 선포하는 것이요, 택하신 백성들에게 오직 예수 외에는 구원이 없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시는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이 복음의 말씀을 들을 때에 당장 그 결과가 나타나진 않더라도 그 심령 가운데 지속적으로 복음의 메세지로 인해 영혼이 울리기 시작할 것이고, 단단한 마음밭이 완전히 무너지는 때가 있을 것이며, 그렇게 지속적으로 복음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온전한 믿음 가운데 반드시 서게 될 것이다. 왜그러한가? 십자가의 도는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여러분, 나는 분명 복음을 전하는데도 지금 당장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말라. 변화가 없는 것 처럼 보여도 그냥 묵묵히 십자가의 도를 선포하라. 예수만이 구원이요, 예수만이 능력이며, 예수만이 생명임을 선포하라.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그분의 나라를 확장하신다. 잃어버린 바 된 영혼들을 그분의 거룩하신 품 안으로 부르시고 모으신다. 그리고 이 일들을 주의 종들, 성도들을 통하여 이루어가신다. 바로 이 자리의 저와 여러분들 말이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정리한다.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여기서 ‘능력’이라는 헬라어는 ‘뒤나미스' 라는 단어이다. 이 단어에서 영어단어 폭발화약을 가리키는 ‘다이나마이트' 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 즉 이 능력은 아주 작은 양으로도 어마어마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아주 소량으로도 엄청난 파급효과를 일으키는 능력이다. 십자가의 도가 바로 그러하다. 우리에게 주신 십자가의 도가 이와 같은 하나님의 능력임을 확신하라. 그리고 우리가 받은 이 놀라운 능력을 힘입어 지금도 잃어버린 바 된 영혼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라. 여러분의 선언을 듣고 죄인들의 영혼이 울릴 것이요, 그 말씀이 영혼의 대각성을 일으켜 결국 잃어버린 바 된 영혼들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놀라운 역사들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귀한 쓰임 받는 이 자리의 모든 성도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