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07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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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합의 믿음
라합의 믿음
중등부 친구들~ 다들 한주 잘 보냈나요?? 오늘도 이렇게 만날 수 있어서 너무나도 반갑습니다.
우리 지난주까지 해서 여름수련회를 잘 마무리하였는데요, 우리 이번 수련회때 어떤 것에 대해 나눴었죠? 한번 이야기해볼까요? 그렇죠, 교회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교회가 어떤 것이고, 왜 우리가 교회 안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그러면 오늘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물어보도록 할게요.
교회는 누가 머리되신다고 했죠?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공동체라고 했는데, 왜 연합해야 한다고 했죠? 그리스도와 연합해야 우리가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 안에 연합해야 하는데, 그 교회는 어떤 높낮이가 있나요? 그렇지 않죠, 우리 모두가 주님 안에 하나되는 공동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공동체는 어때요? 모두가 완벽하고 좋은 사람들인가요? 그렇지가 않았죠. 우리는 모두 죄로 물든 사람들이기 때문에 부족한 사람들이 많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죠? 그렇기 때문에 남을 비방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에게 주셨던 사랑을 가지고 모든 교회의 지체들을 사랑해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할 수도 있고,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친구들이 잘 기억하였을 것이라 생각하고, 앞으로도 이 말씀 잊지말고, 우리 친구들, 선생님들, 우리 교회안에 있는 모든 이들을 사랑하며 나아가는 우리 중등부 친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제 이전에 나누었던 말씀으로 다시 돌아와볼거에요. 우리가 어디까지 나누었는지 기억하나요?
바로 십계명의 말씀을 나누었었죠.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 십계명의 말씀을 다시 생각해보았던 것이 바로 우리 지난 말씀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또 다시 새로운 성경 말씀을 읽게 되었습니다. 바로 여호수아의 말씀이에요.
여호수아의 말씀은 그 제목에도 나와있듯이 여호수아라는 새로운 지도자와 함께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나안 정벌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면 한가지 궁금증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왜 이스라엘에 모세가 아닌 새로운 지도자가 생겨났을까요?
그것은 바로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전,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물을 달라고 투정하는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아닌 마치 자신이 물을 주는 것처럼 행동했던 것이죠.
결국 모세는 그 죄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가나안 앞에서 그 땅을 바라보기만 하고 죽음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새로운 지도자로 여호수아를 세운 것이었죠.
이제 이스라엘은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땅을 차지해야 하는 중요한 일들을 행해야 했습니다.
그 첫번째 관문이 어디냐면, 바로 여리고성이었습니다.
우리 친구들, 여리고성 들어보셨나요? 여리고성을 들으면 어떤 것이 생각나나요? 아마도 이런 그림이 생각날 것 같아요. 사진 보여주시죠.
바로 이런 느낌의 강한 성이 생각이 날 거에요. 맞습니다. 여리고성은 그 당시 가나안 지역 중에서도 가장 강한 성으로 유명했어요.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여리고성을 꼭 통과해야 했어요. 다음 사진 보여주시죠.
여기 나온 것처럼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여리고성을 지나가야했던 것이죠.
그래서 여호수아는 여리고성을 공격하기 전에 자신이 이전에 갔던 것처럼, 정탐꾼을 보내게 됩니다. 그래서 이 성이 지금 어떤 상황이고, 사람들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죠.
그 정탐꾼들은 몰래 여리고성으로 잠입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래서 그 곳에 살고 있던 라합이라는 기생의 집에 머물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겨요. 여리고 왕에게 정탐꾼들에 대한 정보가 새어들어간 거에요. 결국 정탐꾼들은 붙잡힐 위기에 처하죠.
그때 바로 그들을 머물게 해 주었던 라합이 그들을 숨겨줍니다. 그러면서 마치 그들이 다른 곳으로 간 것처럼 여리고의 군사들을 속이게 됩니다.
그러면서 정탐꾼들을 안전히 이스라엘 진영으로 보내기 위해 자신의 집 창문으로 그들을 내려주게 됩니다. 창문을 통해 붉은 줄을 매달아 내려가도록 했던 것이죠.
그리고 정탐꾼들에게 이야기를 전하게 됩니다. 나도 너희가 여기까지 오면서 행했던 일들을 들었다. 너희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다는 것을 나도 안다. 그래서 지금 여리고 땅의 모든 백성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
그러니 내가 지금 너희 목숨을 살려준 것처럼 이후에 너희가 전쟁에서 승리하였을 때 우리의 목숨을 살려주어라! 라고 말이죠.
정탐꾼들은 그 말에 동의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럼 그 때에는 너희 가족들을 모아 창 바깥에 우리를 내려준 이 붉은 줄을 걸어두라. 그러면 너가 말한대로 너희의 목숨을 살려두겠다. 하지만 이 일을 누군가에게 발설하면 이 약속은 무효가 될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라합 역시 이 말에 동의하였고, 정탐꾼들은 라합 덕으로 안전하게 도피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그가 정탐기간동안 보고 들었던 모든 것과, 마지막으로 라합이 전해주었던, 지금 여리고 백성들이 두려워 떨고 있다는 사실까지 모두 전하게 됩니다.
여기까지가 바로 우리가 함께 읽었던 말씀의 내용입니다. 사실 간단하게 보면, 적국의 국민이 스파이를 숨겨주고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했다는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친구들이 이 이야기를 보게 되면, 라합의 행동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을 거에요.
왜 굳이 적국의 스파이를 고발하지 않고 숨겨두었을까.
그렇죠. 사실 우리 친구들이 생각했을 때에도 이상하게 느껴질거에요. 만약에 친구들이라고 생각을 해봐요. 이제 곧 우리나라를 공격할 것 같은 어떤 나라 사람이 공격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우리 집쪽에 왔다고 가정해볼게요.
그러면 우리가 생각할 때에는 바로 경찰에 신고해서 잡아가게 하고, 나는 그 보상금을 얻고 하면 너무 좋지 않겠어요? 만약에 라합처럼 행동하다가 들키기라도 하면 내 목숨도 위험해질 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라합은 어떻게 했나요? 그렇게 하지 않았죠. 오히려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철저히 정탐꾼들을 보호해주고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안내까지 해주었어요.
대체 라합은 왜 이러한 행동을 했던 것일까요? 그것은 2장 11절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함께 읽어보도록 할게요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그렇습니다. 라합은 그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강한 믿음이 생겨났던 거에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바로 우리 모든 세계를 다스리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랬기에 라합은 그 하나님이야말로 나를 보호하실 수 있는 분이시고, 그렇기 때문에 이 정탐꾼들을 도와야 한다는 결론으로 나아가게 되었던 것이에요.
자. 그렇다면 이 라합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가 잘 알듯이,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성을 무너뜨렸을 때, 오직 라합의 집이 있던, 여리고성의 벽만이 허물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라합과 그의 가족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바라볼 수 있을까요? 가장 먼저 하나님을 향한 강한 믿음을 가져야한다는 것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라합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유대인이었나요? 혹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동하던 사람이었나요? 그렇지 않죠. 가나안 땅 여리고 성에 살던 이방인이었고, 그전까지 말씀 한 구절도 알지 못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분명히 다른 여리고성의 사람들처럼 이스라엘 군대에 의해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나타나니까 어떻게 되었나요? 정탐꾼들을 숨기는 엄청난 모험을 할 용기도 생겨났구요, 결국에는 여리고성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방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힘은 라합에게만 해당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주어졌습니다.
친구들, 혹시 이전에 정탐꾼 말씀 나누었을 때 생각나나요? 10명의 정탐꾼들이 뭐라고 했었죠? 가나안에 있는 민족들이 너무 강대해서 우리는 그저 메뚜기에 지나지 않는다 라고 할 정도로 엄청난 두려움에 휩싸여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에서는 누가 두려움에 떨고 있죠? 오히려 가나안 백성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완전히 반대 상황이 된 것이죠.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무엇이겠어요?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 아래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믿는 자들에게 힘을 주시고, 그의 생명을 보호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능력은 라합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겠죠. 바로 지금,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그러한 믿음의 능력을 허락하십니다.
우리 친구들의 삶에서 겪는 많은 어려움들, 학업의 문제, 진로의 문제, 혹은 친구관계나 건강의 문제들, 여러가지 우리 친구들을 막고 무너뜨리려고 하는 어려움들이 있을거에요.
우리가 그 앞에서 두려워 떨기만 한다면, 이전에 보았던 가나안을 두려워하던 10명의 정탐꾼의 모습과 같을 거에요.
하지만, 그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굳게 가지고 나아간다면, 오늘 말씀의 라합과 같이, 우리를 어려움에서 구하시고 우리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우리 친구들이 경험할 수 있을 거에요.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 두번째는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은 우리를 세우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친구들, 아까 라합이 말씀을 모르던 이방인이라고 했었죠? 그런데 그것에 더 추가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라합의 직업이죠. 말씀에는 라합이 어떤 일을 했다고 나와있죠? 기생이라고 나와있습니다.
결국 라합은 사회적으로 약자의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죠.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라합을 통해 정탐꾼을 살리게 하시고, 그의 가족을 구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끝난다면 뭐, 그럴 수 있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요, 하나님은 라합에게 더 큰 것을 주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계보에 속할 수 있도록 하셨다는 것이죠. 우리 말씀 한번 더 찾아볼까요? 마태복음 말씀입니다.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우리가 읽은 이 본문의 내용은 무엇을 담고 있냐면, 예수님의 족보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들을 통해서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나시게 되었는지를 기록했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 중간에 우리가 익숙한 이름이 있죠? 바로 라합입니다.
라합이 이후 결혼해 낳은 보아스가 우리가 룻기에서 볼 수 있는 그 보아스이구요, 그들은 이후에 다윗의 할아버지인 오벳을 낳습니다. 결국 다윗 왕조의 혈통이 라합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이죠. 그리고 또 그 왕족의 혈통은 이후에 예수님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결국은 무슨 이야기겠어요? 예수님의 혈통이 우리가 오늘 본 이방인이고, 사회적으로도 약자인 라합에게서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강하고 멋지고 위대한 사람들만을 쓰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약하고 부족하고 비천한 사람들을 하나님은 들어 사용하십니다.
겁쟁이었던 기드온, 깡패같은 삶을 살던 삼손, 그냥 고기만 잡던 베드로, 이런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은 그의 큰 뜻을 이루십니다.
혹시 우리 친구들 중에 나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나은 것도 없는 것 같고, 나는 너무나도 부족한 것 같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있나요? 만약 그렇다면 오늘 말씀을 잘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하나님은 우리 모든 친구들을 사용하셔서 주님의 크신 일을 이루실거에요.
우리 삶은 누군가의 조연이 아니에요.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택하신 주인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맡기신 일들이 있고, 그 일들을 분명히 이루실거에요. 마치 라합을 통해 여리고 점령을 이루어내신 것처럼 말이죠.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라합의 믿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큰 능력을 허락하신다는 사실을,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그의 사명을 맡기셨다는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세상에서 우리 중등부, 중학생들을 보면서 하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뭘까요? 바로 중2병이죠. 그런데 왜 하필 중2일까요?
그건 아마도 우리가 초등학생의 아이와 같은 모습에서 벗어나서 고등학생과 같은 온전한 청소년의 모습으로 나아가는 그 중간단계에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래서 나 자신이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이런 자아정체성을 찾아가는 시기가 보통 중학생 시기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보았을 때에는 이상한 말들, 이상한 생각들을 한다라고 할 수 있을거에요.
그런 중학생 시기이기 때문에, 우리 친구들이 지금 시기에 주님을 만나는 것이 더욱 중요할 것 같아요. 남들은 이해해주지 않고, 들어주지 않는 것 같은 여러가지 고민들과 생각들을 우리 주님은 들어주십니다.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것 같고, 그래서 더 쓰러질 것 같은 순간들이 찾아온다면, 그때 주님께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 친구들을 분명히 붙들어주실거에요.
그래서 삶 속에서 두려움에 빠져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함으로 두려움에서 벗어나 담대함으로 주님이 주시는 승리를 누리는, 우리 모든 중등부 친구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함께 찬양하도록 할게요. 함께할 찬양은 모든 상황 속에서입니다.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주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이 주시는 믿음만 있다면, 세상 속에서 담대히 나아갈 수 있고, 또한 주님이 맡기신 모든 일들을 해낼 수 있다 라는것을 바라보았습니다. 주님, 우리는 어쩌면 이스라엘 백성들 같이, 혹은 라합과 같이 삶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두려워만 하는 삶을 살아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러한 우리를 하나님은 택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주님, 우리와 함께하여주시고, 우리에게 굳센 믿음을 주셔서, 삶에서의 모든 어려움들을 이겨내고, 주님이 우릴 향해 세우신 모든 계획들을 이루어나갈 수 있는 귀한 모습들이 우리 삶 가운데 있을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항상 함께하시며 힘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리며,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