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의 도전이 거칠 때

에스라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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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 환영과 인사

청년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 이렇게 함께 모임을 가지게 되어 감사합니다. 우리 강도사님이 휴가 중이라 여러분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있어 좋습니다. 모두 강건하시고 평강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S2. 주제 제시

성도로 살아가는 삶은 마냥 기쁘고 행복하지만은 않습니다. 때로는 쓴 도전과 방해가 우리 앞을 가로막습니다. 주신 은혜를 따라 평안하게 살기만을 바란다면 자칫 이런 도전과 위협 때문에 큰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포로 귀환의 즐거움에 젖어있는 유대인들을 크게 위협하는 몇 가지 도전들을 살피고자 합니다. 세상의 도전의 실체는 무엇이고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이길 수 있는지 함께 말씀을 살피며 은혜를 누리고자 합니다.

S3. 문제 제기

본문은 크게 세가지 문제를 다룹니다. 첫째는 성전 건축을 방해하는 자들이 사용하는 전략입니다. 둘째는 처음 방법이 안먹혀 들 때 이들은 어떤 대안적인 것으로 성도를 위협할까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 째로는 한 일을 막지 못했을 때 어떤 공격들을 예상해야 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왜 아닥사스다 시대에 있었던 성벽 건축 방해 사건을 들어 그보다 훨씬 앞선 다리오 2년 때까지 중단된 성전 건축 방해 사건을 설명하는가 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성전을 누리고자 하는 성도를 방해하는 악의 세력들의 실체를 밝힐 수 있고, 이에 대한 성도의 대안적인 삶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W1. 첫째는 타협을 경계하고 거절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본문 4장 1-3절에는 1차 귀환자들이 성전을 건축하려고 했을 때 생긴 외부의 도전과 응전을 잘 보여 줍니다. 먼저 1, 2절 말씀을 같이 봅시다.
에스라 4장 1, 2절
1.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한다 함을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듣고 2. 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나아와 이르되 우리도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 같이 너희 하나님을 찾노라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 한 날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 하니
1차 귀환자들이 성전을 건축하고자 할 때 대적들이 듣고 찾아와 함께 건축하게 해 달라는 제안을 합니다. 이들은 자신을 앗수르 왕 에살핫돈 때에 사마리아 지역으로 이주한 자들이라고 소개를 합니다. 이들은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앗수르 왕에 의해 강제로 이주를 해온 족속들이었습니다. 구약 성경에는 에살핫돈 왕 때의 이주를 기록으로 알려주는 본문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열왕기하 17장 24절에서 이런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17장 24절
24. 앗수르 왕이 바벨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사람을 옮겨다가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두매 그들이 사마리아를 차지하고 그 여러 성읍에 거주하니라
이는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BC 722년 경에 일어난 일을 기록한 것입니다. 앗수르 왕들은 정복한 지역민을 포로로 잡아다가 자신들이 정복한 다른 땅으로 이주시키는 정책을 통해 반역을 막아 온 것으로 보입니다. 에살핫돈은 BC 680년 경에 아버지 산헤립을 이어 앗수르의 왕이 되었고, 치세 10년이 지난 BC 670년 경에 이집트와 전쟁을 하러 이쪽 서쪽 지역으로 원정을 와서 승리를 거둡니다. 아마 이 시기에 다른 민족들을 사마리아로 이주시킨 일이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처음 사마리아로 이주왔던 이방인들은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것은 이들이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아 여호와께서 사자들을 보내어 몇 사람들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이에 이들 중 한 사람이 앗수르 왕에게 자신들이 이 땅의 신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알려 주어 이런 재앙이 생기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그래서 앗수르 왕은 제사장 중 한 사람을 보내어 벧엘에 살면서 여호와의 법을 가르치도록 했습니다. 열왕기하 17장 27, 28절입니다.
열왕기하 27, 28절
27. 앗수르 왕이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그 곳에서 사로잡아 온 제사장 한 사람을 그 곳으로 데려가되 그가 그 곳에 가서 거주하며 그 땅 신의 법을 무리에게 가르치게 하라 하니 28. 이에 사마리아에서 사로잡혀 간 제사장 중 한 사람이 와서 벧엘에 살며 백성에게 어떻게 여호와 경외할지를 가르쳤더라
이런 점에서 앞에서 찾아온 이들이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다는 말은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후의 기록에 보면 이 사람들이 오직 여호와만을 섬긴 것이 아니라 자기 민족의 신도 함께 섬기면서 사마리아는 그야말로 만신전이 되어 주변의 온갖 신들을 섬기는 혼합적 신앙이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스룹바벨과 예수아를 찾아온 이들을 에스라가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라고 부른 것은 이런 배경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하여 이들은 1차 포로 귀환자들이 돌아오기 이전 예루살렘까지도 자기들의 통치 하에 두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자신들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페르시야 왕이 명령한 성전 건축에 참여하고자 한 것입니다. 새로운 세력들을 무력화하고 자신들의 세력을 굳건하게 하고자 하는 전략으로 보여졌던 것입니다.
곧 이은 3절은 이를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소개합니다. 3절을 봅시다.
에스라 4장 3절
3.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기타 이스라엘 족장들이 이르되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바사 왕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 하였더니
당시 스룹바벨과 예수아는 페르시야 왕 고레스의 명령을 근거로 하여 이 성전 건축에 그들의 대적들이 참여하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성전이 혼합주의자들과의 결탁을 통해 세워지지 않도록 하는 영적인 조처였고, 동시에 성전 건축을 통해 유대와 베냐민이 온전케 회복하는 바람직한 조처였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힘든 결단도 필요했습니다. 뭔가 새로운 건축을 하려고 하면 인력과 물질적인 힘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자발적으로 돕겠다는 이들이 나섰으니 이런 부분에서 염려를 걷을 기회입니다. 그러나 당시의 지도자들은 이런 타협을 선택하기보다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이루시기를 기대하면서 거절의 결단을 내렸던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것을 이루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특히 하나님은 자신이 약속하신 일은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도와 교회는 세상과의 적절한 타협보다는 온전한 아버지의 뜻을 믿고 신뢰하기로 결단하며 사는 삶이 필요합니다.

W2. 둘째로 영적 훼방을 인내하며 기다리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결정은 성전 건축을 더디게 했습니다. 4, 5절입니다.
에스라 4장 4, 5절
4. 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 5.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계획을 막았으며
고레스 왕은 BC 550년부터 통치를 시작하여 BC 530년까지 페르시야를 다스립니다. 이후 그의 아들 캄비세스가 BC 530년부터 522년까지 통치하였고, 본문의 다리오는 BC 522년에 즉위하여 486년까지 37년을 통치한 왕입니다. 유대의 귀환이 BC 536년이고 보면 BC 522년은 1차 귀환이 있은 지 약 14년 정도가 지난 시간입니다. 그런데 24절을 보면 선정 공사는 다리오 제이년까지 중단이 되었다고 합니다. 즉, 즉위한 새 왕에게 뇌물을 제공한 자들이 둘째 해까지 영향을 미쳐 성전 건축이 약 16년 정도 중단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24절을 봅시다.
에스라 4장 24절
24. 이에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성전 공사가 바사 왕 다리오 제이년까지 중단되니라
우리는 먼저 여기에서 한 가지 사실을 점검해야 합니다. 그것은 이 기록대로라면 성전 건축이 중단된 것은 대적자들에 의한 외부의 힘에 의한 것이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시기 즉 다리오 왕 둘째 해에 사역을 한 선지자 학개는 이 사건을 다른 관점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학개 1장 1-4절입니다.
학개 1장 1-4절
1.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3.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4.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선지자 학개는 백성들이 성전 건축 시기가 이르지 않았다고 말했음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이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성전이 황폐한데 자신은 좋은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고 하신 책망을 알려줍니다. 무슨 말입니까? 에스라는 성전 건축 지연을 대적들의 압력 때문이라고 하는데 학개는 백성들의 나태함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는 서로 일치하는 주장이 아닙니다. 왜 같은 사건을 두고 성경이 각기 다른 말을 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여기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두 관점은 하나가 옳고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외부의 적들이 압력을 가할 때 그로 인해 하나님의 일이 늦어지게 되면, 우리는 종종 스스로도 하나님의 일을 포기하고 회피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분명 외부의 적들로 인해 성전공사는 진척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뇌물을 받은 관리들이 원래 고레스가 내린 명령을 늦추고 시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생기면 하나님의 자녀들도 세상을 핑계로 스스로 포기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주의 청년 여러분, 우리도 이런 도전들 앞에서 무너지지 않는지 자신을 잘 돌아보아야 합니다. 외부의 환경을 탓하거나 그것에 눌려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다 보면 결과적으로는 내가 순종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환경적으로 안되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하신 일이고 명령하신 것이라면 우리는 그 일이 일어나도록 기도하고 그 약속의 성취를 소망하며 인내하는 일을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도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마침내 알려 주실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적어도 하나님의 자녀들은 끝까지 인내하고 싸워야 합니다.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약속을 붙드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W3. 마지막으로 지속적인 방해를 담대함으로 이겨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에스라가 1차 귀환자들의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다리오 왕이 아닌 아하수에로와 아닥사스다 시대에 있었던 어려움을 기록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하수에로는 다리오를 이어 BC 486년부터 BC 465년까지 페르시야를 통치한 왕입니다. 이 왕의 시대에 우리는 세 차례에 걸친 그리스와의 전쟁이 있었고, 모두 페르시야가 크게 대패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닥사스다 왕은 BC 465년부터 BC 423년까지 통치한 왕으로 그의 시대인 BC 458년에 에스라의 2차 귀환이, 그리고 13년 뒤 BC 445년에 느헤미야의 3차 귀환이 있었던 것도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아하수에로 왕과 아닥사스다 왕은 성전 건축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성전은 다리오 왕 2년에 다시 건축이 시작되어 그의 치세 6년에 완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에스라 6장 15절
15. 다리오 왕 제육년 아달월 삼일에 성전 일을 끝내니라
성전 건축은 BC 520년 경에 시작되어 BC 516년 경에 완성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에스라는 지금 아하수에로 시대의 고발과 아닥사스다 시대의 저항을 통해 성전 건축으로 인해 받았던 저항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6, 7절입니다.
에스라 4장 6, 7절
6. 또 아하수에로가 즉위할 때에 그들이 글을 올려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을 고발하니라 7. 아닥사스다 때에 비슬람과 미드르닷과 다브엘과 그의 동료들이 바사 왕 아닥사스다에게 글을 올렸으니 그 글은 아람 문자와 아람 방언으로 써서 진술하였더라
더구나 11절부터 16절까지 소개된 아닥사스다 왕에게 편지를 보낸 방백 르훔과 심새는 다리오 왕 때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들은 그보다 훨씬 후대인 아닥사스다 시대의 사람들로써 성전 건축이 아니라 예루살렘 건축을 위해 기초와 성곽을 건축하는 일에 대해 고소를 하고 있습니다. 12절을 봅시다.
에스라 4장 12절
12. 왕에게 아뢰나이다 당신에게서 우리에게로 올라온 유다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이 패역하고 악한 성읍을 건축하는데 이미 그 기초를 수축하고 성곽을 건축하오니
이 과정에서 르훔과 심새는 유대 사람들이 이 작업을 마치고 나면 조공과 세금을 바치지 않을 것이라며 왕에게 거짓 무고를 하기도 합니다. 13절을 봅시다.
에스라 4장 13절
13. 이제 왕은 아시옵소서 만일 이 성읍을 건축하고 그 성곽을 완공하면 저 무리가 다시는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바치지 아니하리니 결국 왕들에게 손해가 되리이다
이런 무고와 훼방 작업은 아닥사스다 왕으로 하여금 경계심을 잃으켜 르훔과 심새에게 성벽 건축 공사를 중지시키도록 조서를 내리게 하였고, 결과적으로 예루살렘 성벽 건축이 중단되고 말핬던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24절은 이 일로 인해 그보다 훨씬 앞 세대의 다리오 왕 제 이년까지 성전 건축이 중단되었다고 기록합니다. 23, 24절입니다.
에스라 4장 23, 24절
23.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 초본이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그의 동료 앞에서 낭독되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급히 가서 유다 사람들을 보고 권력으로 억제하여 그 공사를 그치게 하니 24. 이에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성전 공사가 바사 왕 다리오 제이년까지 중단되니라
이것은 다소 어색한 기록입니다. 후대 왕의 일로 전대 왕이 어떤 결정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성경이 틀렸다는 말일까요?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이 사실은 같은 류의 방해가 이전에도 있었기 때문에 성전 건축이 중단되었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고 성전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일은 역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도전받고 훼방받는 일이었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을 유지하려고 하면 세상은 온갖 권력과 힘을 다해서라도 진정한 믿음을 방해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W4. 그러므로 예수님 중심의 삶은 항상 위협을 받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성벽 건축이 위협을 받는 사건이나 성전 건축이 방해를 받는 사건은 한가지로 세상이 성전을 성도의 삶에 중심에 두는 것을 위협하고 훼방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전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성전을 자기 자신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장 21절은 성전은 예수님의 육체를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요한복음 2장 21절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당시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성전을 헐면 사흘 만에 다시 지을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이는 비유적인 뜻으로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시면서 이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성전 건물을 파괴하려 했다고 오해했습니다. 물론 이 성전은 AD 70년에 로마의 황제가 된 당시 장군 디도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성전은 육체를 입고 오신 메시야 하나님이신 예수님 자신을 뜻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삶의 중심에 모시고 그분의 뜻을 따라 세상에서 살아가는 진정한 교회가 되고자 함에는 역사를 거쳐오는 강대한 반대와 저항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나 제가 세상에서 성전이신 주님을 모시고 한 교회를 이루어 말씀을 따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가려면 무수한 세상의 위협과 공격을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학개와 함께 사역했던 스가랴는 우리에게 이런 대답을 줍니다.
스가랴 4장 6절
6.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우리가 이룰 수 없는 성전 세우기를 이루어 주십니다. 우리는 이 믿음을 붙들고 세상의 위협과 도전이 내 삶을 결정하는 힘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오직 성령님의 조명을 의지하여 주시는 말씀을 따라 살때만이 성전 되신 예수님과 동행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성령님의 충만을 구하시고 그 은혜를 누리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적용과 결단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세상이 성도를 위협하는 과정을 봅니다. 처음에는 함께 동참하기를 제안합니다. 협력하여 일을 이루고자 하면서 우리를 방해하는 것이 세상입니다. 거절하면 물리적인 힘을 동원하여 우리를 공격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로마인의 손을 빌어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성전 건축이 다 이루어지자 다음에는 성벽 건축을 방해합니다. 권력과 힘에 온갖 거짓말을 넣어서 아첨과 속임을 동원하여 성도를 무고합니다. 그 결과 성도인 우리의 마음에 낙심과 절망이 찾아와 모든 것이 안되다고 말하는 연약함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에게 계신 예수님은 여러분과 저에게 타협하지 않는 용기와 지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성령님을 통해 순간순간 인내하고 견뎌내는 견인의 은혜도 주십니다. 내 힘이 아니라 성령님이 이루실 것을 기대하면서 우리는 삶을 인내하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를 향한 악인들의 도전이 거칠고 힘이 들 때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만 되는 놀라운 은혜의 능력을 기억하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 결과 성령님 안에서 외적인 도전을 영적으로 승리하여 이겨내는 성도의 기쁨을 풍성히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주이신 주님도 오직 성령님만을 의지하여 힘을 얻으시고 세상을 이기는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바로 이 은혜 안에 풍성히 거하시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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