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25:31-46(화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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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닮은 마음을 행동으로 실천하자
예수님 닮은 마음을 행동으로 실천하자
본문은 예수님의 다섯 번째 말씀 중에 마지막 천국에 관한 비유 중 3번째 비유입니다.
3가지 비유 모두가 천국을 비유하는데 우리는 천국이라는 말을 들으면 길거리 전도에서 많이 들었던 천국 영생 / 불신 지옥과 같이 나중에 일을 생각합니다. //
그런데 열처녀 비유에서 기름을 준비하는 시간이 언제였습니까? 지금이라는 것이구요 어제 살핀 달란트 비유에서 그 주인이 왔을 때는 정산할 때임으로 맡기고 먼 타국으로 간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중요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양과 염소의 비유는 무엇인가요?
마태는 어떤 의미에서 천국이라고 했을까요? 우리가 나중에 가는 천국의 의미보다 성경은 ‘하늘 나라’라는 의미 곧 ‘나라’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는 것인데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면 ‘하나님 나라’가 되지만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직접 쓰는 것이 듣는 이들에게는 좀 신경쓰이는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에둘려 표현한 것이 ‘하늘 나라’이고 이런 표현은 30회나 나옵니다. 이것을 우리 말로 옮겨오면서 ‘천국’이라는 한자식 표기가 된 것이죠. 그리고 그 말은 예수님을 잘 믿다가 소천하면 그 후에 가는 어떤 장소의 의미로 해석되곤 합니다. 여러분 어제 마태는 ‘선생님’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선생은 ‘제자’ 그리고 가르침이라는 것이 같이 연상됩니다.
31절에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어떤 때입니까? 우리는 잘 알듯 예수님의 재림을 의미하겠죠. 그런데 34절에 보니 ‘그 때에 임금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나라’ 하면 뭐가 같이 오는 것이죠. ‘임금’입니다. 그러면 임금은 선생이 가르침이 있듯 무엇을 동반합니까? ‘통치’입니다.
주의 깊게 성경을 읽는 독자라면 열 처녀 비유에서 미련한 다섯 처녀를 향해서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라고 하신다든지 / 달란트 비유에서 한 달라트를 묻고 주인을 오해했던 종에게 30절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라고 명령을 하시거나 오늘 말씀은 더 나아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셨다 31’ 그리고 염소와 양을 나누신다. 그리고 46절에 그들을 향해 ‘영벌에’ 들어가리라고 하신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행동을 우리는 ‘통치 행위’라고 합니다.
그러니 마태는 예수님을 선생님으로 소개하면서도 또 하나 무엇으로 소개 할까요? 네 맞습니다. 바로 ‘왕’입니다. 그럼 여러분에게 아주 쉬운 문제를 내겠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누구를 찾았습니까?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입니다. 그럼 이 이야기는 누가 기록했을까요? 맞습니다. 바로 마태만이 이 사건을 2장 시작을 하면서 예수가 바로 ‘왕’이시라는 것을 말하면서 시작합니다.
이제 수요일 부터 예수님의 수난 이야기가 시작될 터인데 나중에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심문 당할 때 빌라도는예수를 향해 누구라고 물어봅니까? ‘ 맞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그리고 잘 알듯 예수님의 죄패에 뭐라고 써있었나요. ‘유대인의 왕’이라고 써붙였던 것입니다. 물론 수난 이야기에서 ‘유대인의 왕’ 이라는 이야기는 마태, 마가, 누ㄱ, 요한 모두가 말하는 아주 중요한 이야기가 됩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이 선포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바로 그 왕, 곧 임금이 오늘 비유의 핵심에 있는 것이죠. 그 왕의 판단이 그가 오실 때에 일어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육신 하실 때는 홀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다시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는 자기 영광 곧 제2위 하나님의 자기 영광과 모든 천사와 함께 오신다는 것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죽은 후에 들어가는 곳이라기 보다는 임금으로 오셨으나 알아보지 못하고 인간의 죄패 아래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이제 다시 올 때 어떤 모습으로 오십니까? 잊지 마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그 심판에서 오른 편에 선 자들이 받는 복은 바로 34절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직접 말씀해 주시는 데 35절 부터 ‘내가 주릴 때, 목마를 때, 나그네 되었을 때, 병들었을 때, 옥에 갇혔을 때’ 한 행동 때문입니다. 더 집중해서 살펴야할 단어가 있는데 37절에 이들을 뭐라고 부릅니까 ‘의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참 이상하게 대답합니다. ‘우리가 언제 그랬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 의지해서 자주 만나게 되는 이웃에게 베풀기도 하고 그들의 필요를 채우기도 하며 때론 부지불식간에 방문해 금전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내어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우리가 언제 그랬냐고 묻습니다.
우리가 의지하는 말씀이 40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니라’는 임금의 말씀 때문입니다. 특히 40절에 두 번이나 나오는 ‘한 것’이라는 것은 그렇게 행한 것을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부모와 아이 이야기를 한 번 해보겠습니다.
공부하지 않고 나와서 거실과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다 하는 친구에게 넌 공부 하라고 하면 그렇게 들락날락하냐. 합니다. 아니면 게임과 핸드폰에 열중하는 아이에게 이제 공부해야지 하면 ‘할려고 하는데 꼭 그렇게 말해서 기분나쁘다’고 말합니다. 이 둘다 ‘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죠.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면 오늘 본문에 몇 번 나오나요. 임금이 말할 때 의인이 다시 목록을 열거하면 어제 그랬냐고 물을 때, 그리고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말할 때 그들이 자신도 했다고 주장할 때 자그만치 4번에 되풀이 해서 말하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행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겠죠. 그리고 그것을 행한 자들을 ‘의인’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에 대한 나를 ‘의롭게’하심에 대해서만 잘 알고 있지 실제로 ‘여기’ 곧 그 자리 우편에 함께 있는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 곧 임금께서 직접 ‘내게 한 것’이라고 인정해주시며 의인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놓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래서 에베소 교회에 이렇게 말합니다.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을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의로 옷 입히는 의롭게 하심을 믿는 자는 오늘 마태가 그리스도를 우리의 선생으로 가르치신 놀라운 일들을 행하는 것이 우리가 아는 것입니다.
알고도 행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약4:17 “17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오늘 주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이 내용이 바로 산상수훈의 그리스도인의 삶을 요약한 것입니다. 그것을 행하는 자가 바로 ‘의인’으로 불리는 자입니다. 우리는 믿음은 당연시 여기면서도 마땅히 선을 곧 의라는 사실을 알고도 행하지 않는 일에 있습니다.
열처녀 모두 같은 그룹이었습니다. 5,2.1 달란트 모두 같은 종이었습니다. 그리고 심판의 날에 각각 구분되어 오른편과 왼편에 선 이들 모두 같은 것을 행했지만 여전히 의문인 것은 한 그룹은 그것을 행하고도 몰랐으며 한 그룹은 자신이 분명히 그것을 행했다는 것을 알았고 그에 대한 임금의 반응은 몰랐던 그들을 인정했고 자신이 행하는 것을 잘 알고 있던 그룹은 인정하지 않았다는 반전이 있습니다.
여기에 숙제가 있습니다. 묵상꺼리가 있는 것이죠.
우리에게 옳다 하는 일은 참 많습니다. 어떤 일은 한 번에 끝날 수도 있지만 어떤 일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아직도 그일에 메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다는 것으로 한 때는 사람들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것으로 사람들은 매력을 느끼거나 호감을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불쾌해 합니다. ‘예수 믿는게 뭐’ ‘야 예수 믿는다면서 더하더라’ 바로 우리가 ‘의’로운 삶을 그리스도께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는 것이 ‘한 것’으로 드러나야 하는데 말 뿐인 그리스도인이 되어 이 땅에서 조차 버림바 되었다면 어찌 임금으로 오시는 그 날에 주님의 얼굴을 대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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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31-32 심판 -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가 있다는 것, 그 때는 심판이 이루어지는데 심판의 주체가 되신다.
34절은 ‘임금이’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 복 받을 자들- 그 복이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는 것이다. --
35절 내가 주릴 때 - 먹을 것을 주었다. / 목마를 때에 마시게 했다 /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했다. /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다.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다/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다.
37 - 이들을 의인이라 칭하나다. - 37-39 우리가 언제 그랬냐는 것으로 질문한다.
40절 - ‘임금이’라고 칭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 여기 내 형제 - 이미 참석된 자들. =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 그리스도에게 한 것이다.
41 왼편에 있는 자들 = 저주를 받은 자들 =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주릴 때, 목마를 때에, 나그네 되었을 때에, 헐벗었을 때에, 병들었을 대, 옥에 갇혔을 때에 /
44. 대답 -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첫째 아들이 생각난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 어렵다.
그들은 영별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35-36 여기에는 다양한 시제를 사용한다. 대표적으로 부정과거 형태로 과거에 행하던 일이 계속되고 있다는 의미와 / 중간태 - 나그네를 살피는 / 병자를 돌본다 (그 돌봄이 마무리될 때까지 - 강도를 만나 사마리아 인에게 돌아와서 마무리를 하는 장면이 기억난다.) 옥에 갇혀 있는 상태에도 왔다라고 기록한다.
40절 ὅσον(as much as ~만큼/ ~만큼 많이/ ἐποιήσατε 두번 기록 - to do
본문의 임금의 일과 자신들이 언젠 했냐고 오히려 질문하고 이에 해당되는 말씀이 40절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 이들이 심판 때에 ‘여기’에 함께 있다는 것이다.
어떨 때 우리는 한 것을 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을까요? / 요즘 비로 인해 사람을 구한 의인이라는 분들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 반면 어떤 이들은 그 일을 하면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이랬으면 좋았을 것을’ 일을 안한 것이 아닌데 그 일보다 다른 것에 관심이 있다는 것이죠.
= 하단 반대자들에 대한 원어 분석 할 차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