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교회의 참된 표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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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 환영과 인사
S1. 환영과 인사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 시간에 함께 하신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가 충만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우리 좌우에 계신 분들에게 ‘성령님 충만하십시오’ 하고 인사 나눕시다.
네 감사합니다. 여전히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있고, 날씨도 무더워져 여러모로 어려움이 있습니다만 모두 영육간에 평강한 시간들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내일은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를 극복하고 해방을 맞은 지 77년이 되는 날입니다. 지금은 국가 공동체에 대한 일체감이 많이 약해져 있는 시절이긴 하지만, 우리의 삶은 국가라는 경계선 안에서 공동체적 삶을 삽니다. 비록 영원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지만, 우리 성도들은 국가를 사랑하고 이 공동체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항상 나라를 위해 중보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불평스러운 일들도 없지 않지만 성경은 국가의 위정자들에게 순종하고 국민적 의무인 세금 납부에 최선을 다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나라가 이웃의 강국에 의해 지배를 당한 지 35년 만에 해방을 맞게 된 날을 감사와 기쁨으로 맞이하면서 온 교회가 나라를 위해 더 많이 기도하고, 최선을 다해 의무를 잘 이행해 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S2. 주제 제시
S2. 주제 제시
오늘은 교회론 두 번째 시간으로서 성도의 어머니로서의 교회의 의미와 함께 참된 교회의 표지가 무엇인지를 묵상하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교회사에서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성도들은 교회를 어머니로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카톨릭은 마리아가 예수님의 어머니로써 우리 모두의 어머니가 된다는 성모론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의 생명을 가진 성도는 영적 어머니인 교회를 통해 지속적인 모성적 돌봄과 양육을 받음으로 온전한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이런 까닭에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성도는 혼자가 아니라 반드시 교회 공동체의 회원이 되어 지속적인 신앙적 양육과 공급을 받아야 합니다.
S3. 문제 제기
S3. 문제 제기
물론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리스도의 몸으로, 그리고 성령님의 전으로 언약을 통해 여호와의 자녀가 되었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우리의 새로운 신분은 이미 충분한 것인데 왜 교회에 출석하여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믿음을 가진 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요?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개인적인 것이니 이제부터 스스로 신앙을 잘 관리하여 새롭게 살아가는 데 힘쓰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기 쉽습니다.
J1. 하나님의 마음, 속성, 그리고 방법
J1. 하나님의 마음, 속성, 그리고 방법
그러나 하나님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혼자서 신앙생활을 성공적으로 감당할 수 없음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이는 성도 안에 여전히 존재하는 죄성으로 인해 구원받은 자의 삶이 자연적으로 복음 안에 거하지 못하고, 그 결과 영적으로도 자라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구원받은 성도들도 여전히 죄인이기 때문에 죄의 영향은 항상 성도를 위협합니다. 로마서 7장에서 사도 바울은 이런 고통을 호소합니다.
로마서 7장 22-24절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개혁자 칼빈 선생은 특별히 성도의 마음에서 의의 법과 싸우는 이러한 죄성을 ‘무지와 게으름’이라고 표현합니다. ‘무지’라고 하면 자신의 고집으로 외투를 삼고 그 안에 머무는 행위를 말합니다. 즉,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고집하면서 말씀을 듣고도 그것을 고치려고 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동시에 ‘게으름’이라고 하면 그야말로 부패한 삶을 말합니다. ‘어리석고’, ‘미련한’ 부패함이 우리 안에 여전히 존재하는 것을 말합니다.
J2. 하나님이신 그리스도
J2. 하나님이신 그리스도
이런 까닭에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 그리스도의 말씀을 선포할 목사와 교사를 세우시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성례를 재정하여 집행케 하심으로써 성도들이 교회의 모성적 보호와 교육 안에서 자라도록 하신 것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접붙임을 받게 되고, 서로 연합하여 엮어짐으로 한 몸이 되어 영적인 성장을 누리게 됩니다. 에베소서 4장 15, 16절 말씀을 봅시다.
에베소서 4장 15, 16절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J3. 사람이신 그리스도
J3. 사람이신 그리스도
이러한 성도의 연합과 하나 됨은 비단 신약 성경에서만 가르치고 고백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에서도 동일하게 노래하고 고백하던 내용들입니다. 시편 106편 4, 5절입니다.
시편 106편 4, 5절
4. 여호와여 주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은혜로 나를 기억하시며 주의 구원으로 나를 돌보사 5. 내가 주의 택하신 자가 형통함을 보고 주의 나라의 기쁨을 나누어 가지게 하사 주의 유산을 자랑하게 하소서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지속적인 돌봄과 베풀어 주시는 형통함 안에서 성장해 왔습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 백성들을 향해 돌봄과 양육의 은혜를 공급함으로써 교회가 자라고 성숙하케 하십니다. 이런 까닭에 성도는 참된 교회의 모성적 돌봄을 공급받아야 온전하게 자랄 수 있는 것입니다.
W1.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는 참된 교회에 소속해야 합니다.
W1.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는 참된 교회에 소속해야 합니다.
성도는 바른 교회를 찾아 그 공동체 안에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분들이 교회를 떠나 개인적인 신앙생활로 돌아서는 경우가 있습니다. 최근 ‘가나안’, 소위 ‘안나가’ 성도들이 이런 류에 해당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매우 위험한 결과로 이어집니다. 성도에게 주신 구원의 믿음은 혼자서 성숙한 자리에 이르게 하지 않습니다. 앞에서 살핀 대로 구원받은 성도에게도 ‘무지’와 ‘게으름’은 교묘하게 성도를 무너뜨리고 넘어지게 하는 악한 힘입니다. 이런 까닭에 성도들이 혼자 신앙생활을 한다고 생각하고 교회와 분리되면 그분들의 신앙은 결코 든든한 믿음으로 자라지 못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믿음의 성격이 함께 지어져 가는 것임을 분명히 말합니다. 에베소서 2장 22절을 봅시다.
에베소서 2장 22절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성도는 함께 지어져 가는 공동체입니다. 혼자서는 온전한 건물로 지어질 수 없습니다. 참된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그리스도의 몸이며 성령님의 집인 교회에 속하여 성령님의 외적인 방편들을 통해 믿음을 굳건하게 세워야 합니다.
W2. 참된 교회는 말씀과 성례의 표지를 분명하게 가진 교회입니다.
W2. 참된 교회는 말씀과 성례의 표지를 분명하게 가진 교회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생각할 때 오해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교회는 단순히 사람과의 관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관계에서 마음이 상하거나 감정이 나빠지면 떠나 다른 곳에 가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면 되는 그런 인간 공동체가 아닙니다. 종종 이단들은 교회의 부정적인 것들을 언급하면서 자신들이 새로운 대안이 되는 것처럼 그렇게 성도들을 미혹합니다. 여기에는 성도들의 잘못된 교회 이해도 원인이 있습니다.
교회는 두 가지의 본질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성령님의 외적인 은혜의 수단들을 통해 성도들에게 모성적인 돌봄을 제공하는 본질의 기능을 말합니다. 이를 교회의 표지라도고 합니다. 교회의 첫째 표지는 순전한 복음 선포입니다. 교회는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선포가 본질입니다. 예배 가운데, 혹은 성도들의 모임 가운데 항상 말씀이 우선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것은 부족할 수 있으나 말씀이 선포되는 교회는 온전한 교회입니다. 더하여 교회는 성례를 온전히 베풀어야 합니다. 개혁자 칼빈은 매주 성찬을 원했으나 당시 제네바 상황이 그렇지 못했습니다. 실제로는 한 달에 한 번 행하는 것도 어려워 분기별로 성례를 베풀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리스도 안에 주신 약속의 징표가 되는 성례를 온전히 집행하고자 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교회와 성도는 말씀 선포와 성례 집행을 가장 우선순위로 두고 이 표지들이 결코 약해지지 않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W3. ‘권징’은 말씀과 성례를 세우기 위한 보호 장치입니다.
W3. ‘권징’은 말씀과 성례를 세우기 위한 보호 장치입니다.
벨직 고백서를 중심으로 해서 ‘권징’을 ‘교회의 표지’라고 여기는 분들도 있습니다. 벨직 고백서를 작성한 ‘귀도 드 브레’는 권징을 교회의 표지로 두어 교회에 세 표지가 있다고 가르쳤고, 네델란드 교회는 그것을 수용하여 벨직 고백서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권징’은 ‘말씀’과 ‘성례’의 두 표지를 온전히 세우기 위한 보호 장치입니다. 교회는 반드시 권징을 시행해야 하나 이것을 표지로까지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물론 표지가 아니라는 말이 권징을 안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종교개혁 초기에는 권징을 법적 사법권을 가진 시의회가 감당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칼빈은 국가의 법을 어긴 경우라면 사법적 재판을 받아 그 책임을 지는 것이 옳지만, 성도의 경우는 양심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예를들어 도둑질을 했다면 국가는 법에 따라 그에게 형벌을 지우면 되고 본인도 그렇게 책임을 지면 됩니다. 그러나 국가가 그 사람의 양심은 지도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에 교회는 권징을 통해 성도의 양심을 새롭게 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시편 26편 2절에서 시인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시편 26편 2절
2.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양심을 단련하소서
양심은 영적인 것으로 교회의 당회는 성도의 양심이 하나님 앞에 온전하도록 재판하여 성도들이 바른 양심을 갖도록 지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항상 말씀이 바로 선포가 되어야 하고, 성례의 온전한 집행이 우선적으로 필요합니다. 권징은 바로 이 두 표지의 시행의 기강을 온전히 세우기 위한 보호 장치인 것입니다.
W4. 하나님은 성도들이 두 표지와 함께 거룩과 용서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W4. 하나님은 성도들이 두 표지와 함께 거룩과 용서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이처럼 교회가 말씀과 성례의 표지를 온전히 세우고, 이를 위해 권징을 바르게 시행할 때 성도는 거룩과 용서의 삶을 힘쓰게 됩니다. 여기서 한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거룩 혹은 도덕은 교회가 힘써야 할 일임에는 분명하나 이것이 표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교회가 이런저런 문제가 있다고 쉽게 교회를 떠나면서 교회를 많이 비난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거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거룩보다 용서를 구하고 용납하는 일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이 아닙니다. 교회는 죄인들이 모인 공동체이고 부족한 인격을 가진 자임을 스스로 고백하는 분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자존심이 우선이 아닙니다. 성경 어디에도 자존심을 세워서 일하라고 가르치는 말씀은 없습니다. 오히려 자존심을 내려놓고 용서를 구하고 서로 용납하라고 가르칩니다. 골로새서 3장 13, 1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골로새서 3장 13, 14절
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교회는 자존심 내세우는 곳이 아니라 서로 용납하고 용서하며 사랑을 행하는 공동체입니다. 물론 거룩도, 용서도 교회의 표지는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가 힘써 행해야 할 삶의 열매들입니다. 이런 까닭에 교회는 먼저 참된 표지를 갖추어 성령님의 외적 은혜가 성도 가운데 넘치게 해야 하되, 성도들이 너무 완벽주의에 매여서 함부로 교회를 떠나거나 비난하지 않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교회는 연약한 공동체입니다. 종종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약점을 비난합니다. 이게 약하고 저게 잘 안된다고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물론 그런 것들을 말 한마디로 다 고칠 수 있다면 더 좋겠죠. 그런데 그렇게 불평을 많이 하시는 분들은 사실은 자신이 그러하기 때문에 타인의 약점을 더 잘 볼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나를 용서하지 못하고 그 잘못된 것들로 인해 스스로를 비난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을 못 봐줄 때가 더 많은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칼빈은 남을 비난하는 자들은 자신의 허물을 가리려고 하는 악한 외식적인 의도가 없는지 잘 살피라고 지적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것은 자신이 그런 사실을 감추고 싶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남을 왜곡하고 비난하는 데는 그런 악한 의도가 숨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단들이 악한 의도를 가지고 교회를 비난하는 중요한 숨은 의도인 것입니다.
L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L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공교회를 세우셔서 성도에게 교제를 주시고 참된 은혜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사람이 모였다고 해서 다 바른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인품이나 제도적인 선진화가 교회의 본질이 아닙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매인 자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의 공동체입니다. 이런 까닭에 교회의 기초는 반드시 말씀이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2장 20절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에베소서 2장 20절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 곧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진 공동체입니다. 사도들이라고 하면 그리스도를 만나 제자가 되어 그분의 직접적인 가르침을 받은 분들입니다. 동시에 선지자들이라고 하면 성령님의 감동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를 직접 전한 분들입니다. 교회는 이러한 사도와 선지자들이 하나님께 받아 전해 준 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의 터 위에 세움을 입은 공동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친히 교회를 교회 되게 하시는 모퉁잇돌이 되어 주셨습니다. 이런 까닭에 교회는 먼저 바른 말씀의 선포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약속의 표징인 성례를 온전히 행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영적인 표지를 세우기 위해 교회는 바른 기강을 시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더하여 성도는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 교회의 바른 표지와 기강의 다스림 안에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혼자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진정한 믿음의 삶을 이루지 못합니다. 성도는 성령님의 집으로 함께 지어져 가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장 21, 2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에베소서 2장 21, 22절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한 사람의 성도는 집을 이루는 구성원입니다. 그 자신의 역할과 은사도 중요하지만 전체 교회와 한 몸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성도가 되는 참된 길입니다. 이런 까닭에 성도는 서로 함께 지어져 가기 위해 어머니인 교회를 떠나지 않아야 합니다. 그 은혜 안에서 말씀과 성례로 양육받고 자라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L6.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L6.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온전한 교회가 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물론 교회는 연약한 공동체기도 합니다. 윤리적으로 약할 수 있고, 관계적으로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를 보십시오. 도덕적으로 보면 얼마나 연약한 모습입니까? 성도들은 그룹을 지어 다투고 살고, 윤리적으로는 성적인 타락의 모습이 있고, 분쟁이 생긴다고 세상 법정에 고소도 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애찬에서 배제하는 그런 연약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은사도 오히려 갈등의 요소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와 단절하지 않습니다. 진리의 터와 기둥인 말씀과 성례가 교회에서 가르쳐지고 그것을 집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말씀에 더 힘써 온전함을 가질 것을 권면하고 더 사랑하고 위하여 기도합니다. 함부로 욕하고 비난하고 성도를 미혹시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도 교회를 함부로 비난하기보다는 더욱더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약한 모습이 있어도 우리의 어머니로서 말씀의 통로가 되고 성례를 집행하는 교회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리스도의 몸으로 알고 함께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신 교회는 성도의 영적인 어머니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도의 영의 양식이 끊어지지 않게 말씀을 더 힘써 가르치고, 성례를 통해 믿음을 굳건하게 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거룩과 용서의 삶으로 참된 영적 돌봄과 성장이 있는 교제를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말씀을 잘 붙들어 항상 올바른 표지를 세우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하고 아름다운 삶의 열매를 맺어 참된 교회를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주제 찬송 208장 내 주의 나라와
주제 찬송 208장 내 주의 나라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