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새로움을 주시는 때

사무엘상 강해 시리즈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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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새벽기도에 오신 성도님 여러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의 인내로 인해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말합니다.
1- 성도는 능력 대신 인내를 앞세운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성도는 능력 대신에 인내를 앞세운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대놓고 암살하려 하지만 요나단이 그 지혜로움으로 사울의 행동을 통제했습니다. 그래서 덕분에 다윗은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는 듯 했습니다. 7절에 보시면 “그가 사울 앞에 전과 같이 있었더라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본문의 문맥을 좀 유심히 관찰할 필요가 있었는데 지금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요나단이 정당한 이유로 사울의 행동을 제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다윗이 당한 이야기만 하면 되는데 다소 부자연스러운 느낌으로 8절이 나옵니다. 8절은 전쟁이 다시 있었는데,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그들을 크게 쳐죽였고 블레셋이 도망갔다고 이야기 합니다. 요나단의 설득과 다시 시작된 사울의 괴롭힘 사이에 이 이야기가 들어간 것은 요나단의 설득이 실제로 옳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해 언약 백성을 구원하는 사역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8절이 보여주는 것은 다윗에게 힘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9절, 10절을 보면 다윗이 사울 앞에서 수금을 탈 때 또 사울이 창을 들고 있다가 다윗에게 던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8절에 상황만 해도 다윗은 사울이 감당하지 못하는 블레셋과 전쟁을 해서 크게 승리하지 않았습니까? 사울이 그 나태함으로 인해 감당하지 않는 전쟁 혹은 사울의 그 두려움으로 인해 감당하지 못하는 전쟁을 성실하게, 확실하게 감당하고 있습니다. 다윗에게는 사울에게 없는 힘이 있습니다. 다윗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목숨의 위협을 지속적으로 받고 사울이 왕으로서 참 무능한 모습이 보입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다윗이 그 힘과 지혜로 사울을 끌어내려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나라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힘이 있고 지혜가 있고 공을 쌓고 있지만 그것으로 사울 정권을 압박하거나 무너뜨리지 않습니다. 그저 기다릴 뿐입니다.
(적용) 나의 능력에 비해 인정 받지 못하고 도리어 고난 당하는 순간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다윗이 계속 전쟁에서 공을 세우고 있고 백성들 가운데서도 평가가 좋은데 정작 다윗의 상관인 사울은 계속해서 다윗을 괴롭히고 죽이려고 하지 않습니까? 보통 사람들 같으면 그냥 엎어버려야겠다. 내 힘으로 이 왕조를 끊어야겠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백성들 가운데 인정도 많이 받고 전쟁을 해서 공도 많이 세웠는데 다윗이 쿠데타를 일으키지 못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인내했습니다. 충분히 모든 것을 다윗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지만 참았습니다. 인내했습니다. 아마 사울의 사위가 되는 과정에서 오히려 사태가 안 좋아진 것을 보고 하나님의 일을 기다리며 인내하는 훈련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윗은 가장 잘 나갈 때 인기가 치솟아 오를 때 그냥 자신의 일상을 평범하게 감당했습니다. 사울이 또 창을 던졌지만 여기에 대해 저항하거나 항변하지 않고 그냥 피하기만 했습니다. 이제 사울의 사위가 되었는데, 사울 밑에서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블레셋과 싸우며 일 했는데 또 창이 날아오면 얼마나 화가나겠습니까? 이때 다윗은 참았습니다. 능력도 인정 못 받고 목숨의 위협을 받았지만 다윗은 인내했습니다. 자신이 힘이 있고 능력이 있다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뭔가 하려고 하면 어차피 결과가 더 안좋아질 것이라는걸 알았기 때문에 일상을 감당하며 그 순간에 인내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을 믿으며 그 순간을 견뎠습니다. 사람의 감정으로는 이렇게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열심히 하면 열심히 할수록 보상심리가 생기는 것이 사람 마음입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믿고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일하실 것이라는 것을 믿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인내할 수 있지 우리의 인격과 성품으로는 끊임없이 다가오는 고난의 순간에 인내할 수 없습니다. 바로 우리 손이 나가고 말을 하게 되고 내 힘으로 뭔가를 시도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기에 앞서서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며 인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순간의 감정과 판단으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2- 기다리는 자에게 새로움을 허락하신다.
(설명) 그 다음으로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교훈은 기다리는 자에게 새로움을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기다리는 일은 따분하고 지루합니다. 아무 일이 생기지 않으면 초조하고 불안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어려운 가운데 새로움의 역사를 더하십니다. 어려움은 새로움을 맞이하는 계기가 됩니다.
다윗이 창을 피한 날 밤에 사울이 수하들을 보내서 다윗의 집을 지키게 합니다. 다윗이 집에서 나오자 마자 다윗을 암살하도록 수하들을 준비시켰습니다. 미갈은 왕이 보낸 사람을 보고 다윗을 창문으로 피신시킵니다. 그리고 우상을 가져다가 침상에 누이고 염소털 엮은 것을 머리에 씌우고 의복으로 그것을 덮었습니다. 어린 아이들 보시면 침대 위에 인형을 눕히고 거기에 이불을 덮어가지고 사람이 있는 것처럼 꾸미는 장난을 치지 않습니까? 이와 비슷하게 미갈은 다윗의 이부자리에 마치 다윗이 있는 것처럼 꾸몄습니다. 그리고 사울의 수하들에게 다윗이 아파서 바깥으로 나서지 못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사울이 이 이야기를 전해듣고 침상째로 다윗을 데리고 오면 다윗을 죽이겠다고 합니다. 사울의 수하들이 침상을 보니까 미갈이 우상을 눕혀놓은 것이었습니다. 사울이 그의 딸 미갈에게 물어봅니다. “너는 어찌하여 나를 속여 내 대적을 놓아 피하게 하였느냐?” 여기에 대해 미갈이 대답합니다. “그가 내게 이르기를 나로 놓아 가게 하라 어찌하여 나로 너를 죽이게 하겠느냐 하더이다” 사울이 미갈에게 따졌을 때 미갈은 다윗을 놓아주지 않으면 다윗이 미갈을 죽일지도 몰라서 어쩔 수 없이 풀어줬다고 이야기 합니다. 아마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요나단처럼 다윗이 잘못한 것이 없는데 죽이려고 해서 숨겼다고 그렇게는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하나님은 미갈을 통해서 다윗의 목숨을 구해주셨습니다.
미갈이 다윗을 살린 이야기는 구약성경의 두 가지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하나는 야곱이 라반의 집을 떠날 때 드라빔을 숨겨서 나온 이야기이고 하나는 가나안의 기생 라합이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숨겨준 이야기입니다.
창세기 31장에서 야곱이 그의 삼촌이자 장인인 라반의 집에서 나올 때 라헬이 라반의 집에서 드라빔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이 드라빔은 오늘 본문에 나온 우상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상이라고 번역했지만 라헬이 라반의 집을 떠날 때 가지고 나온 드라빔과 원어상으로 똑같은 말입니다. 두 이야기는 모두 가정용 우상인 드라빔이 들어가는 이이기입니다.
야곱의 아내 라헬은 아버지의 집에서 드라빔을 들고 나와 그것을 낙타 안장 밑에 숨깁니다. 반면 다윗의 아내 미갈은 드라빔을 가지고 남편을 숨깁니다. 둘 다 아버지의 눈을 속여서 남편을 도운 이야기입니다. 두 사건 모두 장인어른이 사위에게 지는 사건인 면이 똑같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도피한 이 사건은 여호수아서에서 기생 라합이 정탐꾼을 숨겨주고 피신한 사건과 비슷합니다. 두 사건 모두 다 왕이 사람을 보내서 사람을 찾은 사건입니다. 여리고 왕이 정탐꾼 두 명을 찾으려했고 사울 왕의 수하들이 다윗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둘 다 여인이 남자를 숨겨준 사건입니다. 기생 라합이 남자인 정탐꾼들을 숨겨주었고 미갈이 다윗을 숨겨줬습니다. 둘 다 창문에서 탈출시켜 준 사건입니다.
이렇게 다윗이 사울의 부하를 숨겨서 도피한 이 사건은 창세기 31장, 여호수아서 2장의 사건을 적절하게 섞어서 만들어진 사건 같습니다. 모두 역사적인 사건이지만 이렇게 정교하게 두 사건이 엮어졌습니다. 이건 누가 봐도 의도적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사건을 해석 할 때는 창세기 31장의 사건과 여호수아 2장의 사건의 의미를 파악하고 각 사건이 담고 있는 공통점을 파악해서 본문의 의미가 드러날 것입니다.
창세기 31장의 사건은 야곱이 본가로부터 도망나와 외삼촌의 집에서 20년동안 지내다가 이제 도망자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독립을 하는 시기입니다. 이제 야곱은 새로운 환경을 찾아 떠나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형님 에서와의 갈등을 해결해야 했습니다.
여호수아 2장의 사건은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백성들들이 광야 생활을 청산하고 약속의 땅을 정복하여 그 곳에서 터를 잡기 위해 정탐꾼을 보내는 사건입니다. 이 정탐꾼을 보내는 사건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새로운 삶의 터전을 개척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창세기 31장, 여호수아 2장의 사건은 새로움을 준비하는 과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로부터 도피하는 이 사건 역시 새로움을 향한 준비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들고 다윗이 여기서 벗어나려고 하는 갈등이고 고통이지만 새로움을 향한 새로운 시작입니다. 다윗은 도망자가 되지만 나중에는 군대장관 신분보다 더 중요한 왕의 자리에 올라서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다리는 자에게 새로움을 허락하십니다.
(적용) 내가 처한 입장과 환경이 너무 힘들어서 나의 힘으로 빨리 이것을 바꾸고 싶습니다. 그러나 나의 힘으로 내가 뭔가를 하려고 하면 상황은 더 악화됩니다. 고난에 대해서 인내하고 기도로 기다리면 겉으로 보기엔 상황이 악화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어려운 상황을 통해 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인내하고 참아도 상황이 계속 어려워지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일 하시는 것을 기대해야 합니다. 똑같이 어려운 상황이라도 내가 움직이면 더 괴로워지고 하나님께서 하시면 괴롭지만 하나님께서 풀어 가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렵고 곤란한 상황에 처해있을 때 우리 힘으로 우리가 나서는 것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삶의 주권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힘으로 하면 안되고 오직 하나님께서 하셔야 된다는 그 고백을 듣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로 피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여기에 우리가 인내로 반응할 때 하나님께서 가장 완벽한 길로 우리를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다윗이 메시아의 왕조를 이뤘듯이 우리 또한 믿음의 공동체를 세우는 일에 쓰임 받고 복음을 전하고 이웃을 섬기는 일에 쓰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통해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사람이 되어 쓰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다리는 자에게 새로움을 허락하십니다.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기다리는 자에게 새로움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기만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도태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를 기대하고 간구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길을 열어주시고 새로운 삶을 허락하십니다. 다윗이 메시아의 왕조를 이루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운 것처럼 우리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든든히 세우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런 은혜가 저와 성도님들의 삶 가운데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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