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17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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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536 죄짐에 눌린 사람은
본문 막4:26-29
하나님, 고아와 같이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크신 인애와 자비로 늘 우리를 붙들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비록 이 땅을 살아가면서 많은 고비와 어려움들이 있지만 하나님 주시는 은혜로 견디게 하시고 살아내게 하심도 감사드립니다. 늘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그 사랑을 나만 누리고 만끽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 주변에 진리와 생명을 알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을 찾아 나서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들에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이 자리의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더욱 흥황케 되는 역사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의 말씀은 소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라나는 씨 비유’ 로서, 이 내용은 오직 마가복음 안에서만 있는 비유의 말씀이다. 주님께서는 마13 장을 통해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 비유의 말씀을 주셨다. 마13 장의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 비유와 오늘 본문인 막4 장의 자라나는 씨 비유는 매우 유사해보이는 것 같지만 각각의 비유에는 강조점이 서로 다르다. 이것을 서로 잘 파악하는 것이 본문 해석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먼저 마13 장에서의 씨 비유에서는 복음을 수용하는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을 강조했다면,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 나라가 지닌 역동성과 은밀성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마13장에서 씨를 뿌리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했다면, 오늘 본문에서의 씨를 뿌리는 자는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자들을 가리킨다. 또한 마13장에서 씨 뿌리는 자 비유에서의 강조점은 사람의 마음,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의미하는 ‘땅의 성질’에 있었다. 그래서 옥토에 떨어진 씨앗만이 가시덜기밭이나 돌길에 떨어진 씨앗과는 달리 많은 결실을 맺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는 밭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는다. 밭의 중요성은 고사하고 농사하는 농부의 중요성 조차 드러나지 않는다. 씨앗이 발아하여 싹이나고, 자라고, 뿌리를 내리고, 열매가 자라는 과정에서 오직 강조되는 것은 씨앗 자체가 지닌 생명력이다. 오히려 오늘 본문에서의 농부는 이러한 씨앗의 성장과정에 대하여 하나도 알지 못하는 무지한 자로 나타난다. 그리고 스스로 익은 열매에 대하여 추수의 은혜와 감격만을 누릴 뿐이다. 다시 말해서 열매를 맺기 위한 중요한 변수가 마 13 장 에서는 사람의 마음, 복음을 받아들일 상태를 의미했다면, 오늘 본문에서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씨앗 그 자체라는 점을 강조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열매를 맺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기 위해서는 그 씨앗의 배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이 계셔야만 가능함을 교훈한다.
28절을 보라. 씨가 뿌려지게 되면 땅은 자동적으로 씨가 자라도록 하는데, 이는 뿌린 사람의 힘으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뿌려진 씨앗 자체에 내제된 생명력으로 인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씨를 뿌린 농부라 해도 그 씨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본 비유의 가장 핵심이 되는 것으로서, 씨앗이 상징하는 하나님 나라의 역동적이고도 자생적인 성장을 강조한다. 씨앗을 뿌리는 자는 사람이다. 바울도 고전3 에서 말하기를 바울이 심고 아볼로가 물을 주었지만 그 씨를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심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씨앗이 상징하는 하나님 나라를 뿌리고 전파하는 것이 바로 사람이라는 것이다.
오늘 본문의 교훈이 무엇인가? 신자가 열심히 씨를 뿌리면서, 즉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면서도 하나님의 역사를 믿지 않아 앞으로 다가올 결과에 대해 과연 그 씨들이 제대로 열매를 맺을까 염려하지 말라는 것이다. 왜인가? 씨는 그 자체만으로도 생명력이 있기 때문이다. 농부는 밭에 열심히 씨를 뿌리지만, 그것으로 농부의 역할은 끝이다. 농부는 그 씨가 뿌리를 내리고 자라며 성장하는데에는 아무련 영향을 줄 수 없고, 그 방식을 잘 알수도 없다. 그저 밤에 잠을 자고, 또 낮을 맞으며, 때가 되면 물을 주고, 밭을 솎아주고, 또 그렇게 밤을 맞아 자고, 일어나고, 물을 주고, 그렇게 수확의 날만을 기다릴 뿐이다. 어쩌면 식물에 대한 최소한의 내 할 도리만 하고 낮시간이나 오후시간에는 밭에 한번도 들리지 않을 수도 있다. 다른 급한 일들 때문에 식물이 잘 자라고 있는지, 농작물들이 잘 열매맺고 있는지 잠시 잊어버릴런지도 모른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마음 속에 믿음으로 심겨진 복음의 말씀은 우리에게 참으로 귀한 은혜의 일이지만, 복음을 전파하는 자는 그 씨가 뿌리를 내리고 자라가며 열매맺게 하는 일에 아무 것도 기여하지 않는다. 마치 농부가 자신의 능력으로 씨를 뿌리내리게 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오직 성령께서 그 밭에 뿌려진 씨를 뿌리가 내리게 하시고, 자라가게 하시고, 열매 맺게 하실 뿐이다. 농부는 피곤하면 잠을 잘 것이고, 때로는 밭을 떠나 집에 들어가 휴식을 취할 것이지만, 성령께서는 뿌려진 씨 가운데 함께 하셔서 그 마음 가운데 뿌리내리게 하신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약에서 크게 쓰임받았던 하나님의 선지자들도, 신약에서 주의 몸된 교회의 기초를 놓았던 여러 능력의 사도들도, 교회 시대 이후로 부패한 교회를 회복하는데 사용하셨던 수많은 능력의 종들도, 또한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아주 유명한 명설교가 목사들일지라도 영원히 살 수 없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결국 무덤에 들어간다. 그러나 그들을 통하여 일하시고 선포하신 성령께서는 그들이 잠을 잘 때에도, 그들이 쉴 때에도, 설령 그들이 무덤 속에 들어가 있을 때에도 역사하신다. 사람은 결국 쉬는 날이 오지만 성령님은 쉬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복음의 씨를 뿌리는 자들이 의지할 것은 누구인가? 사람인가? 이 땅의 유한한 것들인가? 그렇지 않다. 오직 성령 하나님 뿐이다.
지금 당장 어떤 결과가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낙심하지 말 것은, 성령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가장 선하시고 아름다운 때에 그 한 영혼을 변화시키시고, 그 영혼의 울림을 허락하시며,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뿌려진 복음의 씨가 결국 뿌리내리고 자라가게 하실 것이기 떄문이다. 우리가 뿌리는 그 복음의 씨 안에는 무한한 잠재력과 생명력이 담겨 있기 때문에, 하나님 행하실 일들을 의심하지 말고 뿌리는 것이다. 따라서 예나 지금이나 택한 백성들의 마음을 감화 감동하시어 뿌려진 복음의 씨앗들이 그들의 맘 가운데 역사하셔서 뿌리 내리게 하시고, 자라가게 하시고, 장차 풍성한 결실을 맺도록 인도하시는 성령님만을 굳게 의지하며 오늘도 복음의 씨, 생명의 씨를 뿌리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본문을 통해 살펴볼 두번째 교훈은 무엇인가? 맺어진 결실들, 풍성한 결과에 대해서는 자신이 행했다며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밭에 씨를 흩뿌릴 때에 그 씨앗들은 흙에 부딪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튕겨 나가기도 하며, 제 자리에 잘 뿌려진 씨라 할지라도 그 위에 얇게 흙을 덮어버리게 되면 그 씨앗들은 아예 가려져 버린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씨는 땅의 영양분을 받아 먹으며, 물을 머금으며 점차 자라기 시작한다. 그것이 당장 농부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분명 씨는 그 자체의 생명력으로 자라간다. 그런데 농부는 이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설명할 수 없다. 이는 자연의 신비이기 때문이다. 왜 씨앗이 물을 주면 뿌리가 자라는지, 그 작은 씨에서 어떻게 큰 결실들이 맺히게 되는지 자세하게 알지 못한다. 그것이 분명 성장할 것을 알지만, 어떤 방법으로 자라가는지, 그 원인과 방법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왜인가? 그것은 씨앗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잠재력이요 생명력이기 때문이다.
물론 농부의 수고와 헌신이 있어야 함은 맞다. 때로는 물도 주어야 하고 거름도 주어야 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농부의 수고는 씨앗의 생명력과는 상관이 없다. 왜인가? 아주 메마르고 거친 땅에서도 자연적으로 풀은 자라고 꽃은 피운다. 수많은 들풀들을 보라. 어느 농부가 정성것 그 땅을 기경하고 그곳에 씨를 뿌렸기 때문에 자라난 것인가? 야생화들을 보라. 어느 누가 그곳에 거름을 주었기 때문에 그러한 군락을 이루어 만발하게 된 것인가? 이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때로는 우리가 복음을 전파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풍성한 결실들을 맞이하게 될 때가 있다. 내가 전도해서 누군가가 하나님을 영접하고, 내가 인도하여 새가족이 교회에 잘 정착하는 사례들을 보게 된다. 그러나 여러분, 반드시 기억하라. 이는 여러분이 한 일이 아니다. 내가 분명 복음의 씨를 뿌렸지만 그 씨가 뿌리내리게 하시고 자라나게 하시며 열매맺게 하신 분은 내가 아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 하나님의 사역을 나의 공로로 돌리는 우를 범하지 말라. 하나님의 은혜를 내 은혜로 삼으려는 악한 일을 도모하지 말라. 저를 비롯하여 우리 중 누구라도 이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기억하며 결코 자만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한 평생을 복음의 씨를 뿌리기 위해 수고하고 헌신했던 귀한 주님의 종들이 한순간 풍성한 곡식들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한 일이라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내 공로라고 교만히 가로채려는 자들이 있지 않은가? 여러분, 이것이 결코 우리에게 합당하지 않다. 이 악한 죄를 범하지 않도록 본문의 말씀을 늘 기억하며 겸손하자. 나는 할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하나님만 하실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의 영역이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씨를 뿌리고, 때로는 물을 주지만, 그것을 자라가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임을 기억하자. 여전히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이 사람은 정말 예수 믿어야 하는데’ 싶은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은 왜 아직도 예수 안믿고 이렇게 방황하며 살고 있나’ 싶은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그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sign 일런지 모른다. 그 사람을 마음에 품고 그 사람에게 여러분이 받은 그 씨를 뿌리라. 여러분이 가진 복음의 씨는 놀라운 생명력과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을 확신하며 그 씨를 뿌리라. 나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하신다. 나는 피곤하여 쉴 때도 있겠고, 다른 일에 마음을 빼앗겨 잠시 다른 일들을 하고 있을 때라도 하나님은 쉬지 않고 일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가장 선하신 방식대로 일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가 받은 이 놀라운 복음의 씨를 확신하며 뿌릴 수 있는 이 자리의 모든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기도하자.
주여, 우리에게 맡기신 귀한 복음의 씨를 확신하게 하시어 이 생명의 씨, 이 무한한 잠재력의 씨를 잃어버린 바 된 자들에게 전파하게 하여 주옵소서.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이 씨가 뿌려지는 곳마다 소생케 되는 역사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많은 영혼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게 되며 주의 나라가 흥왕케 되는 역사 가운데 이 일들을 우리의 공로로 돌리는 악을 범치 않도록 늘 우리를 겸손케 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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