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까지 참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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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선희 001

Notes
Transcript

바보는 이미 자기는 변화 되었기 때문에 더 변할 것이 없다. 생각하고,
현자는 항상 부족을 느끼면서 계속 변화 되어야한다고 그렇게 자기 자신을 제촉한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인간은 변화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보다 나은 미래를 개척하지 못한다고 그는 이 책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변화에 대한 저항이 있습니다. 첫째는 미래에 미지에 세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여러분, 미지에 세계, 미래의 세계, 그것은 항상 미지에 세계입니다. 미래에 대해서 누가 말할 수 있습니까?
뭐 이렇게 생각도 해보고, 저렇게 생각도 해보고, 뭐 많은 사람들이 연구를 하고 있지만 결국은 미래는 모르는 것입니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 이제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두려움
이것은 상황의 문제가 아닙니다. 실존 그대로구요. 문제는 심리학적 문제이고요, 나아가서 신앙의 문제입니다.
둘째는 앞으로의 일을 투명하게 만들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된다. 아니 나는 실패해서는 안 된다. 이번 이 일만은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강밥관념때문에 두려운 마음이 가중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실패 없는 일이 있습니까? 우리가 이렇게 전등불을 밝히고 있습니다만은 이 전등불을 맨 먼저 발견한 토마스 에디슨의 연구에 의하면 이거 하나 발명하는데 600번 이상 실패했답니다.
만들어놓으면 끊어지고 또 만들면 끊어지고 계속 실패할때 조수가 말했다고 합니다. ‘선생님 또 실패했습니다.’
그때 에디슨은 유명한 대답을 했습니다. ‘말 조심해라 그렇게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그만큼 성공한 것이지 왜 실패한 것이냐’
여러분, 실패없는 성공을 바라는 마음 이것이, 아무일도 못하게 만드는 거예요! 실패는 있어요. 실패를 통해서 가는 것이고, 실패를 통해서 깨닫는 것이고, 실패를 통해서 새로운 생각을 하게 만드는거 아닙니까? 그런데 실패 자체를 두려워한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아무 일도 못한다는 거예요.
또 하나는 익숙해진 생활 규범을 깨뜨리지 못한다는데 있습니다. 사람마다 머릿속에 그래머 레퍼런스(?)가 있고, 생활양식이 있고, 자기 나름의 생활 라이프스타일이 있습니다. 습관이 있는데, 몸의 생각이 마음의 습관이 이 익숙해진 것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거예요.
세장에 새를 보면 밖으로 나가고 싶어서 푸등거립니다. 푸등푸등푸등하고 있죠. 그런데 이상한 것은 새장 문을 열어놓아도 안 나간다는 것입니다. 아니, 나갔다가도 다시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깥세상에 익숙지 못해. 그 익숙한 곳에서 거기서 그대로 푸등거리면서 사는 그 자체에 이미 매여있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자이자 상담자인 에릭 씨 맨즈?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사탄이 인간에게 주는 치명적인 무기는 낮은 자존감이다. low self-esteem 낮은 자존감.
여러분,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며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아니,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나같은 사람은 필요 없다. 아니 저사람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런 것이 문제에요. 이런 스스로 자기를 낮게 평가하고 비하하면서 낮은 자존감에 사로잡힐 때 인간은 비참해집니다. 이같은 자기 실망이 나아가서는 불신앙의 결과요 이 불신앙이 나중에는 한 걸음더 나아가서 원망으로 기울어집니다. 그래서 모든 은사를, 하나님이 주신 모든 축복까지 다 부정하고 마침내 원망 투성이의 그런 인간이 되고 말아요. 하나님이 어째서 이렇게 하실까, 원망합니다. 오늘을 원망하다보면 과거의 은혜까지 다 부정해버립니다. 이미 받은 축복, 그때 가졌던 감격까지 다 잊어버립니다. 여러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서 홍해가에 섭니다. 앞에 홍해가 있고 뒤에 애굽 군대가 따라옵니다. 이 절박한 순간에 그들이 한 말이 무엇입니까? 모세를 향해서 한 말이 무엇입니까? “어찌하여 우리를 구원해 냈느냐?”
애굽에서 열가지 재앙을 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양하면서 출애굽할 때의 영광과 감격은 어디가고 어찌하여! 우리를 구원해냈느냐? 애굽땅에 매장지가 없더냐?
아니, 이렇게 원망할 수가 있어요? 이 현재라는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 과거에 받은 은혜를 다 부정해요. 또 앞에 있는 미래, 약속된 미래,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이게 바로 불신앙이요. 이게 바로 원망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홍해의 감격 다 잊어버렸어. 홍해를 육지같이 건널 때, 아~~ 굉장했지요. 그러나 계산해보면 한 열 나흘쯤 있다가 물이 없었어요. 목마르게 되니까 또~ 원망을 하는데, 그저 감격이 열 나흘밖에 못가더라고요? 또 원망을 합니다. 이 원망하는 이야기들을 대충 나열해보면 너무 어이가 없답니다. 물이 없다고 원망했죠? 홍해가 가로막혔다고 원망했죠? 그것만이 아니에요. 먹을 것 없다고 원망했죠? 하늘로부터 떡가루를 보내서 만나를 주어서 먹게 했더니 이제 먹기는 하는데, 배부르게 먹고 또 원망해요. 무슨 원망인줄 아십니까? 마늘과 부추가 없다고 원망해요. 왜? 마늘과 부추가 없어서 정력이 감퇴된다나? 원망도 가지가지에요. 아주그냥 광~야 생활인데 이런것까지 원망하더라고요. 전쟁의 위험이 있다고 원망하지요. 모세가 안보인다고 우상섬기면서 원망하지요. 그리고 마지막에 가데스 바네아에 왔을때 정탐꾼을 보내고 정탐꾼이 돌아와서 회고할 때 아이코 이제 죽었다. 원망합니다. 끝도 없이 원망합니다!!
출애굽기 민수기를 읽어보면 이 원망소리로 가득합니다! 성경을 읽다말고 화가나요 뭐 이런 인간들이 다있나! 그런데 그게 남일이 아니더라고요. 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 원망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는 무엇입니까? 어떻게하셨습니까? 기다리셨어요. 원망한다고 그대로 즉각적으로 내리치면 다 망했죠. 다 죽었죠. 그런데 오늘 성경말씀에 보니까 ‘어느때까지 참으랴~’ 하나님은 참으셨어요. 원망하는 백성을 참으셨어요.
여러분, 원망하는 자를 어느정도 여러분 참아봤습니까? 꾹~ 참고 기다려봅시다. 어느때까지 참으면 되겠냐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물으십니다.
여러분, 원망은 가슴에 있겠죠?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보면요 말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꼭 가슴에 있어도 제발 말 하지 마세요. 그러면 원망이 더 커집니다. 더 커지고, 또 나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원망하는 자로 만드는 거예요. 여러분 원망? 그대로 두고 좀 참고 기다리면서 기도하는 가운데 한 번 소화해봅시다.
그런데 말을 한다는거예요. 여러분 신앙고백도 말이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도 말이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도 말이죠? 사랑의 고백도 말이요! 말이 아주 중요한 겁니다.
이 말을 하나님이 들으십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말씀에 보니까 “내 귀에 들린대로 행하리라"
14장 1절에 보면 광야에서 일찍이 죽었다면 좋았을껄, 죽었다면 좋았을껄!! 하니까 “내 귀에 들린대로 행하리라" “너희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니라"
아 죽고싶다고 하니까 죽여주마. 할 말 있습니까? 이것이 바로 우리가 걷는 운명의 길이에요. 행동으로 원망하지만 수많은 경우에 말~로 원망합니다.
말로, 하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참으십니다. 이 원망하는 백성을 ! 참으시고, 40년간의 유예기간을 둡니다. 40년동안 저들을 훈련하시려고 합니다.
훈련기간, 자기 백성들을 교육하려고 하십니다.
주자라고 하는 분이 쓴 글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남의 험담을 말하는 자는 교만한자요. 더불어 맞장구를 치는 자는 비겁한자요. 이를 엳듣고 전하는 간사한 자다.”
그래요 좋지 않은 말은 듣지도 말고 전하지도 말고요. 왜요? 많은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니까
내가 괴로우면 됐지, 남까지 괴롭게 만들고 있어.
이건 점점 파급되기 때문에 원망이 이렇게 상승작용을 하거든요? 그리고 마지막엔 하나님 원망하는 것으로! 그렇게 끝까지 불신앙적으로 치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참으십니다. 왜? 목표는 원망에서 감사로
많은!! 사건이 있고 시련이 있겠습니다. 좀 원망하는 마음을 멈추고! 극단의!!! 고난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도록, 원망을 감사로 바꾸어 놓으려고 하는 하나님의 커리큘럼이 거기에 있어요. 교과과정이 있습니다. 교~~만한자를 겸손하게 만듭니다. 민족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교만한 사람들을 겸손하게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훈련 과정이에요. 불신앙의 사람들을 믿음의 사람들로 만들어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 그 약속을 전적으로 믿는 그런 사람을, 그런 하나님의 사람을 만들어 감사한 다음에 비로소 용기를 주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큰 인내의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소위 EQ라는 말이 있죠 Emotional 퀘스쳔 이것을 처음으로 말한 사람은 다니엘 골맨? 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이 감성지수라는 것은 먼저 자기 자신을 깨닫는 것이 셀프 어웨어네스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규율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 규율 속에서 감성을 바로 세울 수 있고요, 또는 더 중요한 것은 동기부여입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에 동기가 어디있는가를 차분히 생각하고야 감성이 바로 세워지고요, 그 다음에는 감정의 유입입니다. 나만이 아니고, 다른 분에게서 모든 사람으로부터 감정을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사회적 스킬을 구비해야한다. 이 다섯 단계로 설명해나갑니다.
여러분 격해가지고 원망하기 시작하면 원망이 원망을 낫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모든 은혜를 다 부정하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다시 정숙하고 묵상하며 조용히 나 자신을 생각하고 현재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생각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인내함 속에 내가 있어요. 오래오래! 참아주심으로 그 참아주심 속에 사랑이 있어요. 조급히 서두르지 맙시다. 인내함 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겠습니다. 그 속에 지혜가 있고 그 속에 능력이 있습니다. 그 인내함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낀 다음에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겠고, 세로운 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참으십니다. 그렇다면 참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인내가 있어야됩니다. 예수님 친히 말씀하십니다. “너희 인내로 구원을 얻으리라”,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나님의 인애하심에 대해서 불만하지 마시고, 깊~이 묵상하면서 나또한 충~분히! 하나님의 인내를 소화하는 수용하는 그런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성경을 읽으면서 특별히 구약성경을 읽으면서 참으로 유감된 이야기가 하나 민수기이십장에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원망하다가 마지막에는 행동으로 나타나서 모세를 죽이겠다고 아우성을 칩니다. 그 많은 은혜가운데서 은혜를 배반하는 이 원망하는 백성을 보면서 모세가 헷가닥 합니다. 원망하는 백성을 원망합니다. 그러면서 정신을 확 잃어버립니다. ‘ 이 패역한 너희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물을 내랴?’하고 반석을 쾅쾅 내리칩니다.
이 보세요. 원망하는 백성을 원망했어. 하나님은 심판하십니다. “네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나를 거역했느니라 , 네가 망령되이 말하였느니라. 너 가나안에 못 들어간다”
여러분, 내가 원망하는 거 잘 보시죠. 원망하는 자를 원망하지 마세요. 내가 하나님을 원망한 것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을 심판하십니다.
여러분 어떤 경우에든지 원망에 휩싸이지 마세요. 휩싸이지 마세요. 조용히 EQ를 @#$@#$ 하나님의 인내하심, 이 모든 속에 하나님의 오래오래 참으심이 거기 계시되어 있어요. 그리고 그 인내 속에서 나도 인내를 배워야해요. 하나님의 인내를 본받아서 잘 소화해야 되겠어요. 시편 백육편 32절에서 하나님은 심판하십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라. 모세의 말을 아주 직선적으로 심판하십니다. 참 믿음은 여기에 있습니다. 어떤 모습을 보아도 좌절하지 마세요. 어떤 위기를 당해도 주저하지도 마세요. 마음에 안드는 일 많지요? 두려워하지 마세요. 조용히 주님의 섭리와 과거에 주신 은혜, 앞으로 약속해가시는 주님의 은혜, 오늘도 나와 함께하시는 은혜를 깊이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인내하심 ‘아, 하나님 이거 참느라고 얼마나 어려우실까?’ 하나님이 참는 것.
여러분, 하나님의 참으심! 그것을 깊~이 이해해봅시다. 아니 하나님은 나를 참아주셨습니다. 지난날도 현재도 그 너그러운 인내속에 내가 있음을 깊이 깊이 느끼면서 믿음을 회복하게 될 때, 원망은 사라집니다. 오히려 감사하게 됩니다. 주신 은혜 안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인애하심과 그 사랑속에 있는 나 자신은 너무나 소중한 존재입니다. 다시 발견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게 될 때, 내 앞에 있는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기도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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