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후회없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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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와 히틀러

종교 개혁자인 루터가 쓴 책 중에 “유대인과 그들의 거짓말에 관하여”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서 루터는 8가지 행동을 유태인들에게 행해야 한다고 발표합니다.
모든 유대인의 교회를 불태우라
유대인의 거처를 파괴하라
유대인의 성경을 압수하라
랍비들이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라
유대인들의 여행을 금지하라
유대인들이 비유대인들에게 돈을 빌릴때 이자를 금지하고 유대인의 재산을 압수해라
유대인들에게 육제적 노동을 시켜라
기독교들이 사는 곳에서 유대인을 추방하라
루터의 책을 통해서 그가 사는 시기에 얼마나 기독교인들이 유대인들을 싫어하고 증오했는지 잘 알수 있습니다. 우리 신약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이고 그의 제자들을 죽이기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예수님의 원수와 같은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가톨릭과 같은 그리스도교회는 루터처럼 유대인들에 대하여 매우 적대적이었습니다.
독일인인 루터가 유대인들에게 매우 적대적이었던 것처럼 같은 독일인인 히틀러도 유대인들에게 매우 적대적이었습니다. 히틀러는 이 루터의 책인 “유대인과 그들의 거짓말에 관하여"라는 책을 여러권 복사해서 나누워 주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는 이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향하여 홀로코스트를 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가 그렇게 잔인하게 유대인들을 죽일 수 있었던 신앙적 토대를 만들어준 사람은 아마도 루터일 것입니다. 물론, 당시 유럽은 모두 기독교 국가 였기에 유대교와 그에 속한 유대인들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마치 유대인들은 하나님으로 부터 버림을 받은 민족이고, 이방인인 기독교인들이 복음으로 영적인 아브라함 민족이 되었다 여깁니다.
히틀러 이전, 아니 종교개혁자인 루터 한 참 이전에도 이러한 사고, 즉 유대인에 대한 적대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던 이들이 있던 것 같습니다.
바로 바울 시대입니다. 바울은 11장 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Romans 11:1 NKRV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우리가 알다시피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다 유대인들에 의해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재판에 넘겨지고 옥에 갇히곤 하였습니다. 성경에서는 유대인들은 절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하였고, 그들은 복음에 대해서 원수되었던 자들이었습니다.
우리도 알다시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믿었으나 예수 그리스도는 부인하는 그러한 자들이기에 그들에게는 구원이 있을 수 없는 것이 신학적 논리의 귀결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비록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바울 자신을 죽이려 하였지만, 그들이 완전히 하나님으로 부터 끊어졌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기 이전에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시고 백성 삼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굉장히 논리적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생깁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인데, 유대인들은 그 복음을 믿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은 자신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맺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습니다.
복음을 믿지 않고 약속을 믿는 유대인들은 과연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루터는 “NO!”라고 대답합니다. 히틀러도 “NO!”라고 말합니다. 또 바울시대에 다른 여러 이방인 그리스도인들도 “NO”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오직 바울만 아브라함의 약속을 믿는 유대인들도 구원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아이러니한 문제에 관하여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굉장히 복잡한 철학적인 논리로 풀어갑니다.
<전환문> 과연 복음을 거부한 이스라엘 민족은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네 그렇습니다. 당연히 이스라엘 민족은 구원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스라엘 민족은 복음을 거부하고 이방인들만이 복음을 받아 드렸을까요?

이스라엘 민족을 시기나게 하기 위하여 이방인들인 우리가 복음을 믿게 된 것입니다.

1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Romans 11:11 NKRV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그들이 넘어짐”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부하여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게 된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게 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이 있었던 것입니다. 또 바울은 어느 곳을 가던지 언제나 유대인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는데, 유대인들은 모두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유대교에 관심이 있어서 유대인 회당 근처를 배회하던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즉, 유대인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처럼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게 된 이유가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라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직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이 자기들 처럼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되려 한다면, 이방인들은 율법을 따라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즉, 행위가 있어야 이방인들이 약속을 상속받은 이스라엘 민족이 될 수 있다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행위가 없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음의 진리를 이스라엘 민족이 알게 된다면, 할례를 받기 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그 힘든 할례를 받아 고통을 겪지 않고도 이방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유대인들이 깨닫는다면 얼마나 시기나겠습니까?
이처럼, 바울은 지금은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유대인인 바울 자신처럼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은혜를 통해서 구원을 받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1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Romans 11:12 NKRV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바울은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했기 때문에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일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고 그 분을 따랐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일이 없으시겠지요. 그러면, 부활도 없을 것입니다. 즉, 우리가 믿는 이 복음이 결코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전히 율법을 따라 할례를 받아 유대인이 되는 방법 외에 하나님의 백성이 될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행이도 유대인들은 넘어졌습니다. 실패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고 그 부활의 복음을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기회가 이방인인 우리에게 까지 주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전세계에 수 많은 기독교인들이 생겨 났습니다. 이 처럼 전세계의 수 많은 이방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신 하나님께서 하물며 먼저 아셨던 이스라엘을 버리시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다라고 바울은 12절에서 역설적으로 강변하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논리는 24절에서 또 한번 감람나무 비유에서 바울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Romans 11:24 NKRV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니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받으랴
여기서 좋은 감람나무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언약을 말합니다. 그리고 원 돌감람나무란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왔던 이방인인을 말합니다. 바울은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유대인들에게 주어졌던 언약 백성이라는 원래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럼, 돌감람나무에 있던 가지도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는데, 하물며 원래 좋은 감람나무에 붙어 있던, 즉 먼저 하나님의 언약을 받았던 유대인들이 원래 가지로 붙는다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고 바울은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비록 잠시 복음을 거부하여 원감람나무에서 떨어져 나갔지만, 하나님은 언제든지 유대인들을 기꺼이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실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이 처럼 비록 유대인들은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 복음을 거부하고 있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터 떨어져 있지만, 반드시 언젠가는 유대인들로 예수 그리스도 복음을 받아 들이고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럼, 왜 하나님은 유대인들을 포기하지 않으실까요?

하나님은 구원 선택에 있어서 후회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2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Romans 11:29 NKRV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은사란 다른 말로 은혜로 번역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부르심이란 다른 말로 “택하심"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29절 말씀과 유사한 단어를 쓰고 있는 구절이 본문에 있는데, 바로 5절입니다.
Romans 11:5 NKRV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바울은 2절 부터 엘리야 선지자의 이야기를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아합과 이세벨의 위협에서 고민 되어 하나님께 기도 했습니다.
Romans 11:3 NKRV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Romans 11:4 NKRV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알에게 무릅꿇고 배교할 때 하나님께서는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칠천명을 남겨 두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은혜로 자신이 선택한 칠천 명을 은혜로 택하셔서 남겨 두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는 사람을 남겨 두셨을까요? 답은 29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그 분이 은혜를 주시고 부르신 민족을 포기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즉 결코 후회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민족이 하나님을 떠나 있을 때, 우상을 섬기는 집안에서 자란 아브라함을 전적으로 택하시고 부르시고 언약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 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 태어날 후손들도 축복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이 여러번 하나님을 배신하고 배교하고 이방신을 섬겼으나 그 때에도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을 섬기고 배교하지 않은 사람들을 남겨 두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과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거부하고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이들을 배척하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비록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한다 해서 그 민족들을 완전히 멸절 시키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에 있어 후회함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이 것이 25절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그리고 33절에서 말하는 지혜와 지식의 풍성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가끔 신앙적인 우월감에 빠져 있는 사람을 만나곤 합니다. 유대인을 미워해던 마틴 루터도 그랬고요. 히틀러도 그랬고, 이 후 여러 사람들이 그러했습니다.
심지어는 몇년 전만해도 신앙의 이상한 논리가 복음인양 먹혀 들어간 적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택하시고 구원하시고 사용하신 이유의 원인을 나의 어떤 우월함, 탁월함이라 여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이 탁월하여서 지금 이시간 하나님을 믿고 예배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요. 아브라함이 무엇인가 탁월하여서 하나님이 선택하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믿어 구원받는 것이 나의 어떤 탁월함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 같은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는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3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Romans 11:32 NKRV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않게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게서 모든 사람에게 긍휼 즉 자비를 베푸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순종하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님이 은혜 주시고 부르셨습니다. 즉, 무가치한 나를 하나님께서 은혜 주셨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민족 만큼 불순종한 민족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민족은 예수님을 거부하고 십자가에 죽이고 그 예수님을 믿는 주의 백성들을 핍박했으며, 지금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이들을 포기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을 순종하지 않는 가운데 두신 이유는 긍휼을 베풀려는 목적입니다. 또한 우리 주변에서 복음에 대해 마치 알레르기 걸린 것 처럼 거부하는 이들을 매우 자주 만납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자들에게 긍휼 베푸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도 한 때 복음을 거부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누가 구원받을지 판단하면 안됩니다. 그리고 저 사람은 결코 복음이 들어가지 않을 사람이라고 예단해도 되지 않습니다. 모든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이고 그 은혜는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비로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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