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세상에 주는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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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views1. 그리스도인의 삶 = 수금을 타는 것 2. 불안에 휩쌓인 세상을 위로하라 3.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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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 실전편
바벨론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 실전편
사랑하는 여러분. 꿈만 같았던 3박 4일을 보내고 맞이한 한 주 어땠나요? 배에서 내리자마자 아마 세상은 여러분에게 많은 위협을 하며 몰아쳤을거에요. 그 안에서 진정한 평안이신 예수님을 붙잡았던 한주였기를 바래요.
오늘은 수련회 그 후에 대한 말씀을 나누려고 해요. 수련회는 정말 중요해요.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어요. 바로 수련회 이후의 삶이에요. 수련회는 수련회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것이거든요.
수련회를 통해 여러분들은 각자 하나님 앞에 결단 한 내용들이 있을거에요. 그리고 바벨론과 같은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자 다양한 노력들을 할 것이고, 그러한 삶을 살아내겠죠.
이제 실전이에요. 수련회 때는 실전에 투입되기 전 집중 훈련을 받는 시간이었다면 이제 저와 여러분은 총과 칼 그리고 미사일이 날라다니는 영적 전쟁 복판에 서게 된거에요.
오늘 말씀은 바벨론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실전편과도 같아요.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살아내야 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결단하는 그 시간이 되기를 소망해요.
사랑 받을 수 있을까?
사랑 받을 수 있을까?
우리가 사는 사회를 헬조선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죠.
헬조선이라고 하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세상 모든 사회는 다 똑같이 헬이라고 생각해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영원히 끊어진 곳이 헬. 지옥이잖아요. 하나님 없는 곳은 다 헬조선. 헬문화. 헬세상 일거에요.
헬조선은 다른 말로 이야기하면 속물들의 사회라 표현 할 수 있을 것같아요.
헬조선. 속물들의 사회는 오직 한가지를 갖고 사람의 가치를 평가해요.
바로 돈이에요.
얼마만큼의 연봉을 받느냐. 그리고 그 연봉을 위해 쌓은 스펙이 무엇인가로 사람을 평가해요. 여러분들도 취직하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쌓고 활동도 하고 자격증도 따고 있잖아요.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에요.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공부해야하고 경험도 쌓아야 해요.
하지만 그것들을 위해 쏟는 시간들이 많아지고, 하나님보다 그것들에 무게중심을 두기 시작한다면 잘못된 것이겠죠.
돈을 얼마나 받느냐가 그 사람에 대한 가치로 여겨지는 사회. 헬조선이자 속물들의 사회이죠.
돈으로 나눠준 계급. 기준이 있어요. 바로 수저에요.
다이아수저.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막대기.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어봤을거에요.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는게 조금은 너무 속물 같아 보였는지, 어느 순간 세상은 수저론을 들고 나와서 사람들을 또 구분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수저론을 당연하게 받아드리도록 세상은 여론전을 펼쳤어요.
그 결과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을 보면서 씁쓸해하지만 동시에 다이아수저. 금수저라고 말하면서 정신승리를 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됐죠. 그냥 “쟤는 금수저야"라고 하면 마음이 편하니까요.
제가 속해 있는 이 목회자 그룹에도 이런 수저론이 있어요. 우스개소리로 하는 이야기인데요.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일단 아버지가 꽤 규모가 교회의 목사님이다. 그러면 일단 금수저에요. 그런데 아버지가 소위 말하는 대형교회 목사님이다. 그러면 다이아수저에요. 뭐 이걸 다 떠나서 아버지가 목사님이면 최소 흙수저는 면해요.
제가 신대원에 갔을 때 저만 그랬던거 같은데. 유독 많이 들었던 질문이 있었어요.
어느 스터디에서 공부했는가? 아버지는 목사님이신가? 목사님이라면 어느 지역에 무슨 교회인가? 하는 것이었어요.
저는 일단 아무 것도 해당 사항이 없었어요.
시골에 살았으니까 스터디도 없었고, 혼자 성경책을 많이 읽고 문제를 풀면서 공부했어요. 저희 아버지는 안수집사님이에요. 집안에 목회자도 없어요. 그리고 신학교가 아닌 일반대를 나왔어요.
자동스럽게 저는 흙수저의 포지션에 섰어요. 그리고 그 이후 아무도 저에게 묻지 않았어요.
그런데 저에 대해 재평가하는 사건이 하나 발생했어요. 친한 형이 제가 총신신대원에 오기 전에, 미국에 있는 대학원에 합격을 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죠.
합격은 했으나 학비가 너무 비쌌고 타이밍이 맞지 않아서, 가지 못했던 학교였는데 그 형에게는 본인이 가고 싶었던 학교였던거 같아요. 그래서 그것을 만나는 사람마다, 심지어 제가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말하고 다녔어요.
그리고 그 이후 흙수저에서 좀 빛이 나는 동수저 (이런 수저가 있나) 그 언저리를 왔다갔다 하게 됐어요.
너무 슬픈 이야기죠. 동기들끼리 재미있으라고 한 이야기이지만, 이런 생각들이 세상뿐만 아니라 목회자 그룹에도 있다는 것이 참 슬프더라구요.
세상에서 수저를 나누는 가치는 돈이에요.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돈이 있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소위 말하는 갑질과 같은 행동을 하기도 해요.
제가 필리핀에서 돌아와 복학하기 전에 시간이 좀 남았었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아시는 분이 하시는 주유소서 일을 하게 되었어요.
주유소 일은 처음이었고 또 차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저라서 경유차와 휘발유차를 처음에 구분하는 것이 어려웠어요.
몇번 기름을 넣다보니 일반적으로 주유구가 크면 경유, 작으면 휘발유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적응도 되고 나름 평화로운 시기를 보내던 어느 날 차 한대가 들어 왔어요.
한 엄마와 초등학교 1-2학년쯤 되어보이는 아이가 타고 있었어요. 주유구에 주유기를 꽂아놓고 카드를 받고 결제를 하고 돌아서는데, 아이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칭얼거리고 있었어요.
저는 그 때 그 엄마가 했던 말을 잊을 수 없어요.
“너 자꾸 엄마 말 안 듣고 이렇게 못되게 굴면! 저 아저씨처럼 된다!”
그 아저씨가 저였던거에요. 25살의 꽃다운 나이었던 저에게 아저씨라고 한 것도 충격이었는데, “못되게 굴면 저 아저씨처럼 된다". 라는 말이 참 기분 상하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엄마와 아이가 간 후 외제차가 들어왔어요.
주유 뚜껑을 열었는데 주유구가 큰거에요. 생각없이 경유를 뽑아 들었는데 아닌 것 같은거에요. 그래서 어떻게 하지 하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창문이 진짜 이만큼 열리더니 “아 휘발유차에요. 딱 보면 모르나”라는 말이 들려왔어요.
휘발유를 넣고 카드를 받는데 또 창문이 그만큼 열리더니 카드가 나오는거에요. 근데 그 친구가 실수로 자기 주민등록증을 준거죠. 보니까 25살이었던 저보다 3살이 어렸어요.
민증을 돌려주고 카드를 받고 계산을 하고 서비스로 물을 주려고 하는데, 그 친구가 또 한마디 했어요.
“누가 그런 싸구려 물 마셔"
돈이 있으면 사람을 무시할 수 있는 사회. 헬조선. 속물들의 사회에요.
저와 여러분은 이런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거에요.
우리는 유년시절부터 청년시절 그리고 취직해서까지 우리는 쉴 수 없어요. 끊임없이 계속해서 뭔가를 해야 해요.
원하는 대학을 가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요. 석사 박사를 해도 불안해요. 안정적인 직장을 잡고 일을해도 불안 해요.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아요. 목표를 이루어도 계속해서 마음이 놓이지 않아요.
왜 세상이 우리를 이렇게까지 계급을 나누고 갑질을 하고 상처를 주고 바쁘게 만드는지 아세요? 그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 아세요?
(쉬고)
우리를 외롭게 만드는 거에요.
우리 스스로가 나는 사랑 받을 수 없는 존재야.
나는 사랑 받을 자격이 없어. 나는 아무 것도 이루어내지 못한 사람이야.
(쉬고)
사랑 받지 못하는 존재라 생각하게 만들어 외롭게 만드는 것이 세상에 목표에요. 그리고 외로워진 그 마음 속에 화려하고 매혹적인 것들을 심어 그것을 믿고 따르도록 하려해요.
사람의 인정
사람의 인정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사울 왕이 바로 그렇게 사랑 받지 못한 존재라 자신을 여기며 외로움에 빠졌던 사람이었어요.
사울에게는 아주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어요.
(쉬고)
그것은 바로 사람이에요.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했어요. 그래서 사람을 정말 많이 의식하며 살았어요.
그는 스스로를 정말 낮게 평가했지만, 역사적으로 봤을 때 그는 위대한 왕이었어요. 키도 컸고 힘도 좋았으며 머리도 똑똑했죠. 하지만 그러한 외모와 다르게 귀가 얇았고 새가슴이었어요. 사람들의 눈치를 끊임없이 봤어요.
사실 그는 왕이었기에 사람들이 사울의 마음에 들기 위해 엄청 눈치를 보고 행동했는데요. 사울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체 사람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에너지를 쏟기 시작했어요.
사울은 왕이 되고 첫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어요. 그리고 자신을 인정하지 않고 비아냥거리던 불량배도 품어주었어요. 그 이후 한번도 패한 적 없는 천하무적의 전사가 되어갔어요.
하나님이 지목하여 세우셨기에, 하나님 편에 있으면 그는 절대 질 수 없는 것이었죠.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그 원칙만 지키면 왕의 자리는 그의 가문에 대대로 이어졌을거에요.
그런데 그가 변해가기 시작해요. 급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해요. 무엇 때문에요? 사람때문에요.
점점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기 시작해요. 혹시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면 어떻게 하지? 나를 버리면 어떻게 하지? 라는 감정이 그를 둘러싸기 시작해요.
그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한 노래 때문이었어요.
“사울은 천천이고, 다윗은 만만이다.”
“사울은 천천이고, 다윗은 만만이다.”
이 노래를 듣고 불안에 빠지기 시작해요.
백성들이 다윗을 원하는 것 같았거든요.
어디를 가던 대승을 거두는 다윗을 사람들이 더 좋아할 것 같았거든요.
이러한 불안감 속에 살다 어느 날 그의 마음에 이런 생각이 내리 꽂혀요.
“나보다 다윗이 더 왕좌에 어울린다"
세상이 준 불안함과 두려움이 그에게 거짓 메시지를 심었고, 그는 그 거짓 메시지를 진짜로 받아드리고 다윗을 시기하고 의심하기 시작해요.
사람들이 “사울은 천천이고, 다윗은 만만이다.”이라고 노래를 불러도, 여전히 왕은 사울이에요. 노래는 노래에 불과해요. 그 노래가 아무리 큰 영향력을 가진다 해도, 왕인 사울이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노래였어요.
하지만 사울은 사람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인정받고자 하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던 사람이었죠. 그래서 이 말을 듣고 흔들리기 시작해요.
하나님의 말씀은 사라지고 그의 마음 속엔 오로지 불안과 두려움만 가득해졌어요.
(쉬고)
그러던 중 사울이 몰락하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 등장해요. 길갈 전투 전과 아말렉 전투 후에 일어났던 사건이에요.
길갈 전투 시작 전 사울의 마음은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어요.
긴박한 전장의 기운이 흐르기 시작했어요. 이스라엘 앞에 블레셋이 모여들기 시작하는데요. 병거가 3만, 기마 6천 그리고 보병은 바다의 모래알처럼 많았어요.
그것을 보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두려워 떨기 시작해요. 숨거나 도망가기 시작해요. 이건 절대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에요.
병거와 기마 3만 6천 그리고 무수히 많은 보병부대 앞에 선 이스라엘 군사의 수는 3천명이었어요. 그것도 농기구를 무기로 든 사람 3천명. 하지만 다 도망가고 600명만 남은 상황이에요.
하나님 도움 없이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에요.
하나님이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요나단과 그의 종 하나만 기습을 하도록 하세요. 그리고 그의 기습은 성공을 했고 블레셋끼리 싸워 스스로를 궤멸시켰어요.
하나님께서, 비록 사람의 숫자는 적지만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반드시 승리한다라는 단서를 보여주셨어요.
그런데 사울은 그 단서를 보지 않아요. 오직 그의 마음은 사람들의 시선과 인정에만 있어요.
더 이상 사람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해야 해요. 자신의 건재함을 보여주어야 해요. 그래서 그는 스스로 제사장이 되어 제사를 드리기 시작해요. 사무엘의 역할을 자신이 함으로 ‘선을 넘었고' 몰락하기 시작해요.
다음은 아말렉 전투 후에요.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여호와의 전쟁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셨어요. 이 말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심판의 대리자의 역할을 하라.
즉, 하나님 앞에 반기를 든 아말렉을 완전히 진멸시켜라. 아무도 살려두지 말고, 그들의 어떤 것도 가지지 말라!
오직 그들을 다 죽이는데 집중하라.는 말이에요.
아말렉은 출애굽 하던 이스라엘의 후미를 쳐서 약탈을 했던 족속이죠.
후미에는 여자들과 아이들 그리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있었어요. 그들을 급습해서 다 죽이고 엄청난 피해를 입혔던 민족이었어요.
그들은 진멸하는 전쟁이 시작됐어요. 그리고 이겼어요. 하지만 문제가 생겼어요.
아말렉 왕 아각을 살려두었고, 가축들 중 좋은 것을 다 살려뒀어요.
분명 하나님의 명령은 다 죽이고, 어느 것도 가지지 말라였어요. 하지만 사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사람들의 압력에 굴복한거에요. 본인이 왕이고 권력자면서, 사람들의 말을 듣고 그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아각 왕을 살려두고 좋은 짐승들을 다 살려뒀어요.
본인도 그게 실수라는 것을 알았어요. 하지만 돌이키지 않았어요.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야 하는 것이 그의 삶의 목표가 되었으니까요.
결국 그는 스스로 몰락하는 길을 선택하고 걷게 되어요.
여전히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시지만, 사울은 스스로 사랑 받을 자격이 없다 말하며, 세상 사람들의 인정을 구했거든요.
내가 살아가는 동기
내가 살아가는 동기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나요? 어떤 목적과 방향을 갖고 살아가고 있나요?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과 목적을 위해 살았나요. 아니면
하나님이 주신 꿈을 쫓기 보다 내 안에 있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막연한 두려움 등을 제거하는데 힘을 쏟고 있었나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보다 어쩌면 나의 지금 이 상황을 더 나아지게 하는데 힘을 쏟으며 살아왔던 것이 우리일지 몰라요.
어떻게 보면 모든 것을 다 가졌던 왕. 사울이 불안과 두려움에 빠진 이유는 우리처럼, 이 상황을 더 나아지게 힘을 쏟았기 때문일 수 있어요.
그가 미치광이가 되요. 물론 하나님이 부리신 악한 영이 그에게 들어가긴 했지만, 그가 점점 미쳐가기 시작해요.
“나보다 다윗이 더 왕좌에 어울린다"
세상이 준 불안함과 두려움이 심은 거짓 메시지에 몰두하다보니, 사울은 자신의 모습을 잃어가기 시작해요.
여러분 연가시 알아요?
연가시는 곤충에 기생하는 유선형 동물이에요. 곤충에 기생하면서 힘을 기르다가 어느 순간 기생하는 곤충의 뇌를 장악해요.
그리고 그 곤충을 물로 뛰어들어 죽게 만들어요.
곤충이 물에 뛰어들어 죽으면 연가시는 그 곤충의 몸에서 빠져나와 물 속으로 사라져요.
곤충은 자신의 몸에 이러한 연가시가 기생한다는 사실을 몰라요. 알 수 없어요.
하지만 분명 존재했던 그 연가시는 곤충의 뇌를 지배하고 죽게 만들죠.
그것처럼 사울은 지금 거짓 메시지에 영향을 받아 미쳐가기 시작해요. 그리고 그는 이런 결론을 내려요.
“내 인생이 불행한 것은 다윗 때문이다"
“저 놈만 사라지면 다시 나를 필요로 할 것이다.”
이것은요. 지금 우리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는 세상이 자주 사용하는 패턴이에요.
하나님을 모르는 대부분의 사람 아니 어쩌면 우리들도 이런 생각을 할거에요.
“그 직장에 들어가지 못하면 나는 가치 없는 사람이 되고 말거야"
“집에서 계속 놀고 있는 나는 패배자야. 쓸모 없어.”
“돈이 없어서 사람을 만날 수 없네. 돈이 없는데 누가 나를 만나주겠어"
세상은 하나님에게 고정된 우리의 눈을 가리고 돌려요. 그리고 우리의 영혼을 불안하게 만들어요. 내가 마치 쓸모 없는 사람인것처럼 나를 만들어가요.
이러한 생각 속에 빠져 미치광이가 된 사울은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게 되어요. 그리고 자기 감정에 빠져 미친듯이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줘요.
자신 앞에 있는 다윗을 향해 창을 던져 냅다 집어던져요. 벽에 꽂아버리기 위해서. 그것도 두번씩이나.
다윗의 수금
다윗의 수금
사울은 지금 극도로 불안해하고 있어요. 그래서 다윗을 죽이고 싶어했어요.
그런데요. 사실 보면 사울보다 더 불안해 해야하는 사람은 다윗이에요.
다윗이 살고 있는 그 세상은 온통 사울이 지배하는 곳이잖아요. 어느 곳 하나 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는 사울의 나라에요.
사울은 다윗을 죽일 수 있는, 아니 다윗의 모든 일가친족을 다 죽일 수 있는 강한 군대를 가진 사람이에요. 반면 다윗이 가진 것은 딱 하나에요. 사울의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수금. 그 것 하나만 갖고 있어요.
다윗은 기름 부음을 받았어요. 사울을 이어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어요.
하지만 그것은 지금 중요하지 않아요. 기름 부음 받으면 뭐해요. 지금 그의 역할을 사울 옆에서 무기를 들고 있거나, 그를 위해 수금을 켜는 것 외에 없는데요.
오히려 자신을 사울이 죽이려 해요. 매일 사울 앞에 나가면서
“오늘도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별 일 없겠지?”
“왕이 나를 또 죽이려고 할까?”
그것을 고민했을거에요.
하지만 이러한 고민은 다윗에게 어떤 영향도 주지 못했어요.
그런 고민이 들 때마다, 두려울 때마다 노래를 불렀어요. 그 순간 수금을 켜며 하나님을 찬양했어요.
그리고 그는 131편 2-3절에 이렇게 노래해요.
“오히려 내 마음은 고요하고 평온합니다.
젖 뗀 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겨 있듯이, 내 영혼도 젖 뗀 아이와 같습니다.
이스라엘아. 이제부터 영원히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여라"
어떤 상황이 와도 그의 마음은 고요하고 평온한거에요. 엄마 품에 안겨있는 아기처럼 평온하다고 고백하는거에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살아갔던 다윗이었기에, 이런 말도 안되는 고백을 할 수 있었던거에요.
사랑하는 여러분. 다윗의 이 모습 저와 여러분이 앞으로 살아가야하는 모습이에요.
‘바벨론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 실전편'. 다윗처럼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기에요.
첫째, 다윗은 불안한 영혼인 사울을 위해 기꺼이 수금을 연주했어요.
그가 왕으로 부름 받아 처음 시작한 일은, 온 세상을 뒤집어 없는 일이 아니었어요. 상처 입은 한 영혼을 섬기는 일이었어요. 그 한 영혼을 위해 기꺼이 수금을 들었어요.
수금을 켜는 동안 다윗은 무방비 상태에요.
연주할 때 누가 공격하면 그대로 끝이에요. 수금을 연주할 때 사울이 창을 집어 던지지 않고 다가와서 꽂아버리면, 칼로 베어버리면 끝이에요.
하지만 그는 그럼에도 수금을 연주했어요. 하나님이 지켜주신다는 믿음?
아니요.
“하나님의 영이 떠난 사람의 비참함을 보았”거든요.
하나님이 아닌 세상에, 자기 만족에,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치졸해지고 나약해지는 인간을 보았거든요.
그를 향한 긍휼의 마음 때문에 수금 켜는 일을 멈출 수 없었던 거에요.
세상에서 좋은 위치에 서고 리더가 되는 것도 중요해요.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의 위치와 상관없이 ‘내가 먼저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에요.
하나님을 위로하는 사람이 되기로 우리 수련회 때 결단했잖아요! 하나님의 마음을 위로하는 사람은,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당연히 위로해야 해요.
알렌 크라이더라는 사람이 쓴 ‘회심의 변질'이라는 책이 있어요.
초기 기독교가 극심한 박해와 죽음 속에서도 성장한 이유가 이 책에 기록되어 있어요. 그런 악조건에서도 초기 기독교가 커질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매력적이었기 때문이에요.
공개적으로 복음을 선포할 수 없는 그 때, 그리스도인들은 삶으로 복음의 가치를 드러냈어요.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일로 불안한 세상 속의 사람들을 섬기고 위로했던 것이죠. 세상이 아무리 핍박해도 여유를 잃지 않고 섬기고 사랑을 베푸는 그들을 보며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대해 궁금해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그들에게 성경을 배웠어요. 그리고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었어요.
그리스도인이 되면 거의 100% 죽는 그 상황 속에, 이상하게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진짜 말도 안되는 이야기죠. 하지만 사실이에요.
그만큼 그리스도인의 삶은 매력적이었어요.
저와 여러분은 바벨론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내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돼요.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로 결정했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그 삶을 향해 나아가야 해요.
둘째, 어떻게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는지 생각해야 해요.
여러분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나요? 아니 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기로 결정했나요.
그것은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 그 사랑 때문 아닌가요? 이것보다 아름다운 사랑이 있을까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그 사랑 때문에 구원을 받았어요. 그래서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기회를 먼저 얻었어요. 그 기회를 이제는 나눠주어야 해요.
그 사랑으로 누군가의 구원을 위한 길을 걸어가야 해요.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어 구원의 감격과 그 기쁨 그리고 은혜를 누리고 있는 것처럼,
이 감격과 기쁨을 반드시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해요.
제 주위에는 이런 친구들이 종종 있어요.
교회를 잘 모르는 친구들이에요. 저에게 이렇게 말해요.
너가 교회 사장이 되면, 교회에서 높은 사람이 되면 니네 교회 나갈
게
제 자랑하는거 정말 아니에요. 저는요. 이 친구들에게 교회 나가라고 한 적 한번도 없어요. 예수님을 전한 적 없어요. 그냥 제가 배운데로 배려했고, 섬겼을 뿐이에요.
지금도 가끔 연락이 와요. “야 나 교회 나갈 준비 됐는데, 교회 사장 안하냐?”
그럼 저는 이렇게 이야기 해요. “나 한국에서 교회 사장할 생각 없는데, 너 외국으로 나올거냐?”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그 자체만으로도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람들이에요. 바벨론에서 그리스도인로 살기로 결정한 것 자체만으로도, 세상을 향해 그리스도를 힘껏 증거하는 것과 같아요.
내 존재가 그렇게 예수님을 드러내고 있음을 믿는다면, 이제 그 것을 넘어 우리가 반응해야 할 때에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 어려울거에요. 힘들거에요. 선을 베풀고 섬겨주는 일 결코 쉽지 않아요. 나는 은혜를 베풀었는데 그것이 배신 혹은 상처로 돌아올 수 있어요.
그 때 이 말씀을 꼭 기억하세요. 베드로 전서 2장 20-21절이에요.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당하면서 참으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일입니다.
바로 이것을 위하여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여러분이 자기의 발자취를 따르게 하시려고 여러분에게 본을 남겨 놓으셨습니다.”
선을 행하다 오는 고난은 당연한거에요. 세상은 아직 그리스도의 선과 사랑을 받아드릴 준비가 되지 않았거든요.
선을 행하면서 낙심치 마세요. 그 반대를 감사하게 즐겁게 받아드리세요. 하나님께서 그 거절당함을 아름답게 보신데요.
마지막, 불안에 떠는 이를 위해 당신의 수금을 들고 연주하세요.
아까 말했던 초기 기독교 그리스도인들은, 박해를 당하고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그 순간에도, 언제 감옥에 갇히고 순교당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어요.
하나님을 몰라 불안에 하고 있는 세상 영혼들을 사랑으로 섬겼어요. 비록 자신은 맞고 쫓겨나고 죽겠지만 괜찮았어요. 그에겐 예수 그리스도가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세상에 있는 사람들에겐 예수 그리스도가 없기에, 그래서 그들이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혼란스러워하기에, 그들을 품었어요.
자신의 수금을 들고 연주했어요.
다윗이 수금을 들어 연주하면 사울이 안정을 찾았던 것처럼, 자신들만의 수금을 통해 세상을 섬기고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했어요.
누구보다 불안에 떨었어야 했던 다윗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평안함을 누리며, 불안한 영혼 사울을 섬겼어요. 수금을 연주함으로 하나님을 잃어버린 사람의 마음의 불안을 정복했어요.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우리가 살아내야 할 실전편이에요.
불안 한 영혼을 위해 나만의 수금을 들고 연주해야 해요.
그 수금은 다양한 것이 될 수 있어요. 저는 여러분의 수금. 강점이 무엇인지 몰라요. 하지만 여러분은 스스로가 갖고 있는 수금이 무엇인지 잘 알거에요.
애써 그리스도를 드러내려 하지 마세요. 잠잠히 수금을 연주하며 살아가세요. 그것으로 완전 충분해요.
그러면 세상이 오히려 여러분에게 물어올거에요.
어떻게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는지, 어디에서 그 평온함이 왔는지 그리고 넉넉히 상황을 웃어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어디에서 왔는지 물어볼거에요.
이번 한주 스스로의 수금을 들고, 세상을 위로하고 섬기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온함을 전달하는 삶을 살아내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