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첫 걸음
Notes
Transcript
사랑하는 여러분 반갑습니다.
최근이 휴가철이라 다들 가족여행도 많이 가고
친구들과 바닷가를 다녀온 분들도 많으실텐데
저도 휴가때 아이들 데리고 수영장에 가서 수영도 하고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아이들이 초등학교 필수 과정으로 생존수영이라는 걸 배우더라구요.
생존 수영이라는 것이 대단한 것이 아니고
입새뜨기 라고 해서 나뭇잎이 물어 떠있듯이
호흡이 가능한 자세로 물에 떠있는 법을 배우는게 생존 수영이더라구요.
최근에 전국에 홍수 피해가 심해서 많은 희생자들이 나왔는데
그래서 그런지 저도 생존 수영이 뭔지 궁금해서 찾아 봤습니다.
그러다가 생존 수영의 중요성을 알리는 영상을 하나 보게 됬는데
어떤 내용인가 하면, 일가족이 같이 갯벌에 조개를 캐러 간거에요.
그런데 밀물때를 놓쳐서 바다 한 가운데 고립이 되었습니다.
119 구조대원들이 이 가족을 구하러 출동했는데
진짜 놀라운 것이 초등학생 여자 아이가 이 생존수영 잎새뜨기로 20분이 넘게 바다에 떠서 생존을 한거에요.
구조대원이 이 여자아이를 구출하는데, 아이가 하는 첫마디가 뭔줄 아세요?
엄마는요? 동생은요? 부모걱정 동생 걱정을 하는 거에요. 구조대원이 제대로 대답을 안하니까 또 물어요. 엄마는요? 동생은요?
그제서야 구조대원이 저기 다 계세요. 저희가 다 구조해 드리겠습니다. 하니까. 그제서야 안심을 하고, 괜찮으세요? 그러니까
너무 추워요. 하는 거에요.
그런데 잠시후에 아빠로 보이는 남자를 구조대원이 구하러 가는데
이 아빠는 첫마디가 뭔지 아세요?
살려주세요. 저 수영 못해요. 살려주세요. 저 수영 못해요.
아이는 부모걱정 동생걱정을 하는데, 오히려 부모는 자기 걱정을 먼저 하는 것을 보면서
제가 속으로는 안타까우면서도 웃음이 나는거에요.
세상에 이런 부모도 있구나.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우리가 십계명에 다섯번째 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접하면서, 이 단순한 계명에 당영하게 수긍하고 순종하기가 여러운 이유가
사실은 이런 이유 때문이죠.
존경받고 공경받을 만한 부모도 있지만, 세상에는 부모답지 못한 부모, 자식만 못한 부모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은
하나님도 이런 어려움을 아셨기때문인지
십계명의 모든 계명이 일방적인 명령으로 되어 있는데
이 5계명, 부모 공경에 대한 계명에서만큼은
특별히 이 계명에 순종하는 이에게 주시는 축복이 바로 이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12절 말씀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출 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신명기에는 이 계명이 조금 더 확장 되어서 복을 누리리라가 추가 되어 있습니다.
신 5:16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이 축복을 구체적으로 나누어 보면
땅, 생명, 복이에요.
땅은 삶의 터전이에요. 이것이 없어서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에게 너무 중요한 축복입니다.
부모를 잘 공경하면 하나님께서 삶의 터전을 보장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주십니다.
그리고 생명, 전쟁과 전염병으로 단명하던 시대에
하나님이 주신 삶의 터전에서 오래 살게 될것이라는 장수의 축복이면서 동시에 세번째 축복인 복을 누리는 것과 연결됩니다.
세번째 복을 누린다는 것은 물질적인 복(풍요로움)과 영적인 복(만족과 기쁨)을 오래 오래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축복이에요.
그런데 실제로 부모를 공경하고 이런 복을 받는 자녀들이 얼마나 될까요?
세상에 공경받을 만한 자격 있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요?
그리고 부모를 공경하는 것과 하나님이 약속하신 세가지 축복은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자 한번 손들어 보겠습니다.
내 부모님은 정말 공경 받을 만 하다. 생각하시는 분 손들어 보세요.
자, 그럼 손 드신 분들 중에
나는 이런 부모님을 정말 잘 공경하고 있다 생각하시는 분들만 손을 들고 계시고, 그렇지 않은 분들은 내려 주세요.
네 임성묵 목사님 지금 손 들고 계신 분들 명단 기록하셔서 다음 주에 간증 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세요. 얼마나 복을 받았는지.
하나님께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이웃 사랑의 계명들 중에 맨 앞에 두시고,
특별히 이 부모 공경의 계명에 해당하는 복을 명시해 놓으셨다는 것은
이 계명에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뜻이겠죠?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모를 공경하라 말씀하시면서, 히브리어로 카베드를 쓰십니다.
카베드는 기본적으로 무겁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은 그래서 가벼이 여기지 말고 중히 여기며 대하라는 뜻입니다.
무엇을 무겁게 여기라는 말입니까?
받은 은혜와 사랑을 절대로 가벼이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무능하고 무관심한 부모라도
태에서 10달을 품는 수고와 해산의 고통을 겪지 않으면 생명이 절대로 탄생할수 없고
부모가 아닌 누구라도 3년은 기저귀를 갈아주고 똥을 닦아 줘야
간신히 혼자 똥오줌을 가릴 수 있게 되는 것이 인간입니다.
누가 그렇게 여러분을 위해서 10달을, 3년을 헌신합니까?
그러니 낳아주신 은혜 길러주신 사랑이라 하는 것 아닙니까?
무책임하고 무자비한 부모가 있을 수 있죠.
상처주고 피해 주는 부모가 있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너무 지나친 관심과 기대도 자녀를 힘들게하고 상처 줍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부족한 부모라 할 지라도
그가 받은 은혜와 사랑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중히 여기며 헌신한 것에 대하여
인정해 주시고 축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형님 한분이 계신데, 별명이 심옹이에요.
너무 고생을 하셔서 나이보다 조금 연로해 보이시는데,
그래서 별명이 심옹입니다.
이분도 처음부터 노안이 아니었습니다.
왜 이렇게 자세도 구부정하고 인상도 노안이 되었냐 하면
6년 동안 사법고시 준비를 하다가 너무 고생을 해서 그렇게 되신 거에요.
그런데 왜 그렇게까지 고시에 매달렸냐 하면, 부모님의 기대 때문이었어요.
부모님이 너무 기대를 하시고 원하시니까… 이 형님이 또 엄청 모범생이세요.
앉아서 6년 동안 정말 몸이 다 망가질 정도로 공부를 한 거죠.
결국에는 사법고시에 실패하고 다른 길로 가게 되었는데,
마음 속에 7년 동안 허송세월 한 것 이것이 늘 원망이고 상처 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기도 중에 하나님이 그 형님에게 말씀하시는데
니가 7년 동안 고시생 생활 하면서 고생한거.
그거 니 부모님을 위해서 니가 그렇게 한거 내가 다 안다.
부모님께 순종하기 위해 니가 한 그 헌신을 내가 다 받았다.
이 형님이 이 이야기를 하시면서 펑펑 우시는 거에요.
그날 이후로 하나님이 형님의 삶을 축복하셨어요.
고시에는 실패 했지만, 고시 생활을 청산하고 목회자가 되셨어요.
그리고 캠퍼스 선교단체 간사로 섬기시는 너무 예쁜 사모님 만나셔서
함께 청년 사역과 캠퍼스 사역을 하셨는데
두분 사이에 자녀가 없는 대신에
회복된 관계로 수많은 청년들을 자식처럼 돌보고 챙기면서
당시에 캠퍼스 사역이 다 망해가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개척지부였던 그 선교단체가 놀랍게 부흥하고 성장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 중 대부분이 이렇게 어떻게든 부모님을 이해하고 잘 섬기고 순종하려고
엄청나게 애쓰고 계실거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다 아시고 받으시고 복 주실 것입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는 것은
사회구조적 차원에 권면이나
단순한 윤리도덕적 규율이 아닙니다.
축복받기 위한 수단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 관계를 축복하시고 명령하실 정도로 중요하게 여기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부모자식간의 관계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모든 관계의
가장 첫번째 되는 경험, 첫걸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의 제목이 관계의 첫걸입니다.
인간이 태어나서 일어나 걷기도 전에 경험하는 것이
부모와의 관계의 첫 경험 입니다.
무엇이든 첫번째는 특별합니다.
첫번째 하면 생각나는 것들이 있죠.
첫출근, 첫휴가, 첫여행, 첫눈, 첫사랑, 첫키스, 첫만남, 첫걸음
처음 하는 경험에서 오는 낭만적인 감성이 있습니다.
하나님도 그러신것 같아요.
인간이 살아가면서 처음 경험하는
인간의 첫출발과 첫만남, 이 첫번째 관계를 아주 특별하게 축복하십니다.
저도 애가 셋이지만 첫째를 처음 만났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엄마에게는 10달 동안 품은 내새끼지만, 아빠에게는 처음 만나는 사람 인거에요.
어색하고 긴장되는 순간 머리꼭대기에 쌍가마가 보이는데,
와 피는 속일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딱 들었습니다.
그때 느껴지는 감동 설레임 기쁨, 그리고 책임감과 사명감 같은 것들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하나님이 이 첫 만남을 특별하게 여기시고 축복하시는 이유는
단순히 하나님이 낭만적이고 감성적이신 분이시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부모와 자녀가 만나 경험하는 첫번째 관계가
이후에 한 사람이 일평생 만나고 경험하는 모든 관계의 기초가 되고 모든 관계에 대표성을 띄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첫 만남인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를 통해 관계를 통해 주시는 축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내가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인지
내가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
나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부모님과의 이 첫 만남의 관계 속에서 느끼고 경험하고 자아를 형성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다른 사람, 그리고 하나님을 경험하는 관계의 기초, 토대가 됩니다. <== 매우 중요
하나님은 우리가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이런 관계의 축복을 누리고
거져 주어진 이 사랑의 무게를 깨닫고 부모를 공경하는 것을 통해
관계의 축복을 부모님 뿐만 아니라 만나는 모든 관계로 확장해 나가기를 원하십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주어야할 것이 사랑이라면,
자녀가 부모에게 해야할 것은 이 사랑을 깨닫고 가벼이 여기지 않는 공경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부모가 될 이들에게, 그리고 자녀들에게 기대하시는 복된 삶의 길입니다.
그러면 이런 사랑을 받아본적이 없는 저는 어떻게 하나요?
사랑하는 여러분 할 수 만 있다면 나를 버린 부모라 할 지라도 할 수만 있다면 공경하고 사랑하세요.
그 사랑을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받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이 5계명이 명령이고, 그에 따른 복이 명시되어 있는 이유입니다.
상처와 고통에서 일어나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여러분을 그대로 버려 두시지 않으시고
그럴수록 좋은 영적인 형제 자매들 영적인 부모와 스승을 보내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으면 반드시 이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나누어 주는 사랑?
절대로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그렇다고 받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받을 줄 알되, 그 무게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삶에도 하나님이 주시는 관계의 축복이 회복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주는 사랑이 다가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더 크고 무한합니다.
성경에는 비상식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헌신된 믿음의 사람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들의 상황이나 능력이나 성향은 다 제각각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용납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 한들 얼마나 인격적으로 사랑했겠습니까?
여자와 아이들은 숫자에도 넣지 않고 사람으로 처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이들이 부모를 원망하기 보다 사람과 상황을 탓하기 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힙입어 이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놀라운 일들을 하는데
그 동력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와 사랑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오늘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면서
내 삶에 어떤 부족함과 결핍이 있었는지, 어떤 상처와 아픔이 있었는지
들여다 봅시다. 하지만 그것을 들여다 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상황 속에서도 그 결핍과 상처를 채워주시고 싸매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 어디에 있었는지
그 하나님의 손길이 부모님이었을 수도 있고, 친구들이었을 수도 있고
영적인 형제 자매, 영적인 부모와 스승일 수도 있고
우리의 모든 관계의 기초가
상처와 아픔이 아닌
받은 사랑과 은혜로 새로워 질 수 있도록
그렇게 사랑과 신뢰의 관계안에 관계의 축복을 누리는 인생 될 수 있도록
이 시간 우리의 눈과 마음을 열어주시기를 함께 기도합시다.
찬양하고 기도하겠습니다.
[은혜]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내가 지나왔던 모든 시간이
내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아침 해가 뜨고 저녁의 노을 봄의 꽃 향기와 가을의 열매
변하는 계절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모든 것이 은혜 은혜 은혜 한 없는 은혜
내 삶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던 것을
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
내가 이 땅에 태어나 사는 것 어린 아이 시절과 지금까지
숨을 쉬며 살며 꿈을 꾸는 삶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며 오늘 찬양하고 예배하는 삶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축복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모든 것이 은혜 은혜 은혜 한 없는 은혜 내 삶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던 것을 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
모든 것이 은혜 은혜 은혜 한 없는 은혜 내 삶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던 것을 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
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 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