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23 새벽] 말씀으로 우상을 철저히 제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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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426 이 죄인을 완전케 하시옵고
본문 왕하23:1-14
자비하신 하나님, 오늘도 우리에게 기도의 자리, 경건의 자리를 허락하심에 감사합니다. 늘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시고, 우리의 연약함에 대해 오래 참으시며,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시고, 돌이킬 부분들을 깨닫게 하실 때에 주저치 않고 하나님 기뻐하시는 뜻대로 우리 삶을 돌이키는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읽지 않았지만, 왕하22:17 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선지자 훌다를 들어 유다 백성에게 진노를 선포하셨다. ‘이는 이 백성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분향하며 그들의 손의 모든 행위로 나를 격노하게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이 곳을 향하여 내린 진노가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라 하셨느니라’ 물론 하나님께서 유대에게 진노하신 것은 요시야 왕 때문은 아니었다. 그는 여호와의 성전에서 발견한 율법책의 내용을 듣고서 자기 옷을 찢으며 지금 유다의 상태가 하나님의 뜻과는 너무나도 멀어졌음을 깨달아 애통해했던 왕이다. 다행히도 요시야 왕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하나님께서 진노의 심판을 내리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럼에도 왕은 긴장을 풀지 않고 이제부터라도 하나님의 율법대로 온 나라를 새롭게 개혁해가기 시작한다. 오늘 본문이 바로 구체적인 개혁의 내용들을 말해주고 있다. 먼저 본문 1-2절을 보면,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들을 모으고 자신이 여호와의 성전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유대의 모든 백성을 불러 모은다. 이때 요시야 왕은 실제적인 개혁을 시작한다. 개혁을 위해 왕이 가장 먼저 행한 일이 무엇인가? 2절 후반부에서 보듯이 ‘여호와의 성전 안에서 발견한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왕이 직접 읽어 백성의 귀에 들리게 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공동체를 개혁하려는 자의 모범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공동체의 개혁은 우리의 열정이 앞서서 실제적인 행동부터 취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사회운동가들의 개혁방식이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공동체의 개혁은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구약에서 유다 백성은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 공동체이기 때문에 그들은 개혁에 앞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했다. 거룩한 율법 앞에서 민족의 죄악을 두고 먼저 충격을 받은 왕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온 백성 앞에서 낭독했다. 이제껏 역대 왕들과 자신들이 율법에서 얼마나 탈선했는가를 깨닫자는 심정으로 한구절 한구절 읽어내려갔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언약을 하나님은 한번도 어기신 적이 없는데, 언약백성이라는 자신들이 너무나도 쉽게 그 언약을 파기해 버린 현실을 직시하자는 것이었다.
그 후에 왕은 ‘단 위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운다. 물론 이전 언약이 취소되고 자신이 완전히 새롭게 세운다는 의미가 아니라, 여전히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마음과 의지를 새롭게 한다는 차원이다. 한번도 그 언약을 취소하지 않으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본받아 자신들도 이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께 순종하고 그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거룩하게 살겠다고 결단하자는 것이다. 유다 백성들도 왕의 확고한 중심에 도전을 받아서인지 3절처럼 모두 그 언약을 따르기로 다짐한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교회 역시 하나님께서 세우신 언약 공동체이다.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 우리의 삶과 인격으로 세상에 증거해야 할 거룩한 공동체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언약을 맺으셔서 그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 공동체이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너무나도 부끄러운 우리 자신들의 모습들이 보이지 않는가. 각종 언론에 드러나는 기독교인들의 부정부패, 사건사고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사람 볼 것 없이 나 자신만 보아도 얼마나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모습들 투성이던가. 과연 나 자신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 성도라는 이름에 걸맞는 삶을 살고 있는가. 그리스도 예수를 닮아가는 그리스도인에 합당한 자세로 살고 있는가. 너무나 부끄럽다.
이처럼 연약한 나의 모습, 오늘날 힘을 잃어가는 것 같은 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요시야 왕 처럼 말씀 앞에서 충격을 받은 말씀봉사자들의 말씀 선포에 우리의 귀를 집중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교회를 새롭게 하려는 그들의 말씀 선포에 진지하게 우리의 마음을 집중시키는 것이다.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우리 자신이 그 말씀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정확하게 직시해야 한다. 나 혼자 괜찮다고 안심할 것이 아니라 요시야처럼 이 나라와 한국교회의 죄를 나의 죄로 여기고 거룩하신 그분의 말씀 앞에서 가슴을 치며 회개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언약을 다시 세우며 율법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거룩한 결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 이후에 실제적인 개혁으로 나아가야 한다. 본문에서 요시야 왕은 어떻게 개혁을 구체적으로 실행하고 있는가? 4절 이하에 보면, 가장 먼저 여호와의 성전을 율법대로 개혁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신앙이 성전 중심이기 때문이다. 대제사장 힐기야와 모든 부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성전에 있던 바알과 아세라 상을 제거하라고 한다. 여러분, 이 대목이 참 충격적이지 않은가? 저는 이 대목을 묵상하면서 너무나도 충격을 받았다. 하나님을 섬기는 성전에 바알과 아세라의 우상이 들어와 있어도 이것이 죄인줄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는 것이다. 하나님만을 예배해야 할 자리에 우상들과 우상을 섬기는 기구들이 있어도 신앙 양심에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7절을 보면 여호와의 성전 가운데 ‘남창의 집’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율법에 엄격히 금하신 그런 행위가 성전 안에서 버젓이 자행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이교도들의 우상숭배 의식을 본받은 결과이다. 특히 ‘그곳은 여인이 아세라를 위하여 휘장을 짜는 처소’ 였다고 말한다. 이처럼 우상을 숭배하는 죄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전혀 구별하지 못하는 그들이 과연 언약백성이라 말할 수 있는가? 정말 너무나도 형편없는 모습이다. 도대체 어디까지 추락하고 어디까지 더러워졌는지 가늠할 수 조차 없는 모습이다. 우리가 보기에 개혁 자체가 무의미할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요시야 왕은 단호하게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아가기 시작한다.
8절 이하에 보면, 유다 왕 요시야의 개혁은 참으로 철저하다. 그는 역대 왕들이 한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개혁을 시작한다. 이전의 왕들도 간혹 우상을 제거한 적은 있었으나 곳곳에 있던 산당들은 그대로 두었다. 그래서 열왕기 저자는 왕들이 산당을 제거하지 않아서 백성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했더라는 아쉬운 말로 표현한다. 그러나 요시야 왕은 달랐다. 그는 아무도 손대지 않았던 산당들까지 모두 헐어버렸다. 심지어 통일왕국의 대왕이었던 솔로몬이 세웠던 온갖 산당들까지 다 없에버렸다. 전국의 산당들을 다 제거하였다. 더욱이 9절처럼 산당의 제사장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제단에 올라가지 못하도록 그 지위를 전부 박탈해버렸다. 요시야의 개혁은 여러 방면에서 율법에 비추어 철저하게 이루어졌다.
물론 개혁운동을 일으키기 이전의 그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참담했다. 하나님을 섬기며 우상을 함께 섬기던 그들이었다. 죄가 죄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타락하고 부패한 그들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으며 충격을 받았던 한 사람으로 시작된 개혁운동은 결국 그들의 삶과 신앙 속 깊게 스며들었던 모든 죄악들을 드러내었고, 그것들을 잘라내고 끊어내도록 만들었다. 분명 바닥까지 추락했던 그들이었지만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 모든 부정한 것들, 부패한 것들을 잘라 내었다. 요시아를 중심으로 한 개혁운동을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지 않았겠는가.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안에도 숨겨진 우상들을 말씀에 비추어 모두 찾아내어야 한다. 우리의 삶 깊숙히 스며들은 죄악들을 말씀을 통하여 발견하고 끊어내어야 한다. 물론 우리는 본문의 유대 백성들처럼 눈에 보이는 것들을 우상으로 섬기지는 않는다. 그들처럼 형상을 세워놓고 절을 하거나 그것들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복을 빌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려고 하는 그 무엇이 우리에게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상이다. 지금 내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더 즐거워하고, 더 신뢰하고, 더 누리기를 원하는 무엇이 있는지를 살펴보라. 내 의식 가운데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다른 어떤 것에 집중하는 영역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내 안에 있는 우상이다. 우상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기면서도 그것이 죄인줄 알지 못한 유다 백성의 상태가 바로 나의 모습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그것이 죄와 결탁되어 있는 부분들이 있다면 그것조차 과감하게 잘라내어야 한다.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성전 안에 남창의 집을 두었고, 아세라를 위하여 휘장을 짜는 처소까지도 성전 안에 두었음에도 그것이 죄인줄 알지 못했고,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포장하였다. 이러한 죄악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우리의 삶과 예배 가운데에도 혹 있을지 모른다. 내 정욕과 내 탐심과 내 자랑을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고, 내 부귀영화를 위해 주를 팔아넘기는 가룟유다와 같은 일들이 내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따라서 여러분,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 그 말씀이 우리의 죄를 드러내고, 그 말씀이 우리의 양심을 때리며, 그 말씀이 하나님의 뜻을 우리 마음 가운데 밝히 비춰주실 것이다. 그럴 때에 그 말씀에 순종하여 우리의 삶 가운데 은밀히 숨겨졌던 죄악들을 잘라내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을 통해 우리의 숨겨진 우상들을 발견하게 하고, 그 모든 우상들을 불사르시기를 원한다. 우리의 죄로 얼룩진 신앙들이 다시금 성령의 불로 불태워져서 모든 불순한 것들이 소멸되고, 거룩하고 정결하게 하나님을 섬기기를 주님 바라고 계신다.
그러므로 여러분, 십자가의 복음 앞에서 나의 죄성이 드러나고, 우리의 숨겨진 은밀한 모든 죄악들이 낱낱이 드러나서, 성령께서 우리의 양심을 치셔서 그 모든 죄악들을 회개하게 하시고, 그 모든 은밀한 죄들까지도 찍어내고 불사르셔서 거룩하고 정결함으로 주를 섬기는 이 자리의 모든 성도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기도하자.
주여, 우리에게 말씀을 들려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모든 죄를 드러내어 주시고, 그 죄를 회개하고 애통해 하게 하심으로, 날마다 정결한 주의 신부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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