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11)

요한복음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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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은 복잡한 영화나 어려운 영화는 싫어한다. 단순하게 만들어서 쉽고 재미있는 영화를 선호한다. 그런데 환타지 소설을 영화로 만든 반지의 제왕이나 트와일라잇을 보면 큰 줄기와 같은 이야기가 있지만, 한꼭지 한꼭지에 나오는 에피소드들이 결국에는 서로 이어지면서 하나의 이야기로 뭉쳐지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최근에는 비밀의 숲이라는 드라마에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작은 에피소드가 결국에는 서로 연결되고, 스토리를 풍성하게 하는 내용으로 연결되는데, 비밀의 숲 작가님께 갈채를 드렸다(이수연작가는 미리 계획이 있었구나). 설교를 이렇게 하면... 어렵겠죠.
요한복음이 이런 성경이다. 요한복음은 어떤 상징이나 하나의 스토리가 나오면, 그것만 생각하면 안 된다. 에피소드나 나오는 상징되는 단어가 서로서로 간섭받는다. 겉으로 보면 중심을 이루고 있는 7가지 표적이 나온다. 그런데 이 표적도 다음 표적과 함께 생각해야 한다. 어느 하나만 생각하면 길을 잃어버린다. 그러니까 단순하게 보이는 요한복음은 숲, 그러니까 전체를 보고, 나무를 봐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어디를 향하는가하면 예수님의 십자가부활로 퍼즐이 모아진다.
요한복음은 그 마지막에 기록목적을 밝힌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그것을 믿게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면에서 그 믿음을 위해 행하신 첫 표적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사건이었다. 그런데 그 장소가 ‘가나’였다. 그리고 마지막장인 21장을 보면 나다나엘의 고향이 ‘가나’라고 밝히면서 이어진다. 오늘 나오는 물도 4장으로 가면 수가성 여인과 물에 대한 사건이 나오면서 생수의 강 이야기를 하신다. 결국 물은 로마 군인이 창으로 찌른 옆구리에서 물과 피가 흐르면서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물’이라는 퍼즐이 완성된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첫 표적은 물로 포도주를 만든 것이었다. 여담인데, 목사님이 처음 하나님께 콜링을 받을 때, 들었던 설교 본문이 오늘 본문이었다. 앞에서 목사님이 설교하시는데, ‘어떻게 물이 포도주가 될 수 있어?’라고 목사님이 구라를 푸시네하면서 속으로 반박했는데, 그때부터 하나님께 코가껴서 지금 여기에 서 있다. 바라기는 오늘도 성령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찾아오시기를 소원한다.
가나 혼인잔치
1-2절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예수님이 가능케 하신 이런 종류의 변화는 가리키는 바가 있다. 먼저 사건 자체를 보자.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었다. 당시 결혼식은 며칠간 지속되는 잔치였다. 1절이 말하듯 그 결혼식에 예수님의 어머니가 먼저 가서 수고하고 계셨던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예수님과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는다(2절). 이야기는 이제 참여한 인물 소개에서 포도주가 떨어진 상황 전개로 이어진다.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아마 예수님이 도착한 시점이 결혼식 막바지에 도달할 때였음을 암시한다.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께 상황 보고를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하신 것으로 보아 마리아는 어떤 식으로든지 예수님이 이 문제를 해결하실 것이라 기대한 것처럼 보인다.
3절에도 보면,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그러나 예수님은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대답하신다. 이 대답은 예수님은 자신이 이 상황에 깊이 관여하시기를 원치 않으셨던 것처럼 보인다. 그 이유는 “내 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하신 것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예수님이 아직 메시아로서 공적인 사역을 시작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공관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의 공적인 사역은 세례 후 갈릴리에 오셔서 시작하셨는데 그때는 세례요한이 옥에 잡힌 후였다(막 1:14). 요한복음에 따르면 2장은 아직 요한이 옥에 잡히지 않는 상황이었다. 3:24를 보면,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그런데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라는 말을 들은 마리아는 뜻밖의 행동을 한다. 종들에게 예수님의 지시를 기다리라고 준비시킨 것이다. (농담인데, 항상 엄마들은 자녀들의 뜻을 듣고 아시면서도 뭔가 모른척하며 진행하는 습관이 있는 모양이다)
5절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예수님으로부터 그런 답변을 들은 자의 바른 반응은 (적어도 우리의 신앙에서는) 때가 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데 마리아는 예수님에게 ‘내 때가 되었습니다’라는 말을 들은 사람처럼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선 것이다. 마리아의 태도를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
먼저, 현실적으로 이해한다면 마리아는 예수님이 이 어려움을 어쨌든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라 기대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보다 나은 해석은 종말론적인 해석이다. 요한복음의 종말론은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미래와 현재는 엄격히 구분되지 않고 중첩-둘 이상이 겹쳐지는 것-된다. 그러니까 요한복음은 마리아를 통해 미래의 때(카이로스)는 자연적 시간(크로노스)의 흐름에 따라 기다리다 보면 오는 기계적인 시간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고 또 준비된 사람에게는 현재로 침투해 들어오는 것임을 보여준다. 물론 그렇게 시작된 때가 온전한 성취의 때라고 기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렇게 준비된 자들에게는 온전한 미래를 미리 맛보여주는 표적이 되는 것이다.
2절에 나오는 ‘때’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하나님의 공적 시간을 지키셨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의 공적 사역이 시작된 것이다. 어디에서? 바로 혼인잔치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이 사건은 단순한 기적이나 삶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생명의 사건이다. 죽어 있었던 영혼에게 새로운 생명이 주어지는 사건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려는 생명은 단순한 천국과 지옥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죄를 짓고 안 짓고의 문제도 아니다. 여러분, 믿음을 지옥에 가지 않는 보험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이것은 하나님과 연합되는 우주적 사건이다. 우리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사건이 바로 구원이다.
요15:5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것을 주시기 위해서 첫 번째 표적을 보여주신 것이다.
요2:12절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요한복음에서 영광은 십자가를 말한다. 그리고 그 영광으로 인하여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생겨나게 되었다.
2. 유대인의 결레 항아리
6절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마리아에 의해 상황이 준비된 것을 보시자 예수님은 하인들을 부른다. 그곳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측량)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있었다. 유대인의 정결 예식은 그 당시 약속의 땅에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바벨론 포로기가 끝나지 않았다고 여겼다. 그래서 죄를 씻고, 세상과 구별 짓기 위함으로 집으로 들어갈 때 손을 씻었다. 그것을 위해 둔 돌항아리가 당시 한 통은 약 34리터였다. 두 세통이라는 말은 68-92리터 정도의 물이 들어가는 항아리라는 말이다. 그런 항아리가 여섯 개가 놓여 있었다.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그 항아리에 물을 갖다 채우라고 명하신다. 하인들이 그 지시에 따라 물을 채우자 예수님은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주라 한다. 아마 잔치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에게 포도주가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리고 이 책임자는 하인이 가져온 포도주 맛보고 신랑을 불러 말을 한다. 포도주 마련은 신랑의 책임이었고, 그는 신랑이 포도주를 뒤늦게 마련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포도주를 마련한 사람은 그 신랑이 아니라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신랑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연회장은 말한다.
10절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연회장의 요지는 맛있는 ‘포도주가 이제야 나왔다’는 말이다. 처음에 나와야 하는 맛있는 포도주가 이제 나왔다는 것은 예수님이 만드신 포도주가 이제까지의 포도주보다 더 맛있다는 뜻을 함의한다.
예수님은 지금까지의 포도주보다 더 맛있는 포도주를 만들었다. ‘처음보다 나중의 것이 더 맛있다. 처음보다 나중이 더 낫다.’ 이런 함축이 담겨있다. 그런데 이것은 첫 표적이기에 ‘첫 표적은 그것보다 더 탁월한 것이 뒤에 온다는 것을 알리는 사인이다!’는 것이다. 그러면 첫 표적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가? 그것을 알아야 표적이 지시하고 장차 다가오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
여러분, 구원이 가져다주는 것은 기쁨이다. 물처럼 밍밍한 맛이 아니다. 포도주처럼 기쁨을 주는 맛이었다. 예수님이 가져다 주시는 구원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이제는 물과 같은 어두운 시대가 끝나고 구원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런데 그 구원은 뒤에 오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는 늘 새롭다. 그리고 그 은혜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가 다르다. 이전에 내가 알던 은혜와는 다르게 성숙해진다. 그런 성숙함속에 십자가의 삶이 드러난다. 이것이 복음의 특징이다. 믿음이 깊어진다는 것은 십자가의 영광이 드러나는 일이다. 그러면서 기쁨이 만들어진다.
십자가는 만드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생명이 자라면, 내 안에 있는 복음이 빛을 발하면 십자가는 내가 드러내고 싶지 않아도 드러나는 것이다. 마치 어두운 곳에서 촛불만 켜도 어두움이 빛을 막을 수 없듯이 십자가는 드러나는 것이다. 이것을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가나 혼인 잔치였다. 저는 여러분이 이런 기쁨의 사람들이 되기를 축복한다.
목사님이 회를 좋아하는데, 최애 음식이 회, 케이크, 삼겹살이다. 생일 파티할 때 목사님이 케이크 먹지 않고 여러분에게 양보하는 건 정말 여러분을 향한 목사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다. 얼마나 먹고 싶은데 양보하는 것이다. 목사님은 먹을때는 모두가 적이다. 그런데 여러분에게 양보하는 것이다.
그런데 회를 먹으러가면 앞에 찌개다시라 불리는 음식들이 나온다. 특히 홍개가 나온다고 기뻐하면 안 된다. 홍개에 입맛을 빼앗겨 버리면 회를 많이 못먹는다. 그런데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갈수록 더 나은 은혜를 경험하게 하신다.
3. 변화된 물
7-8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정결예식을 위한 물을 마시는 물로 변화시켰다. 이것은 외부에서 묻은 부정을 물로 씻어내는 식으로 부정을 정결케 하는 시대는 가고, 씻어내는 물을 마시는 물로 바꾸신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의 존재 자체를 속에서부터 새롭게 하는 사건이 예수님에 의해 일어날 것에 대한 상징하는 것이다.
여러분 사람은 속사람이 변화 되어야 한다. 겉모습은 날이 갈수록 죽어간다. 목사님이 요즘 인스타를 배우고 있는데, 거기는 완전 파라다이스를 보여주더라. 사람들이 보이는 것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그런 외부는 우리 속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예수님의 복음은 우리 속사람을 씻어 주시고, 우리 속사람을 변화 시키시는 능력인 것이다.
항아리 여섯 개에 가득 찬 포도주 양은 낭비처럼 보인다. 이 낭비 이야기는 뒤로 가면서 또하게 될 것이다. 복음은 낭비하는 것이다.
한 항아리가 두 세통 곧 68-92리터이니 총 6개 항아리를 가득 채운 포도주는 대략 500리터 정도 된다. 1리터 콜라 500개 정도이다. 잔치 막바지에 이런 포도주 양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표적의 요지는 처음보다 나중이 더 풍성하다는 것이다.
현 잔치가 혼인잔치라는 것과 예수님이 신랑의 역할(포도주 준비)을 하시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첫 표적은 예수님이 신랑이 되어 베풀 혼인 잔치는 그 어떤 혼인 잔치보다 더 나은 잔치가 되리라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의 혼인 잔치는 어떤 점에서 더 나은 혼인 잔치일까? 혼인 잔치는 새로운 시작과 새 생명의 출생을 예고하는 잔치이다. 따라서 첫 표적에서 예수님의 표적 행위는 앞으로 그가 지금까지의 것보다 훨씬 나은 혼인 잔치를 베풀어야 할 만큼 전혀 다른 종류의 새 출발을 허락하신 것이다.
그것은 성령의 찾아오심과 생명의 탄생을 예고하는 사건을 일으키실 것을 말한다. 이런 점에서 첫 표적은 사망이 사라진 새로운 종류의 생명을 입고 다시 태어날 예수님의 부활을 가리킨다.
<결론>
예수님의 물은 부정을 씻어내고 사람을 새롭게 만드셨다. 그리고 그 물은 처음보다 더 나은 것이었다.
4:14절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우리 자체가 강이 된다. 우리 안에서 계속해서 생명의 물이 흘러나온다. 이것이 십자가를 경험한 자들의 축복이다.
찬양 : 내게 일어난 모든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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