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04 제자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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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마 7:15-29
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 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29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사역
15 너희는 조심하라(명령)! 거짓선지자들을, 너희를 향하여 나아오는 모든, 양의 외투를 입고, 속에는 그러나 탈취하는 이리이다.
16 그들의 열매로부터, 너희는 알게 될 것이다, 가시나무로부터 포도를 모으지 않는다, 또는 엉겅퀴로부터 무화과를 모으지 않는다.
17 이와 같이 모든 좋은(아가소스, 선한, 착한,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칼로스, 좋은, 아름다운, 착한) 열매를 만든다. 그러나 못된(사프로스, 썩은, 무가치한, 못된) 나무는 포네로스(악한, 나쁜) 열매를 만든다.
*착한 열매와 악한 열매가 대조된다.
*열매를 보고 깨닫게 된다.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만들 수 없다.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당연한 상식으로 끌어오신다.
19 모든 나무, 좋은 열매를 만들지 않는, 그극 에크콥토(잘라내다, 찍어내다 / 수동태)된다. 그리고 불에 던져진다(발로 / 수동태).
20 그렇다면, 하물며, 그들의 열매로, 너희는 그들을 알게 될 것이다.
21 모든 사람, 나에게 주여 주여 라고 말하는, 그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도리어 하늘의 내 아버지의 뜻(쎌레마, 의지)대로 행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은 하늘에 계신 예수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들어갈 것이다.
22 많은 무리가 나에게 말할 것이다(미래), 그날에. 주여 주여 당신의 이름으로 내가 예언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가 몰아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이름으로 많은 능력을 내가 행하였습니다.
*예언, 축귀, 기적
*많은 무리가 그 날에 예수님께 질문하게 될 것이다.
23 그리고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호몰로게오(시인하다, 고백하다, 증언하다, 미래)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한다. 너희는 나로부터 떠나가라(명령)!, 불법적 행동(아노미아)을 행하는
*예수님은 그들을 알지 못한다고 고백하실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들을 자신으로부터 떠나라고 명령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불법적 행동을 행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24 모든 사람마다 그러므로, 나의 이 말씀을 듣고, 또한 행하는, 그는 지혜로운 사람과 같이 되어질 것이다(미래 수동태). 그 집을 그 반석(페트라) 위에 지은,
*예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은,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이 되어질 것이다.
25 그리고 폭우가 내리고 탁류가 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닥치게 되면(프로스핍토), 그는 무너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 반석 위에 세워졌기(수동태) 때문이다.
*그는 반석 위에 세워진 집이다.
*그 집은 재난이 찾아와도 무너지지 않는 집이다.
26 그리고 모든 자는, 나의 이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그는 어리석은 사람과 같이 되어질 것이다(미래 수동태). 그 집을 그 모래 위에 세운,
27 그래서 폭우가 내리고 탁류가 오고, 바람이 불고, 그것들이 그 집을 프로스코프토(때리다, 공격하다)하면, 그것이 무너지고, 그리고 그 무너짐이 어마어마할 것이다(미완료).
*25절에 ‘프로스핍토’와 비슷하지만 다른 단어 ‘프로스코프토’가 사용되었다.
*모래 위에 지어진 집은 재난이 왔을 때, 그 무너짐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될 것이다.
28 그리고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실 때에, 그 무리가 경악하였다, 그의 디다케(가르치심, 교훈)에게,
*무리의 반응은 경악이었다. 긍정적인 것인가? 예수의 권위 있는 말씀 때문인가?
29 왜냐하면 그 가르치시는 것이, 엑수시아(권한, 권리)를 가진 사람같고, 그들의 그람마튜스(서기관, 선비)와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가르치시는 행위가 권리를 가진 사람과 같았기 때문이다.
구조
15-20 나무 비유
21-23 거짓 선지자의 반응
24-27 건축가 비유
28-29 사람들의 반응
주석
예수님은 설득력 있는 설교가 끝날 무렵에 청중들에게 세 가지 큰 대조, 즉 우리가 결정을 내릴 필요가 있음을 보여주는 수사적 전략을 제시함으로써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1) 2개의 문 - 좁은 길과 넓은 길 (13-14절)
(2) 2개의 나무 - 참된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 (15-23절)
(3) 2개의 기초 -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 (24-27절)
15절
예수님은 먼저 ‘거짓 선지자들’에 대해 경고하신다.
거짓 선지자들은 기독교 제자도의 좁은 길과 대조되는 더 쉬운 대안을 제안한 것 같다.
5-6장을 참고할 때, 거짓 선지자는, 서기관과 바리새인, 외식하는 위선자들(5:20; 6:1-18)을 가리키는 것 같다.
양의 옷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이며 올바른 지도자들인 것처럼 가장한다는 뜻이다.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는 것은 그들이 실제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해친다는 뜻이다.
16-18절
그렇다면 위장된 그들을 구분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그들의 교리적인 검증이 아니라, ‘윤리적인 검증’을 설명하고 있다. -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고백은 반드시 행함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이 이미지는 이사야 5:1-7, 에서 등장하는 하나님의 포도원의 나쁜 열매로부터 기원한 것 같다. 같은 이미지가 12:33에서 ‘바리새인’들에게 적용된다.
‘그 사람이 진정으로 누구인가’ 하는 것은 그가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서 필연적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다.
a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16절)
a’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20절)
b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23절)
19-20절
여기서 예수님은 과거 세례 요한이 공격했던 바로 그 ‘피상적인 회개’에 대한 공격을 강화시키고 있다.
마태복음은 순전히 이름뿐인 제자도의 위험성을 빈번하게 강조하고 있고, 심지어는 내용이 없는 고백을 통해서 마지막에 거부당할 제자들이 있음을 분명한 어조로 경고하고 있다.
21절
예수님은 이제 ‘거짓 제자들’에 대해서 경고하신다.
거짓 선지자들은 공동체 외부에서 활동하던 자들이고, 거짓 제자들은 공동체 내부에서 활동하던 자들이다.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기준점은, 16-18절 이하가 보여주는 것처럼 실제적인 순종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지, 급박한 순간에 주님이신 예수님에게 탄원을 하는 것이 아니다.
22절
제자도에 대한 고백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기적적인 활동도 진정한 제자임을 입증하기에는 불충분하다.
‘은사주의적’ 활동들은 예수님에 대한 순종과 그와의 인격적인 관계를 결코 대치할 수 없다.
23절
예수님은 자신을 ‘그 날에 심판자’로서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예수님의 독자들은 그 자리에 ‘하나님’이 언급될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더욱이 심판의 준거는 그들이 ‘예수님과 더불어 가지는 관계’이다.
마태복음 25:12 (NKRV)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는 표현은 시편 6:8로부터의 인용이다.
이 말은 경건하지만 고난받는 자가 그를 핍박하는 자들에게 내뱉는 말이다.
24-27절
집을 짓는 두 사람에 관한 비유 (건축 은유)
이 비유는 산상수훈을 들은 청중들의 반응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두 사람 모두 ‘나의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을 나타낸다.
차이점은 그것들을 행했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달려 있다.
비, 창수, 바람 이미지는 시험, 고통, 시련, 핍박 등을 의미하며 나아가서 최후의 심판을 의미한다.
창수와 바람을 견뎌낼 수 있는 제자들의 능력은 전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실제적인 반응에 달려 있다.
가짜 제자도 혹은 피상적인 제자도의 결과는 전적인 붕괴와 파괴이다.
이 비유는 무너짐이 ‘심하다’라는 표현으로 종결된다.
결국 산상설교는 ‘말씀에 대한 순종’을 강조한다. 예수님의 설교는 ‘듣고 지식을 채우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듣고 행하라’고 주어진 것이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은 어려움이 와도 잘 견딜 것이다. 그러나 듣기는 해도 행하지 않는 사람은 어려움이 왔을 때 금방 무너질 것이다.
28-29절
먼저 마태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대중적인 반응에 주목한다.
‘놀라니’에 해당하는 단어 엑세플레손토는 시제가 미완료 형태이다. 이것은 그들이 꽤 오랫동안 놀랐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놀람이 반드시 믿음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놀란 이유는 예수님의 가르침의 내용 때문이었다기보다는 그의 권위 때문이었다.
서기관들이 권위 있는 자들을 조심스럽게 인용하는 것과 대조되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직접적으로 인지하는 자신의 독립적인 권위에 근거해서 율법을 해석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반응이 최후 심판의 기준점이 되는 이유이다.
예수는 서기관과 같은 율법선생 그 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