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을 감당하는 참된 자세
Notes
Transcript
서론
새벽기도에 오신 성도님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떤 방식으로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1- 사명을 감당할 때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주신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사명을 감당할 때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놉으로 갔습니다. 거기에 제사장 아히멜렉이 있었습니다. 아히멜렉은 두려워하며 다윗이 왜 왔는지 물어봤습니다. 1절 하반절에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함께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라고 이야기합니다. 아히멜렉은 아마 사울과 다윗의 관계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미워하고 그래서 다윗이 도망을 치는데 이 도주과정에서 아히멜렉이 다윗을 도왔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반역에 가담한 죄로 목숨을 잃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히멜렉은 조심스럽습니다. 다윗에게 혼자 왔냐고 질문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사울의 명을 받고 하는 공식적인 활동이면 궁정에 일하는 사람과 같이 와야 하는데 다윗이 대동한 것은 그저 소년들입니다. 다윗과 뜻을 함께 하기로 한 다윗의 사람들입니다.
다윗은 아히멜렉을 보호하고 안심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합니다. 2절에 보면 사울의 비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왔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렇게 해놓으면 나중에 아히멜렉이 사울에게 다윗을 목격했다는 것을 털어놓더라도 다윗이 이렇게 속여서 어쩔 수 없이 속아 넘어갔다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3절에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먹을 것을 요구합니다. 보시면 떡 다섯 덩이를 요구하는데 다섯이라는 히브리어야 약간의 라는 뜻도 됩니다. 그래서 이 숫자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 분석할 필욘 없습니다. 그냥 다윗은 자신과 그를 따르는 소년을 먹일 약간의 떡이 필요했습니다. 4절에 아히멜렉은 일반적인 떡은 없지만 성막에 바치는 떡이 있다고 합니다. 율법에 따르면 이 떡은 제사장만 먹을 수 있지만 아히멜렉은 이 규정을 넓게 적용해서 만약에 거룩함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라면 다윗과 그의 수하들도 먹을 수 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제사장이 다윗에게 여자만 가까이 하지 않았으면 준다고 했고 다윗이 5절에 그릇이 성결하다는 말을 하는데 여기 나오는 그릇은 육신을 의미합니다. 그릇이 성결하다는 것은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은 상태를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6절에 제사장이 다윗에게 떡을 줍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니는 생활을 할 때 환대를 받고 먹을 것을 제공받는 일은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누군가가 다윗을 대접하면 다윗을 도와서 반역을 도모한 사람으로 취급받아 목숨이 위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성막에서 환대 받게 하셨고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셨습니다.
놀랍게도 이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때 바리새인들에게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2장을 보시면 안식일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서 먹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판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오늘 읽은 사무엘상 21장의 말씀을 인용하시며 바리새인들의 비판을 반박하십니다. 마태복음 12장 3절, 4절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우시이 자기와 그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어서는 안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의 사역을 할 때 안식일에 밀 이삭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비록 바리새인들은 그것이 규정에 어긋난 것이라 비난하셨지만 안식일의 주인인 예수님께서는 사명을 감당하는 제자들이 그것을 먹도록 해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메시아의 계보를 세울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윗은 어려운 상황입니다. 사울에게 쫓기고 있고, 오늘 본문에서는 쫓기는 중에 먹을 것을 구하기 힘든 상황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다윗에게 성막에 있는 진설병을 내려주십니다. 원래 제사장만 먹을 수 있지만 식량이 없어 곤란에 처한 다윗에게 이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적용) 우리가 삶에서 교회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갈 때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억울함이 있습니다. 남모르게 겪는 고난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몰아세우시나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적당한 때에 필요한 것을 반드시 채워주십니다. 우리가 낙심하고 실망한 상태로 주저 앉지 않도록 그래서 우리가 다시 한 번 사명을 감당하고자 일어설 수 있도록 채워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그것이 사람일 수도 있고 물질일 수도 있습니다. 그 외에 우리가 필요한 어떤 환경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사명을 감당하고자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잊지 않으시고 반드시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이 필요를 채워주시는 일은 단순히 결핍만 해결하는데서 그 용도가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필요를 채워주시는 것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경험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윗이 떡을 얻었을 때의 사건을 말씀하시면서 이런 결론을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2장 7절입니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그러니까 떡이라는 것을 공급하시면서 궁극적으로 보여주시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자비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필요를 채워주시면서 사명 때문에 고난 감당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자비를 보여주십니다. 우리는 필요를 공급받을 때 딱 필요를 채워주시는 것 그 자체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호의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감당하는 사명의 의미를 찾아내고 알아내면서 지치고 힘들고 우울할 때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자비를 경험하며 그것에 위로받으며 일어나게 됩니다.
2- 사명을 감당할 때 세상의 것을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설명) 그다음으로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교훈은 사명을 감당할 때 세상의 것을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8절에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창이나 칼이 있는지 물어봅니다. 자기가 급하게 오느라 무기를 챙기지 못했다고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이건 굉장히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 앞에 제사드리는 제사장이 무기를 쓸 일이 뭐가 있어서 칼이나 창이 있겠습니까? 게다가 다윗은 아히멜렉에게 분명 왕의 비밀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왕의 작전을 수행하면서 자기 무기도 챙기지 않았다고 하는 게 어색합니다.
이렇게 말하자 아히멜렉은 다윗에게 죽은 골리앗이 쓰던 칼을 가지고 가라고 이야기 합니다. 다윗은 그 이야기를 듣고 그 만한 것이 없다고 하며 그것을 냉큼 챙깁니다. 지난 번 골리앗에 대해 설교했을 때 말씀드린 것처럼 골리앗은 세상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따르지 말고 대항해야 할 세상입니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모욕하는 불신앙적인 세상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지금 세상을 상징하는 골리앗의 칼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아마 다윗은 이 놉에 있는 성막에 골리앗의 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안 그러면 제사장에게 칼이 있냐고 물어보는 질문이 말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의도적으로 세상의 것을 취했습니다. 아마 일부러 이 골리앗의 칼 때문에 놉으로 왔을 것입니다. 다윗은 이 것으로 무엇을 하려고 했겠습니까? 10절부터 보시면 다윗이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망명을 시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블레셋 땅은 사울이 두려워하는 땅이고 블레셋에 있으면 사울이 다윗을 잡기위해 함부로 올 수 없었다고 계산을 한 것 같습니다. 좀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만약에 어떤 범죄자가 우리나라에서 절대 용서 받을 수 없는 죄를 짓고 나서 북한으로 건너가 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것보다는 훨씬 체포해서 처벌하기가 힘들 것입니다. 어쨌든 다윗은 10절에 가드로 망명을 하는데 아마 이 가드 사람 골리앗이 쓰던 칼을 들고 가서 이것을 바치면 가드에서 다윗을 잘 받아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이 골리앗의 칼이 에봇 뒤에 있다는 것이 상징적입니다. 에봇은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기 위해 사용하지 않습니까? 에봇은 제사장의 옷인데 이 에봇 안에는 우림과 둠밈이라는 주사위가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께 하나님의 뜻을 여쭤볼 수 있습니다. 다윗이 에봇 뒤에서 골리앗의 칼을 꺼냈다고 하는 것은 다윗의 관심이 하나님의 뜻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골리앗의 칼을 잘 사용해서 망명을 성공적으로 하는 것에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떡을 주신 것처럼 다윗이 사명 감당하는 자리에 머물고자 하면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호해주시고 책임져주실텐데 다윗은 하나님의 자비를 의지하는 것보단 세상의 것을 의지하고 세상을 만족시켜서 세상으로부터 편안함과 안전을 보장받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심지어 다윗은 이 골리앗의 칼이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 얼마나 의미 없고 무능한 것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다윗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갔을 때 골리앗의 칼은 다윗의 털끝 하나 건들지 못하고 오히려 그 주인의 목을 베는 데에 쓰임받습니다. 세상적인 힘을 의지해봤자 세상이 힘을 실어주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고통을 준다는 것을 다윗이 직접 경험을 했는데 그 골리앗의 칼을 붙들고 골리앗의 나라로 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정치적인 관점에서 아주 훌륭한 지략입니다. 다윗의 머리가 아주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골리앗을 죽인 무장이 골리앗의 칼을 가지고 항복해서 돌아오는데 좋아하지 않겠습니까? 다윗이 가면 가드 왕 입장에서는 그게 백성들 앞에서는 아주 좋은 프로파간다가 될 수 있습니다. 자기 백성한테 “자 봐라 골리앗을 죽인 다윗이 그 칼을 가지고 우리나라에 투항했다.”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언약궤가 이스라엘로 돌아온 것 같은 그런 이벤트가 될 수 있습니다. 블레셋 입장에선 괜찮은 조건입니다. 다윗의 계산은 세상적인 관점에서 아주 훌륭한 계산입니다. 블레셋 입장에서는 아주 좋은 망명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세상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욕하고 불신하는 블레셋의 힘을 빌리고 의지해서 세우는 하나님의 나라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온전히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그분의 나라를 세우고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시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다윗에게 줄 수 없는 떡을 주셨습니다.
(예화) 다윗에게 골리앗의 칼이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이런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를 유혹하는 골리앗의 칼은 무엇입니까? 이렇게 하는 것이 그 수단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닌데 그래도 딱 한 번만 세상의 것을 의지하고 세상의 힘을 빌리면 뭔가 될 것 같은 것이 있습니까? 지금 너무 힘드니까 이번 딱 한 번만 골리앗의 칼을 잡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습니까? 이번에는 너무 힘드니까 이번에만 잠시 피해있으면 좋은 것 같은 블레셋 땅이 있지 않습니까?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할 수 있으니까 하나님이 용서해주시겠지 하고 타협하고 싶은 지점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골리앗의 칼이고 블레셋 땅입니다. 골리앗의 칼은 잡고 있으면 처음엔 든든하지만 나중엔 나의 목을 겨눕니다. 블레셋 땅에 잠시 피해 있으면 좋을 것 같지만 오히려 가장 위험한 땅이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으로 믿음의 힘으로 사명을 감당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세워지는 것이지 골리앗의 칼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골리앗의 칼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앞에 있는 에봇을 바라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라 봐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알려주신 것처럼 하늘의 뜻이 땅에 이뤄지길 기도해야 합니다. 세상의 것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만이 충만할 때 하나님이 더 빨리 강하게 일하십니다.
결론
설교를 맺겠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사명을 감당하는 자에게 필요를 채워주시며 자비를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세상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골리앗의 칼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이 교훈을 기억하며 사명 잘 감당하는 저와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