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되게 두려워 할 것

사무엘상 강해 시리즈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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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새벽기도에 오신 성도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은 성도가 두려움을 느낄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1- 두려움을 피하면 다른 두려움이 찾아온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두려움을 피하면 다른 두려움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10절에 보시면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해서 가드 왕 아기스에게 간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윗은 사울이 두려워서 세상으로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하나님을 불신하는 세상으로 들어갔습니다. 골리앗의 칼을 갖고 그곳에 들어가면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들어갔습니다. 사울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아기스에게로 갔을 때 아기스의 신하들이 다윗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11절에 보시면 “아기스의 신하들이 이는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 무리가 춤추며 이 사람의 일을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지 아니하였나이까”라고 되어 있습니다. 12절에 보시면 다윗이 이 말을 그의 마음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했다고 이야기 합니다. 우선 천천이요 만만이요 하는 이 여인들의 찬양은 다윗이 죽인 자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고 다윗이 많이 죽였다고 하는 사람은 대부분 블레셋 사람입니다. 아기스의 신하들은 이 노래를 인용해서 다윗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블레셋 사람을 죽였는지 이야기 합니다. 골리앗의 칼을 들고 망명을 시도하면 잘 될 줄 알았는데, 사울을 피해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다윗의 계산은 틀렸습니다. 다윗이 그동안 블레셋 사람을 많이 죽였기 때문에 다윗을 반기는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다윗을 이 자리에서 죽이고 블레셋 백성들 앞에서 우리 대적 다윗을 죽였다고 하며 다윗을 권력을 다지기 위한 희생양으로도 쓸 수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또 주목해야 할 점은 11절에 아기스의 신하들이 다윗을 사울의 군대장관으로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다윗을 그 땅의 왕으로 소개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영향력이 너무 크니까 다윗이 왕인줄로 착각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기스의 신하들이 인용한 노랫말에 사울이라는 이름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라는 부분을 정확하게 인용하지 않습니까? 사울은 왕이 되고 나서 블레셋과 계속 대치했습니다. 블레셋이 사울을 모를 리가 없습니다. 원래 국가간에 인접해서 경쟁을 하는 사이면 그 왕을 알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사울을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또 사울이 왕이라는 것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굳이 다윗을 왕이라고 한 것은 다윗을 조롱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입지가 높아져서 사울의 미움을 사고 쫓겨다니는 것을 조롱한 것입니다. 다윗이 왕처럼 행세하다가 이렇게 된 것 아니냐고 놀리는 것입니다. 이말인즉슨 블레셋은 다윗을 사울에게 넘기는 것으로 다윗을 처리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의 반역자를 데리고 있으니 이 반역자의 존재가 외교협상에 있어서 얼마나 좋은 카드가 되겠습니까? 지금 사울의 정신상태라면 이스라엘이 침공해서 얻은 블레셋의 땅 얼마를 내어주고 다윗의 신병을 건네 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기스의 신하가 만만을 죽였다고 했을 때, 다윗을 왕이라고 했을 때 다윗은 너무 두려웠습니다. 블레셋에서 안전을 보장받기는커녕 블레셋 최대의 원수로 취급받고, 혹은 인질로 소모될 수도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이 돼서야 다윗은 아기스를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은 사울이라는 두려움을 피해서 세상으로 도망 왔지만 또 다른 두려움인 아기스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두려움을 피하면 또 다른 두려움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적용) 우리가 두려움의 실체를 알고 잘 대처하지 못하면 다른 두려움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두려움에 대해서 믿음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그 두려움을 피해버리면 또 다른 두려움이 우리를 괴롭니다. 그 두려움도 우리 방식대로 눈 감아버리고 피하면 역시 다른 두려움이 와서 우리를 괴롭힙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에 있어도 사울이 두렵고 블레셋에 와도 아기스가 두려운 것처럼 우리가 믿음으로 대처하지 못하면 두려움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의 영혼을 잠식합니다.
돈이 없는 것이 두려워서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돈을 많이 법니다. 그 이후에는 이 돈을 어떻게 하면 지킬까 고민하며 이 돈을 다 쓴 이후를 두려워하게 되어서 그 삶이 돈을 위한 삶이 되어 피폐해질 것입니다. 자녀가 조금만 뒤처지거나 잘되지 못하면 자녀 때문에 나의 명예가 깎일 것 같아서 자녀를 자꾸 몰아세웁니다. 나중에 자녀가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좋은 혼처를 찾아 결혼하면 거기서 만족하겠습니까? 만족하는 것 같지만 혹시 자녀가 승진이 누락되지 않을지 손주를 낳지 못하면 어떻할까 하고 계속 고민하고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자녀가 잘되지 못하면 어떨까 두려워하는 순간 매고비마다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취업문을 통과할 때 결혼을 할 때 임신을 기다릴 때마다 계속 두렵습니다. 우리 삶에 있어서 이 두려움을 피하면 더 이상 다른 두려움이 몰려오지 않을 것 같지만 믿음으로 두려움을 해결하지 않으면 또 다른 두려움이 와서 괴롭히게 됩니다.
(전환문장) 그러면 믿음으로 두려움을 해결하는 것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2- 참된 두려움을 찾아서 회개해야 한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교훈은 참된 두려움을 찾아서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두려움을 해결하는 방법이란 참되게 두려워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입니다. 참되게 두려워해야 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거짓된 두려움에 휘둘리게 됩니다. 다윗이 아기스의 신하들의 이야기를 듣고나서 아기스를 두려워하게 됩니다. 아마 이때 다윗은 아기스에 대한 두려움을 느낌과 동시에 자신의 입장과 처지를 깨달은 것 같습니다. 자신의 안전을 위해 세상을 선택했기 때문에 사울과는 또 다른 두려움인 아기스라는 두려움이 자신을 붙들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13절에 보시면 그들 앞에서 그의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렸다고 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이렇게 미친척을 한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은 단순히 아기스의 눈을 속여서 블레셋을 빠져나오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13절에 행동을 변하여 미친척을 했다고 했을 때 행동이 변했다는 말은 판단을 바꾸다 혹은 생각을 바꾸다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아기스에 대한 두려움을 느낌과 동시에 이렇게 해서는 계속 또 다른 두려움에 시달린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윗의 행동은 더 이상 블레셋에 속하지 않기위해 하는 행동입니다. 다윗이 이런 행동을 한 근저에는 세상을 의지한 것에 대해 회개하는 마음이 들어있습니다. 생각을 바꾸고 판단을 바꾸었습니다. 참되게 두려워해야 할 분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회개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건 단순히 생각과 판단을 바꾸는데서 끝난 다짐이 아닙니다. 아기스 왕 앞에서 미친체를 해서 아기스가 다윗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다윗이 아기스에게 있어서 별 무가치한 존재로 받아들여지게끔 여기도록 한 것입니다.
혹시 시편을 읽으시다가 다윗이 미친체 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 이런 표제를 읽으신 적이 있습니까? 시편의 한 절반을 다윗이 썼습니다. 시편은 하나님의 백성의 기쁨이나 감사 고난과 괴로움 혹은 억울함 이런 것들을 기도와 찬양으로 녹여낸 책인데 다윗이 시편의 절반을 썼다는 것은 다윗이 얼마나 뛰어난 영성가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미친척 하다가 쫓겨났을 때를 회고하며 시를 기록한 것이 있는데 그게 시편 34편과 56편입니다. 시편을 보시면 표제가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서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이런 것들이 붙어 있습니다. 51편에는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그에게 왔을 때” 이런 식으로 시편의 배경을 설명합니다. 이 시편의 표제는 출판사에서 성경 읽을 때 참고하라고 임의로 붙인 것이 아닙니다. 시편 150편이 모이고 다섯 권으로 편집되는 과정에서 붙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표제는 그 해당하는 시편에 대해서 해석할 수 있는 단서를 줍니다. 시편 34편과 56편의 표제를 보면 다윗이 미친체 하다가 쫓겨날 때 이 시를 지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 때 다윗의 심정이 어땠는지 다윗이 이 위기 때에 어떤 믿음의 고백을 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시편 34편 4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모든 두려움에서 건지셨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냥 두려움이 아니라 모든 두려움입니다.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고 아기스를 두려워했습니다. 이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도망갔다가 저 두려움을 만나는 것을 반복하는데 하나님은 이 모든 두려움에서 다윗을 건지셨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었습니까? 시편 34편 3절에서는 여호와의 광대하심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보다 크고 아기스 보다 크십니다. 그래서 사울과 아기스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두려움에 쫓기는 이유는 참되게 두려워해야 할 분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는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은 광대하신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으면 우리를 괴롭히는 모든 두려움에서 구원받게 됩니다. 혹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고통스러운 것이 아닌가하는 질문이 생기기도 합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두려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에는 고통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일에는 기쁨이 가득하고 평강이 가득합니다.
(적용)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합니까? 물질 문제를 두려워합니까? 자녀문제를 두려워합니까? 혹은 세상에서 명예를 잃을까봐 두려워합니까?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는 요소는 수 없이 많을 것입니다. 그 수없이 많은 두려움들이 번갈라가며 우리를 괴롭힐 것입니다. 하지만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참되게 두려워할 분을 두려워할 때 그분은 우리를 모든 두려움에서 건지십니다. 우리에게 참된 기쁨과 평강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0장 28절에 몸은 죽여도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두려움은 기껏해야 육체만을 위협하는 두려움이지만은하나님께서는 육체와 영혼을 다 주관하십니다. 우리의 육체 뿐 아니라 영혼까지도 주관하시는 분을 두려워할 때 우리에게 참된 생명이 있고 평강이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결론
설교를 맺겠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세상에는 우리가 두려워할만한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참되게 두려워할 분만을 두려워할 때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우리를 건져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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