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자에 입맞추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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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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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서 만나는 탕자는 내 인생에 주인이 되고 싶은 우리의 모습입니다. 자기 집의 품꾼 조차도 풍족하게 대우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품보다는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내 마음대로 살고 싶은 우리의 모습이 바로 탕자입니다.
인류 조상 아담과 하와가 최초에 범죄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사탄이 뱀의 모습으로 하와를 속입니다.
창3: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우리는 다 하나님이 되길 원합니다.
내 삶의 주인이 내가 되길 바라고, 나를 다스리는 하나님을 거부하고, 거절하고, 그 품을 싫어하며 떠납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탕자와 같은 자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대접하시는지가 이야기의 초점입니다.
탕자는 살아있는 아버지가 빨리 죽지 않으니, 유산을 빨리 받고 싶어서 “아버지 미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주십시오!” 라고 말합니다. 차라리 아버지가 죽고 재산이나 빨리 받았으면 하는 심정을 노골적으로 토로한 것입니다.
싸가지없이 아버지께 요구하는 아들입니다.
아버지의 생명(bios)과 같은 재산으로 창녀들과 어울려 모든 재산을 허랑방탕하게 써버립니다. 그리고 이제 먹을 것조차 없게 되자, 유대인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돼지에게 가서 그들을 먹이는 비참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도 그에게 누구 하나 다가와서 먹을 것을 챙겨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눅15: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이제야 자기 상태가 얼마나 비참한지 깨닫습니다. 아버지를 떠난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깨닫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제 자신이 하늘과 아버지께 죄인임을 깨닫고, 아버지께로 돌아갑니다. 과연 아버지가 나를 받아줄까, 품꾼으로라도 써 주실까,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를 따지시면 어떻게 하지? “아버지가 죽기를 바라고 생명과 같은 재산을 다 팔아서 떠날 때는 언제 고 무슨 낯짝이 있어서 다시 돌아오냐”, 라고 물으시면 어떡하지?
온갖 생각이 탕자의 마음을 괴롭혔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발걸음을 돌려 아버지가 계신 집으로 향합니다.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그런데 그의 생각과는 완전히 다르게, 또한 우리의 상식과는 전혀 다르게 아버지가 반응하십니다.
배은망덕한 탕자의 귀환에 아버지는 조금도 화내시는 기색이 없이 그를 뜨겁게 맞이하십니다.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그를 먼저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십니다.
탕자가 아버지를 보기 전에 아버지가 먼저 아들을 봅니다. 그리고 그를 보자 속에서 애끓는 사랑이 흘러나옵니다. 우리 아들이 돼지나 치는 거지꼴로 돌아왔는데, 제대로 밥이나 먹었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혹시 나를 보고 미안해서 다시 돌아가지는 않을지, 애끓는 사랑의 마음으로 그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리고 달려가십니다. 유대인 아버지들은 결코 뛰지 않습니다.
마치 우리 조선 시대 양반들이 비가 와도 뛰지 않는 것처럼, 유대인 아버지들은 결코 뛰지 않습니다. 그러함에도 이 아버지는 아들에 대한 애끓는 사랑을 감출 수 없어 달려갑니다. 누가 보던 말던 아랑곳하지 않고 아들을 향한 사랑의 마음으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아들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춥니다.
여기서 입을 맞추다 라고 표현된 헬라어는 κατεφίλησεν (καταφιλέω, I kiss affectionately.)카타 필레오 인데, 이 단어는 카타와 필레오가 합쳐진 말로, 원래 필레오 라는 단어는 사랑하다 또는 입맞춤하다 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필레오(입맞추다)라는 동사 앞에 카타 라는 말이 붙어서 그 의미를 더욱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의미를 살려 번역하자면 진하게 많이 키스하다 라는 뜻이 됩니다.(영어 성경 English Revised Version (ERV) 각주에는 kissed him much로 표현되어 있습니다.)이 단어가 누가복음에 다른 곳에서도 쓰이는데
눅7:37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45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죄를 지은 이 여인이 예수님을 사랑하여 그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않는 모습에 바로 이 단어가 쓰였습니다. 죄사함의 기쁨으로 아무도 씻겨주지 않는 예수님의 발에 (much kiss) 계속적인 입맞춤으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는 이 여인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와 같은 모습으로 탕자를 받아주십니다. 돼지 막사에서 더러워진 모습의 아들을 악수 정도 해주고, 씻고 나서 다시 얘기하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바로 안으시고, 그에게 진하고 사랑스럽게 입맞춤을 보내십니다. 입술로 그가 사랑을 바로 느끼고 누릴 수 있도록 하십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회복과 기쁨을 누리게 하십니다!
아들에게 이보다 더 확실한 아버지의 사랑은 없을 것입니다.
이 더러워진 나를, 아버지의 생명과 같은 재산을 날려버린 나를, 아버지가 차라리 죽어버리고 재산을 차지하기를 바랬던 나를, 받아주시는 아버지의 진한 입맞춤에 떨리는 가슴을 움켜쥐게 됩니다.
여러분, 아버지의 이러한 사랑을 느끼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내 마음을 가득 채워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이 벅차오르는 기쁨을 누리고 계십니까?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후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사랑이 여러분의 마음을 강권하여 이끌고 가고 있음을 느끼고 계십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 마음을 온통 사로잡고, 애워싸서 도저히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그분의 사랑을 경험하고 계십니까?
기도하는데 마음이 너무 뜨거워서 기도의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을 만큼 안타까운 심정을 경험하고 계십니까? 아버지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흠뻑 적셔서, 도저히 내가 맡은 이 아이를, 이 영혼을, 이 동료를 위해 기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지금 간절히 구하십시오! 상한 심령으로, 탕자의 심령으로 주님께 마음을 돌이키십시오! 여러분이 마음을 돌이키는 속도보다 아버지께서 여러분을 이 뜨겁고 진한 입맞춤으로 맞이하시고, 사랑을 느끼게 하시고, 회복을 선포하시고, 기쁨을 주시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사실에 기뻐하십시오!
탕자가 21절에 회개의 고백을 하기도 전에 이미 20절에 아버지께서 그를 안으시고, 입맞춤으로 그의 사랑을 확신하도록 해주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바로 이런 분이십니다.
우리가 그분께 마음을 돌이키길 지금도 간절히 기다리고 계십니다.
언제라도 아들이 돌이키면 그분의 가장 확실하고 풍성한 사랑을 퍼부어주시기 위해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니 제발 그분께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어떠한 과거의 죄도 그분이 감당하지 못할 것은 없습니다. 우리의 냄새나는 더러움도 결코 그분의 입맞춤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의 도장을 우리에게 입맞춤으로 보여주십니다.
이렇게 아버지의 사랑에 녹아진 아들은 자신의 죄를 회개합니다.
15:21)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우리가 아버지의 사랑을 확신하면, 우리는 아버지 앞에 어떠한 죄도 다 고백할 수 있게 됩니다. 나의 존재를 이렇게 받아 주신 아버지께 숨길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나의 죄를 사해주실 뿐만 아니라, 나를 아버지로서 사랑하시는 그분의 마음을 확인한 이상 그 분께 숨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기꺼이 아버지께 우리의 죄를 아뢰고 죄 사함의 기쁨을 풍성하게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말씀합니다.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아들의 신분이 회복되었음을 공적으로 드러내시고, 이제 기쁨의 잔치를 베푸십니다.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탕자가 만약 아버지의 진한 입맞춤을 경험하지 못하고 이 잔치에 들어갔다면 어땠을까요? 자신의 과거의 죄가 떠올랐을 것이고, 자신의 죄를 아는 종들과 사람들의 시선에 잔치 자리가 가시 방석이었을 것입니다. 불편하기 짝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진한 입맞춤으로 그의 사랑을 확실하게 느끼도록 해주셨기 때문에 그는 아무런 부담 없이 아들의 신분으로 얼마든지 잔치를 즐기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돌이킨 우리에게 베푸시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여러분도 처음 예수님을 믿고 아버지의 사랑을 확인하여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기뻤던 경험이 있으실 것입니다. 내 모든 죄를 기억도 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그 놀라운 사랑에 마음이 녹아졌던 그 기쁨의 순간을 기억할 것입니다.
때때로 사탄이 우리를 죄로 유혹하여 “네가 그러고도 하나님의 자녀라 할 수 있냐?”라고 공격할 때가 있지만, 우리는 너무도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때 아버지께서 나에게 사랑의 입맞춤을 주셨어! 내가 그분께 돌이켰을 때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의 입맞춤으로 품어주셨어! 그분의 영원하고 확실한 사랑은 결코 변치 않아! 한번 아들은 영원한 아들이니, 썩 물러가라 이 사탄아!” 라고 외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아버지의 사랑을 확인하고 나면 다른 문제들은 모든 사소한 것들이 됩니다. 비록 자신의 형이 자신이 죄 짓고 다시 돌아온 것을 반기지 않는다는 것을 듣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그 모든 것을 이기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확인하였다면, 교회에서 조금 어려운 소리를 듣는다고 마음이 흔들릴 것 전혀 없습니다. 나하고 아직 잘 맞지 않고, 조금 어렵게 대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아버지의 사랑을 풍성하게 누리는 신앙생활이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어제 신학교에서 새벽기도하고 나오는데, 이스라엘 같이 다녀온 후배 전도사님을 만났습니다. 저는 반가운 마음에 마스크까지 내리면서 인사를 했는데, 그분은 반응이 ‘네 안녕하세요’하고 지나가십니다. 갑자기 섭섭마귀가 제 마음에 들어오려고 합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버지의 품으로 마음을 돌려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우리를 쉬지 않는 입맞춤으로 채우십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있으면 다른 일은 모두 사소한 일이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아무리 고약한 형이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 지난 죄를 들춰낸다 하더라도 아버지의 계속되는 입맞춤으로 우리의 아들됨에 확신을 갖는다면 모든 문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다른 교우들에게 조금 부족한 모습이 있다고 할지라도, 아버지께서 뜨거운 사랑의 입맞춤으로 그 형제와 자매, 그 직분자도 두 팔 벌려 맞아주셨음을 기억하고,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우리의 영혼이 흔들리지 말고 평강과 기쁨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인간의 연약한 모습에 상처받고, 시험 들기보다는 지금 당장 아버지께 달려가십시오! 아버지의 사랑의 입맞춤을 경험하십시오! 진한 사랑의 입맞춤에 우리의 냉담한 마음이 녹아지고, 천국의 기쁨을 누리며,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아버지의 사랑을 뜨겁게 전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설교후 찬송: 슬픈 마음 있는 자 (예수 예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