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믿는 하나님의 백성

킹덤스토리 해설 시리즈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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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수요기도회에 오신 성도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되 끝까지 믿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야 함을 이야기합니다.
1-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풍족한 나라로 인도하신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풍족한 나라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인도로 광야를 지나서 이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들어가기 전에 이스라엘은 그 땅에 정탐꾼을 보냅니다. 지금으로 치면 스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신명기 1장 19절에서 25절에도 정탐꾼을 보내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싶다고 하고 하나님께서 이것을 허락하셨다고 나옵니다. 민수기의 기록과 신명기의 기록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의 관계에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가나안 땅 정탐을 허락해달라는 요구는 아마 생략되었고 하나님의 허락만 기록 된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 정탐을 부정적으로 보시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 사전준비를 하는 것으로 보신 것 같습니다.
이 정탐은 일반적인 정탐과 다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정탐이라고 하면 가나안 땅을 잘 조사해서 우선 저 땅이 우리가 한 번 해볼만한 나라인지 분석을 해보고 해볼만하면 바로 쳐들어가고 안 해볼만 하면 좀 더 연구를 해서 쳐들어가거나 아니면 포기하는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 1절을 보시면 이 정탐이 일반적인 정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본문을 자세히 보시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되”라고 되어 있습니다. 결론이 미리 나 있습니다. 정탐을 통해서 그 땅을 차지 할지 말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땅은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 이미 이스라엘의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과의 언약 안에서 그 땅을 소유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이 정탐은 그냥 들어가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확인하고 오면 됩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하나님의 나라가 얼마나 풍요롭고 좋은 곳인지 보고 돌아와서 그곳에 대해서 감사의 고백을 하면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면 됩니다.
정탐꾼은 각 지파에서 대표로 한 명씩 나와서 40일 동안 정탐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어떤 민족이 살고 있는지 지형이 어떤지 샅샅히 조사했을 것입니다. 가나안 땅이 경상도만하고 12명이 40일 동안 조사했으니 아마 구석구석 철저하게 그 땅을 탐지했을 것입니다. 그 땅에 대한 일차적인 평가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그 증거로 그 땅에 있는 포도송이가 달린 가지와 무화과 석류를 가지고 왔습니다. 이것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 땅이 아주 좋은 땅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 외적인 자료로도 증명된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시누헤의 이야기라는 문헌을 살펴보면 시누헤라는 사람이 암미엔시라는 사람과 나눈 대화가 있는데 그 대화에서 팔레스타인 지역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거기에는 무화과와 포도가 있고 물보다 포도주가 더 많고 꿀과 올리브가 풍부하고 온갖 종류의 가축들이 있다 뭐 이런 이야기들을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뿐 아니라 그 어느 누가 봐도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에게 가장 좋은 곳을 주셨습니다.
(적용)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풍족한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인도에는 어떤 착오도 실수도 없습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광야길을 걷는 수고를 했고 믿음의 결단이 필요한 순간들도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길을 평탄하게 했습니다. 애굽을 탈출하고 약속의 땅을 걷는 그 구원의 여정에 있어서 하나님은 늘 신실하셨습니다. 약속대로 풍요가 가득한 땅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시대의 성도들에게도 이런 은혜를 베푸십니다. 출애굽 시키듯이 죄와 사망 권세에서 성도들을 구원하시고 광야 같은 이 세상 살이에서도 신실하게 인도하셔서 결국은 새 예루살렘성,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성도를 인도하십니다. 새하늘과 새땅은 가나안 땅과는 비교도 안 되는 영광스러움과 기쁨이 있는 곳입니다.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 분께서 우리 또한 약속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약속하신대로 풍성한 나라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광야 같은 세상을 살지만 우리가 세상을 부러워하지 않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이 인도하는대로 따라 살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백성은 믿음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교훈은 하나님의 백성은 믿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정탐꾼들은 긍정적인 부분만 보진 않았습니다. 부정적인 요소 또한 보았습니다. 13장 22절에 보면 정탐꾼들이 정탐하다가 헤브론이라는 성을 보았습니다. 이 성은 애굽의 소안이라는 성보다 7년 빨리 건축되었는데 굳이 강대국 애굽의 소안성과 비교될 정도라면 이 성읍이 얼마나 견고하고 공략이 어려운 성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1965-65년에 미국의 탐사팀이 헤브론을 조사한 적이 있는데 청동기 중기 수준의 성벽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노예 생활하다가 온 이스라엘 백성이 그 성을 공략할 수 있는 군사력이나 장비가 있었겠습니까? 당연히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게다가 여기에는 아낙 자손이 살고 있었습니다. 아낙 자손은 33절에 네피림의 후손이라고 불릴 정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기에 기골이 장대하고 호전적인 전사들이었습니다. 노예 생활만 하다가 군사훈련이라고는 조금도 받아보지 못한 이스라엘이 상대하기에는 너무나 큰 산이었습니다.
25절부터 보시면 열 두 명의 정탐꾼들이 정탐을 마치고 돌아와서 보고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앞에서 보고를 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그들이 정탐을 나간 땅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이미 주시기로 한 땅입니다. 결론은 이미 나있고 그저 그곳이 어떤 땅인지 객관적으로 보고하고 회중은 보고를 들은 후 믿음으로 가면 됩니다. 하지면 상황은 전혀 그렇게 흘러가지 않습니다.
26절, 27절의 보고는 가나안 땅이 얼마나 기름지고 풍요로운 땅인지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문제는 28절부터입니다.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크고 아낙 자손이 있고 아말렉인이 있고 헷 여부스 아모리인이 산지에 거주하고 가나안인이 해변과 요단가에 거주한다고 보고합니다. 한 마디로 그 땅에는 공략하기 어려운 성이 있고 민족들이 아주 강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동요하기 시작합니다. 30절에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들을 조용하게 했는데 조용하게 했다는 것은 이 보고를 듣고 백성들이 동요해서 웅성거렸다는 것을 전제하는 표현입니다. 갈렙이 이 모든 동요를 잠잠하게 하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그리고 이와는 대조적인 의견이 나옵니다. 본문에 보시면 갈렙과 함께 올라갔던 사람 즉, 다른 정탐꾼의 말입니다.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똑같은 상황을 보고 듣과 왔지만 갈렙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근거로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다고 말했고 다른 정탐꾼들은 자신의 힘과 능력을 근거로 그 땅을 차지할 수 없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상황이지만 믿음의 눈으로 상황을 보지 못하면 하나님께 받은 약속을 저버리는 결과를 맞이하게 됩니다.
또 본문을 보다가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믿음의 눈으로 보지 못하면 멀쩡한 현실도 왜곡되어서 보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3절에 보시면 그 땅에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라고 되어있습니다. 생각해보시면 이게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네피림이 누구입니까? 창세기를 설교할 때 말씀 드린 적이 있는데 네피림은 고대의 영웅들입니다. 힘이 있고 명성이 있는 자들이고 폭력으로 시대를 풍미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 네피림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 홍수 심판으로 멸망하지 않았습니까? 방주의 들어간 노아와 그 가족 8명 외에는 아무도 살지 못하고 다 심판 받았는데 무슨 네피림의 후손이 있겠습니까? 믿음의 눈으로 현실을 보지 못하니까 그 두려움이 비상식적인 말을 내뱉도록 하는 것입니다. 설령 네피림의 후손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스라엘이 겁낼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 네피림들이 홍수심판 때 다 몰살당했지 않습니까? 네피림이 한 트럭이 와도 두려워할 것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 사건을 목격하면서 하나님께서 과거에 홍수 심판을 어떻게 하셨을지 충분히 복기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했습니다. 이미 애굽의 열 가지 재앙을 통해 하나님을 대적한 강대국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면서 그 강대국보다 현저히 약한 민족들을 겁내고 있습니다. 자기들 힘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데 자기들 힘으로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용) 우리가 처한 상황을 믿음의 눈으로 보지 못하면 두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게 되고 심지어 악평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을 악평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다 거짓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굉장히 큰 죄입니다. 우리 또한 믿음으로 세상을 살지 못하면 하나님의 약속을 악평하게 됩니다. 이 땅에서 성도로 살아가는 삶이 무가치하고 의미없는 삶이라 여기며 우리에게 예비된 천국이 가치가 없는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유혹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믿음을 근거로 이 땅을 살고 하나님의 나라를 약속으로 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긍정의 힘이 아닙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을 믿음으로 보고, 받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믿음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끊임없이 불평이 생기고 두려움이 생기고 좌절감과 무기력감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죄악 가득한 세상에 무슨 희망이 있습니까? 맨날 부럽기만 하고 질투만 나고 두렵기만 할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 사는 것 보면 그렇지 않겠습니까? 불신앙의 눈으로 아낙 자손을 보면 무섭고 두렵고 부럽지 않습니까? 저 사람은 힘도 세고 능력도 있고 가나안 땅에서 맘껏 누리며 사네 나는 이게 뭐야 이렇게 됩니다. 믿음으로 바라보면 여호수아와 갈렙의 고백처럼 우리의 먹이라고 선포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바라볼 때 이 세상을 가치 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뭐가 두렵고 부럽겠습니까?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3- 끝까지 믿는 백성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
(설명) 그 다음으로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세 번째 교훈은 끝까지 믿는 백성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14장을 보시면 믿음의 눈으로 상황을 바라보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을 합니다. 13장, 14장 본문을 보면 불신앙의 전염성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갈렙이 고백한 복음은 그렇게 잘 전파가 되지 않습니다.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다.라고 말해도 별 반응이 없습니다. 그 땅에 능히 올라가지 못하리라 라고 한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화인이 되어서 그 심중에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 되었습니다. 공동체가 복음을 공유하지 못하고 불신앙을 공유하니까 그 때부터 밤새도록 웁니다. 좌절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굉장히 극단적인 말을 하게 되는데 2절에 보시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해서 애굽 땅에서 죽거나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겠다고 이야기 합니다.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 고생할 땐 애굽에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하고 이제 가나안 땅 목전에서는 애굽이나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불신앙의 힘은 애굽에 있으나 광야에 있으나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나 항상 자신의 상황을 최악의 상황으로 만들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끔 무장해제를 시킵니다. 그리고 3절에는 좀 충격적인 말을 합니다.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애굽으로 돌아가는게 낫지 아니하랴 하나님께서 뭐하러 이스라엘 백성을 이까지 끌고 왔겠습니까? 뭐하러 자연현상을 역행하면서 열가지 재앙을 내리고 홍해를 가르고 하늘과 땅에서 먹을것과 마실 것을 내주셨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함께하신 이유가 고작 가나안 땅에 죽는 것을 보고 싶어서 그러셨겠습니까? 말도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심지어는 지휘관 한 명을 다시 세워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말합니다. 애굽으로 돌아가면 살려주겠습니까? 홍해 앞바다에서 이스라엘을 죽이려고 그렇게 이를 갈며 온 사람들이 살려줄 리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 여호수아와 갈렙이 불신앙에 물든 회중을 말립니다. 14장 7절에 회중들이 악평한 땅을 다시 아름다운 땅이라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그 땅에 들일 것이라 말합니다.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합니다.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불신앙이 차고 넘칠 때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불신앙에 대해서 복음으로 저항하고 대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불신앙의 침범을 막고 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회중들과 여호수아, 갈렙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40년동안 광야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중에서 하나님을 믿지 못한 이들은 광야에서 죽게 되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40년 후에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이 끝까지 믿는 백성입니다. 주변에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약속과 복음에 악평을 늘어놓고 하나님에 대한 모욕을 일삼으며 광기를 드러내도 하나님의 백성은 끝까지 하나님을 믿습니다. 복음으로 불신앙에 저항하며 믿음의 자리를 지킵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백성이 약속의 땅에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게 됩니다.
(증명) 우리는 이 사건에서 복음의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반항심이 극도로 올라올 때 심지어 지휘관을 한 명 세워 돌아가자 하고 믿음의 사람들을 돌로 쳐서 죽이려고 할 때 그들이 어떻게 될 뻔 했습니까? 14장 12절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전염병으로 이스라엘을 쳐서 몰살시켜 버리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이겠습니까? 이 다음에 놀라운 사건이 등장합니다. 바로 중보자가 나타납니다. 모세가 불신앙하는 이스라엘 백성과 그 불신앙에 진노하시는 하나님 사이에 섭니다. 13절부터 19절까지 하나님께 은혜와 자비를 간청하는데 19절에 보시면 하나님의 인자와 광대하심을 따라 애굽에서부터 지금까지 죄를 사해주신 것처럼 죄를 사해달라고 합니다. 죄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는 합당한 진노지만 모세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근거로 죄를 사해달라고 합니다. 가운데서 중재자, 중보자의 역할을 합니다. 이 모세의 사역은 의로우신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중보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미리 보여줍니다. 사람은 죄인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처럼 구원 역사를 경험하고 복음을 알아도 끊임없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합니다. 하나님께 대들고 저항하고 없는 사실을 이야기 하며 불신앙을 드러냅니다. 이런 죄인은 결코 하나님을 끝까지 믿을 수 없고 하나님과 함께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중보자가 계십니다. 하나님의 의로운 진노를 담당할 중보자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우리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저항하고 반항하고 싶을 때 다시 십자가를 의지하며 하나님께 나아가고 믿음을 회복합니다. 다시 한 번 끝까지 믿는 백성이 되고자 일어설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처럼 그 자리에서 전염병에 걸려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광야생활을 하며 믿음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은 인간 중보자의 중보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완전하신 중보자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끊임없이 하나님께 저항하는 우리를 그분의 십자가의 능력으로 끝까지 믿는 백성이 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끝까지 믿는 백성이 될 것입니다.
(적용) 끝까지 믿는 백성이 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면 불신앙에 전염되지 않습니까? 그 방법은 복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무관심하고 하나님을 적대하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고 앞으로 무엇을 하시는지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가 죄와 사망 권세를 극복하도록 하셨고 믿음으로 이 땅에서 살고 하나님의 나라를 받도록 하셨다는 그 복음의 진리를 붙드는 것입니다. 이 복음의 진리를 고백하고 이 진리를 근거로 살지 못하면 어느 샌가 불신앙이 우리를 점령합니다. 불신앙의 전염성은 굉장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어느순간 우리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꿔버리고 하나님께 대항하도록 만듭니다. 우리는 깨어서 복음을 고백하고 이 고백대로 살아야 불신앙에 대적하여 끝까지 믿는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유혹시험이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떨어뜨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려고 할 때 우리는 기도의 자리에 믿음의 뿌리를 박아 결코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 고백의 힘이 있고 기도의 힘이 있을 때 우리는 끝까지 믿는 백성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결론
설교를 맺겠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약속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그 나라는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좋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얻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한 순간 믿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믿습니다. 때론 불신앙이 불쑥 불쑥 올라와 하나님께 저항하고 약속하신 나라를 부정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마다 우리의 불신앙을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를 의지합시다. 다시 한 번 복음을 고백하며 기도의 자리에 서서 끝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남은 한주도 이 말씀 위에 굳게 서서 끝까지 믿는 백성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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