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를 잡아먹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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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를 잡아먹는 사람들 / 우리는 죄로 죽은 자들 이었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선한 일을 행하는 하나님의 작품이 되었습니다.
예전에 제가 담당했던 친구중에 사진 작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사진전을 열었다며 초대하길래 한번 갔었습니다.
꽤 유명한 중앙대 사진학과를 나와서 내심 많이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사진을 보니 어리둥절해 졌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사진은 훌륭한 인물사진이나 풍경사진이 아니었습니다.
남들이 버린 책상, 의자들같은 고물 덩어리들을 사진으로 찍어놓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왜 이런 것을 찍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는 자신의 과거를 제게 알려줬습니다.
아버지가 목사님이라서 그 친구는 어려서부터 예배를 빼먹은 적이 없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누구보다도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 같아 보였지만 이 친구는 자신이 살아도 산것 같지 않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죄의 노예가 되어 거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회개했고, 그리스도 안에서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재미없고,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로만 여겨졌는데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새로운 삶이 주어진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처럼 쓸모없어져 버려진 물건들에게 새 생명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환경미화원 아저씨가 그것들을 가져갔더라면 버려지고 말았을 텐데 그 친구 손에 붙들려 쓰레기가 작품이 된 것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참 감동받았습니다.
하나님 손에 붙들려 새롭게 태어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신 이유를 깨닫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본론]
인간의 상태를 가장 잘표현한 성경구절이 있다면, 바로 에베소서 2장 1절이라고 생각합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사람들.
이것은 성경이 우리 인간들을 진단한 결과입니다.
우리의 건강을 의사가 가장 잘 진단할 수 있듯이 우리 인간의 상태를 가장 잘 진단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서 사용된 ‘허물’이란 단어는 발을 헛딛거나 올바른 길에서 벗어난 상태를 말합니다.
반면,’죄’란 과녁에서 빗나간 상태, 표준에 미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의 사람을 영적으로 죽었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제 아내가 연주할 때 받은 꽃다발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며칠 후 시들어버립니다.
그러면 바로 쓰레기 통 속으로 들어가게 되죠.
꽃다발이 겉으로는 생명력이 있어보이지만 뿌리와 분리된 그 순간부터 사실상 죽은 목숨인 것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는 살아있는 듯 보이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죽은 것입니다.
인간은 죄로 인해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분리되었기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안 믿는 사람들은 자신이 죽었다는 말을 인정하지 않으려 들것입니다.
육체적으로 건강한 몸을 갖고 살아있는데 어떻게 죽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냐고 따질 것입니다.
이들이 이렇게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말 그대로 그들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영적 감각이 마치 발 뒷꿈치 죽은 살처럼 무뎌졌기때문에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몸은 있지만 영혼은 죽은 상태 그것은 마치 핸드폰은 있는데 인터넷 연결이 안된 상태와 같은 것입니다.
그럼 이러한 죄에 오염되면 어떤 증상들이 일어날까요?
2,3절입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그 때에 여러분은 허물과 죄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고, 공중의 권세를 잡은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식들 가운데서 작용하는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우리도 모두 전에는 그들 가운데에서 육신의 정욕대로 살고, 육신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했으며, 나머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날 때부터 진노의 자식이었습니다.
첫번째는 공중의 권세잡은 통치자, 즉 사탄의 노예가 되어 세상 풍조를 따라 살아가게 됩니다.
여기서 ‘세상 풍조’란 세상을 주도하는 가치관이나 인생관, 관습이나 전통들을 의미합니다.
물론 모든 세상 풍조들이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탄이 배후가 되어 우리의 영혼을 파괴하는 세상 풍조들이 많습니다.
물질만능주의, 능력주의, 성공주의, 외모지상주의 등 세상을 지배하는 가치관이 있습니다.
이런 세상 풍조들은 따라가지 않으면 나만 도태될 것 같은 두려움을 줍니다.
그러나 이런 세상 풍조를 주도하는 배후가 바로 사탄입니다.
사탄은 세상 풍조에 사람들이 마음을 빼앗기게 만들어 그들이 하나님에게서 더욱 멀어지게 만듭니다.
어제 학교 도서관에 갔더니 옆에 한 여학생이 책도 없이 핸드폰만 몇 시간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앞 여학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 풍조에 지배당한 모습들입니다.
넷플릭스에 보면 sns가 우리를 어떻게 조종하고 지배하는 지 알려주는 다큐가 있습니다.
사탄 역시 하나님과 관계없는 세상 가치관과 유행들을 통해 우리들을 가스라이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은 우리가 죄로 인해 죽었기 때문에 세상 풍조를 따라가는 존재가 되었다고 고발합니다.
두번째는 3절에 나온 우리 육체의 정욕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물리적 신체인 몸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의미합니다.
앞서 공중권세 잡은자인 사탄은 우리 밖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조종하려는 세력이었습니다.
반면, 육신의 정욕은 우리 안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조종하려는 부패한 마음입니다.
밖에서 사탄이 유혹하고 안에서 우리 부패한 마음이 응답하는 것이 바로 죄가 작동하는 원리입니다.
갈라디아서 5:17절입니다.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이 바라시는 것은 육체를 거스릅니다. 이 둘이 서로 적대관계에 있으므로,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 육체의 욕망, 즉 우리의 본성은 성령이 바라시는 것, 즉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자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들어, 우리에게는 식욕, 수면욕, 성욕 등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죄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들을 쉽게 절제하지 못하는 강한 충동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쉽게 술중독, 니코틴 중독, 성 중독, 게임중독에 빠지게 되는 지 잘 알것입니다.
저도 대학시절 니코틴 중독에서 빠져나오려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랑이 자라나 교만이 되고, 미움이 자라나 증오가 되고, 슬픔이 자라나 우울증이 되고, 쾌락이 자라나 중독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안에서 우리를 충동질하는 부패한 마음의 실체인 것입니다.
제가 전에 내성발톱으로 엄청 고생했었습니다.
내성발톱이란 안으로 파고드는 발톱을 말하는데 얼마나 아픈지 모릅니다.
아무리 겉을 잘라내도 조금 지나면 다시 자라서 나를 찌르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육체의 욕망도 마치 내성발톱과 같아서 계속해서 우리의 영혼을 죽이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들이 허물과 죄로 죽은 절망적인 상태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죄악들과 죽음의 증상인 고통들이 넘쳐나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상태를 하나님 입장에서 잘 설명한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불순종의 자식, 진노의 자식’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기에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병을 알아야 제대로된 치료가 가능하듯 이러한 우리의 상태를 정확히 아는 데서 부터 구원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제 4,5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가 넘치는 분이셔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크신 사랑으로 말미암아 범죄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단어는 ‘그러나’입니다.
무엇인가 앞의 상황을 역전시킬만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망적인 상태에 빠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이 소식이 바로 복음, 굿뉴스입니다.
그럼 왜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해 주셨을까요?
바로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룻기에서 본 히브리어 단어‘헤세드’입니다.
‘헤세드’란 하나님의 변함없는 한결같은 사랑, 끈질긴 사랑을 말합니다.
어머니가 자식에게 갖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자비와 사랑으로 죽었던 우리를 살려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단어가 있습니다.
5절에서 죄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살려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에 동그라미 치시기 바랍니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6절에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그 분과 함께 살리시고, 하늘에 함께 앉게 하셨습니다.
여기서도 계속 ‘함께’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개역개정을 보면 5,6절에 ‘함께’라는 단어와 함께 세가지 단어가 사용됩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함께 일으키시고, 함께 앉히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래 6절은 ‘함께 살리시고’가 아니고 ‘함께 일으키시고’ 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하늘에 올라가 보좌에 앉으신 사건이 우리에게도 동시에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제가 침례식할 때 한 말을 기억하십니까?
물속에 들어갈 때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죽은 것이며, 물속에서 나올 때 이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똑같은 말을 여기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주와 심판의 십자가에서 죽어야 할 사람은 원래 우리들인데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죽으셨기에 실제로는 예수님과 함께 우리도 죽은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죽었기에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우리도 부활한 것입니다.
우리의 옛 사람은 죽고 부활생명을 얻은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새 생명을 얻은 게 끝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부활했을 뿐만 아니라, 함께 하늘로 올라가 앉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 앉았다는 것은 예수님이 만물을 통치하시는 왕이 되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가 새 생명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속한 곳은 이 땅이 아니라 저 하늘나라, 하나님나라 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이제 더이상 우리는 2절에서 말한 이 땅의 공중권세 잡은 통치자인 사탄의 지배 아래 살아가는 게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불순종의 자식, 진노의 자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의 소속과 신분이 완전히 바뀐 것입니다.
1-3절까지 말했던 인간의 절망적인 상황을 하나님이 역전시키신 것입니다.
제가 30대때 폴란드 6개월, 독일 1년, 영국 2년, 스위스 1년, 필리핀 6개월 이렇게 살아봤습니다.
그러나 제가 어디에 살든지 제 신분은 한국 사람이었습니다.
영국에서 피쉬앤 칩스도 먹어보고, 스위스에서 퐁듀도 먹어봤어도 제일 맛있는 것은 한국 김치찌개였습니다.
여러 날에 살면서 제가 가장 마음을 쏟았을 때는 독일이나 영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가장 걱정스러웠던 때는 북한에서 미사일 쏠 때였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다른 나라에 살지만 제 소속과 신분은 여전히 한국사람이며, 한국에 가족들이 살고 있고, 저도 언젠가 한국에 돌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비록 이 세상에 살지만 하나님 나라에 소속되어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가는 삶을 잘 설명해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입맛이 여전히 이 세상에 속해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 나라에 속해 있습니까?
이제 7절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을 드러냅니다.
우리의 변화된 삶을 통해 온 세상에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풍성한 지 드러내시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명품 초상화를 보면 초상화 속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게 아니라 초상화를 그린 화가에게 관심을 갖기 마련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변화된 삶은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통로가 됩니다.
이러한 구원의 목적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한 구절이 8-10절입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미리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직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두가지입니다.
첫째는 우리가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은 것은 우리의 선한 행실로 인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은 존재여서 구원받을 길이 없었습니다.
마치 물 속에 빠져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죽음만 기다리는 절망적인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구원하셨기에 우리가 스스로 자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라’
이 말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 바로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감사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구원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의 작품으로 선한일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그냥 작품이 아니라 걸작품, 마스터피스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어 쓸모없는 존재였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다시 만드신 것입니다.
이렇게 새롭게 탄생한 하나님의 걸작품인 우리들을 통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저는 최근 아주 인상적인 두가지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가지는 미스코리아 출신의 어떤 여성이 수천번을 불상 앞에서 절하는 영상입니다.
그 아름답던 여성이 머리를 다 깎고, 혼자서 산에 올라 그렇게 하는 이유는 자신의 죄때문에 자식들이 고통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의 업보가 자식들에게 해를 끼칠까봐 걱정돼서입니다.
그녀의 깊은 사정을 다 알 수는 없었지만 이 영상을 보고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리스도안에는 업보가 없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영상은 한 섬에서 거북이를 잡아먹는 영상이었습니다.
처음에 이 영상을 보고, 아무리 원주민들이라고 하지만 좀 잔인하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원주민이 인터뷰하는 장면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알고보니 원래 이 섬 원주민들은 조상대대로 거북이를 신으로 모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신을 잡아먹게 되었을까요?
바로 복음이 그 섬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거북이가 더이상 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영양가가 풍부한 거북이를 잡아먹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보니 거북이를 잡아서 그 섬마을 사람들이 서로서로 나눠먹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어떻습니까?
두 모습이 너무나 대조적이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여전히 어둠가운데 있고, 어떤 사람은 어둠을 뚫고 빛으로 나아온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결론]
이제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에게는 두가지 길 밖에 없습니다.
죽음이냐, 생명이냐?
사탄이냐, 하나님이냐?
그래서 우리 신앙의 핵심은 간단합니다.
한편으로는 우리 죄의 깊이를 깊이 깨닫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높은 지 깨닫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 다카포 식구들이 다 되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