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길, 믿음의 길
Notes
Transcript
Sermon Tone Analysis
A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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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
Emotion
A
C
T
Language
O
C
E
A
E
Social
- 각자의 방식대로 자신이 받은 약속을 이룬 사람들 -
32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이 모든 일을 다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라" 믿음의 사람들이 살아온 이런 사실을 일일이 열거하려면 끝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지면에 담지 못하는 그 외의 사실들은 각자가 나름대로 생각하기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구약 시대부터, 구약과 신약 사이를 잇는 중간기, 하나님께서 침묵하신 그 400년의 시간까지. 믿음으로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사람들과 믿음의 순교자들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이기기도 하고, 의를 행하기도 하고, 약속을 받기도 하고, 위험을 막기도, 피하기도, 멸하기도 하면서, 약할 때에 강함을 얻어 용감하게 맞서 싸웠습니다. 그 뿐인가요. 35절에 보면 몇몇 여자들은 죽은 가족이 다시 살아나 돌아오는 일을 겪기도 했습니다. 36절에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자 부활을 소망했던 순교자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기 위해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그런 그들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유대 역사 속에 남겨진 믿음의 사람들은 그 피의 증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괴롭힘을 당한 사람들이었고, 죽임을 당한 사람들, 업신여김을 당한 사람들, 세상으로 부터 쫓겨난 사람들이었습니다. 죽음으로부터 피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차라리 죽음이 더 나은 것처럼 여겨질 만큼 그들의 고통은 연장될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러한 고통을 감당했고, 또 고통을 견디어 내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견디게 한 걸까요? 이유는 한 가지 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 때문었습니다.
누구는 병고침을 받아야 믿음으로 여기고, 더 잘 살게 되는게 믿음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소망 중에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도 '믿음'인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영웅적인 행위와 기적에 대해서는 관심 밖이었습니다. 그들의 업적이나 태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죽음도 두려워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런 그들이 믿음으로 얻은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줍니다. 그들이 믿음에 의해 얻은 것이 무엇이지를 통해, 우리가 걸어가는 믿음의 길에 기대와 소망이 더 견고해 지길 바랍니다.
첫째,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영광스러운 이름을 받았습니다.
진정한 세상의 심판자되시며, 모든 영광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명예로운 이름을 부여받았다. 38절입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 '세상이 감당할 수 없다'는 말을 영어성경에서는 '세상에 가치를 두지 않은 사람, 세상을 아무 가치 없이 여기는 사람'.(of whom the world was not worthy)으로 번역했습니다. 세상을 아무 가치 없이 여기니 아무리 유리 방황 하면서도 마음이 약해지지가 않습니다. 다 빼앗는다고 겁을 주어도 세상 것을 아예 무가치하게 여기니 "그래. 가져가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라."고 하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가치의 기준은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그분의 나라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은 이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세상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시는 이러한 축복을 감당치를 못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이러한 축복들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또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절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세상이 줄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복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이 구절을 이렇게 주석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하나님의 종들을 어리석은 자로 여기고 배척할지라도 하나님의 축복은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서 세상에 임한다. 따라서 세상이 하나님의 종들을 수용할 수 없다는 사실 그 자체가 이미 세상에게는 충분한 형벌인 것이다." 핍박하고, 배척해 봐도. 하나님의 축복은 하나님의 백성. 이 땅의 성도들을 통해서 임하기 때문에 핍박하면 할 수록 세상이 손해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믿음의 사람들을 세상 밖으로 불러내셔서 그들에게 적합한 세상으로 인도해 가실 것입니다. 그들이 가게 될 세상은 그들의 봉사와 고통당한 것을 보상하고도 남음이 있는 그러한 귀한 세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향해서도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이렇게 부르십니다. 세상에 가치를 두지 않고, 하나님께 가치를 두고 사는 사람. 우리는 세상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축복이 흘러가게 하시고, 마침내 우리를 세상 밖으로 불러내셔서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실 것을 소망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믿음으로 얻은 것이 무엇인가요?
둘째,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증거를 받았습니다.
39절 전반부를 보면 "이 사람들은 다 증거를 받았다..."고 하십니다. 즉 그들은 선한 자들과 진리 자체에 의해 믿음으로 말미암아 보증을 받았습니다. 또한 그들은 본문의 하나님의 증인들의 명부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여기서 말씀된 "약속된 것"은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의 축복은 그들이 죽었을 때 이미 받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씀되고 있는 '약속된 것'은 장차 복음에 시대가 도래하여 얻게 되는 축복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구약시대 성도들과, 중간기 시대 성도들. 그들은 유형은 지니고 있었으나 원형은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림자를 지니고 있었으나 본체는 보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불확실한 섭리에서도 옛 성도들은 이같이 귀중한 믿음을 지켰던 것입니다. 이같이 불확실한 섭리 아래서 그들이 이러한 믿음을 지녔다는 것은 그들의 믿음이 얼마나 빛나는 것이었는지 말해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히브리서를 읽는 우리 모두는 거기서 더 나아가야 합니다. 왜요?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40절)하셨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섭리는 이전의 구약시대의 섭리보다 더욱 완전하며, 또 그것은 구약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 성도들이 유형만 지니고, 그림자 밖에는 볼 수 없고, 불확실한 섭리에 의지해서 믿음을 지켜 왔다면! 우리는 유형이 아닌 원형은 가졌고, 그림자가 아닌 본체는 보었으며, 확실한 섭리를 누리며 살기 때문입니다.
성도여러분, 믿음으로 우리는 영광스러운 이름,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으로 살게 됐습니다. 하나님으로 부터 증거를 받고, 약속된 것을 상속받았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이렇게 믿음의 역사에 참여하며, 각자 자기 나름대로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갔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은 아직 마지막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서로 연합하여 함께 목적에 도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역사는 단 하나만 있을 뿐이며, 함께 이루어 나가야 하는 그 역사의 목적지가 이제 멀지 않았습니다. 각자의 방식대로 자신이 받은 약속을 이루고자 애썼던 많은 사람들의 저마다의 운명을 보며.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깨닫는 이 아침이 되기를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