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힘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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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더 견고하게 하라 -
사도 바울은 이미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어떤 모범을 따라야 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이제 바울은 '이것을 하라. 저것을 하지 말라'와 같은 권면을 하는데, 두 가지 주제에 대해서 하나는 거룩함 또 다른 하나는 형제 사랑입니다.
# 하나님의 뜻 : 거룩함
# 하나님의 뜻 : 거룩함
7절에 '하나님의 부르심은 우리를 부정하게 하심이 아닌 거룩하게 하심'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거룩함을 이루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3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고 일축합니다. 이 거룩함에 있어서도 무엇보다 '성적인 거룩'을 요청합니다. 여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헬라 사회가 성적인 거룩에 있어서 굉장히 취약 했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성적인 탈선을 범죄 행위로 보지 않고 단순히 인생을 즐기는 차원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도리어 이런 성적인 탈선을 조장하는 풍조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신분 상으로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거룩한 존재가 되었지만, 실제로 우리의 성품은 거룩의 과정을 밟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우리의 성화를 방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 중의 하나가 바로 음란입니다. 음란한 채로는 거룩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 성적인 영역에서 거룩을 요청한 것입니다. 아내를 대할 때 조차도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대하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당신과 같이 거룩한 존재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인 거룩을 저버리는 것은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과 같다고 한 것입니다.
# 형제 사랑
# 형제 사랑
데살로니가 교회가 형제를 사랑함에 있어서는 쓸 것이 없다고 할 만큼 바울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9절에 보면 쓸 것이 없다고 했는데 10절과 11절에서는 또 더 많이 하라고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형제 사랑의 질에 있어서는 바울이 만족했지만 그 사랑이 확장됨에는 더 가야할 여지가 남아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미 마게도냐의 모든 형제를 대하여 사랑의 수고를 하고 있는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바울은 더 많이 형제를 사랑할 것을 권면합니다.
우리의 사랑이 어디까지 성장해야 합니까? 사랑이 필요한 마지막 한 영혼에 게 까지 우리의 사랑은 자라야 합니다. 주님은 길 잃은 양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 안에 있는 99%의 양이 안전하게 잘 있어도, 주인의 사랑과 돌봄이 필요한 마지막 한 마리의 양이 들판을 방황하는 한 목자는 자지 않고 들판을 헤맨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마음이 온 세상을 향하고 있는 한 우리도 온 땅과 열방을 향하여 우리의 사랑을 넓혀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내적으로는 각자의 삶의 자리를 성실하게 세워가는 것입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출발은 자신의 일을 힘써 형제에게 누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를 만나면 전에 게으르던 자는 열심을 내어 일을 하고, 전에 도둑질 하던 사람은 도둑질을 그치고 스스로 땀을 흘려 자신의 필요를 채우게 됩니다. 그것이 형제를 사랑함의 출발점입니다. 형제에게 부담이 되던 자에서부터 자신의 일을 감당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동을 더 많이 힘쓰라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동을 더 많이 힘쓰라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 권면한 것이 하나는 거룩함, 그리고 또 하나는 형제 사랑입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새롭게 받아야 할 것이나, 더 알아야 하는 것은 사실상 없었습니다. 오늘 읽은 내용에서도 바울이 반복해서 말합니다.
1절에서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2절에서 "우리가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또 6절에서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언한 것과 같이", 11절에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바울은 이렇게 상기시키는 표현을 의도적으로 반복해서 사용합니다.
새로운 권면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데살로니가에 방문해 있던 동안 이미 다루었던 문제들을 반복하면서 분명히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이미 알고 있고, 이미 행하고 있는 것을 다시 권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 아는 내용이고, 이미 행하고 있는 것을 왜 또 이렇게 구하고 권합니까? 우리 신앙에는 특별한 지름길이나, 새로운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것을 하지 않았다면 할 말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하지 않았거나 미흡하게 했다면 변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알고 있고, 행하고 있는 것부터 제대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땅히 행할 바에 있어서 무엇을 행해야 할지를 하나님께서 이미 가르쳐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모르는 것을 행하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행할 바를 먼저 가르쳐 주시고 행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마땅히 행할 바를 기록한 것은 성경입니다. 이미 우리는 성경을 전해 받았고 복음을 전해 받았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경을 귀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그 책을 잘 보관하고, 보존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 책이 기록한 생명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복된 것은 그 기록이 진리이고 기록대로 사는 자가 생명을 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때 데살로니가 교회는 세워진지 얼마 되지 않은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바울이 전해준 복음의 진리 안에서 행하고 있다고 증언합니다. 신생교회라고 해서 다른 기준을 적용해주지 않습니다. 모든 교회는 다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따라서 행해야 합니다. 교회 건물이 없을 수 있고, 제도적인 부분이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부분에서 미숙할 수는 있지만 신령한 면에서는 신생 교회나 오래된 교회나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를 받습니다. 성도도 마찬가지 입니다. 신앙의 연수가 길다고 해서 더 높은 기준이 적용되는게 아니고, 신앙의 연수가 짧다고 해서 느슨하게 적용되는 것도 아닙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의 가르침을 주님의 가르침으로 알아서 그대로 행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더욱 많이 힘쓰라"고 "더욱 그렇게 행하라"고 합니다. 잘 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권면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독특한 표현이 본문에 있습니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 하는 것 같은데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명령임을 강조한 것은 한 두 번 행하다가 흥미가 없어지면 그만 해도 좋을 일이 아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나면 하고 땡기면 하다가 싫증이 나면 하지 않는다면 이는 주님의 명령을 준행하는 자세가 아닐 것입니다.
항상 처음 사랑 처음의 간절함 처음의 열심을 갖고 행해야 합니다. 주님의 명령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항상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내가 행해야 할 바를 행치 않는다면 주님이 주신 사명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