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를 경험하고도 철 병거에 무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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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시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철병거를 두려워한 유다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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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를 경험하고도 철 병거에 무너지다
(사사기 1장 16-21절)
■ 광고
장례 등의 광고가 올라오면 헌금소개 전 광고를 한다. 장례 광고는 2번 읽음
■ 헌금소개
귀한 예물 드린 손길 있습니다. 십일조, 건축, 장학, 선교, 일천번제 예물, (기도제목 읽고) ㅇㅇㅇ성도님 드렸습니다.
■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와 사랑을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새로운 호흡을 허락해 주시고, 하루의 첫 시간 예배로 영광 올려드리게 하심 감사합니다. 하루가 마치는 그 시간까지, 주신 호흡으로 오직 주를 위해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우리와 함께 동행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말씀봉독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사사기 1장 16-21절 말씀입니다. 구약 361페이지입니다. 다 찾으셨으면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 인사 및 설교
할렐루야! 2교구와 월드휴먼브리지, 그리고 사회선교부를 담당하는 이영석 목사입니다. 오늘 이 새벽에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처음 예수님을 믿었을 때, 그때를 생각해보면, 주님을 위해서라면 정말 어떤 일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일이라면 무엇이라도 순종하고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마음이었죠.
베드로도 그랬지 않습니까? “모두가 다 주님을 버리고 떠날지라도, 저는 결코 버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닭이 울기 전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해버렸죠.
저는 예수님에게 그렇게 말했던 베드로의 마음을 의심한 적이 없습니다. 말할 그 당시에는요. 진심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막상 그 상황, 예수님이 진짜 끌려가고, 니가 저 사람과 함께 있지 않았냐고, 주변에서 막 묻고, 의심하기 시작하니, 그때 느끼는 중압감이 더 컸던 것이죠. 무엇보다요? 이것조차 감당하고서라도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 예수님을 향한 그 믿음보다 부담감이 더 컸던 것입니다.
흔히 하는 말로, 하나님보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문제가 더 커 보였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도 살아가면서 흔히 경험하는 바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첫사랑이 뜨거울 땐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입니다.” 이렇게 고백하면서 뭐든지 다 할 것 같지만,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현실이라는 건 믿음과는 좀 거리가 있는 것 같아.”라는 핑계와 함께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를 순종하는 일에 부담을 느끼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의 말씀도 이와 동일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생각됩니다.
1장 19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삿 1:19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가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 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사사기 1장은 초반부터 계속 유다 지파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죠. 1장 18절까지는 완벽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잘했습니다. “이 땅을 너희에게 주었다!”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그 말씀을 따라서 산지에 사는 주민들은 일단 잘 쫓아냈습니다. 그들이 산지의 주민을 쫓아낼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까?
그들이 싸움을 잘해서가 아니었죠. 19절 처음에,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셨기 때문에 그들이 산지 주민을 쫓아낼 수 있었다고 하죠. 그런데 참 묘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가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 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여러분, 이렇게 기록되어야 자연스럽지 않습니까?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산지 주민도 쫓아냈고,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병거가 있었지만, 여호와께서 함께 계셨으므로, 그들을 다 쫓아냈다. 이렇게 되어야 하는거 아닙니까?
그냥 인간적으로 생각해보면요. 이스라엘이 본격적으로 철 무기를 사용한 때는 솔로몬 때라고 합니다. 그러니 이 당시 철기 무기를 상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던 것이죠. 그래서 그 이유 때문에 “이 땅을 너희들에 손에 넘겨주었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셨지만, 그것을 뒤로하고 그들을 쫓아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사실 싸우지도 않았으니, 진 것도 아니었지만, 이긴 것도 아닌,, 그냥 서로 눈치를 보고 적당히 타협하고 공존하기를 선택한 것이죠.
왜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크기보다 지금 내가 현실에서 느끼고 있고, 보고 있고, 경험하고 있는 그 철병거가 더 커보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의 믿음이 이스라엘에게 작동하지 않은 것입니다. 어쩌면요. 이것은 아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모습일지 모릅니다. 계산해보면 답이 딱 나오는 것이죠.
그러나 여러분,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자신들의 실력과 경험으로 여기까지 달려왔습니까? 아니죠. 광야를 지나게 하시고, 홍해를 가르시고, 여리고를 무너뜨리신 분이 누구라고 믿으며 살아왔습니까? 하나님이라고 믿고 여기까지 온 것이었죠. 우리도 우리의 삶을 두고 이렇게 고백하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이야기하면요. 이 세상은 우리에게 뭐라고 말합니까? “종교적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제발 현실적으로 좀 생각하면서 살아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진짜 현실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려면, 결코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빼놓고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것이 현실이고 진실이고, 리얼입니다.
그래서 원래 이스라엘은 이렇게 소리쳤어야만 합니다!
“저들이 철 병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골리앗 앞에서 다윗이 그랬죠. “너는 칼과 창과 단창, 너의 실력, 너의 스펙으로 나아오지만 나는 나의 어떠함을 믿고 가지 않는다.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간다!”
뭡니까? 하나님을 믿는 마음,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는 그 믿음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 사사기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은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저들에게는 철병거가 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결코 그들을 이겨 낼 수 없다”
여러분, 세상의 눈으로는요. 이것이 상식적인 행동인지 몰라도 믿음의 눈으로 보면 이것은 지금까지 함께하셨던 하나님,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며, 우리를 승리로 이끄셨던 그 하나님을 마치 없는 샘 치는, 그런 불신앙의 모습인 것 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단순히 내 힘으로 살아왔노라 말하는 것입니다.
사사기 1장 1절에는 원래 어떠했습니까? 한번 읽어볼까요?
1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멋있죠? “말씀만 하십시오. 누가 먼저 싸우러 갈까요?”.... 이 담대함을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저는요. 우리 모두가 19절 이 한절 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를 향해 안타까워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내가 너와 함께 한다. 두려워 말고, 믿음으로 살아가거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삶에도 이런 철병거와 같은 것들이 있지 않습니까?
내가 어떻게 해결할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지는 일들과 상황들, 또 마음들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 다르겠죠. 어떤 경제적인 문제, 넘지 못할 것 같은 깨어진 관계의 산, 용서하지 못하고 딱딱하게 굳어져버린 내 마음, 내가 상대할 수 없을 만큼 두렵고 강하며 견고한 산들이 우리가 몰아 낼 수 없도록 “철병거”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삶에 딱 버티고 서있을 때가 있습니다.
평소에는 괜찮은데, 그 문제만 만나면 내가 작아지는 것입니다. 그 문제만 만나면, 하나님께서 아무리 말씀하셔도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고 하셔도 믿겨 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를 나에게 맡기라고 말씀하셔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니 때로는 순종할 수 있어도 순종하고 싶은 마음이 없을 때조차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계산해봐도 내가 손해보는 것 같고, 내가 억울할 것 같아서, 의도적인 불순종의 삶을 살아갈 때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때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스라엘의 진짜 문제는 그들 앞에 버티고 서있었던 철병거라는 문제가 아니라, 가나안 땅을 이미 자신들에게 주었다고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지 않았던,
믿음의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다시요. 이스라엘의 진짜 문제는 철병거가 아니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오늘날 나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맺으면서요. 지금까지 우리의 삶을 인도하셨던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지 맙시다. 그 사실을 잊거나 무시하고, 내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착각하면,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그때부터 철병거와 같은 환경만 보이는 것입니다.
오늘의 삶에 철병거가 버티고 서있습니까? 여러분의 삶에서 철병거가 발견 되어지고 또 잊고 살았는데, 오늘의 말씀 앞에서 불현듯 생각나게 하십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엄청난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 기회를 믿음으로 붙잡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과 함께함을 믿음으로 맨손으로도 철병거를 몰아내는 역사를 날마다 경험하시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송 오늘 말씀을 생각하시면서 찬송가 00장 박수 치시며 부르겠습니다.
■ 기도
1. 주일은 대구,경북 1,200여개의 교회와 각 주일 예배를 품고 기도하는 날입니다.
후반기가 힘차게 시작되어야 할터인데, 각 교회들 앞에도 철병거와 같이 느껴지는 것들이 버티고 서 있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힘 주심으로 말미암아, 대구 경북 모든 교회들이 성령 충만함으로, 복음으로, 이 땅을 정복해 갈 수 있도록 은혜 더하여 달라고, 오늘 있을 모든 예배들마다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이 시간 저를 따라 기도합시다.
주여 은혜를 주옵소서 X3, 통성으로 기도합니다.
2. “연하여 기도하겠습니다.”
여호수아 17장을 보면요. 이미 거기에서도 철병거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때는 결코 겁을 먹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능히 이길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오늘의 문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지 못하는 믿음의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 내 인생에도 나를 가로막고 서 있는 철병거와 같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문제보다 더 크심을 믿사오니, 믿음의 담대함을 주시고, 문제를 돌파해낼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간절하게 주님 이름 3번 찾고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찾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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