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04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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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친구들, 다들 한주 잘 보냈나요? 오늘도 전도사님과 함께 말씀을 듣는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친구들, 우리 지난주에는 교회에 어떤 행사가 있었죠? 바로 특별새벽기도회와 새물결기도회가 있었는데요, 우리 친구들이 정말 열심히 참여해주어서 전도사님이 너무 놀랍기도 하면서도 참 기쁘고, 우리 중등부 친구들이 정말 자랑스러워지는 그러한 한주였던 것 같아요.
특히 졸음을 참고 새벽기도에 나온 친구들은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아마 우리 친구들 새벽기도를 통해서 많은 은혜를 받았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때 받았던 은혜들을 기억하면서, 오늘도 함께 말씀을 집중해서 듣는 우리 친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 오늘은 사진을 먼저 보면서 시작해보도록 할게요. 사진 보여주시겠어요?
친구들, 이 사진을 보면 어떤 단어가 떠오르나요? 그렇죠. 평화라는 단어가 떠오를 거에요.
친구들, 평화라는 것은 어떨때 평화라고 하죠? 싸움이 없는 상태, 아무 일도 없는 상태가 평화로운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거에요.
그렇다면, 우리가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싸움, 전쟁과 같은 것을 하지 않아야 되겠죠.
그래서 국제사회에서도 전세계적인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UN과 같은 국제기구들을 만들어서 국가가 서로 분쟁하거나 심하면 전쟁까지 가는 일들을 막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평화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오늘 읽은 말씀에서 우리는 그 내용을 살펴볼 수가 있을 것 같아요.
우리가 지난주까지 함께 보았던 말씀. 어떤 내용이었죠?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께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이 바로 그 가나안 전쟁이 끝나게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스라엘은 가나안 전투를 끝냈는지,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평화란 무엇인지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오늘 말씀의 시작은 어떤 내용으로 시작하죠?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점령한 땅들을 나열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17절을 보면 어디라고 하나요? 할락 산에서부터 헤르몬 산 아래 레바논 골짜기까지라고 그 범위를 말하고 있습니다.
자 그럼 이 지역들이 어디일까요? 사진 한번 보여주세요. 사진을 보면 가나안 땅 밑에 할락 산이 있죠? 그리고 저 위에 가나안 북부에 헤르몬 산이 있습니다.
그럼 결국 뭐겠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대부분의 지역을 점령했다 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여호수아가 가나안 왕들과 오랜 기간 싸웠으며 그 중에서 기브온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화친하지 않고 다 싸워 이겼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그 싸운 모든 민족들을 남기지 않고 진멸, 즉 모두를 죽여 없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처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두려워했던 아낙자손들도 있었습니다.
골리앗이 속해있던 것으로 유명한 아낙자손들은 골리앗과 같이 크고 강한 몸을 가진 민족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정탐꾼들이 처음에 겁을 먹었던 것이었죠. 하지만 그들 역시도 결국에는 패해 가사와 가드, 아스돗의 변방지역에만 일부 남게 되었습니다.
결국 우리가 처음 보았던 그렇게 약해보이고 말씀을 따르지 않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가나안 지역을 무찌르고 점령하는 강한 군사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3절 마지막에 말한 것처럼 그 땅에 전쟁이 그치게 됩니다. 왜 전쟁이 그쳤겠어요? 이제 이스라엘이 가나안 지역을 완전히 장악했다라는 것이었겠죠.
그렇습니다. 가나안 땅에 평화가 찾아오게 된 것이죠.
그런데, 이렇게 오늘 말씀이 결론을 맺게 되면, 우리 친구들의 마음속에 조금 의아함이 생기게 될지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앞에서 나눴듯이, 우리가 생각하는 평화와는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평화가 조금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친구들, 앞에서 우리가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었죠? 전쟁을 하지 않고 화해하여 함께 살아가야 한다라고 했었을거에요.
그런데,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평화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화해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대상을 없애버리는 전쟁을 통해 평화를 만들어버렸습니다.
심지어는 오늘 말씀 곳곳에 나오는 것처럼 가나안의 민족들을 죽이고 진멸하는 무서운 모습마저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마 이 지점에서 우리 친구들의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게 되었을 수도 있었을거에요. 분명히 내가 아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신데, 이렇게 잔인한 모습을 보이시는 것이 이해가 잘 가지 않을거에요.
어떤 분들은 그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할수도 있을거에요. ‘아 그것은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의 모습이 다르기 때문이야. 구약의 하나님은 벌주는 분이시지만,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신 분이셔’
어떻게 보면 그럴듯해 보이는 답이에요. 그런데 친구들, 이 답이 과연 맞을까요? 그렇지 않죠.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이 다를까요? 아니죠. 우리가 잘 알듯이 하나님은 한 분이시죠. 구약의 하나님이나 신약의 하나님이나 다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왜 모습이 이렇게 다르냐구요? 자 그럼 우리 신약에 나타나는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한번 봅시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친구들 어떤가요? 이 말씀은 분명 우리가 아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예수님의 이미지와는 이상하게 잘 맞지 않는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친구들 머리가 복잡하죠? 그렇다면 대체 왜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가 아는 사랑의 하나님이 아닌 것 같은 그런 모습들을 보이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평화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평화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친구들, 다시 한번 처음으로 돌아가볼까요? 우리가 생각하는 평화는 무엇이라고 했죠? 싸움과 다툼 없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를 평화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평화의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평화의 모습이란, 아무 일도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만이 이루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평화, 진정한 평화의 모습인 것입니다.
다시 오늘 말씀으로 돌아와서 생각해봅시다. 친구들, 우리가 생각하는 평화를 이루려면, 여호수아는 어떻게 하면 되었을까요? 여러 가나안 민족들과 화해하고 평화조약을 맺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러면 어느 하나 다치지 않고, 분쟁이 없이 가나안에는 어떠한 전쟁도 일어나지 않았겠죠.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평화가 될 수 있었을까요? 아닐거에요. 아무리 평화조약을 맺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이스라엘과 말씀을 따르지 않는 가나안 민족은 결국 부딪치게 되어 있었을거에요. 결국 또 다시 전쟁이 벌어지게 되었을 거에요.
혹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백성들에게 녹아들어 하나님에게서 떠나가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들은 실제로 다음 성경인 사사기의 시기에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결국 가나안 땅에 진정한 평화를 이루려면 그 가나안 땅에 하나의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만이 존재해야만 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하나님 말씀을 따르지 않는 가나안 백성들이 존재해서는 안되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모든 가나안 왕과 민족들을 멸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에서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진정한 평화가 올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도 같은 선상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앞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화평을 주러오지 않았다’라는 말씀의 화평은 우리가 생각하는 화평입니다. 그저 편하게 살아가는 삶이죠.
하지만 그렇게 살아가서는 절대 주님이 원하시는 말씀대로의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왜냐? 주변의 악한 영들이 우리를 유혹할 것이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셔서 그의 성도들이 세상의 영들과 싸울 검을 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친구들, 아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친구들이 세상 속에서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바랄거에요.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살아갈수가 없습니다. 아니, 성도들만은 절대로 그렇게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세상에는 주님을 모르는 이들이 많고,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방해하는 사탄의 세력들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싸워야합니다. 힘들고, 어렵고, 불편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공격하는 이들과 맞서 싸워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말씀을 지키고, 더 나아가서는 그 말씀이 이 세상에 바로 서서 진정한 평화를 누릴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때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한가지 사건을 소개해주도록 하겠습니다. 사진 보여주시겠어요?
자 친구들, 사진에 누가 나와있죠? 승려도 있고, 무슨 선비같은 분도 있고, 이상한 옷을 입은 분도 있고 그렇죠.
그럼 친구들, 여기 이 사진이 무슨 행사 사진인 것 같아요? 놀랍게도 교회와 관련된 행사의 사진입니다.
바로 세계교회협의회라고 하는 WCC총회 행사인데요, WCC는 어떤 곳이냐면, 더이상 세계의 교회가 나누어져서는 안된다라는 생각으로 교회가 하나되자라고 주장하면서 여러 교회들이 한데 모이게 된 곳입니다.
이것만 들으면 되게 좋게 느껴지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여러 교회들을 한데 묶다보니 잘못된 것들을 ‘다른’것이라고 포장하여 괜찮은 것처럼 주장하는 경우들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는 진리는 뭐에요? 오직 말씀, 그리고 그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이 있다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이 안에서는 꼭 그것만 구원은 아니다 라는 식으로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친구들 이게 괜찮은 것인가요? 그렇지 않죠.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곳에 있는 분들은 이렇게 행동하게 된 것일까요? 바로 세상적인 평화를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그냥 같이 모여서 잘 지내면 모두가 좋지 라는 생각으로 좋은게 좋은거야 라는 식으로 모이니까 이러한 잘못된 모습이 보이게 된 것이죠.
그래서 우리 장로교 개혁교회에서는 WCC운동을 반대하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가 더이상 분열되고 해서는 안되겠지만, 가장 기본인 하나님의 말씀만은 우리가 양보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평화는 오직 말씀으로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친구들, 오늘 말씀을 함께 보면서, 진정한 평화는 좋은게 좋은 거야라는 식의 평화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바로 선 것이 진정한 평화라는 것을 함께 보았습니다.
아마 우리 친구들의 삶에서도 이러한 갈등의 순간들이 찾아올지 몰라요. 아니, 다른사람들이 싫어하는데 전도하면 안되는 것 아냐? 코로나가 아직도 있는데, 교회가면 안되는 것 아냐? 이런 식의 갈등이죠.
물론 어느정도는 사람들과 맞춰 가는 것들이 필요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너무 세상의 시선들에 맞춰간다면, 우리는 결국 여호수아와 같은 진정한 평화를 누릴 수 없을 거에요.
여호수아가 가나안에서 진정한 평화를 누리기 위해 모든 가나안 민족들을 멸했던 것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평화를 위해 말씀을 공격하는 이들과 싸워 승리할 수 있는, 그래서 하나님과 함께 진정한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우리 모든 중등부 친구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함께 찬양하도록 하겠습니다. 함께할 찬양은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기 위해 우리를 부르셨다는 사실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진정한 평화를 주실 그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함께 찬양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진정한 평화는 오직 말씀 안에 있다는 것을 바라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의 눈으로는 세상이 말하는 평화가 편하고 좋게 느껴지는 때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말씀을 따라야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따르지 못하고 주저하는 모습들이 우리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오직 말씀을 통해 얻는 진정한 평화라는 것을 기억하고, 세상과 싸워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우리 모든 중등부 친구들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우리가 다시 세상 속으로 나아갑니다. 우리를 지켜주시고 주님의 평화로 인도하실 주님을 의지하며 모든 말씀 평화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