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세우시는 가정(시12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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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2년 9월 11일 주일
제목 : 주께서 세우시는 가정
본문 : 시편 127편 1-5절 *구899
결단찬양 : 나를 부르신 주
[도입]
추석 명절의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 가운데 나아오신 귀한 청소년부 여러분들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그런 의미로 우리 좌우로 또 앞뒤로 이렇게 인사해봅시다. “우리 송편보다 더 달고 맛있는 말씀, 함께 먹자.”
이런 날 설교가 길어지거나 또 2부 행사로 공과모임을 진행한다거나 하면 여러분들의 불평과 불만이 그 어느 때보다 클 것을 알기에 가능한 핵심 메세지만 전하는 오늘의 시간이 되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다만 노력이지 100% 그렇게 할 장담은 없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있어 추석은 어떤 날입니까? 또 이번 추석은 어떤 추석이길 소망하십니까? 보통 추석이라 함은 크게 뭐 생각이 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저 맛있는거 먹는 날, 용돈 받는 날, 쉬는 날, 할머니 할아버지 만나는 날 정도의 생각 뿐이지 그 외 생각이 그리 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늘 추석 명절 때만 되면 이렇게 설교합니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전도합시다! 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막상 가보면 사실 전도할 상황이 만들어지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긴밀히 대화할 시간이 따로 주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저는 여러분들에게 믿지 않는 가족들을 향해 복음을 전하라 선포할 것인데, 사실 이는 이번 뿐만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명절에만 이루어지는 단편적 행사가 아닙니다. 매일 또 매주 또 매번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 복음을 전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왜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가? 도대체 명절에 우리가 귀찮게시리 복음을 전하는 것이 왜 필요한가 말씀을 통해 나누고자 합니다.
[성전을 오르며 부르는 노래]
오늘의 본문 시편 127편을 보면 이렇게 소제목이 달려 있음을 보게 됩니다. “솔로몬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다른건 몰라도 시편 127편이 솔로몬이 기록한 시라는 것은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솔로몬 뒤에 나오는 제목을 좀 봐야 하는데, 무엇이라 말합니까?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 교회, 이 언덕을 올라오시며 찬양을 부르며 올라오시는 분이 계십니까? 제가 차를 타고 교회를 오가다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걸어 올라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그래서 경험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결단 내렸습니다. ‘차값이 비싼 이유가 있고, 차가 만들어진 이유는 충분히 증명되었다.’라고 말입니다.
이 길을 걸어 오르락 내리락 하는데 쉬운 길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지금 날이 너무 좋아 다를 수는 있지만, 한 여름에 이 길을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은 비단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 솔로몬이 성전에 오르며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임이 짐작이 갑니다. 어쩌면 성전은 이 오르막보다 더 했을 것인데 솔로몬이 노래를 부르며 성전을 올랐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대단하게까지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들이 어떤 노래를 부르며 올랐을까 하고 찾아보니, 이런 영상이 있어 함께 보았으면 합니다. (영상 상영)
이들은 한 계단, 한 계단을 오르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 모습이 솔로몬이 성전에 오르며 불렀을 그런 모습일 것입니다.
[노래가 담은 메세지]
그렇게 성전을 부르며 불렀던 노래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까? 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않으면 어떻다 말합니까? ‘헛되다’고 말합니다. 또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이 깨어 지킨다 한들 그 수고가 헛되다 말합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누고자 했던, 왜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1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매번 명절만 되면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해라, 믿지 않는 가족에게 복음을 전할 좋은 기회라 말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운 가정이 아니라면 그 세움은 헛되다는 것이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키지 아니하는 가정은 암만 지켜도 헛된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물을 수 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안믿으시는데, 그렇다면 저희 집은 헛된 겁니까?”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헛됩니까? 결코 그런 가정을 바라보며 헛되다 말할 용기는 없습니다. 다만 여호와께서 세우신 가정이 아니라면, 여호와께서 보호하시는 집이 아니라면 ‘완전한 평안’이 없을 것입니다. 세워가는 그 가정이 무너지지 않을까 염려할 것이고, 또 누군가 탐하지 않을까 시시콜콜 걱정과 불안 가운데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정은 완전한 평안이 허락됩니다. 또 지키시는 그 가정은 안전합니다.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그 주님께서 우리를 온전히 보호하실 것이기에 우리는 평안하고 안전합니다.
여호와가 없는 가정은 2절의 기록처럼, 일찍 일어나 늦게 잘 정도로 수고하고 노력해도 부족함을 느낍니다. 늘 불안합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 함께 하는 가정에는 잠을 허락하십니다. 물질이 먼저가 아니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평안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저도 신학이 아니라, 목회가 아니라 원래 하던 일을 지속적으로 해 나갔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잘 벌었을지도 모릅니다. 또 안정적인 수입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때의 삶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면, 과연 나의 삶이 정말 행복했을까 묻는다면 고민이 될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평안합니다. 물론 물질적으로 넉넉한 삶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제 삶이 제 목을 옥죄지 않습니다. 충분히 쉴만한 물가와 푸른 풀밭으로 인도하시는 그 주님의 지팡이를 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평안합니다.
바라옵기로는 이 평안이 여러분들의 삶에도, 또 가정에도 주어지길 소망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 복음을 여러분들도 함께 누리고 싶지 않으십니까?
마지막으로 우리 3절의 말씀을 함께 읽으며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적용]
기업이자 열매자 상급되시는 청소년부 여러분. 복음의 근원지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단순 가정 가운데 희망이고 소망이기보다 세상의 희망이고 소망이 되길 소망합니다.
먼저는 여호와 하나님과 온전히 동행하는 친구들 되길 소망합니다. 그래서 어딜 걸어가든 늘 여호와의 임재에 기쁨과 감사가 차고 넘치는 친구들 되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그 기쁨과 감사를 믿지 않는 자들에게 전하고 또 전하길 소망합니다. 복음 전도자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는 친구들 되길 소망합니다.
왜 우리가 이 소명, 감당해야 합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지키시는 그 가정이 복되고 평안하고 안전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