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12 새벽] 누가 우리의 진정한 주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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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370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본문 마6:19-34
자비하신 하나님,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돈이나 명예와 같은 세상에서 주 라고 불리우는 다양한 존재들을 만나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것들을 주로 섬기며 그것을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주님, 우리의 마음을 붙들어 주시어 허황된 것들을 주로 섬기지 않게 하시고, 오직 참되고 살아계신 삼위하나님만을 우리의 주로 섬기며,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삶 살게 하시기를 간구합니다. 어떠한 상황과 환경속에서도 먼저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할 수 있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명절연휴의 마지막날입니다. 이동하는 모든 주의 권속들의 안전을 붙들어 주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돈이면 다 되는, 돈이 최고의 가치를 갖는 황금만능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세상의 가치가 이러하기 때문에 할수만 있거든 돈을 모으려 하고, 또한 돈을 모으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제가 군대 전역을 할 즈음에 로또 열풍이 불었었다. 또한 로또 열풍이 조금씩 사라져갈 무렵에 스포츠 도박이 기승을 부렸었다. 고액 당첨금을 건 복권과 스포츠 도박과 같은 것들은 허황된 일확천금 욕망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 년 전에 어떤 대학생을 면담했던 기억이 있다. ‘너는 취미가 뭐니?’라고 물었더니, 그 청년이 하는 말이 자신이 매달 용돈을 받으면 그 용돈에서 십분의 일을 로또 긁는데 쓴다는 것이다. 여러분, 제가 도박이나 복권과도 같은 것들을 예로 들어 말씀드리고 있다. 세상은 이것들을 취미로 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티비 광고에서는 여러분이 복권을 사게 되면 그 수익금으로 많은 불우이웃들을 도울 수 있다고 부추기기도 한다. 그러나 여러분, 성경은 일한 만큼만 누리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한다. 요행을 바라며, 일확천금을 기대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다.
반면 내가 합법적으로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으는 것은 어떨까? 이는 마땅히 권장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모든 상황들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직장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여가시간에서도 최선을 다하며, 가족관계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오로지 돈 만을 위하여, 돈 만을 원하며 모든 관심과 기준이 돈에만 혈안이 되어 그것에만 몰두하는 것을 성경은 탐심이라 말한다. 어떤 신학자는 ‘세상에 돈이라는 우상보다 사람을 더 타락시키는 우상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초대교회 교부였던 어거스틴 역시도 탐심에 대해 설명하기를 ‘충족한 것보다 더 가지기를 원하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내가 이미 충분한 것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더 누리기 원하는 것이다. 성경은 이러한 탐심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 말한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고 말한다.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는 탐욕이 하나님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게 한다. 물질에 대한 탐심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못하게 하고, 그 탐심은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게 하고, 그 탐심은 결국 살인하게 하고, 간음하게 하고, 도적질하게 하고 거짓말 하게 한다.
여러분, 이 말을 오해하지 마시기를 바란다. 열심히 일을 해서 그에 합당한 물질을 모으는 것은 결코 죄가 아니다. 돈이라는 것은 가치 중립적이다. 그것을 소유한 자에 따라 선하게 혹은 악하게 사용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돈이 악이라고 말씀하셨는가?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근원이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에 집착하고, 그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상태를 말씀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의 말씀 21절에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라고 하셨다.
제가 초등학교 1학년때 당시 저를 이뻐해 주셨던 막내이모가 선물로 티비와 연결해서 하는 게임기를 선물해 주셨었다. 그 당시 저는 군인이셨던 아버지를 따라서 경남 곤양이라는 촌동네에서 살고 있었다. 그 시골에 놀만한게 뭐가 있겠는가? 개울가에서 친구들과 물장구 치고 집에와서 티비보던게 전부였던 때였는데, 학교에 가 있는 동안에도 게임이 머릿속에 돌아다니고, 밥을 먹고 있을 때에도 게임이 머릿속에 돌아다니더라. 잠을 자려고 누워도 천장 속에서 게임이 상상이 든다. 밖에서 친구들과 공을 차도 온통 게임생각 뿐이다.
여러분, 주님께서는 네 보물있는 그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물질을 보물로 여기어 그것만을 애지중지 하고 그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면, 사랑하라고 붙여주신 형제 자매들도 안중에도 없고, 사명을 주시고 이 땅에 보내 주신 아버지의 뜻도 안중에도 없으며, 심지어 재물을 허락하신 하나님도 안중에도 없다. 오로지 그 재물 뿐이다. 그래서 24절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라고 말씀하신다.
여러분, 재물에 대한 교훈의 말씀을 살펴보면 ‘땅에 있는 보물’과 ‘하늘에 있는 보물’이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음을 보게 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늘의 보물은 무엇일까? 선한 행위를 통한 하나님 아버지의 보상을 의미할까? 물론 그것도 어느 정도 맞는 말이겠지만, 하늘의 가장 위대한 보화는 바로 하나님 아버지 그 자신이시다. 주님을 따르는 자들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온전히 마음의 중심을 맞춘다면, 이 세상의 부귀영화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무색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재물에 대한 교훈은 24절 말씀처럼 두 주인 사이에서 누구를 선택할 것인지에서 정점에 달한다. ‘지금 당신의 마음의 주인은 누구인가? 하나님인가 아니면 재물인가? 둘중 하나만 택하라!’ 마음의 주인에 대한 충성심은 극단적이다. 한 쪽을 사랑한다면 다른 한 쪽은 경히 여길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은 단순히 감정적 차원의 문제를 뛰어넘어 완전하게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섬김의 문제라는 것이다.
두번째 단락에서의 핵심도 이와 같다. ‘근심이나 염려가 우리에게 뭔가를 제공해 주는가? 아니면 하나님만이 우리의 진정한 제공자가 되시는가?’ 제가 군대에 있을 때 만났던 어떤 선임은 매사에 조심성이 좀 심각할 정도로 많은 편이었다. 조심성만 많으면 좋을텐데 매사에 걱정과 염려 또한 너무나도 많았다. ‘오늘 날씨가 안좋은데 갑자기 비라도 쏟아지면 어떡하지? 이번주 야간근무를 서야 하는데 졸리면 어떡하지? 새벽에 경계근무를 나가야 하는데 피곤해서 어떡하지? 오늘 식사 메뉴는 내가 안좋아하는 반찬 나오면 어떡하지?
여러분, 우리가 모든 일에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임하는 것은 좋은 일이나,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과도하게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모든 일을 준비할 때에 일어날 법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일을 철저하게 대비하고 준비하는 것이 뭐가 나쁘겠는가? 그러나 매사에 걱정과 염려에 매여서 다른 일조차 진행할 수 없고, 오로지 마음의 중심이 그것에만 쏠려서 어떤 일도 손에 잡을 수 없는 상태라면 어떠할까? 예수님께서는 공중의 나는 새 조차도 먹이시고 기르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염려한다 해서 키를 한 자라도 더 자라게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결론은 무엇인가? 오늘 본문의 핵심 구절이라 할 수 있는 33절 말씀을 함께 봉독해 보자.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먼저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는 것이다. 나라란 무엇인가? 나라로 번역된 헬라어 바실레이아는 절대 군주가 다스리는 왕국을 의미한다. 하나님 나라란 하나님께서 절대 권력으로 모든 영역을 통치하시는 나라이다. 이 땅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자신의 뜻을 완전히 버리고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하나님의 의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의이다. 곧 당대의 율법주의자들과 같이 외식을 행하며, 남에게 보이기 위한 의가 아니라 산상보훈의 말씀에서 거듭 강조하시는 바와 같이 내면적이고도 절대적인 의이다. 신자들은 하나님만을 그들의 마음과 생활에 있어서 모든 것을 채우시고 다스리시며 공급하시는 진정한 왕으로 인정하고,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마음과 생활에서도, 우리의 문화나 정치나 상업이나 과학이나 생계 모든 면에서도, 오직 그분만을 왕으로 인정하여 모시도록 온 힘을 다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말씀을 정리한다. 여러분, 다시 한번 오늘 설교의 주제를 말씀드린다. 누가 저와 여러분의 진정한 주인이 되시는가? 그리고 누가 우리의 진정한 제공자가 되시는가? 오직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뿐이다. 온 우주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지금도 온 역사를 주장하시고 다스리시며, 앞으로도 영원히 다스리실 만왕의 왕 우리 하나님 뿐임을 확신하시기를 바란다. 이 사실을 붙든다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처럼, 그들이 구하는 것들, 그들이 찾는 것들, 그들이 두드리는 것들에 미혹되지 말아야 한다. 적어도 우리는 그들과 구별되어야 한다. 세상 가운데 뒤섞여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과는 다른 가치관을 품고 살아가야 한다. 동화될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은 나의 이름을 내걸고 싶어하고, 내가 영광을 받고 싶어하며, 남을 밟고 올라서서라도 내가 움켜쥐려고 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인 우리는 달라야 한다. 하나님의 주인되심을 고백하는 자라면, 하나님만이 우리의 진정한 제공자 되심을 확신하는 자라면, 더이상 내 나라가 오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 나라를 구해야 한다. 더이상 내 의를 구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우리가 되자.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삶의 환경들 가운데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더하실 우리의 진정한 주인이 되시고 우리의 선하신 제공자가 되시는, 하나님만을 붙들며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함께 기도하자.
주여, 늘 연약하고 넘어지기 쉬운 우리이오나, 날마다 크신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하나님 외에 다른 존재를 주로 섬기는 악을 행하지 않게 하여주소서. 하나님만이 우리의 참된 주인이심을 확신하며, 하나님만이 우리의 선하신 제공자가 되심을 붙들어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할 수 있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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