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받고 구원하는 나라

사무엘상 강해 시리즈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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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의 나라는 구원 받은 나라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하나님의 나라는 구원 받은 나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본문 1절에 사람들이 다윗에게 이야기합니다. “보소서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 마당을 탈취하더이다”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침공했습니다. 그 장소는 그일라의 타작마당입니다. 타작 마당은 곡식을 수확한 이후에 곡식을 놔두고 타작을 하던 장소입니다. 타작마당을 탈취한 것은 아마도 이스라엘의 추수기가 되어서 곡식이 타작마당에 저장되어 있는 것을 보고 침략을 한 것 같습니다. 원래 추수기가 되면 타작마당에서 타작을 할 때 추수를 기념하는 축제를 합니다. 이 축제를 하는 기간에 보아스와 룻이 서로 혼인 약속을 했습니다. 타작마당은 풍성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타작마당이 블레셋 군인들의 군홧발로 짓밟히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기쁨이 복음을 대적하는 세력들에 의해 침략당하고 있습니다.
한편 다윗은 사람들에게 이 침략 소식을 듣게 됩니다. 여기 이 사람들은 다윗과 함께 한 사람이라기 보다는 그냥 평범한 이스라엘 사람들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왜냐면 다윗과 함께 있는 사람들은 3절에 그냥 사람들이라고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다윗의 사람이라고 되어 있고 다윗의 사람들은 다윗이 그일라를 도와주러 가는 것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에게 이 침공소식을 전한다는 것입니다. 원래 이 침공 소식은 누구에게 전해 주고 누가 먼저 듣고 반응해야 합니까? 이스라엘의 공식적인 왕인 사울에게 이 소식을 전하고 사울이 이 소식에 반응하고 고민해야 하지 않습니까? 심지어 사울은 기름부음을 받을 때 블레셋 민족과 전쟁을 하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공식적인 왕이자, 블레셋과 싸우는 소명을 받은 사울에게는 이 소식을 알리지 않고 다윗에게 이 소식을 알립니다. 7절을 보면 또 재밌는 것이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소식을 전하는데 블레셋이 백성들을 탄압하고 있습니다. 이런 소식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일라에 다윗이 왔습니다.”라고 다윗을 잡기위한 정보만 제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지키는 통치자의 역할을 누가 하고 있습니까? 바로 다윗이 이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사울에게 공식적인 권력이 있고 국군통수권자도 사울이지만 믿음의 관점에서는 다윗이 이스라엘을 구할 왕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과 그가 이끌고 있는 다윗의 사람들이 있는 공동체는 곧 하나님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대리통치자인 다윗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편에 속한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빚진 자, 환난 당한 자, 고통당한 자가 다윗의 편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사울의 정권 아래에서 살아남지 못해서 다윗에게로 온 자들입니다. 다윗은 이들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들이 다윗을 통해 구원 받은 것입니다.
이들을 구원해서 데리고 있는 다윗이 지금 하나님 나라의 통치자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구원 받은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빚진 자, 환난 당한 자, 고통 당한 자들이 다윗에게로 와서 구원 받고 그들이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구원 받은 나라, 구원의 은혜가 있는 나라입니다.
(적용) 다윗에게 신변을 의탁한 이들이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었듯이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또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조건은 우리의 힘이 아닙니다. 우리의 능력이 아닙니다. 미국 같은 강대국의 시민권을 얻으려면 얼마나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증명하거나 부모가 시민권자가 되거나 하는 방법밖엔 없습니다. 능력이 있거나 빽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건 이런 조건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조건은 구원입니다. 빚을 졌다고 해도, 가난하다고 해도, 고통 중에 있다고 하더라도 구원 받았다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요구 조건은 단 하나 바로 구원입니다. 세상에 있는 나라는 자신의 나라에 이득이 되지 않는다면 자기 백성으로 받아주지 않습니다. 어떤 공동체이든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그 사람을 받아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다릅니다. 세상 모든 나라와 공동체 위에 있는 능력의 나라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죄인들과 연약한 자를 백성으로 받아들이고 힘 있는 백성이 되도록 합니다.
우리가 세상 가운데서 힘이 없고 연약한 입장에 있을 때 고난 당하고 있을 때, 나에게는 어떤 소속에 들어갈 능력이 없을 때 위로가 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구원 받아 하나님의 나라에 소속되었다는 것입니다. 결코 무너지지 않고 없어지지 않는 영원하고 강한 나라에 우리가 속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통치하려 들 때 세상이 우리에게 고난을 줄 때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우리가 다시 한 번 세상에 대해 맞설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나라는 구원 하는 나라다.
(설명) 그 다음으로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교훈은 하나님 나라는 구원하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다윗이 이룬 공동체 하나님의 나라는 구원 받을 뿐 아니라 동시에 구원하는 사역도 감당하게 됩니다. 2절을 보시면 블레셋이 그일라를 친다는 소문을 들은 후에 다윗이 하나님께 여쭙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블레셋 군대와 전투를 벌여도 되냐고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고 하십니다. 3절에 보시면 다윗과 함께 있던 자들이 불안했던 것 같습니다. 이 사람들은 구원 받아 하나님 나라 백성된 자들입니다. 고통 당하고 빚지고 원한이 있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그들이 유다에 있기도 두려운데 어떻게 블레셋을 치러가냐고 다윗에게 묻습니다. 현재 사울에게 쫓겨다니는 생활 하는 것도 버거운 데 그 와중에 어떻게 다른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는 일까지 감당할 수 있겠냐고 말하는 것입니다. 4절에서 다윗이 하나님께 한 번 더 여쭤봅니다. 하나님께서 아까와 똑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이 말씀을 듣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일라로 갑니다. 거기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서 그들을 크게 쳐서 죽이고 그일라 주민을 구출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구원받는 나라일 뿐 아니라 구원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개개인은 부족할 수 있습니다. 고통당하고 환난당한 자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부족한 자들을 사용하셔서 세상을 변화시키고 많은 이들을 구원하는 복음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본문을 보시면 다윗의 사람들이 처음에 안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유다에 있어도 사울한테 죽임당할 판인데 그일라로 가서 다른 사람을 어떻게 도와준단 말이냐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구원 사역을 감당하도록 한 계기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윗과 함께 있던 자들이 두려워서 자신의 사명을 거절할 때 다윗은 다른 것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고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알려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백성들이 가서 블레셋 군대를 담당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사울 정권 치하의 고통도 제대로 감당 못해서 아둘람 굴로 피신 온 사람인데 하나님이 세우신 다윗이라는 사람과 함께 훈련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의 지원을 받아서 사울 정권도 못 해낸 블레셋 군과의 전쟁을 감당했습니다. 구원 받아 하나님 나라 백성 된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능력을 얻어 또 다른 구원 사역을 감당하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구원 사역을 감당하고 난 후의 일도 중요합니다. 애초에 다윗의 사람들이 걱정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사울에게 잡히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나려 하고 있습니다. 7절에 보시면 다윗이 그일라로 온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알렸습니다. 사울이 이것을 듣고 모든 백성을 군사로 불러 모았습니다. 블레셋 군대가 그일라로 쳐들어올때는 가만히 있다가 다윗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군사를 모았습니다. 본문에 모든 백성을 군사로 모았다고 하는데 엄청난 병력을 모은 것 같습니다. 이 때 다윗이 사울의 음모를 알고 그가 보호하고 있는 아비아달을 부릅니다. 에봇을 가지고 오라고 합니다. 아마 이 에봇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들으려고 합니다. 여태껏 아비아달을 소개할 때 그냥 아비아달이라고 했는데 9절에서는 제사장 아비아달이라고 하며 아비아달을 제사장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울 정권에는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고 중보사역을 할 제사장이 없지만 다윗의 공동체, 다윗이 소속된 하나님의 나라에는 제사장이 있습니다. 중보자가 있습니다.
다윗은 아비아달과 에봇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물어봅니다. 사울이 다윗 때문에 그일라 성읍을 멸하려고 하는데 과연 이것 때문에 그일라 사람이 다윗을 사울에게 넘겨 줄지 넘겨주지 않을지 물어봅니다. 다윗이 그일라 사람을 도와줬는데 설마 그일라 사람들이 다윗을 사울에게 넘겨주겠나 싶습니다. 그일라가 고통 당할 때 사울은 엄청난 병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만 있었고 다윗은 육백명의 전력가지고 블레셋과 크게 싸워 이겼습니다. 그일라가 다윗의 편을 들어줄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일라가 다윗의 신병을 사울에게로 넘긴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다윗은 그일라를 떠났고 사울은 추적을 멈췄습니다. 그리고 14절을 보시면 사울이 매일 매일 다윗을 추적했는데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기지 않으셨다고 말씀합니다.
다윗과 그 공동체의 여건에서 무리를 해서 그일라를 구원했습니다. 자신들도 목숨의 위험이 있지만 말씀에 순종해서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감당했습니다. 그런데 이 때 어려움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불편해하는 사울이 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제사장 아비아달을 통해, 중보자를 통해 다윗과 그 공동체를 피신시켰습니다. 다윗을 통해 이루신 그 하나님 나라를 보호하셨습니다. 심지어 사울이 매일 매일 쫓는데도 절대 사울의 손아귀에 다윗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사역을 감당하는 하나님 나라 백성들을 끊임없이 지키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그 사명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적용) 구원은 사명과 결코 동떨어지지 않습니다. 구원을 받으면 사명이 반드시 있습니다. 복음을 받았으면 복음을 반드시 전해야 합니다. 섬김을 받았으면 반드시 섬겨야 합니다. 이런 사명이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걱정이 됩니다. 내가 구원 받아서 하나님 자녀 된 것은 참 감사한데, 내가 복음 전하고 섬기는 일을 감당하다가 내가 입장이 더 어려워지고 더 힘들어지면 어떻하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윗의 사람들이 그일라로 가는 것을 망설인 것처럼 망설여질 때가 있습니다. 이 때 주저 앉은 우리들을 일으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그 무리들을 일으켜 함께 사명을 감당한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힘을 얻습니다.
실제로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오늘 하나님께서 에봇을 통해 다윗에게 알려주신 것처럼 하나님은 반드시 피할 길을 내어주십니다. 절대 우리를 사탄 마귀의 손에 넘기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고통과 무기력에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내어주십니다. 그렇게 하셔야 우리가 계속해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뻗어나가기 위해선 우리에게 늘 피할 길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길을 마련하십니다. 다윗이 중보자인 아비아달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에겐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리스도가 교회에 있는 한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사역은 결코 끊어지지 않습니다.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구원 받은 백성들의 나라이며 동시에 구원 사역을 감당하는 구원하는 나라입니다. 이번 한주간도 구원 받은 우리가 구원의 사명, 복음전파와 섬김의 사명을 잘 감당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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