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녀, 종과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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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모에게 순종하라 2. 자녀를 양육하라 3. 상전을 성실하게 모시라 4. 종들을 귀하게 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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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자녀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본문은 부모와 자녀 그리고 종과 주인의 관계에 대한 내용들입니다.
부모님에 대한 자녀의 의무는 1-3절에, 자녀에 대한 부모의 의무는 4절에, 주인에 대한 종의 의무는 5-8절 그리고 종에 대한 주인의 의무는 9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부모와 자녀에 대한 내용인 1-4절을 함께 살펴 보겠습니다.
에베소서는 크게 두 가지 주제로 기록되었습니다. 1-3장은 교리에 대한 내용이, 4-6장은 그리스도인이 살아가야 하는 삶의 방식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대부분 다 알고 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런 삶을 살려면 나에게 익숙한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모와 자녀에 관계 역시 말하지 않아도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기도 했고 또 특별히 유교의 삼강오륜의 영향을 참 많이 받은 나라이기도 합니다. 삼강오륜 중 삼강은 다음과 같습니다.
임금은 신하의 벼리가 되어야 한다. 군위신강
아버지는 자식의 벼리가 되어야 한다. 부위자강
지아비는 지어미의 벼리가 되어야 한다. 부위부강
여기에서 말하는 벼리는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즉 임금은 신하의, 아버지는 자녀의, 남편은 부인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 이죠.
이러한 유교의 가르침이 정말 오래전부터 내려왔기에,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우리는 자녀가 부모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부모가 자녀에게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지를 정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오늘 본문의 1-4절. 자녀가 부모에게 부모가 자녀에게 해야 하는 이 의무는 우리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기도 합니다.
그럼 왜 바울은 자녀와 부모와의 의무와 관계에 대한 말씀을 여기에 기록하고 있을까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십계명 중 5계명인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말씀에 근거해 이 내용을 작성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와 그 의무에 대해 기록해 둔 이유를 이해하려면 먼저 이 당시 에베소 지역의 문화를 알아야 합니다.
에베소 뿐만 아니라 로마의 통치를 받던 지역들에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아이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로마 제국에는 원치 않게 아이를 갖고 낳게 되면 내다 버리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또한 열달을 기다려 아기가 태어나기를 간절히 바랬던 부모들도, 태어난 아기가 약하고 기형의 모습을 갖고 있다면 죽이기도 했습니다.
건강한 아기가 태어나면 어떨까요? 일단은 좋아합니다. 하지만 로마제국은 정말 문란한 성문화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혼도 정말 쉬었습니다.
아기가 잘 자라고 또 똑똑해지면 해질수록 부모들은 아이들은 귀찮아 했습니다. 난잡한 성생활을 방해하고 또 이혼을 해야 하는데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아이들이 자랍니다. 아이들의 정서가 어떠했을까요? 아이들이 이런 상황 속에서 삐뚤어지지 않고 바르게 자랄 수 있었을까요? 부모에게서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합니다. 그리고 사회에 나가면 가르치는 모든 것들이 다 부정적이고 죄를 짓는 일 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은 이것이 죄라는 경각심조차 갖지 못한체 자라게 될 것이고,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성장해 부모들과 똑같은 삶을 반복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자녀와 부모의 관계와 의무에 대한 기록을 남겨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단순히 부모에게 자녀를 아끼고 사랑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자녀들에게 부모님을 공경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들에게 “순종"을 요구합니다. 순종은 마음을 동반합니다. 대상을 향한 사랑과 존중의 마음이 없다면 순종하지 못합니다.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제국의 문화권 안에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들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보다 무시하고 괴롭히고 귀찮아하는 것이 익숙했던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순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강력하게 권면합니다.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의 부모들은 자신들에게 익숙했던 문화를 버리고 예수님의 문화. 성경적 가치관을 갖고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부족한 부분들도 있었겠지만 적어도 이들은 자녀들은 다르게 대하고 품어주려는 모습을 보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들 역시 다른 친구들의 부모들과 다른 나의 부모님을 보며 처음엔 어색했겠지만 그 사랑을 조금씩 받아드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익숙한 습관과 문화를 버리고, 새로운 것을 나의 습관으로 삼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저는 웬만한 악기들을 다 다룰줄 아는데요.
문제는 피아노를 제외하곤 혼자 연습을 해서, 기본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저만의 특이한 습관들이 굳어졌습니다.
기본부터 다시 배워보려고 해도 잘 되지 않더라구요. 자꾸 저의 잘못된 습관대로 악기 연주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 익숙한 습관을 버리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것을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그것처럼 평생 살아왔던 익숙함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습득하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가려고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고민했고 노력을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향해 서로에게 “순종"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순종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 안에서”입니다.
새로운 습관을 익히는 것 정말 어렵습니다. 실패하고 또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자녀와 부모들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고 또 순종하려는 의무를 보이려 한다 해도, 실패하고 넘어질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주 안에서"라는 단서를 달며 서로에게 순종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 안에서 변화 된 부모와 자녀들"이라는 것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주 안에서 변화되었다"는 이 사실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죄로 인해 깨어졌던 하나님과의 관계는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신인 하나님께 범죄했습니다. 신이 아닌 사람들이 서로에게 범죄를 짓는 것은 더 쉽습니다.
관계는 깨어졌고, 로마 제국의 문란한 성문화처럼 사랑은 왜곡되며 욕망으로 변해갔고, 나이가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은 억압하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은 점점 더 악해지고 하나님이 지으신 후 “좋았다!”라고 말씀하신 첫 세상과의 모습을 다 잃어갔습니다.
그 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변화된 존재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바로 에베소 교인 그리고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주 안에서 변화된 존재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상처투성이면서 썩은 내가 진동하는 세상을 변화시키기 시작한 것이죠.
자녀가 부모에게, 부모가 자녀에게 “주 안에서 서로를 향한 의무"를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고 삶으로 드러내며 살아야 한다.
그래야 진정으로 변화된 구원받은 사람의 삶을 살아낼 수 있다.라고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종과 주인의 관계와 의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당시 노예제도는 보편적으로 행해졌던 것입니다. 로마 제국에만 “6천만명의 노예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는 기록이 있을만큼 인구의 많은 비율이 종이였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노예들의 직업들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육체적 노동을 하고 괴롭힘을 당하는 노예들이 아니라 이들 중 일부는 의사, 교사, 행정가 처럼 교육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노예로 살고 또 그들을 통해 사회가 돌아갔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람이 사람을 소유하고 부리는 노예 제도를 큰 문제로 여기지 않았던 것이죠.
하지만 초기 로마에는 “법적으로 노예들은 아무런 권리도 갖지 못하며 소지품일 뿐이며, 사실상 주인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라는 법이 있었습니다.
노예들을 끔찍하게 대하고 괴롭히고 죽이고 했던 역사의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기록들은 기독교 이전의 시대에 대한 내용들입니다.
복음이 전해지던 이 시기에는, 노예를 거느리고 있는 주인들은 대중들의 여론과 자신들의 평판 때문에 노예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주인들은 자신의 종이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며, 자신을 더 부유하게 만들어준다 여겼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인격적으로 대해주었습니다.
주인이 종을 인격적으로 대해준다 해도, 종과 주인의 관계는 복종의 관계일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도 이런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바울은 “가정에서 지켜야하는 의무 목록”종과 주인의 관계를 넣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지켜야하는 의무 목록”에는 부부,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있고, 종과 주인의 관계가 있습니다.
교회 밖에서는 중과 주인의 관계이지만, 교회 안에서는 동일한 기독교 공동체의 일원. 즉 가족이었기 때문에 바울은 이러한 기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 자녀들을 바라보는 태도와 시선이 바뀐 부모들 처럼, 또 부모를 대하는 마음과 태도가 달라진 자녀들처럼
종들 역시 예수님을 만난 후 변화되었습니다. 주인을 위해 살아가다 사라지는 인생이 아닌, 주인 뒤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 사랑의 은혜로 주인을 품고 섬겨야한다는 마음과 생각의 변화가 찾아 온 것이죠.
종들은 내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만큼, 주인을 사랑으로 섬겨야 한다는 새로운 생각과 함께 “주께 하듯" 순종하기 시작합니다. “주께 하듯" 기쁜 마음과 즐거움으로 기꺼이 섬ㄴ기는 것이죠.
이런 종들을 바라보는 주인들에게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종들에게 인정받고 존경 받고 싶다면 너도 종에게 똑같이 행동하라.”
“너 자신에게만 관대하고 종들에게 엄격하지 말고, 동일한 기준으로 그들을 바라보라"
“종들을 지위와 권위로 찍어누르지 말고 같은 사람으로 대하라"
이렇게 말했던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인"되시는데, 주인인 “예수님"은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종들은 예수님을 통해 주인이 종들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을 배우고 있는 것이죠.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자녀와 부모의 관계와 의무 그리고 종과 주인의 관계와 의무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었고 관계와 의무를 보여하는 대상은 달랐지만 이 본문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동일합니다.
그리스도를 만나 구원을 받고 변화되었다면 그것을 보이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창하지 않지만 삶으로 실천할 수 있는 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정말 작은 변화와 실천이지만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부모가 자녀에게 “주 안에서 서로를 향한 의무"를 기억하고
종이 주인에게, 주인이 종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섬기는 의무"를 기억하는 것
이 두가지는 결국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 받은 사랑을 흘려보내는 삶"
“그 사랑을 되갚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제2가족 여러분. 오늘 말씀처럼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 받은 사랑을 흘려보내며, 되갚는 삶"을 살아내시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을 위해 살아야겠다!라는 그 결단이 사랑의 섬김과 베품으로 드러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삶의 작은 부분부터, 적용하며 살아낼 수 있는 은혜와 힘을 공급받는 오늘 하루, 매일의 삶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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