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one Analysis
Overall tone of the sermon
This automated analysis scores the text on the likely presence of emotional, language, and social tones. There are no right or wrong scores; this is just an indication of tones readers or listeners may pick up from the text.
A score of 0.5 or higher indicates the tone is likely present.
Emotion Tone
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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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g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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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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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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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d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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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guage Tone
Analyti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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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fi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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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nta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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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al Tone
Open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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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cientious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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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raver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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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reeable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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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otional 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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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e of specific sentences
Tones
Emotion
Language
Social Tendencies
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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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신혼여행으로, 처음 하나님을 만났던 교회에 갔었습니다.
영적인 부모 같은분들이 계신곳이죠.
그리고 양가 부모님을 만나면서, 신혼여행을 우리가 들어야할말, 그리고 지켜야할말과 감사한 부모님을 뵙고온시간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 가까이에서 보고 배운, 아니면 이렇게 하진 말아야 하겠다는, 어떤 방식으로든의 선생이 있고, 그 첫 선생은 대부분 부모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아하스는 그렇지 않죠.
1절에 보면 다른 왕들은 아버지가 누군지, 또 어머니가 누군지를 이야기 하면서 시작하지만, 그는 부모가 부지했다라는 것을 알 수 있고, 그러한 부재로 인해서 그가 그렇게 악의 길로 갔을수도 있다고 생각하게끔 합니다.
물론 신앙을 제대로 가르쳐주는 아버지 요담의 이름과 어머니의 이름은 28장에서 등장하지 않지만, 오늘 하나님은 그를 어떻게 인도하고 있는지 우리는 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에게 어떤 분이 되어주셨는지, 하나님은 아하스에게 무엇을 하셨는지 오늘 본문은 말해주고있습니다.
첫 번째, 하나님은 아버지로서의 징계를 하십니다.
27장에 보면, 요담은 하나님 앞에 기록된 거룩한 이름이였지만, 아하스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아하스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면, 그러나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는가인데, 그는 하나님을 떠낫어요.
하나님만 떠난게 아니라, 자녀들을 우상에게 넘겨줍니다.
5절을 보면,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아람 왕의 손에 넘기시매.
라고 하고 있죠.
하나님을 떠낫고, 우상숭배의 길로간 그를.
하나님이 뭐 이런게 다있어 하면서 멸망시키거나 끝낸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버지처럼 그의 인생가운데 역사하시면서, 아람왕의 손에 넘기시고, 북 이스라엘손에 넘겨서.
이것은 이 두나라가 동맹을 맺고 유다를 치게 되는 사건을 이야기 하는것입니다.
요담은 아버지로서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두나라의 손에 넘기면서 징계하고 계시는 것을 보게되는것입니다.
6절을 보면 그 징계의 크기가 나오는데, 하루동안 용사 십이만이 죽게됩니다.
엄청난 군사력의 손실이죠.
그리고 7절에는 왕자가 죽고, 가장 측근인 아스리감, 최고권력자인 총리대신 엘가나가 죽게됩니다.
그냥 용사들만 죽은게 아니라, 지휘관이 죽었다라는 것은, 퇴로가 없이 둘러쌂을 당했다는것이죠.
8절에는, 그래도 이스라엘의 한형제들인 북이스라엘이, 이제는 포로로 남유다를 사로잡고, 재물도 노략해가는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징계의 수단이 아니라, 도를 넘었던것이였죠.
하나님의 백성을 전리품처럼 가져가는 것은 도를 넘어서는 것 이기에, 하나님은 가만히 계시지않고, 북이스라엘에게 선지자를 보냅니다.
9절에 오뎃이 등장하는데,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너희가 남유다를 이긴 것은, 너희가 강한게 아니라, 남유다를 징계하실려고 하나님께서 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희가 그 선을 넘어서 살육했다! 이제는 그 살육도 모자라 예루살렘 백성을 노예삼으려는구나.
이러는것입니다.
니네 지금 뭐하는거냐.
이렇게 하는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남유다를 향한 징계의 수위를 조절하는것이죠.
하나님께서 아버지로서 죽지않을정도로 징계하시는것입니다.
아버지로서 징계의 모습을 보이십니다.
그리고 이 아하스에게 어머니의 이름은 기록되지않았지만, 아하스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두 번째로서 어머니로서의,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여러분 북이스라엘은 19명의 왕들이 통치하는동안에 한번도 선한왕이 나오지못한 나라입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반역했는데, 지금까지 수많은, 선지자들을 보냈음에도 꿈적않던 북이스라엘이, 오뎃의 말에는 순종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돌려보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냥 돌려보내지않고, 15절입니다.
읽음.
그냥 하나님말씀듣고 놓아준게 아니라, 종려나무성, 여리고로 데리고 왔습니다.
우리가 잘아는 엘리사의 샘물이 있는곳이죠.
그리고 볒겨진 옷을 입혀줍니다.
신도 못신었던 노예들과 다름없던 그들을, 신도 신켜주고.
먹을 것을 주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러분 이 모습은 마치 그 탕자의 둘째 아들이, 완전히 거지꼴로 돌아오는 그들, 자신의 아들의 신분으로서 회복시켜주는 모습을 연상케하는 것이죠
이렇게 아하스의 인생은 아버지의 이름도 어머니의 이름도 없지만, 하나님은 그의 인생가운데, 어떻게 하셨는가.
마지막 우리가 볼 것은, 이제는 여호와 하나님으로서 아하스를 붙드셨다는 것을 보게됩니다.
여러분 지금 하나님은 엄청난 징계를 내리셨어요.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녹을만큼 긍휼을 배풀어주셨습니다.
그런데 16절을 볼까요.
읽음.
이정도면 하나님께 돌아와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던거죠.
우리가 부모로서 자식을 때릴 때, 얼마나 마음이 아픕니까.
저도 중학교때까지 맞았는데, 때린후의 아버지의 눈물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정신을차릴만큼 때리고, 마음이 녹을만큼 어루만저 주셨는데, 그때에, 아하스가 어디로 향합니까?
앗수르 왕입니다.
그런데 23절을 보면, 단순히 앗수르 왕에게 간게 아니라, 자기를 친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를 하고, 이제는 자신을 친 아람의 신을 경배하는 것을 보게됩니다.
24절에는 하나님의 전을 부수고, 25절에는 이제는 다른신에게 분향을 하게되는것이죠.
이정도면, 하나님이 포기해도 될만하다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16년을 통치했는데, 그 아버지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를 16년동안 붙들고 계세요.
그러면서, 이사야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이사야 7장 10~14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또 아하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 구하라 하시니
아하스가 이르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
이사야가 이르되 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여러분 가장 악한 왕중에 하나인, 아하스에게 하나님께서 약속을 주십니다.
약속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되신것이죠.
징계를 내리는 아버지, 긍휼을 배푸시는 어머니가 아니라, 이제 약속하시는 여호와가 되셔서, 그 약속이 이루어질때가지, 너를 떠나지 않겠다.2 22절에, 이 아하스.
라고 말해주십니다.
여러분 그렇게 범죄해도, 이 아하스라고 불러주십니다.
아하스의 뜻이 뭔지 아십니까?
여호와가 붙잡고 계시다.입니다.
하나님께서 너를 떠너지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임마누엘의 약속을 하시고, 아하스라고 불러주시면서 내가 너를 붙잡고 있다.
여호와가 너를 붙잡고있다고 말씀해 주시는것입니다.
여러분우리가 이것을 깨닳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잡고 있다면 우리가 잘되어야 하는거 아닌가 생각하실수도 있는데, 붙잡고 있기 때문에, 징계가 있는것이고, 긍휼이 있는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놓아버린다면, 그게 가장 무서운거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유기해버리시는것이니까요.
그러나.
여러분 우리인생가운데,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떠나지않겠다고 말씀하시는 분이시다라는것입니다.
그 임마누엘의 약속.
여러분 아하스.
우리가 악한 왕 아하스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27장에 아버지 요담과 비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우리가 비교해야 하는 것은, 아하스와 우리입니다.
우리는 아하스와 그렇게 다르지않습니다.
하지만 선한 아버지께서는 악한아들을 붙들어주시고, 때로는 징계로, 때로는 긍휼로, 그리고 영원히 변치않을 약속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약속은 이루어 졌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떠나지만, 하나님은 그 영원에 영원까지 우리를 붙잡고계십니다.
오늘 아침에 아하스 같은 우리의 인생가운데, 하나님은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그리고 여호와로서 우리를 붙잡고 계시다는 이말씀을 붙잡고, 곤고하면 곤고할수록 세상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징계에 정신을 차리고, 그분의 품어주심에 사랑을 깨닫고, 그분의 언약하심 따라.
그 이름처럼, 여호와를 붙드는 하루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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