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복음의 엑스레이(X-R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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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 151장 (만왕의 왕 내 주께서)
기도 :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이 오후시간에 주의 말씀을 듣습니다. 주의 말씀 들을 때, 성령님 역사하여주시고, 주의 말씀대로 믿고 행할 수 있는 은혜도 더하여 주옵소서. 함께 예배드리는 모든 주의 자녀들이 주님을 더욱 신뢰하고, 주님과 더불어 동행하게 하여 주옵소서.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본문 : 로마서 1:13-32 (28-32), (14-17)
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되는 게 많이 없어요.
실제로는 말입니다.
그런데 가상 현실은 어때요?
가상 현실은 다 될 것 처럼 보입니다.
우리가 영화만 봐도 다 될 것처럼 보입니다.
우주를 날아 다니고,
시공간을 왔다 갔다 하고,
심지어는 외계인들이 침략하고 침투해도, 결국에는 그들을 무찌르고 승리하지 않습니까?
이게 가상 세계에요.
가상 세계에는 모든 것이 다 됩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때요?
현실은 비극적입니다.
현실은 안 되는 것 투성이에요.
*긍정 심리학, 무한 긍정이 독이 될 수 있다.
이런 글이 있어요.
이런 글을 읽어 보니까,
우리가, 인간에 대해 긍정하고,
인간에 대하여 낙관하고,
인간은 할 수 있다. 다 할 수 있다. 뭐든지 할 수 있다.
이게 좋은 거 같은데,
긍정 심리학이, 우리 인생이 독이 될 수도 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글 아니겠습니까.
힘든데도, 괜찮아. 할 수 있어.
아픈데도 괜찮아, 이길 수 있어.
넌 더 할 수 있어.
더 할 수 있어. 더 해낼 수 있어.
이게 긍정 심리학 아니겠습니까?
*더 할 수 있어. 더 해낼 수 있어.
이렇게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을, 조금 어려운 말로, ‘낙관론적 인간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이에요?
인간은 점점 진보한다는 말입니다.
진화론에 따르면요.
진화론에 따르면, 인간이야 말로, 모든 생물들 중에 가장 뛰어난 고등동물이 인간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진화론을 믿는다는 것은,
곧 어떤 인간관을 믿는다는 것입니까?
비관론적 인간관은 아니겠죠?
할 수 있다. 더 할 수 있다. 다 할 수 있다.
이런 인간관을 믿는 게 바로 진화론적 인간관을 믿는다는 것이죠.
그런데 실제로 그렇습니까?
여러분은, 매일매일 진화하나요?
매일매일 성장하나요?
갈수록 지치고, 힘들지 않습니까?
갈수록, 상처받고, 받은 상처가 더디 치료되고 그러지 않습니까?
*트라우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받은 상처가, 떠오르고 또 떠오르고 또 떠올라서,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떠오르는 상태를, 우리가 트라우마 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표현하게 되는데,
이게 문제에요.
왜 그렇습니까?
아니, 좋은 건 왜 그렇게 떠오르고, 또 떠오르고, 또 떠오르지 않고,
왜 안 좋은 것만, 그렇게 떠오르고, 또 떠오르고, 또 떠오르고 그럽니까?
이게 인간이,
낙관적론 인간관이 틀렸다는 반증이에요.
인간이 그렇게 대단합니까?
그렇게 진화했습니까?
그렇게 고등한 존재입니까?
공부를 하고, 지식을 쌓고, 이해력이 높아지면,
상처도 안 받고, 상처를 받아도 금방금방 지워내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로봇같은 존재로 진화하는 게 인간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마치, 내부를 들여다보는 엑스레이 같아요.
엑스레이가 무엇입니까?
인간 내부를 다 비춰볼 수 있어요.
폐도 볼 수 있고, 장기들도 볼 수 있고,
골절도 볼 수 있고,
그래서, 직접 절개하지 않고도, 내부를 다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의료기술이 엑스레이 아닙니까?
29-31절을 읽어볼까요?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엑스레이로 우리 내부를 찍어봤습니다.
로마서 말씀으로, 우리 내부를 찍어 봤습니다.
그런데 뭐가 보입니까?
29절을 다시 보세요.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불의가 가득하답니다.
추악이 가득하답니다.
탐심과 탐욕이 가득하답니다.
상대방에 대한 악의에 찬 마음이 가득하다고합니다.
이게 결과에요.
여러분의 내부를 찍어보니까, 이렇게 나오네요.
또, 이어서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남이 가진 것을 더 눈 뜨고 못 보는 것입니다.
남이 더 좋은 것을 못 보는 거에요.
노력은 하지 않고,
열심은 내지 않고,
그저, 나보다 남이 더 가지고, 나보다 남이 더 잘 되면 배가 아픈 거에요.
그게 시기.
살인은, 상대방을 죽이고 싶은 거,
분쟁은, 다투고, 문제를 일으키고 싶어하는 것,
사기는 말 그대로 상대방을 속이는 것,
뒤에 수군군하는 것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이리저리 던진다.
우리가 바람에 비닐봉지를 던지면, 이리 저리 날아가서 아무데나 도착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상대방에 대한 악의적인 말을 바람에 던지면 어떻게 됩니까?
이리저리 날아다니면서, 여기도 걸리고, 저기도 걸리고 하겠죠?
이게 수군수군이라는 의미입니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까, 이렇게 나오네요?
여러분, 그래서요.
사람에 대한 기대를 그만 멈추어야 합니다.
와, 저 사람 왜 저렇게 불의해?
아니요. 원래 사람이 그렇습니다.
와, 저 사람 왜 저렇게 집착이 심해? 왜 저렇게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거야?
아니요. 원래 사람이 집착이 심하구요. 원래 사람이 나보다 남이 잘 되는 것을 눈뜨고 보는 체질이에요.
뭘, 더 기대하려고 했습니까?
상대방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들 이리저리 퍼뜨리고 다니는 거 보면, 화가 나고, 속이 뒤집어지죠?
아니요. 원래 사람이 그런거에요.
자기보다, 남이 옳아보이는 것을 견디지 못해서, 상대방을 깎아내려야만, 자기 자존감을 세울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요.
그냥 내버려두세요.
기대하지 마세요.
그냥 그런가보다 하세요.
그냥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또 기도해주세요.
그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32절에,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로마서는 1장부터 16장까지인데,
1장부터 11장까지는 믿음의 원리에 대하여 나오고요.
12장부터 16장까지는 그 믿음의 실천에 대하여 나오고 있습니다.
바울이 편지를 많이 썼는데,
신학자들이 바울서신이라고 부르는데,
로마서나, 에베소서나, 골로새서나, 이런 서신들을 보면,
바울이 초반에는 믿음의 원리에 대해 가르치고,
후반부에는 그 믿음대로 사는 실천을 가르칩니다.
로마서도 마찬가지인데요.
우리가 다 죄인이다.
다 죄인이다.
이방인들도 다 죄인이고,
이방인들을 정죄하고 비판하는 유대인들 너희도 다 죄인들이다.
모두 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고,
모두 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구원의 은혜를 얻게 되었느냐?
우리 능력으로 얻은 것이냐?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탁월한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는데, 그게 무엇이냐? 그게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아니냐?
이게 믿음의 원리이고,
이 믿음의 원리대로 살라는 권면이 12장부터 시작되는데,
12장 1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삶의 실천이 나오죠?
12장 2절도 보시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삶의 실천이 나오죠?
13장 1절에도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삶의 실천이 나오죠?
14장 1절에는,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믿음의 연약한 자를 받아 들이고,
믿음의 연약한 자들의 의견을 함부로 무시하거나 비판하지 말라
삶의 실천이 나오죠?
이게 로마서의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1장부터 11장까지는 우리가 어떻게 구원 받았느냐?
우리는 괜찮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까,
말씀의 엑스레이를 찍어보니까,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수군수군하는 것이 가득한 자가 바로 우리 아니었느냐?
그런데 우리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 받았다.
그러므로, 12장부터 너희는,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뜻대로 실천하고 살아라.
이게 로마서의 구조적인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요.
여러분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 날카로운 시선으로 비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 사람이 왜 저래?
왜 저렇게 불의해? 추악해? 욕심이 많아? 시기심이 많아?
이렇게 하면서, 상대방에 대해서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지는 않나요?
*본래 로마교회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되었습니다.
그러니, 유대식 예배를 드리고,
유대식 삶을 살고,
유대식으로 교회를 운영하고,
뭐든지 다 유대식으로 했지 않겠습니까?
그러다가, 글라우디오 황제 때에, 유대인들이 로마에서 모두 추방되는 사건이, 기원후 49년경에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외국인들이 자꾸 사고를 치는 거에요.
로마인들 입장에서 유대인들이나 그리스도인들은 외국인 아닙니까?
외국인들이 자꾸 우리 도시에서 소동을 일으키니까, 민심이 들끓은 것입니다.
그래서 글라우디오 황제가 유대인 추방령을 내려요.
그러면, 로마교회를 운영하던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됩니까?
그 자리를 다 놓고, 떠나야 했겠죠?
그렇게 떠나있는 동안,
로마 교회의 주인이 바뀐 것입니다.
이제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로마교회의 주축이 된 거에요.
권사, 집사, 장로, 모든 중요 직책을 맡아서,
로마교회를 운영하고 이끌어 가고 있었던 거에요.
그러니, 나중에 로마 추방령이 해제되고,
다시 돌아온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황당하지 않겠습니까?
예전에는 유대식으로 예배 드리고,
유대식으로 교회를 운영하고,
그랬는데,
잠깐 추방되서 나갔다가 돌아와보니까, 이게 뭐 교회가 말도 안되게 개판이 되어 있는 거에요.
자기들은 절대 돼지고기는 먹지도 않고,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들은 쳐다도 보지 않았는데,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야,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받지, 음식으로 구원 받냐? 하면서,
돼지고기도 먹고,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도 자유롭게 먹고 마시는 것을 보면서,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시험에 든 것입니다.
그러니,
유대 그리스도인들 입장에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죄악 덩어리가 없는거에요.
아니, 뭐 저렇게 죄란 죄는 다 지으면서 교회를 다닐 수가 있냐?
하나님이 금지한 음식을 먹지를 않나?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사다가 먹고 마시지를 않나?
이게 말이 되는가?
또, 반대편 이방인 그리스도인들 입장에서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갑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뭐 신앙생활을 저렇게 갑갑하게 하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고 하셨는데,
아직도 구약 정결예법에 얽매여서,
바리새인들처럼 신앙생활하고 있나?
이렇게 비판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면, 바울이 둘 중에 누구 편을 들어줬겠습니까?
어떨 때는 유대인 편을 들어준 거 같기도 하고,
어떨 때는 이방인 편을 들어준 거 같기도 해요.
그런데, 나중에 보면, 그 누구의 편도 아니고,
예수 편이고,
교회 편이고,
선교 역사의 편이고,
하나님 나라 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때는 은혜를 강조하면서, 율법에서 우리가 해방되었다고 이야기하면서, 이방인 편을 들어주는 것 같다가도,
나중에 가서는, 그러면 은혜를 받은 우리가 율법을 폐기하느냐? 라고 하면서, 다시 유대인 편을 들어주는 거 같잖아요?
바울은 그 누구의 편도 아니고,
예수 편이고,
교회 편이고,
복음 편이고,
복음이 스페인까지 잘 전달되기를 바라는 선교 역사 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맺는데요.
우리가,
비관론적 인간관을 가져야,
공동체를 하나되게 할 수 있습니다.
아,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불의해?
왜 저렇게 악해?
왜 저렇게 욕심이 많아?
아니요. 원래 사람이 그렇게 불의합니다.
욕심이 많구요. 수군수군하구요. 시기심이 많구요. 거짓말도 잘 합니다.
기대치가 높았던 거에요.
인간은 진화하지 않습니다.
시대가 지나고, 과학이 발달하고, 기술이 좋아져도, 인간 내부를 엑스레이도 찍어보면, 여전히 불의, 탐욕, 악의, 비방이 가득가득할 거에요.
그러니,
공동체를 세우는 비결이 뭐냐,
성경이 말하는, 이 엑스레이 사진 결과를 믿고,
상대방에게 그런 모습이 보일 때마다, 아이구, 얼마나 아프겠냐? 얼마나 고통스럽겠냐? 하면서 기도만 해주면 되는 것입니다.
그게 교회를 세우는 거에요.
그게 로마서가 기록된 목적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가지고, 나는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었던가? 나는 교회를 세우는 사람이었던가, 아니면 비방하고 비판하고 정죄하면서 교회를 무너뜨리던 사람이었던가?
우리 가정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었던가?
나는 우리 아내, 남편, 자식, 부모를 비판하고 비방하며, 가정을 무너뜨리는 사람은 아니었던가?
비관적 인간관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나 자신도 스스로 구원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남의 죄를 우리가 어떻게 고쳐줄 수 있겠습니까?
그저 기도하며 은혜를 구할 수 밖에요.
이 시간 기도하실 때, 이런 은혜 달라고. 남에 대해 과도한 기대치를 가졌던 시선을 고쳐서,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타락상 그대로를 믿고, 용서하고 기도하고 품어주는 인생이 되게 해달라고 간절히 간구하겠습니다.
사역
28 그리고 그들이 도키마조(조사하다, 면밀히 밝히다, 옳고나 훌륭하다고 판단하다)하지 않았다, 그 하나님을 에코(가지다, 얻다)하는 것을, 에피그노시스(지식, 인식) 안에. 그 하나님께서 그들을 파라디도미(배반하다, 내어주다, 넘겨주다)하셨다, 아도키모스(실패한, 자격을 잃은, 타락한, 상실한, 부도덕한) 누스(마음, 영, 정신)으로, 카세코(알맞다, 합당하다)하지 않게 행하도록.
*도키마조 : 시험하다, 찬성하다, 동의하다
*에피그노시스 : 지식, 인식
*파라디도미 : 넘겨주다, 물려주다, 전달하다, 배신하다.
히. 나탄 : 사사기에서 27번 등장. 주로 이스라엘이 불순종하였을 때, 이방인들의 손에 넘겨줄 것이라고 경고할 때 사용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사람들을 그들 자신의 죄에 넘겨주신다.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아도키모스 : 시험을 견디지 못한, 쓸모 없는,
*누스 : 마음, 지성, 이해, 이성, 생각
*카세코 : 적합하다
*적당한 중립지대가 없다. 그들은 하나님을 가지고 싶어서, 면밀하게 조사하고 밝히고 판단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미지근하였고, 하나님 가지기를 기뻐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은 넘겨주셨다. 넘겨주다라는 단어는 사사기에서 자주 등장한다.
29 그것들이 이루어졌다(플레로 / 수동 완료). 모든 아디키아(불의, 행악, 불공평), 포네리아(악함, 악의), 플레오넥시아(탐욕), 카키아(악함, 불행)으로 가득한 자들. 프소노스(시기, 투기), 포노스(살인), 에리스(다툼), 돌로스(속임, 거짓말), 카코에떼이아(악의, 적의), 프시쉬리스테스(떠벌이, 수다쟁이)들.
*여기서 바울은 ‘섭리’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다. 플레로가 ‘수동태’로 되어 있다. 이들이 하나님을 그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였기 때문에, 그 섭리대로 그들은 모든 악한 행동을 행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은 그 상실한 마음대로 합당하지 않게 행하도록 그들을 넘겨주셨기 때문이다.
30 카타랄로스(남을 욕하는)자들, 세오스튀게스(하나님을 미워하는)자들, 휘브리스테스(난폭자, 폭행자)들, 휘페레파노스(오만한, 교만한)자들, 알라존(자랑하는 자, 허풍쟁이)들, 카코스(나쁜, 악한, 그릇된) 것들을 에퓨레테스(고안자, 발명자)들, 고뉴스(부모)에게 아페이세스(불순종하는, 반역하는, 거스르는) 자들.
*세오스튀게스
*언어적 죄 : 남을 욕하는 자
*물리적 죄 : 폭행자
*사회적 죄 : 오만한 자, 자랑하는 자, 허풍쟁이, 나쁜 짓을 개발하는 자, 부모를 거역하는 자
31 아쉬네토스(미련한, 우매한, 깨달음이 없는) 자들, 아쉰세토스(신용 없는, 약속을 깨뜨리는)자들, 아스토르고스(무정한, 마음이 굳은, 애정이 부족한) 자들, 아넬레에몬(무정한, 무자비한)한 자들
*아쉬네토스와 아쉰세토스의 발음이 유사하다.
*아쉬네토스 : 어떤 깨달음이 없다는 의미인가?
32 누구든지 그 디카이오마(요구조건, 법령, 명령)를, 그 하나님의, 에피기노스코(알다, 깨닫다, 인식하다)하였다. 이와 같이 행하는 자들은, 사나토스(죽음, 사망, 사형)이 아크시오스(합당한, 마땅한)하다는 것을. 그들만 행하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그들이 쉰유도케오(찬성하다, 동의하다)한다. 그렇게 행하는 자들을.
*모든 사람들이 이런 합당하지 않은 일을 행하면 죽음이 마땅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들만 이런 일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이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찬성하기까지 한다.
낙관주의
기독교 세계관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피조물이자 타락으로 인해 죄성을 가진 존재로 여긴다.
인간성을 낙관적으로 규정하는 세계관에 유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이런 세계관에는 이상 사회론 또는 이상 왕국론이 따라온다는 것이다. 이에 해당하는 전형적인 세계관이 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세계관이다.
16-17세기 과학혁명을 통과하면서 과학적 발견의 눈부신 성과에 고무된 서구인은 인간의 이성에 대한 낙관론을 확신하였다. 이런 식으로 간다면 언젠가 인간이 우주의 모든 진리를 캐낼 수 있으리라는 낙관적 생각이 서구인들 사이에 팽배했다. 이런 분위기가 17-18세기 계몽주의 시대를 열었고 19세기에 극치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적 관점에서 인간성을 ‘통제 불능’이다.
인간은 전적 타락, 전적 부패, 전적 무능의 존재이며 인간의 마음이 만물 가운데 가장 부패하다.
X-Ray
이제 X선을 몸에다가 투과를 하면은,
몸 안에 있는 구조물들을 볼 수 있는 게, X-Ray 촬영이다.
이것을 통해서, 결핵, 폐렴, 폐질환, 폐암, 신장 결석, 장폐색증, 팔다리나 척추 등의 골절 등을 진단할 수 있다.
무한긍정의 힘, 독이 될 수 있다.
긍정 심리학: '무한 긍정'의 힘? 독 될 수도 있다
긍정 심리학: '무한 긍정'의 힘? 독 될 수도 있다
'부정적 감정은 숨겨야 한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언제나 행복한 척을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 같은 것 말이다.
"인생에 모든 가치 있는 것들은 부정적 경험을 극복하는 데서 얻어진다.
베스트셀러 '신경 끄기의 기술(The Subtle Art of Not Giving a F***, 2018)'의 저자 마크 맨슨의 말이다.
맨슨은 "부정적 상황을 피하거나, 가라앉히거나, 또는 애써 무시하려는 시도들은 역효과를 낼 뿐"이라며 "고통을 회피하는 것도 고통의 일면이며, 고생을 회피하는 것도 결국 고생이다. 실패를 부인하는 것도 실패"라고 덧붙였다.
이는 이른바 '무한 긍정'이나 극단적 낙관론이 요구하는 태도들이기도 하다. 낙관론이 얼마나 덧 없든 부정적 감정은 무시하고 가짜 긍정적 태도로 무장하도록 강요하는 것 말이다.
불안 장애 및 최면 치료 전문 심리학자인 안토니오 로델러는 이처럼 통제되지 않은 감정들을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로델러는 "우리 감정의 팔레트는 슬픔, 절망, 분노, 불안 또는 질투 등 통제되지 않은 감정들을 포함한다"고 했다.
그는 "인간의 수많은 감정은 저마다의 쓰임새가 있고, 우리를 둘러싼 환경, 또 몸 안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준다"며 "이 감정들을 무시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베이커는 "해로운 긍정주의는 우리가 힘든 상황을 마주했을 때 느낄 수 있는 넓은 감정의 스펙트럼을 부정하게 만든다"며 "긍정적 감정만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베이커는 "힘든 상황과 마주할 때 일어나는 모든 부정적 감정을 부인하는 일은 당신을 지치게 할 것"이라면서 "이보다 더 나쁜 건 회복력, 즉 부정적 상황에 적응하는 힘을 기를 수 없게 된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이는 우리가 느끼는 실제 감정들로부터 우리를 고립시킨다"며 "우리는 자신이 불완전한 존재임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긍정성 뒤에 숨는다"고 지적했다.
'해로운 긍정주의' 자가진단법
1. 진짜 감정을 감춘다.
2. 무시 또는 묵살을 통해 하나 또는 그 이상의 감정을 떨쳐내려 한다.
3. 당신의 감정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
4. 당신의 기분을 나아지게 만드는 글 등을 보며 다른 사람의 경험을 깎아내린다.
5. 특정 상황에 대해 당신이 느끼는 감정을 인정하는 대신 "이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다" 같은 말들로 상황을 왜곡하려 한다.
6. 상대가 좌절감 등 '긍정적이지 않은' 감정을 표현하면 상대를 비난하거나 부끄럽게 만든다.
7. "뭐 어쩌겠어" 하며 당신을 괴롭히는 문제를 무시한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베이커는 해로운 긍정주의가 일종의 유행이라고 봤다. 그는 이 유행의 배경으로 소셜 미디어를 지목하며 "인터넷에서 보는 타인의 완벽한 인생과 자신의 인생을 비교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베이커는 "사람들은 소셜 미디어에서 가장 완벽한 모습만 보여주려 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는 진 빠지는 일이고 사실과도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가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에 대해 좀 더 솔직해진다면, 모든 종류의 감정을 느끼는데 있어서 더 자유로워질 것"이라며 "우리는 인간이기에 다양한 감정들을 모두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늘 긍정적일 수는 없다"는 조언을 덧붙였다.
구티에레스는 해로운 긍정주의가 널리 퍼진 건 최근 몇 년 사이의 일이지만, 특히 코로나 팬데믹 시기 이 경향이 더 심해졌다고 주장했다.
구티에레스는 "이례적이고 낯선 시간을 보내며 많은 사람들이 불안, 불확실성, 좌절감, 공포를 느끼고 있다"면서 "모두 흔한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해로운 긍정주의가 도를 넘어 위험 수준에 도달했다"고 경고했다.
로델러는 "'다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좋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 반드시 즐거워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차라리 힘든 시기를 겪을 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게 더 현실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로델러는 감정을 파도에 비유하며 "처음엔 격정적이지만 점차 사그라들고 결국엔 거품이 되어 사라져 간다"고 했다.
그는 이어 "감정을 느끼려고 하지 않으면 다음 몰려올 파도에 대한 저항력을 잃게 된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55711250
주석
28
이들은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을 간직하기를 거절한다.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간직하는 것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그, ‘타락한 마음’에 그들을 넘겨 주었습니다.
29-31
그들은 모든 종류의 사악함, 악, 탐욕과 타락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이러한 것들을 보다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 질투, 살인, 투쟁, 기만과 악의, 험담, 중상 모략, 하나님을 미워함, 무례함, 오만함, 자랑, 부모에게 불순종, 수군수군 등.
자신의 우월한 힘, 부, 사회적 지위, 체력, 지적 능력 또는 다른 능력에 대한 자심으로 동료들을 무례한 경멸로 대우하여 하나님의 위엄을 모욕하는 사람.
탐욕은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원한다’
악의는 ‘서로 나쁜 관계를 맺는다’ 또는 ‘서로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
질투 ‘ 서로를 매우 질투한다.’
살인 ‘서로를 죽인다.’
투쟁 ‘날카로운 논쟁과 불화’
원한 ‘그들은 항상 다른 사람들을 최악/가장 나쁜 것으로 생각한다’
가십 ‘서로에 대하여 나쁜 말을 한다’, ‘거짓말을 바람에 던진다.’
오만 ‘그들은 마음속으로 자신이 위대하다고 생각하고 항상 사람들에게 자신이 위대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항상 자신들에게 권력을 주고 있다.’
32
더 나아가서 타락한 인류는, 자신의 과오를 찬양하고 높인다.
요약
그들은 누구인가?
불의로 진리를 억누르는 사람들 (18절)
창세로부터 나타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보고도,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자들 (21절)
창조주를 창조된 것들로 바꾼 어리석은 사람들 (22-23절)
자기 정욕대로 사는 사람들 (24절)
성을 역리로 쓰는 사람들 (26-27절)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사람들 (28절)
죄의 값은 사망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 (32절)
자기만 죄를 지을 뿐 아니라 죄 짓는 자들을 옹호하는 사람들 (32절)
하나님을 아는 지식
하나님을 아는 것 = 성경을 아는 것 = 기독교 인식론
계시된 만큼 알 수 있다.
로마서 개관
1-11장 믿음의 원리
12-16장 믿음의 실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