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18 중고등] 놋뱀과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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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민 21:4-9
배은망덕 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이 말의 의미는 남에게 입은 은혜를 버리고 배신하려는 태도를 가리킨다.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면 딱 이 말이 어울리는 것 같다.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너무나도 큰 은혜를 입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은혜를 쉽게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배신하는 모습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스라엘이 열 두 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으로 보내는 장면을 살펴보았다. 열 두 명의 정탐꾼들은 그 땅을 자세히 살펴보고 돌아와서 이스라엘 회중들에게 결과를 보고한다. 그들의 보고는 너무나도 참혹했다. 그 땅에 거주하는 거주민들의 키가 자신들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크고 강대하며, 그들이 가진 무기도 자신들보다 강했고, 그들의 전쟁 능력도 자신들보다 훨씬 강했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판단과 생각을 기준으로 이 정복전쟁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자신들을 애굽으로부터 여기까지 인도하여내신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불평의 말들을 쏟아 놓는다.
분명 하나님께서는 광야생활 가운데 이스라엘의 필요한 부분들을 날마다 공급하셨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셨고, 반석에서 물을 내어 그들로 마시게 하셨고,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그들의 매일 식량을 해결해 주셨다. 분명 그들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시는 은혜들을 누려왔는데, 지금 눈 앞에 선 답답한 현실에 하나님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믿음을 지키며 지금도 변함없이 함께 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자고 소리쳤지만 열명의 정탐꾼들과 이스라엘 온 회중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불평을 늘어놓았고, 그분의 보살핌을 거절하기에 이른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상황과 환경만을 바라보면서 낙심한다. 그들은 변함없이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고 계셨지만 이를 깨닫지 못하고, 눈 앞의 현실에만 집중하여 결국 또 다시 하나님을 원망하기에 이른다. 그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악한 말들을 쏟아내었고, 하나님과 모세가 자신들을 죽이기 위해 일부로 애굽으로부터 끌고 나오셨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여러분, 어찌 이러한 악을 행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얼마나 큰 구원의 은혜를 입었던가?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던 애굽으로부터 건져주셨던 하나님 아니신가? 매 순간 지키시고 돌보시며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 아니었던가? 그런데 어찌 이 모든 은혜들을 한 순간에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이처럼 원망할 수가 있는가?
이러한 이스라엘의 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심판하셨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죄에 대한 심판에 대해 이해하기 쉽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간 사랑의 하나님, 자비하신 아버지 하나님만을 생각해왔지, 죄를 미워하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에 대해서는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도 하지만 죄를 너무나도 미워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원망과 불평의 죄에 대하여 침묵하실 수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막의 불뱀들을 보내셔서 그들을 물어 죽게 하셨다. 이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다시 한번 깨달아야만 했다.
그렇게 뱀에 물려 사람들이 엄청나게 죽어나간다. 이를 지켜보던 모세는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아이고 그래 꼴 좋다! 니들이 그렇게 하나님을 원망하더니 잘됬다" 라고 이스라엘을 향해 빈정거렸는가? 그는 죄의 결과로 인해 비참하게 죽어가는 이스라엘을 바라보며 너무나도 슬퍼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간구하기 시작한다. 분명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저질렀지만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이러한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그들의 죄를 그만 용서해 주시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모세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한 가지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신다. 그것은 8절 말씀처럼 “놋으로 불뱀을 만들어 장대나무 위에 매달고, 뱀에 물린 자마다 그 나무 위에 달린 놋으로 만든 뱀을 볼 때 살 것이다"는 것이다. 아니, 생각해보라. 감기에 걸렸다. 그럼 감기약을 먹어야 한다. 배탈이 났다. 그럼 배탈약을 먹어야 한다. 뱀에 물렸다. 그럼 해독제를 먹어야 낫는다. 이것은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아주 좋은 해독제를 주시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을 말씀하시는가? 9절을 보면 뱀에 물린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았다고 말씀한다. 여기서 “쳐다보다" 라는 단어는 그냥 생각없이 힐긋 처다보는 것을 의미하는게 아니라 온 마음을 집중해서 바라보는 것이다. 즉, 뱀에 물린 자마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믿음을 가지고 마음을 집중해서 나무에 달린 놋으로 만든 뱀을 바라보아야만 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아주 중요한 교훈을 말해준다. 본문의 사건으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영생을 얻어야 하는지 알기 위해 밤중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요 3:14-15 말씀에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가? 민수기 본문에서 일어난 놋뱀 사건은 천년의 시간이 지나고 이 땅에 오실 예수님을 비추는 모형과도 같다. 그 죄로 인하여 뱀에 물렸던 자들이 나무 위에 달린 놋뱀을 믿음으로 바라보았을 때 살 수 있었던 것처럼, 천년 뒤에 골고다 언덕에서 나무 십자가 위에 달리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는 자마다 그들의 죄에서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뱀에 물렸다가 놋뱀을 바라봄으로 구원을 받았던 자들도 결국 시간이 지나고 죽었다. 놋뱀은 아주 일시적인 치료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구원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던 마르다에게 질문하신다. 요11:25-26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 질문을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동일하게 물으신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요, 무릇 살아서 주님을 영접하고 주님을 믿는 자들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인데, 얘야 너는 이 귀한 진리를 믿니?
주님은 오늘 이 자리에 앉아있는 우리에게 동일한 믿음을 요구하신다.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시는 주님 앞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겠는가? 마르다와 같이 “주님 그렇습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시요 지금도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제가 믿습니다" 라고 고백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우리를 영원한 사망 가운데 건지셔서 하나님의 존귀하고 거룩한 자녀로 삼으시는 우리 주님을 믿음으로 고백하여 세상 그 무엇으로도 빼앗을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시는 이 자리의 모든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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