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spel, Can't be impriso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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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부흥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것들이 느껴지십니까? 두근거림, 설렘, 열정과 같은 것들입니까? 아니면 지루함, 권태감, 무력감 같은 것들입니까? 저는 부흥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고 그 모습을 상상만 해도 눈물이 고일만큼 부흥에
선교단체 2천 명, 매 학기 방학마다 예배와 선교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하자 -> 우리 세대에 세계 선교의 사명을 끝내자
모교 청년부 20명에서 100명 복음으로 영혼들을 살리자 -> 살리겠다 결심하라
이렇게 얘기하다보니 뭔가 제 자랑을 하는 듯한 민망한 마음이 드는데요, 절대 아닙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여러분들도 이 부흥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 모두가 기독교 역사상 가장 강력한 부흥이라고 일컬어지는 평양대부흥을 체험한 조선 교회의 후손들이지 않습니까? 지금 여러분들에게도 자랑할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납니다. 놀랍도록 발전한 대한민국 사회와 교회의 위세는 모두 다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부흥의 열매로 주어진 것이고, 우리가 다 은혜로 받아 누리고 있는 것들입니다.
이렇게 부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때의 그 위대했던 시대의 교회와 이 시대의 교회를 비교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습니다. 짧게는 십수 년 전 제가 경험했던 교회와 지금의 교회를 비교해보았을 때, 또 길게는 백여 년 전 조선이 경험했던 교회와 지금의 교회를 비교해보았을 때, 우리 교회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점차 겉모습은 화려해져 가지만 속은 텅 비어간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교회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우리의 근간을 잃어가고 있음을 도무지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모습은 마치 기둥이 썩어가고 부서져가는 건물과 같습니다. 건물의 하중을 견디고 있는 기둥이 무너져내리면 건물 전체가 무너져내릴 수 밖에 없듯, 이 시대의 교회도 곧장 무너져버릴 수도 있는 위태로운 상황 속에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 기독교 신앙과 교회의 뿌리요 줄기인 복음이 점차 희석되고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도사님, 그건 너무 과장이 심한 말인 것 같은데요? 우리는 여전히 복음을 믿고 복음을 나누며 복음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습니다.”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정직하게 역사를 돌아보았을 때, 우리는 분명히 부흥의 때와 지금 무엇인가 현저한 차이가 있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특별히 능력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복음은 점차 희석되고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자주 은혜나 진리, 사랑과 관련해서 복음을 설명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들만큼이나 자주 사용한 것이 능력이었지요.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롬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우리가 지금 읽은 개역개정에는 약간의 의역이 들어갔는데요, 헬라어에는 사실 “된다”라는 표현은 없습니다. 조금 더 원문에 가깝게 번역하면 이런 문장이 되지요.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가장 핵심적인 단어들로만 추려서 다시 문장을 써봅시다.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바울의 선포 속에 아주 견고한 믿음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 보이십니까? 이것이 바울이 그토록 놀라운 역사를 이뤄갈 수 있었던 이유였습니다. 또한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각자가 살았던 시대 속에서 바울과 같이 놀라운 역사를 이뤄갈 수 있었던 이유였습니다. 복음은 능력입니다. 복음은 다른 누구의 능력도 아닌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얼마만큼 확신하고 계십니까? 복음의 능력에 대해서, 복음을 통해 나타내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얼마만큼 알고, 얼마만큼 의지하고 있습니까?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해 모두가 다 복음의 능력에 대해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가지게 되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은 사도행전의 본문입니다. 사도행전에 관해서 아주 상식적인 문제를 하나 내볼테니 한 번 맞춰보세요. 사도행전의 이야기 속에서 등장하는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보통 우리는 이런 질문에 베드로요! 바울이요! 하며 대답합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12장까지는 베드로가 주로 등장을 하다가 13장부터는 바울이 주로 등장을 하지요. 하지만 사도행전의 주인공을 베드로와 바울로 보는 것은 표면적으로만 옳습니다. 사실 사도행전이 추적하고 있는 것은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복음의 전파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복음의 전파는 성령께서 주도하는 하나님의 역사구요. 따라서 사도행전의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성령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도입부에서 이미 이러한 사실을 밝혔습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누가는 분명히 이 구절을 통해 밝히는대로 사도행전의 이야기들을 주욱 풀어나갑니다. 즉, 사도행전은 성령께서 주도하시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들을 통해 전파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해서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나아가는 순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16장은 이제 바울을 통해 땅끝으로 복음이 전파되는 이야기의 흐름 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1절에서 복음을 가지고 빌립보에 도착한 바울과 그 일행은 귀신들린 여종을 만나게 됩니다. 이 여종은 점치는 귀신에 들렸다고 하는데,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이 여종이 “퓌톤의 영에 씌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수도 있는데요, 위키디피아에 잘 정리된 내용이 있어서 발췌를 좀 해봤습니다.
“피톤은 거대하고 새까만 독사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는 대지의 모신인 가이아가 남성 없이 낳은 자식이며, 대홍수 이후에 진흙에서 기어나왔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는 자신이 지배하고 있던 성지 피토(델포이의 옛 이름)를 피톤에게 이양해주며 그가 사람들에게 예언을 내릴 것을 허락했다. 이 뱀은 예지능력이 있었는데, 혹은 가이아가 줘서 가이아의 말을 전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아폴론이 자신을 죽이고 자리를 차지할 것을 예감하고는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의 어머니 레토를 잡아먹으려고 했으나 실패한다.아폴론은 어머니의 원수를 갚기 위해 화살로 피톤의 가슴과 몸통, 배를 맞춰 죽였으며, 피톤의 아내 피티아는 죽이지 않고 살려두어 인간으로 만들어주고 델포이의 신전의 무녀로 임명했다고 한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여종이 그저 그런 수준의 동네 무당이 아니라, 무려 델포이 신전의 무녀였다는 말입니다. 당시 로마 사람들은 델포이에서 받은 신탁을 엄청나게 신뢰하였습니다. 그리스 최고의 철학자인 소크라테스도 그 델포이에서 신탁을 받고 철학자의 삶을 시작했을 정도로 델포이의 신탁은 당시 가장 확실한 진리로 여겨졌는데, 바울은 빌립보에 도착해서 델포이의 무녀를 만난 것입니다.
이 여종은 바울을 따라가면서 자기 속에 있는 영에 이끌려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들인데, 여러분에게 구원의 길을 전하고 있다.”(행16:17) 하고 소리쳤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인 복음이 빌립보 지역에 이르게 되니, 영적인 세계에서 먼저 요동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바울은 이런 소란을 여러 날 견디다가 끝내 거의 홧김에 귀신을 쫓아냅니다. 그런데 왜 바울은 귀신을 곧바로 쫓아내지 않았을까요? 한 기독교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바울은 만약 이 도시에서 큰 소란을 일으키면 상황이 끔찍하게 돌변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분히 로마적인 환경에서 세간의 이목을 피하려 했던 것이다.”
복음이 증거하는 능력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자 귀신들렸던 한 사람이 온전해졌습니다. 얼마나 다행인 일입니까? 한 인생이 어둠에서 빛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나아가는 이 엄청난 은혜를 경험하면서 보이는 주인들의 반응이 충격적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의 돈줄이 끊어졌음을 깨닫고 바울과 실라를 로마의 관원들과 치안관들에게 끌고가 고발합니다. 자신들의 귀신들렸던 여종이 온전해졌다는 이야기는 쏙 뺀 채 말입니다. 그들이 로마의 상관들에게 바울과 실라를 고발하는 말에서 세상이 복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행 16:20-21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세상의 눈에 복음은 요란하게 하는 것이며,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왜일까요?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면 기존의 죄악된 질서 속에서 세워졌던 것들은 다 허물어지고,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새로운 질서를 좇아 다시 세워지게 됩니다. 그러한 가운데 선과 악이 분명히 드러나 보이게 되지요. 악에 속한 자들은 이런 상황을 절대로 달가워 할 수 없습니다. 회개를 명하는 복음의 가르침을 결코 행할 수도 없습니다. 그들은 악에 사로잡힌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요 3: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의 말씀이 그들의 정서를 정확하게 대변합니다. 그들은 빛을 미워하는 자들입니다.
빛을 미워하는 모두가 한통속이 되어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지 못하도록 공모합니다. 자신들의 죄악이 드러나기를 싫어하는 인간들과 그들의 본거지와 영향력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악한 영들이 손을 맞잡습니다. 복음의 증인으로 보내진 바울과 실라를 심하게 매질하고, 깊은 옥에 가두고, 발에 족쇄를 채우면 더 이상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고, 잠시 그들이 이룬 일에 흡족해하였습니다. 바울과 실라의 모습을 보며 마치 복음이 약해지고, 복음에 족쇄가 채워지고, 복음이 갇혀진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하지만 간밤에 그들의 예상을 전혀 뒤엎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납니다.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며 찬송할 때 하나님께서 지진을 일으키셨습니다. 복음을 가둬두기 위해 만들어둔 모든 것들을 가루처럼, 먼지처럼 만들어 버리셨습니다. 족쇄와 옥문이 박살이 나고 바울과 함께 모든 자들이 자유로운 몸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본문은 결코 찬양에 능력이 있다는 것을 교훈하기 위해 쓰인 것이 아닙니다. 이 본문은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지 못하도록 하는 인간의 어리석고 무모한 시도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전능하신 능력을 나타내시는 것을 전하고 있고, 복음은 절대 어떠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갇힐 수 없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사실을 강력하게 증거하고 있는 것이라구요.
세상은 복음을 족쇄에 메어둘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만, 복음의 능력은 족쇄를 풀어냈습니다. 세상은 복음을 옥에 가두어둘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만, 복음의 능력은 감옥의 문들을 깨부수었습니다. 그리그 그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그곳을 지키던 간수와 온 집안이 구원을 받게 됩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가 매를 맞고, 족쇄에 메이고, 옥에 갇히면 그곳에서는 절대 복음을 전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복음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능력임을 나타냈고, 바울과 실라를 고발했던 자들과 함께 복음에 대해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이라 말했던 자를 구원하였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의 이야기이다. 우리가 바울과 실라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 아니라, 저 로마인들과 같다는 것이다. 자꾸만 복음을 가두어두려고 한다.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 고백하는 우리 자신이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
오늘 우리에게도 복음의 능력으로 깨어져야 할 것이 있다. 복음을 가둬두는 우리 자신의 의심과 두려움이다. 두려움의 차꼬와 의심이라는 옥문이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지진으로 깨어져야 한다. 복음의 능력을 확신할 수 있도록 우리가 먼저 복음의 능력을 경험해야 한다.
어떻게 복음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는가? 복음에 귀기울여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큰 능력을 가지신 분이신지 보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큰 사랑을 가지신 분이신지 보아야 한다. 그 크신 사랑과 능력으로 우리를 위한 모든 은혜와 축복의 약속들을 값주고 사셨음을 깨달아야 한다.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구원을 완전히 이루셨음을 믿어야 한다.
고린도후서 1:20 (NKRV)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잠언 8:17 NKRV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시편 145:19 NKRV
그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예레미야 33:3 (NKRV)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레위기 10:3 NKRV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르시기를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겠고 온 백성 앞에서 내 영광을 나타내리라 하셨느니라 아론이 잠잠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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