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18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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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성의 참 의미

중등부 친구들! 다들 한주 잘 지냈나요? 오늘도 함께 말씀 나누는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우리 지난주에는 추석명절이었죠? 그래서 함께 레크레이션도 하고 했었는데요, 오늘도 특별한 행사가 있죠? 바로 우리 지지난주에 신청했던 내반내정 발표가 오늘 있습니다!
아마 우리 친구들이 많은 기대를 하고 있을 것 같은데요, 물론 내반내정도 중요하지만, 오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뭐겠어요? 바로 오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이겠죠?
그러니 우리 친구들, 잠시만 전도사님에게 집중해서 말씀을 잘 듣고,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 어떤 말씀을 주실지를 잘 듣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나면 새로운 반 친구들하고도 더욱 즐거운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 오늘의 말씀을 살펴볼까요? 오늘 말씀은 한가지 이야기로 시작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옛날에 김씨라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김씨는 자신과 아주 친한 박씨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김씨와 박씨는 서로 정말 절친이었기 때문에 직업도 같은 직업을 가졌다고 합니다. 바로 나무꾼이었죠.
어느날 김씨와 박씨는 여느때처럼 나무를 함께하러 갑니다. 그런데 그날은 여느날과 달랐습니다. 왜냐하면 김씨의 도끼 손잡이가 상해있었기 때문이죠.
결국 김씨가 나무를 하기 위해 도끼로 나무를 찍는 순간 도끼 손잡이가 부서지면서 도끼날이 날라갔고, 하필 그 도끼날이 박씨에게로 향하게 됩니다.
결국 안타깝게도 박씨는 그 도끼날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됩니다.
김씨는 순식간에 눈앞에 벌어진 그 일에 너무나도 당황을 했습니다. 어떻게든 친구를 살려보려 했지만 이미 목숨을 잃은 뒤였죠.
김씨는 앞으로 자신에게 벌어질 일들이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박씨의 가족들이 자신을 찾아와 복수할 것이 두려워진 것이죠.
결국 김씨는 그곳에서 도망쳐 멀리 떨어진 마을로 도망하여 그곳에서 몸을 숨기게 됩니다. 그 곳의 이장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 자신이 복수로 인해 목숨을 잃지 않게 도와달라고 한 것이죠.
아니나다를까 얼마 후 박씨의 가족들이 김씨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이장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김씨를 보호해주었고, 김씨는 박씨의 가족들에게서 목숨을 부지하게 됩니다.
마을의 이장과 마을사람들은 목숨을 구해준 대가로 김씨에게 그 마을의 허드렛일들을 할 것을 요구했고, 김씨는 그 요구에 응해 오랫동안 그 마을의 허드렛일을 하면서 살아갔고, 이장이 죽은 이후에야 그 일들에서 벗어나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자. 친구들, 이야기 잘 들었나요? 이 이야기는 오늘의 본문말씀을 전도사님이 조금 각색해서 이야기로 만들어본 것입니다.
방금 이야기를 들었던 것처럼, 오늘의 말씀은 실수로 살인한 사람이 몸을 피할 수 있는 도피성 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천천히 오늘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왜 이러한 제도를 이스라엘 가운데 주셨는지, 이 제도 안에 숨겨진 하나님의 크신 뜻은 무엇일지, 이시간 함께 살펴보도록 해볼게요.
오늘 말씀 1절을 보면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말씀을 주시죠. 뭐라고 말씀하시나요? 2절에 보면 모세를 통해서 말했던 ‘도피성’들을 정하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우리가 아까 이야기에서 보았던 이웃마을과 같은 것이겠죠.
이어서 하나님은 이 도피성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십니다. 4절부터 6절까지 그 내용이 등장하는데요, 아까 우리가 보았던 것처럼, 실수로 살인을 한 살인자가 도피성의 장로들에게 사연을 설명하고 도피성으로 몸을 피하는 이런 방법을 말씀해주십니다.
그러면 김씨가 목숨을 구했던 것처럼, 살인자는 죽지 않게 됩니다.
보호받는 살인자는 이후 성읍의 회중 앞에서 재판을 받거나, 혹은 그 성읍에 사는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그 도피성에서 거주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김씨가 이장이 죽을 때까지 마을의 허드렛일을 했던 것처럼, 살인자는 대제사장의 일을 도와서 하게 됩니다.
그리고 김씨와 같이, 대제사장이 죽게 되면 도피성에서 떠나 자기 집으로 갈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오늘 말씀은 어떻게 보면 간단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도피성이라는 제도를 만드셨고, 그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간단해보이는 도피성 제도 안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뜻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가장 먼저, 하나님께서 이 도피성 제도를 만드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떻게 보면 우리 친구들은 이해가 잘 안될수도 있어요. 앞의 이야기를 보아도, 김씨 입장에서는 목숨을 구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박씨 가족들 입장에서는 어때요? 자신의 가족이 목숨을 잃었는데, 복수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 거에요. 그러면 박씨 가족들 입장에서는 억울하겠죠
하지만 하나님께서 도피성 제도를 만드신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사랑입니다. 실수로 사람을 죽인 그 백성 한사람의 영혼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이죠.
그러면 하나님은 박씨를 사랑하지 않는 것일까요? 그의 가족들의 슬픔은 신경쓰시지 않는 것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박씨와 그 가족들까지도 사랑하시기에 하나님은 이 도피성 제도를 만드신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자. 한번 다시 김씨와 박씨 이야기를 볼까요?
김씨가 박씨를 실수로 죽이게 된 순간, 김씨는 실수더라도 분명히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법. 즉 하나님의 율법에 따르면 박씨의 가족들은 합법적으로 김씨를 죽일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이후에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요? 김씨의 가족들에게도 동일한 슬픔이 찾아오겠죠. 물론 합법적인 살인이니 무어라 말할 수 없지만, 이러한 복수는 또 다른 슬픔을 가져오고, 심하게는 또 다른 살인을 불러올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정말 사소한 실수로 시작된 일이, 백성들 간의 전쟁으로까지 번질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모두를 사랑하셨습니다. 절대로 그러한 일이 벌어지게 두실 수 없었죠.
그래서 김씨에게 피할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도피성을 마련하셔서, 그 안에만 들어가면 죽음을 피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복수를 아예 막으신 것은 아닙니다. 박씨의 가족이 김씨가 도피성으로 들어가기 전에 그를 찾기만 한다면, 복수를 행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이죠.
또한 김씨가 도피성으로 겨우 들어가더라도, 그 성 안에서 오랫동안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봉사를 해야한다는, 어떻게 보면 현대의 징역과 같은 일들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복수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하신 것이죠. 그리고 대제사장이 죽는 그 죽음으로 김씨가 죽어야 할 죽음을 대신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어떤 친구들은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몰라요. ‘와 그러면 도피성으로 피했는데, 대제사장이 거의 죽기 직전이면 완전 꿀이네요!’
이론적으로 보면 맞는 이야기입니다. 말씀에서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있으라고 했으니까 죽으면 나올 수 있겠죠. 그리고 이 도피성이라는 곳에서 나온 것으로 죄책을 탕감받은 것이니 다시금 복수를 하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친구들, 과연 하나님이 그냥 그렇게 두셨을까요? 물론 이것은 전도사님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전도사님이 보았을 때에는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절대 그렇게 두시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늙은 대제사장이었더라도, 새롭게 도피성에 사람이 들어온다면, 그가 일찍 죽지 않도록 하셨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정의로운 하나님의 방식일 것입니다.
결국 이렇게 하나님은 도피성을 통해 살인자 한 사람의 영혼 역시도, 또한 살인을 당한 사람과 그의 가족까지도 사랑하시는 크신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크신 사랑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만을 사랑하신 것이 아니고, 지금을 사는 우리 역시도 사랑하셨기 때문이죠.
이 도피성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그냥 옛날 이스라엘에 있었던 일 정도로만 생각하게 될지 몰라요.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보다도 훨씬 큰 진리가 그 안에 담겨있는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지금 우리들도 도피성 제도를 이용하였다는 것이죠.
‘엥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지금은 도피성 같은 것들은 없잖아요? 그리고 저는 실수로라도 남을 죽인 적은 없는걸요?’
그렇죠. 친구들은 누구를 죽인 적은 없을거에요. 하지만 친구들은 그것보다도 더 큰 죄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거역한 죄이죠. 우리 안에 있는 가장 큰 죄. 바로 원죄입니다.
우리는 이 원죄때문에 김씨와 같이 쫓길 수 밖에 없는 신세였습니다. 원죄에 대한 벌에서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도망치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도피성을 허락하십니다. 그 도피성은 과연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김씨가 도피성으로 들어가서 목숨을 구했듯이, 우리 모두는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서 죽음에서 우리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지은 원죄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분명 그 죄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는 지어야 했죠.
그래서 그 책임을 예수님께서 대신 지시게 됩니다. 도피성에서 대제사장이 죽듯이, 예수님께서 그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죽음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 죽음이 일어날 때, 김씨가 도피성에서 해방을 하듯, 우리도 죄에서 해방을 받고 자유함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도피성 제도는,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계획하신 예수님의 구원계획을 미리 보여주시는 상징이었던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도피성 제도를 살펴보았는데요,
친구들, 앞서 전도사님이 도피성 제도를 만드신 이유는 무엇이라고 했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라고 했었죠. 마찬가집니다. 하나님은 그때도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피할 도피성이 되시는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를 그 죄의 책임에서, 죽음이라는 형벌에서 벗어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겠어요? 김씨가 도피성에서 대제사장을 돕는 일을 했듯이, 우리도 주님 안에서 주의 일을 위해 살아가는 그러한 모습을 보여야겠죠?
우리 모든 친구들이 이 말씀을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이라는 도피성을 우리에게 허락하셨다는 것에 감사하며 우리의 피난처되시는 주님을 위해 감사함으로 살아갈 수 있는 우리 모든 친구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함께 찬양하도록 할게요. 함께할 찬양은 내 모습 이대로 입니다. 죄많은 우리를 받아주시고 주 안에서 살게하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함께 찬양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의 도피성이 되심을 바라보았습니다. 주님, 우리는 우리의 죄로 인해 살인자와 같이 세상 속에서 쫓기며 방황할 수밖에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스스로 우리의 죄를 지시고 피난처가 되어주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 은혜에 감사하며, 우리의 모든 삶을 주께 드릴 수 있는, 주님을 위해 우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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