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이중 신분

베드로전서 1-1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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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 환영과 인사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 시간에 함께 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가 충만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우리 좌우에 계신 분들에게 ‘함께 하셔서 감사합니다’하고 인사 나눕시다.
네 감사합니다. 이번 학기 일정을 다시 한번 더 주보에 넣어 두었습니다. 아직까지 어디에 참여할지를 정하지 못하신 분들이 계신 것 같아 시간과 장소를 확인할 수 있도록 안내를 해 두었습니다. 주보 내지를 잘 참고하셔서 말씀을 연구하고 내적인 치유와 회복을, 교사로서의 자질들을 잘 익혀가시는 모든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유치부에서 초등부까지의 자녀를 두신 가정들은 수요 기도회의 설교를 항상 참고하셔서 주일에 자녀들이 공부하는 내용을 미리 숙지하시기 바랍니다. 가정 식탁의 자리에서 자녀들이 주일에 배우게 될 말씀을 미리 알고 건강한 신앙 교육을 이루시는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목사님들이 준비하여 그 주에 배울 내용의 말씀을 설교하시니까 모두가 한마음으로 잘 참여하셔서 부모님들과 교사들이 가정과 교회에서 자녀의 신앙 교육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도록 힘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S3. 주제 제시

오늘부터는 베드로전서를 통해 믿음을 가진 성도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베드로전서는 이르면 AD 53,4년 경, 혹은 늦어도 AD 64년 경에 사도 베드로가 일상의 고난과 함께 임박한 박해의 시대를 살 성도를 격려하고 바른 삶을 가르치기 위해 보낸 서신입니다. AD 64년은 황제 네로가 자신에게로 조여오는 로마 대화재의 책임을 기독교인에게 돌리면서 국가적으로 기독교 박해가 시작된 해입니다. 이로부터 AD 313년 콘스탄틴 황제의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가 공인되기까지 약 250여년 동안 열 차례에 걸친 대박해가 로마제국 내에 있었습니다. 베드로전서는 이런 다가올 박해의 시대를 살아야 하는 성도들을 격려하며 성도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침으로써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인도하고 있습니다.
수신자로 알려진 다섯 지역의 성도들은 지금의 터키 타우로스 산맥 북쪽에 위치한 주요 지역에 살고 있었던 이들입니다. 베드로는 이들을 흩어진 사람들, 즉 디아스포라들이라고 소개합니다. ‘디아스포라’라는 말은 바벨론에 의해 남 유다가 멸망 당하고 난 뒤, 페르시야, 헬라, 그리고 로마 제국 아래에서 유대 땅이 아닌 다른 지역들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베드로는 다섯 곳의 광범위한 지역의 흩어진 성도들을 위로하고 세우고 있습니다. 지도를 통해 지역을 확인해 봅시다.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 지도)
: https://blog.daum.net/css1227/641
학자들 간에는 이들 지역 내에 살던 수신자들이 유대인들인지, 아니면 이방인들도 포함되어 있는지에 대해 각각 다르게 말합니다.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라면 베드로는 유대인의 사도이기에 이들을 모두 유대인으로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그러나 본문에 나타나는 표현들은 이들을 이방인처럼 보이게 합니다. 베드로전서 4장 3절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3절
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이런 표현은 수신자들이 유대인이라기보다는 이방인이었을 가능성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것은 학자들의 몫으로 좀 두고 본문에서 베드로를 통해 주시는 메시지를 좀 더 깊이 집중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라 여겨집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에서 성도의 이중의 신분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는 1절에, 또 하나는 2절에 잘 드러납니다. 먼저 1절을 봅시다.
베드로전서 1장 1절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1절에는 서신의 발신자와 수신자가 잘 드러납니다. 발신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베드로 자신입니다. 사도성을 의심받았던 바울과는 달리 확실한 사도로 인정받는 베드로는 자신의 사도적 권위를 통해 흩어진 성도들에게 위로와 격려, 그리고 준엄한 삶의 명령을 전하려고 합니다. 더하여 그는 사도라는 직분을 언급하면서 통해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가 개인의 생각이나 위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성령님의 영감을 통해 주신 위로와 권면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도는 편지를 받는 수신인을 흩어진 나그네라고합니다. ‘나그네’라는 말은 우리 한국어입니다만 원어 ‘파레피데모스’는 ‘이방인 거주자’ 혹은 ‘순례자’라는 뜻을 가집니다. 만약 이들이 유대인들이었다면 이들은 이방인 거주자들이 분명합니다. 물론 유대인이 아니더라도 성도는 본향인 천국을 기다리는 세상의 나그네입니다. 온 땅에 흩어져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천국을 소망하는 성도는 분명 흩어진 ‘나그네’인 것입니다.

S3. 문제 제기

물론 이렇게 보면 의문을 가지실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세상의 나그네로 사는 것이라면 성도는 세상에서 소망 없이 살아가야 하나요? 앞으로 임할 미래의 나라만이 유일한 소망이라면 이 세상에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정처 없이 떠다니는 존재로만 살아야 하나요? 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J1. 하나님의 속성, 성품, 그리고 방법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시고 역사를 시작하신 처음 시점에서 세상과 하나님은 분리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로 계셨고, 인간과 세상은 피조물로서 모두 하나님을 찬양하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이런 까닭에 역사의 처음 시점에는 세상에 산다는 것이 나그네가 아니라 본향인 천국에 사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타락은 인간과 세상을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된 존재가 되게 했고, 결과적으로 부패한 인간은 하나님이 아닌 함께 타락한 세상과 연합한 존재로 변질되었습니다. 이런 까닭에 세상과 연합하여 그에 속한 존재는 더이상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할 수 없고 오히려 세상의 심판과 함께 멸망받을 존재로 전락하게 됩니다.

J2. 하나님이신 예수님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원의 작정을 통해 택하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들이 죄 안에서 심판의 자리에 이르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이신 예수님을 중보자로 보내셔서 이 세상에 택하심을 입은 새로운 백성을 구케 하십니다. 2절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2절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그래서 나그네인 성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버지의 택함을 받은 존재로 거듭나 살게 됩니다. 여기에 성도의 이중의 신분이 존재합니다.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이신 예수님 안에서 영원의 택하심을 받았으나 세상에서는 흩어진 나그네로 사는 성도가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J3. 사람이신 예수님

우리 예수님의 고난과 낮아지심은 죄인으로 세상과 친구로 살던 우리를 구원하셔서 세상에 대하여 나그네가 되게 하시는 은혜의 능력이 되십니다. 성도는 주님 안에서 영원한 택함을 받아 하늘나라 백성이 되었기에 이제 더이상 심판받는 세상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세상은 더이상 성도의 영원한 거처가 아니라 오실 영원한 천국을 기다리는 잠정적인 거주지일 뿐입니다. 택함받은 성도는 이런 영광의 소망 때문에 이 세상에 속할 수 없는 흩어진 나그네가 되는 것입니다.

W1. 더하여 예수님은 나느네 된 성도들에게 순종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본문 2절 말씀에는 택하심을 받은 자들을 향해 베푸시는 삼위 하나님의 사역과 그 목적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아버지의 미리 아심과, 성령님의 거룩케 하심은 성도를 순종함과 예수님의 피뿌림의 자리로 인도해 주십니다. 여기에서 순종함과 피뿌림을 얻는 것이 같은 목적으로 드러나 있으나, 그리스도의 피뿌림은 성령님의 거룩케 하심과 함께 우리를 참된 순종으로 인도하는 은혜의 수단이 됩니다. 이런 까닭에 삼위 하나님의 사역은 성도를 순종의 사람으로 변화시켜 새 삶을 살게 하는데 있습니다. 2절을 다시 봅시다.
베드로전서 1장 2절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아버지와 아들, 성령님의 사역을 따라 미리 선택함을 받고, 거룩케 되고, 피뿌림을 얻은 성도는 이제 온전한 순종함을 얻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 삶을 살게 됩니다. 여기에서 순종함은 이중적입니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순종을 입는 것을 말하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그렇게 사는 삶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순종은 내 순종이 되어서 나도 그렇게 사는 새로운 삶의 백성이 되게 하는 능력이 됩니다.

W2. 특별히 성도의 순종은 성령님의 거룩케 하시는 은혜의 열매입니다.

성령님은 죄인인 우리를 거룩하게 하십니다. 성령님을 통해 주시는 믿음의 선물은 그예수님의 보혈을 힘입어 성도를 의롭게 하는 능력입니다. 성도는 자신의 힘이 아닌 성령님의 거룩케 하시는 능력을 따라 새로운 순종의 삶을 살게 됩니다. 이를 위해 성령님께서는 예수님의 피뿌림을 죄인인 우리에게 적용시켜 주십니다. 주님의 보혈의 은혜가 성령님에 의해 우리에게 적용될 때 죄인인 우리는 거룩한 자가 되어 하나님의 계명과 말씀을 순종할 수 있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성도는 단지 믿음이라는 앎에만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새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에서 나그네로 소망 없이 살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령님 안에서 주시는 거룩함을 통해 세상 가운데에서 거룩의 삶을 누리고 행하는 순종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W3. 하나님은 미리 아심을 따라 성도의 순종의 삶을 작정하십니다.

사도는 성도의 순종이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이루어진 은혜임을 강조합니다. 아버지께서 미리 아신다는 것은 ‘아버지의 예지’를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예지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에서 세우신 작정을 말합니다. 아버지는 인간들과 같이 어떤 일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예지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영원에서 이미 작정하십니다. 아버지의 기쁘신 뜻을 따라 작정된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예지를 통해 역사 속에서 실현되고 성취됩니다. 이런 아버지의 예지하심 안에서 성도는 그리스도와 성령님을 통해 순종의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T1. 베드로는 삼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약함이 변하여 사도가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가장 신뢰한다고 생각하여 물 위에 자신을 맡긴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신뢰는 충분히 강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풍랑을 보다가 예수님을 끝까지 신뢰하지 못해 물에 빠진 경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더하여 그는 자신을 믿고 예수님을 끝까지 부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큰소리하다가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는 큰 죄를 범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약한 순간순간마다 예수님은 능력의 팔을 펴시고 그를 풍랑에서 건져내셨고, 낙심한 그를 찾아오셔서 세 번이나 주님의 양을 먹이라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도 다른 사람을 격려할 수 있는 사도로 변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6, 7절 말씀을 봅시다.
베드로전서 1장 6, 7절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시련과 시험에서 실패하고 낙심했던 베드로는 이제 동일한 시험 앞에 서 있는 성도들을 격려하고 세우는 큰 사역자로 변화되어 있는 것입니다.

T2. 그러나 세상은 이중의 신분을 사모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나그네가 되고, 소외되고, 남겨진 자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열심히 세상의 성공을 찾고, 이 땅의 안전과 안정을 추구하며 힘을 다해 살아갑니다. 그들에게 나그네 삶은 저주요 실패요 낙심입니다. 그들은 택함받은 자의 신분도 원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나그네 되기를 싫어하고 도리어 이 땅에 동화되어 살기를 원하기에 그들은 영광의 신분도 거부하는 것입니다.

T3. 오직 성도만이 참된 이중의 신분을 얻고 누리게 됩니다.

성도는 세상에 흩어진 나그네로 살지만 분명 영원하신 주님의 택함을 입은 영광의 백성입니다. 아브라함은 고향과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세상의 나그네가 되었으나, 하나님은 그를 통해 온 세상에 믿음의 교회를 세우시고,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팔려 노예가 되어 애굽 땅을 밟았으나 이후에 애굽의 총리가 되어 나라를 세웠고, 자신을 팔았던 형제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지키는 참된 하나님의 일군이 되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다니엘은 세상의 양식과 포도주를 거부하였으나 바벨론의 미래를 내다보며 많은 사람들을 주께로 돌아오게 하는 영광의 삶을 누렸습니다. 오직 성도만이 참된 이중의 신분을 얻고 참된 승리를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L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들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 땅에서 참된 나그네의 길을 걷고 살아갑니까? 아니면 세상과 영합하여 이 땅이 주는 모든 성공을 꿈꾸고 바라며 삽니까? 물론 세상을 나그네로 사는 것은 외형적이고 물질적인 것을 뜻하지만은 않습니다. 그것은 증거로 드러나는 삶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깨닫고, 성령님의 거룩하게 하심을 얻은 자는 세상의 물질을 안전의 소망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잘 아는 키 작은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고는 이전에 생명처럼 여기던 물질과 부를 다 뒤로하고 그것에서 누리던 안전을 포기하였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만난 참된 평강과 안전이 그의 삶을 지키는 더 큰 능력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있어 물질은 이제 더이상 꿈도 소망도 아닌 섬김의 도구로 자리 잡았던 것입니다.

L6.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성도의 이중의 신분을 마음에 잘 붙들고 사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지금도 우리를 자신과 같은 존재라고 미혹합니다. 돈과 권력과 능력과 힘으로 사는 세상에 우리들도 잘 어울린다고 성도를 유혹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달리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이라는 이중의 본성을 가지셨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 이 땅에 안주하는 세상의 거주자로 살지말고, 영원한 천국에 속한 세상의 나그네로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천국의 백성이 되어 예수님을 순종하며 그분처럼 그렇게 거룩한 삶을 살라고 격려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세상의 나그네 됨이 성도의 종착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이 땅에서 이미 주님과 영원한 천국을 사는 자가 되었기 이 땅에서부터 거룩을 연습하고 순종을 행하여 천국의 사람으로, 세상에서는 나그네되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주신 이 이중의 신분을 깊이 묵상하고 이 땅에서의 삶을 새로운 변화와 말씀의 순종을 이루며 사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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