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one Analysis
Overall tone of the sermon
This automated analysis scores the text on the likely presence of emotional, language, and social tones. There are no right or wrong scores; this is just an indication of tones readers or listeners may pick up from the text.
A score of 0.5 or higher indicates the tone is likely present.
Emotion Tone
Anger
0UNLIKELY
Disgust
0UNLIKELY
Fear
0UNLIKELY
Joy
0UNLIKELY
Sadness
0UNLIKELY
Language Tone
Analytical
0UNLIKELY
Confident
0UNLIKELY
Tentative
0UNLIKELY
Social Tone
Openness
0UNLIKELY
Conscientiousness
0UNLIKELY
Extraversion
0UNLIKELY
Agreeable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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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otional Range
0UNLIKELY
Tone of specific sentences
Tones
Emotion
Language
Social Tendencies
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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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우리 부모님들은 집에선 어머니, 교회에선 집사님, 직장에선 누구누구 님. 이렇게 불리시겠죠.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자녀 뿐입니다.
가장 각별한 관계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입니다.
드라마를 보면, (기상청 사람들) 자녀가 새아빠한테 늘 ‘아저씨’라고 부르다가, 아빠라고 부르면 막 감동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호칭이 주는 의미가 엄청 큰거예요.
아빠라고 부르지 않아도 법적으로 이미 아빠일거예요.
하지만 실제로 ‘아빠’라고 불리지 못하니 아쉽고 섭섭할 겁니다.
왜 아쉬울까요?
새아빠지만 아빠는 아빠고, 딸은 딸이니까.
그리고 딸이 뭐라고 불렀다 했죠? 아저씨라고 불렀다 했죠.
사회에서 자신을 아저씨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많을거예요.
아무 관계가 아니니까 아저씨라고 불린거죠.
아빠는 딸에게만 아빠라고 불리니까 특별한 거예요.
그 호칭이 아주 귀한 거예요.
예수님은 길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십니다.
대중의 의견을 알고자 하신 것입니다.
대중들의 예수님에 대한 인식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엄청나게 달랐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대중들은 세례 요한이라고 하기도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보았습니다.
시대가 흐르고 나서는, 예수님에 대해 위대한 지혜의 선생이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사회정의의 선포자, 가난한 자를 돌보시는 분, 하나님의 대격변적 심판과 세상의 종말을 선언하시는 과격한 선지자, 폭력적인 정부 타도를 주장하는 정치적 혁명가 혹은 농민 혁명을 요구하는 사회 혁명가로 보기도 했습니다.
참 다양하게 불리셨죠?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은 어떻게 불리고 싶으셨을까요?
아니, 그 전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떤 분이실까요?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질문합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29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그리스도가 무슨 뜻일까요?
'그리스도'는 히브리어 '메시야'를 헬라어로 번역한 말입니다.
이는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의미입니다.
구약에서 기름으로 부음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구별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말은 제사장, 선지자, 왕의 의미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적용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특별히 다윗 언약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 언약에서 하나님은 다윗 왕에게 그의 왕위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다윗 왕조가 분열되고 쇠퇴하다가 결국에는 몰락하면서 구약 선지자들은 언젠가 하나님이 다윗의 계보를 회복하고 의와 정의로 영원히 다스릴 왕을 일으키실 것이라고 예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예언의 성취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영혼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온 우주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 대신 죽으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예고하셨어요.
31절 보겠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님을 막습니다.
그렇게 죽으실 수 없다면서 막 항변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저 눈에 보이는 이스라엘 땅의 왕이 되실 것으로 봤어요.
예수님에 대해 온전히 깨닫지 못했던거죠.
예수님은 눈에 보이는 이스라엘의 땅뿐만 아니라, 온 우주를 이스라엘로 통일시키시고 온 우주의 왕이 되어주실 분이세요.
유대인들은요.
선민 사상에 푹 젖어있었어요.
하나님이 이스라엘만을 선택하시고 사랑해 주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온 세상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아주신다고 하셨어요.
예수님은 그런 인식이 없는 베드로에게 뭐라고 하십니까?
33절을 읽어볼게요.
사탄이라고 하십니다.
베드로가 누구였습니까?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제자처럼 행동하지 않으니까 제자라고 부르지 않으시는 겁니다.
(어머니가 나에게 엄마라고 부르지도 말라고 하신 사건 예화)
제자라면 이렇게 하라고 하십니다.
34절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이것이 예수님의 제자의 도리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예수님이 되실 때, 우리에게 어떤 신분이 주어질까요?
아버지가 우리의 아버지 될 때 우리에게 어떤 신분이 주어집니까?
아들이죠.
예수님이 우리의 예수님 되실 때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제자는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 가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그 길을 따라가면 죽음의 길인데, 어쩌죠?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십자가를 지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불러주실까요?
우리는 예수님을 누구라 합니까?
나와 상관은 있는 분이라고 생각하며 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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