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통치를 보면, 때로는 참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특히나 앞장의 1장의 내용을 보면, 사울의 숨이 끊어지는 순간 속에서 목숨을 취한 이방 병사를 심판합니다. 사울 자신도 원했고,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에 있는데 말이죠. 하지만, 이것은 철저하게 심판은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주님이 진짜 왕되심을 인정하는 주권사항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일도 많고, 정답도 없다.
어느 분이 제게 들려주는 말씀입니다.
저는 바둑을 잘 알지도, 좋아하지도 않지만, 가끔 어떤 문제를 바라보면서 복기하듯이 어떻게 하는 것이 더 나은 길인지 반추해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 처한 상황이 정말 쉽게 결론 내리기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의 삶들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다윗이 하나님께 길을 물으며 간다는 점입니다.(삼하 2:1)
그리고 다윗이 기다린다는 측면입니다.(삼하 2:11)
저는 가끔 다윗과 솔로몬의 리더십을 비교해보곤 합니다.
다윗: 하나님께서는 다윗에 손에 피를 많이 묻혔기에 성전을 짓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생각 이상으로 다윗은 통합적인 리더십을 보여줍니다.
오늘 자신을 향해 반란을 일으킨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까요?
사무엘하 뒷장을 보면, 어떻게든 포용하고 함께 갑니다.
우리가 불을 끄는 방법은 2가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물을 뿌려서 잡거나, 아니면 불이 타오를 수 있는 산소를 차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게 산소를 잡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압니다.
반란에 대한 정리도 비슷할 것 같습니다.
반란은 현 체제에 대한 반기로 일어난다면, 점점 더 파급력이 커지기 때문에 조기에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군사력을 동원하고 힘으로 제압한다면, 또 다른 문제를 파생시킬 수 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본질에 더욱 집중하는 것이 성군으로 반감을 중재하고, 반란의 구심점을 와해시킬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성군의 정치에 자복하며 그의 왕권을 인정하는 것은 당연할 것 입니다.
사무엘하 뿐만 아니라, 사무엘상을 열어가는 말씀도 한나와 사무엘의 이야기를 보면, 그 분의 말씀을 청종하는 자들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사무엘로 새로운 시대를 여시고, 다윗을 통해 진정한 왕권을 보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