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강대해지는 삶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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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강대해지는 삶의 비결 / 다윗이 강대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만군의 주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계셔 기다리는 능력과 싸울 수 있는 능력을 주셨기 때문이다.
작은 강아지가 자기 덩치보다 몇 배나 큰 개에게 덤빌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내 뒤에 누가 있느냐, 내 뒤에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우리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믿는 분을 실제로 내가 얼마나 인식하고 사느냐, 내가 얼마나 믿고 신뢰하며 사느냐에 따라 우리 삶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이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마치 보는 것처럼 살아가는 능력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자신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 분명히 믿고 신뢰하며 살아가는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다윗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다윗은 드디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왕이 되기 위해 다윗은 인생에서 총 세번의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첫번째로 그가 16-17살쯤에 예언자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두번째로 사울이 죽자 유다 헤브론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기름 부음받아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에서 세번째로 그가 30살에 기름부음을 받아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사울의 시대가 완전히 끝나고, 다윗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그리고 6-10절에 보면 다윗이 예루살렘을 차지하여 그곳을 통일 이스라엘의 수도로 삼았습니다.
통일 이스라엘의 왕도 되었고, 수도도 정했으니 정말 다윗은 이루고자 하는 바를 다 이룬 것입니다.
이런 다윗의 모습을 한마디로 정리한 문장이 있습니다.
10절입니다.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다윗이 점점 강대해졌다.’
여기서 강대해졌다는 말은 강해지고, 더 커졌다는 의미입니다.
그의 가족, 나라, 군사 모두 강해지고 규모가 커졌습니다.
그러나 이 단어는 무엇보다도 다윗이 내적으로 더 강해지고 더 큰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삶도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나님은 우리가 다윗처럼 이런 강대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능력있는 삶을 살기 원하십니다.
이것이 나만을 위한 삶이라면 굳이 이런 삶이 필요하지 않을 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삶을 소망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강해지고 영향력을 갖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를 통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본론]
그렇다면 이런 강대한 삶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10절에 나온 것처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어떤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날까요?
첫번째,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기다릴 줄 아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3절입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가 헤브론으로 왕을 찾아오니,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주님 앞으로 나아가 그들과 언약을 세웠다. 그리고 그들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은 전쟁을 통해 북쪽 이스라엘을 무력으로 점령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이 제발로 찾아와 자신들의 왕이 되어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기 위해 사울왕을 죽이지도 않았고, 그의 아들인 이스보셋을 죽이지도 않았고, 실세였던 아브넬 장군을 죽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이런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신다고 믿었기에 단지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어떤 면에서 사울 왕조가 몰락한 것도 결국 그가 기다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제사를 드리려면 예언자 사무엘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급한 마음에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가 사무엘을 대신해 제사를 드리고야 말았습니다.
이 사건이 단초가 되어 그는 몰락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습니다.
다윗이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을 때가 10대 후반입니다.
그는 오랜 세월 하나님이 자신을 왕으로 세워주실 때까지 기다린 것입니다.
그의 기다림은 결코 단순한 기다림의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뜨거운 침묵의 시간이었습니다.
사울에게서 도망쳐 광야에서 8년 넘게 고난의 세월을 보냈고, 헤브론에서 왕이 된 후에도 7년 6개월의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기다림, 기다림, 기다림 이것이 다윗의 인생을 설명하는 핵심단어입니다.
이쯤되면 기다림은 그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마냥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기다린 게 아닙니다.
그런 기다림이라면 게으름이라고 불러야 마땅합니다.
다윗은 기다려면서도 현재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서 하나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구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심으로 살아가려는 자에게 기다림은 게으름이 아닌 믿음과 땀의 시간입니다.
그래서 이런 기다림을 뜨거운 침묵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올림픽을 위해 4년을 넘게, 아니 평생을 기다려온 운동선수들의 기다림인 것입니다.
그럼 다윗이 어디서 이런 기다림을 제대로 배웠을까요?
바로 광야에서입니다.
광야는 다윗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 훌륭한 학교였습니다.
도망다니느라고 힘들고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다윗은 그곳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제대로 배웠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할 줄 안다는 것은 기다릴 줄 안다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의 인생에서 긴 광야를 허락하신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광야가 아니었다면 다윗은 기다리는 법을 배우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치 않습니까?
인생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나면 왠만한 일에는 마음이 철커덩 하지 않는 법입니다.
그 어려운 순간에도 벼텨냈는데 이 정도쯤이야 하며 마음의 근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크리스천들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에도 믿음의 근력이 생겨 하나님이 때를 기다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얼마나 기다리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까?
조바심과 조급함은 현대인들의 대표적인 특징입니다.
편리한 거, 간편하고 빠른 효율성을 좋아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2주만에 복근만들기, 2주만에 슬림 다리 만들기, 2주만에 뒤태 만들기가 책 이름입니다.
심지어 건물도 1달이면 뚝딱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에도 조바심을 냅니다.
자동판매기처럼 누르면 곧바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와 가치관이 우리의 기다리는 능력을 앗아갑니다.
엊그제 뉴스를 보니까 제주도에서 한 사람이 출근하려는데 앞에 차가 가로 막고 있으니까 아에 차를 받아서 들이 밀어버렸더라구요.
큰 소리가 나서 막고 있던 차주가 나왔는데도 아에 차를 뭉개버리고, 그 차주도 몽둥이로 쳐버렸습니다.
그래서 화를 참지 못한 그 사람은 출근도 못하고 유치장으로 출근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현대의 많은 죄악들이 이렇게 기다리지 못하는 조급증때문에 일어납니다.
최근에 읽은 책중에 ‘슬로처치’라는 책이 있습니다.
책 제목부터 저에게 마음의 울림이 있었습니다.
읽어보니 정말 좋은 책이었습니다.
나중에 여러분들과 함께 읽고 공부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책은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교회가 느리게 가는 것을 대안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려서 제가 조급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설교는 여러분들보다도 저한테 하는 설교입니다.
우리 교회가 빨리 성장하기를 바라고, 제 설교가 더 빨리 좋아지길 바라고, 여러분들의 신앙이 더 빨리 성장하기를 바라는 게 제 마음입니다.
기다리는 게 너무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래도 그나마 제게 위로가 되는 것은 다윗도 결국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한 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북쪽 이스라엘 실세였던 아브넬 장군은 이스보셋 왕과 마찰이 생기자 다윗에게 가서 나라를 바치려고 했습니다.
그 때 다윗은 하나님께 묻지 않고 덥썩 그와의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부하 요압이 아브넬을 죽이는 바람에 다 망쳐버렸습니다.
이 일로 다윗은 혹시 요압을 사주해서 아브넬을 죽인 게 아닌지 오해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이 일은 다윗의 실수였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되는데 기다리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 다윗의 실수가 오히려 제게는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다윗의 실수가 있었지만 다윗은 여전히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께 향한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은 그를 포기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저도 부족하고 연약하여 조급한 사람이지만 내 마음의 중심만은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은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싸울 믿음과 용기도 주십니다.
두번째,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싸울 줄 아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6-7절입니다.
다윗왕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에 사는 여부스 사람을 치려고 하니, 그들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너는 여기에 들어올 수 없다. 눈 먼 사람이나 다리 저는 사람도 너쯤은 물리칠 수 없다.” 그들은 다윗이 그 곳으로는 들어올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다윗이 시온 산성을 점령하였으므로, 그 곳의 이름을 ‘다윗 성’이라고 하였다.
다윗은 조용히 기다릴줄만 아는 것이 아니라 싸워야 할 때는 나서서 싸울 줄도 알았습니다.
동족들과는 절대 싸우지 않았지만 예루살렘에 살던 여부스 사람들과는 싸웠습니다.
당시 가나안 땅에서 수백년동안 차지하지 못한 곳이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예루살렘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수백년 묵은 체증같은 곳이었는데 그곳을 다윗이 용감하게 싸워 차지하였고, 그곳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정한 것입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한 것은 지리적 위치도 한 몫했습니다.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기 때문에 남쪽 유다에 있는 헤브론을 그대로 수도로 삼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면 북쪽 이스라엘 사람들이 불만을 갖게 됩니다.
그렇다고 북쪽 이스라엘에 수도를 잡으면 남유다 사람들이 불만을 가집니다.
그래서 두쪽 다 포용할 수 있는 곳이며, 새로운 곳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그곳이 바로 예루살렘입니다.
아직 아무도 정복한 적이 없는 곳을 수도로 삼았기 때문에 서로 불만이 없었습니다.
이름도 의미심장하게 ‘평화의 근원’이란 의미입니다.
우리나라도 통일되면 어느 도시를 수도로 삼아야 할까요?
이는 지도자로서 머리 아픈 문제인데 다윗은 하나님의 지혜로 이 곳을 수도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예루살렘이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예루살렘은 북쪽을 제외한 세 면이 골짜기로 둘러싸여 있고, 해발 약 750미터 높은 곳에 위치한 성이기에 외부의 침략을 쉽게 물리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천연의 요새, 난공불락의 성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다윗에게 하는 말을 보십시오.
눈 먼 사람이나 다리 저는 사람도 너쯤은 물리칠 수 있다고 조롱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싸울 수 없는 장애가 있는 사람일지라도 다윗 부대쯤은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신감을 보일 수 있을 정도로 이곳은 정복하기 힘든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한가지 있었는데 예루살렘 성 안에는 샘이 없어 성 밖에서 물을 길러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진짜 문제는 전쟁중에는 성밖으로 나가 물을 얻을 수가 없어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몰래 성밖에 있는 기혼샘에 수로를 만들어 그곳을 통해 물을 얻었습니다.
놀랍게도 다윗은 이 수로를 발견했고, 이 수로를 통해 군사들을 침투시켜 예루살렘 성을 점령했습니다.
그럼 왜 오랜세월동안 다른 사람들은 이 수로를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다윗과 그들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요?
다른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의 명성에 겁을 먹은 것입니다.
그들은 어차피 그곳은 점령할 수 없는 곳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에 불가능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방법을 생각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다윗은 자기 스스로 한계를 짓지 않고 자기 배후에 계신 만군의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여기서 만군의 주 하나님이라는 말은 전쟁의 총 사령관이 하나님이라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진짜 대장이고 자신은 단지 팔로워라고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못 이길 적군이 없고, 점령하지 못할 성이 없는 것입니다.
다윗은 전에도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 혼자만 상상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바로 골리앗과의 싸움입니다.
아무도 천하장사 골리앗을 창과 칼로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다윗은 돌멩이로 싸워 이겼습니다.
그 때도 다윗은 만군의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럼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에베소서에서 본 것처럼 어둠의 세력들은 여전히 우리 삶의 곳곳에 터를 잡고 우리와 대치하고 있습니다.
여부스 사람들처럼 사탄은 우리의 연약함을 조롱합니다.
우리의 힘과 지혜로는 이 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힘과 지혜만이 우리를 승리로 이끌 수 있습니다.
만군의 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야만 우리는 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6장에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전신갑주, 온 몸을 덮는 갑옷을 입으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결론]
이제 오늘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은 우리의 삶을 도전하십니다.
우리에게 다윗처럼 점점 강대해지는 삶을 살고 싶냐고 물으십니다.
그렇다면 비결은 한가지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 배후에 누가 있는지 알고, 믿고, 누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다윗은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지만 자신이 진짜 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진짜 왕은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은 자신이 단지 하나님의 대리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왕이 된 후에도 항상 겸손하게 살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 손이 내 손이 아니고 하나님 손이고, 내 발이 내 발이 아니고 하나님의 발이다.
이런 의식이 그를 점점 강대하게 한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나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하게 내 방법을 사용하십니까?
우리의 기다림은 뜨거운 침묵입니까? 아니면 게으름입니까?
우리는 싸워야 할 때 싸울 능력과 지혜가 있습니까?
아니면 비겁하게 순응하거나 빨리 포기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뒤에 만군의 주 하나님이 계시다는 믿음이 우리가 싸울 수 있는 동력입니다.
하나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그 믿음으로 기다려야 할 때 기다릴 줄 알고, 싸워야 할 때 싸울 줄 아는 능력을 갖춘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