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실하신 하나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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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 여러분은 하나님에 대해서 떠올리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십니까? 저는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하면 ‘ 사랑의 하나님 ’이라는 모습을 자주 떠올립니다. 성경 속에서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 님뿐만 아니라 여러 모습으로 스스로를 나타내 보이십니다. 성경의 시작에서는 온 우주 만물 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으로 ,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신음할 때는 능력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셔서 자기 백성을 출애굽시키시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 한편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범죄할 때는 공의의 하나님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11절에서 하나님은 스스로를 “전능한 하나 님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 그리고 본문의 전체적인 흐름을 볼 때 하나님의 ‘신실하심 ’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어떤 모습이 과연 본문의 주요 인물인 야곱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인 것인지 알아가기 원합니다.
야곱에 대해서 생각하시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십니까 ? 야곱이라는 인물에 대해 생각하면 ‘팥죽 ’이나 ‘ 장자권’ 을 많이 떠올리게 됩니다 . 하지만 야곱이라는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 한 것은 그를 통해 하나님께서 언약을 이어가실 것을 약속하셨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 하나님 께서는 오래전 그의 조상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야곱에게도 다시금 확인하셨고, 그의 후손 을 통해서도 이어가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역사 가운데 큰 흐름이라고 볼 수 있는 언약을 야곱을 통해서도 이어가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 그리고 창세기 28장에서 야곱이 그의 형 에서를 피해 외삼촌이 있던 하란으로 도망칠 때 벧엘에서 야곱에게 그와 함께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야곱이 다시 그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 창세기 28장의 그 벧엘에서 다시금 야곱에게 복을 주시며 그와 언약을 맺으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 다 . 야곱의 후손인 요셉과도 그 후에도 계속해서 언약을 이어가시는 하나님을 성경 속에서 쉽 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 이런 부분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이 맺으신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 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9-12 절은 하나님께서 이전에 맺은 언약을 다시금 확증하시는 부분이며 , 13-15절은 벧엘에서 드려진 야곱의 예배로 볼 수 있습 니다.
본문 9 절에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나타나십니다 . 그리고 11 절에서는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 계시하십니다. 계시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과 교제 하시기 위하여 오심을 뜻합니다 . 성경 은 하나님의 계시가 갖는 목적을 인간이 하나님을 알고 이로써 영생을 얻게 하는데 있다고 말 합니다 . 특별히 족장 시대 때에 그들이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맺고 있던 특별한 관계는 하나님 의 이름들 가운데 나타나는데 이는 족장 시대의 특징입니다 . 구약에서 하나님은 가장 단순하 게 “엘”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졌습니다. 11 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이름은 “전능한 하나님” 인 데 , 이는 창세기 17 장에서 아브라함에게 보이신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전능한 하나님은 원어 로 “엘 샤다이” 라고 하는데, 이 이름은 족장 시대에 반복하여서 등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욥 기와 시편 , 선지서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 엘 샤다이라는 전능한 하나님은 신약에서는 전 능하신 주로 표현되어서 고린도후서와 요한계시록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 엘 샤다이 , 전능 한 하나님이라는 이 이름은 하나님께서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 모든 것을 자신의 뜻에 복종시키는 분임을 우리에게 알리시는 것입니다. 이 이름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신성과 무궁한 능력 은 구원과 위로의 원천이 됩니다 .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자신의 능력으로 약속을 성취하시 며 , 언약을 보증하시는 분이십니다. 이후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 님 , 이사야에서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로 불리시며 자신을 알리시고 언약을 지켜나가시는 분 이십니다.
10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야 이렇게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 르신 것이 아니라 창세기 32 장에서 이미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 하지만 본문에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부를 것이라고 다시금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가 하신 말씀을 잊으시지 않으실텐데 왜 이렇게 말씀하셨는지에 대해 궁금하실 수 있습니다 . 이는 창세기 33장에서 야곱과 에서와의 갈등이 완전히 해결된 이후에야 야곱이 진정으로 이스라엘로 바뀌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가지기에 온전하지 못한 상태에 있었지 만 , 그의 형 에서와의 갈등이 해결된 이후에 다시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라 말씀해 주심으 로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14절에서 야곱은 독특하게도 돌 기둥을 세워서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야 곱이 돌 기둥을 세운 곳은 그가 에서를 피해 도망칠 때 이미 돌 기둥을 세워 하나님의 나타나 심을 기억한 벧엘이었습니다 . 야곱이 세운 돌 기둥을 마체바라고 하는데 , 독특한 점은 모세 오경의 율법에서 이 마체바가 항상 부정적인 것으로 묘사된다는 것입니다. 레위기 26 장 1절에 서 “너희 땅에 조각한 석상을 세우고 그에게 경배하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경고하십니다. 신 명기 16 장 21,22 절에서는 여호와의 제단 곁에 어떤 상도 세우지 말고, 자기를 위하여 주상을 세우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이런 것들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미워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 이와 같이 돌 기둥, 마체바에 대해 오경에서 부정적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마체바라는 것이 기본적 으로 가나안 족속들과 관련된 제사의 형태에 사용되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는 출애굽기 34 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 그들의 제단을 헐고 그들의 주상 을 깨뜨리고 그들의 아세라 상을 찍어버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부정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마체바를 야곱이 벌써 벧엘에만 두 번이나 세우고도 하나 님의 책망을 듣지 않은 이유는 야곱은 율법이 완성되기 이전에 이런 일들을 행했기 때문입니 다 . 탐욕이나 간음과 같은 다른 문제들이라면 율법이 완성되기 전이라 하더라도 책망받을 수 있었겠지만, 마체바와 같은 문제는 야곱 당시에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야곱은 돌 기둥을 세 워서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기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갑자기 야곱에게 축복하시며 약속하신 것이 아닙니다 . 하나님께서는 앞 서 자신을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나타내시며, 이전에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상기시키는 내용 으로 약속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이름 그대로 “ 전능한 하나님”으로 나타나시며, 야 곱의 조상으로부터 이어져온 언약을 계속해서 이어가실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잊지 않으시고, 그의 후손인 야곱과 언약을 이어가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통해 그 의 신실하심을 우리는 깨달을 수 있습니다. 창세기 12 장부터 마지막 50 장까지의 핵심 주제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것은 창세기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핵 심과도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아브라함 뿐만 아니라 그의 자손 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반복하여 나타나며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는 다른 약속보다 더 하나님께서 강하게 이루시겠다는 강조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이어가시기 위해 야곱에게 축복하시고 약속을 다시 확인하는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하신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야곱을 통해 서 지키셨고 , 그의 후손에 이르러서도 계속해서 지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28장에서 이미 벧엘에서 야곱을 만나셨습니다 . 이제 야곱이 큰 가족을 이루어서 밧단 아람에서 고향으로 돌아올 때 다시 벧엘에서 하나님은 야곱을 만나셨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 은 자신을 나타내시며 언약을 지키고 계십니다 . 이처럼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어떻게 보면 야곱은 전혀 알지 못했던 그런 약속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입장에서만 보면 언약을 굳이 지키지 않아야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먼저 찾기도 전에 먼저 그에게 찾아오셔서 야곱과도 언약을 맺어주시고, 그의 후손들을 통해 계속해서 그 언약을 이어가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야곱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던 하란으로 가는 길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 그리 고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신 약속을 마음에 품고 힘든 시기를 버텼을 것입니다. 야 곱이 외삼촌 집으로 갈 때 그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큰 가족을 이루게 하시고, 재물 역시 가지게 하신 것을 보고 야곱은 하나님을 더 바라보게 되 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상황에 이르러 그가 힘들 때 하나님을 만났던 벧엘에서 하나님은 그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전능한 하나님 ”이라고 말 씀하셨고 , 이전에 자신에게 하신 약속을 다시 언급하시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보이셨습니 다 . 그 때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신과 언제나 함께 하셨고, 언약을 잊지 않으시는 신실하신 하 나님이심을 온전히 깨달았을 것입니다.
이제는 이렇게 하나님께서 자신을 직접 계시하시고 보이시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신약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깨 달아 알 수 있는 근거는, 성경에서 보이신 하나님의 모습 가운데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 우리는 비록 하나님을 직접 볼 수도 없고 , 하 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을 수도 없습니다 . 하지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하고 , 우리가 잘 아는 그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성경 속에서 보이신 하나님의 모습은 우리가 직 접 하나님을 보지 않더라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수 있게끔 만들어 줍니다. 야곱의 인생에서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많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삶을 인도하시고, 언약을 이루어 나가셨 습니다 .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많을 수 있습니다 . 하지만 우리가 힘을 내서 달려갈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오늘 본문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 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도 언약을 맺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많은 말씀들 가운데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작정과 뜻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 야곱처럼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며 그 언약의 말씀들에 감사해야 합니다.
이사야 40 장에서 하나님은 “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 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 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고 말씀하십니다. 앙망하다라는 말은 ‘ 간절한 마음으 로 우러러보다 ’라는 의미입니다 . 즉 여호와 하나님을 간절한 마음으로 우러러보는 자에게 하나님은 새 힘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냥 새 힘이 아니라 독수리가 날개치며 하늘로 올라 가는 것과 같은 그런 새 힘을 주셔서, 우리가 달려갈지라도 기력이 떨어지지 않으며, 걸을 때 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이사야서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 고 나갈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쳐오더라도 우리의 삶을 인도하신다고 말씀하 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 그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하심으로 세상이 아닌 하나님을 의지 하며 살아가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