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one Analysis
Overall tone of the sermon
This automated analysis scores the text on the likely presence of emotional, language, and social tones. There are no right or wrong scores; this is just an indication of tones readers or listeners may pick up from the text.
A score of 0.5 or higher indicates the tone is likely present.
Emotion Tone
Anger
0UNLIKELY
Disgust
0UNLIKELY
Fear
0UNLIKELY
Joy
0UNLIKELY
Sadness
0UNLIKELY
Language Tone
Analytical
0UNLIKELY
Confident
0UNLIKELY
Tentative
0UNLIKELY
Social Tone
Openness
0UNLIKELY
Conscientiousness
0UNLIKELY
Extraversion
0UNLIKELY
Agreeableness
0UNLIKELY
Emotional Range
0UNLIKELY
Tone of specific sentences
Tones
Emotion
Language
Social Tendencies
Anger
< .5
.5 - .6
.6 - .7
.7 - .8
.8 - .9
> .9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에 대해서 떠올리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십니까?
저는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하면 ‘ 사랑의 하나님 ’이라는 모습을 자주 떠올립니다.
성경 속에서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 님뿐만 아니라 여러 모습으로 스스로를 나타내 보이십니다.
성경의 시작에서는 온 우주 만물 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으로 ,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신음할 때는 능력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셔서 자기 백성을 출애굽시키시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
한편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범죄할 때는 공의의 하나님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11절에서 하나님은 스스로를 “전능한 하나 님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
그리고 본문의 전체적인 흐름을 볼 때 하나님의 ‘신실하심 ’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어떤 모습이 과연 본문의 주요 인물인 야곱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인 것인지 알아가기 원합니다.
야곱에 대해서 생각하시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십니까 ?
야곱이라는 인물에 대해 생각하면 ‘팥죽 ’이나 ‘ 장자권’ 을 많이 떠올리게 됩니다 .
하지만 야곱이라는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 한 것은 그를 통해 하나님께서 언약을 이어가실 것을 약속하셨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
하나님 께서는 오래전 그의 조상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야곱에게도 다시금 확인하셨고, 그의 후손 을 통해서도 이어가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역사 가운데 큰 흐름이라고 볼 수 있는 언약을 야곱을 통해서도 이어가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
그리고 창세기 28장에서 야곱이 그의 형 에서를 피해 외삼촌이 있던 하란으로 도망칠 때 벧엘에서 야곱에게 그와 함께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야곱이 다시 그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 창세기 28장의 그 벧엘에서 다시금 야곱에게 복을 주시며 그와 언약을 맺으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 다 .
야곱의 후손인 요셉과도 그 후에도 계속해서 언약을 이어가시는 하나님을 성경 속에서 쉽 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
이런 부분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이 맺으신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 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9-12 절은 하나님께서 이전에 맺은 언약을 다시금 확증하시는 부분이며 , 13-15절은 벧엘에서 드려진 야곱의 예배로 볼 수 있습 니다.
본문 9 절에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나타나십니다 .
그리고 11 절에서는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 계시하십니다.
계시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과 교제 하시기 위하여 오심을 뜻합니다 .
성경 은 하나님의 계시가 갖는 목적을 인간이 하나님을 알고 이로써 영생을 얻게 하는데 있다고 말 합니다 .
특별히 족장 시대 때에 그들이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맺고 있던 특별한 관계는 하나님 의 이름들 가운데 나타나는데 이는 족장 시대의 특징입니다 .
구약에서 하나님은 가장 단순하 게 “엘”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졌습니다.
11 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이름은 “전능한 하나님” 인 데 , 이는 창세기 17 장에서 아브라함에게 보이신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전능한 하나님은 원어 로 “엘 샤다이” 라고 하는데, 이 이름은 족장 시대에 반복하여서 등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욥 기와 시편 , 선지서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
엘 샤다이라는 전능한 하나님은 신약에서는 전 능하신 주로 표현되어서 고린도후서와 요한계시록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
엘 샤다이 , 전능 한 하나님이라는 이 이름은 하나님께서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 모든 것을 자신의 뜻에 복종시키는 분임을 우리에게 알리시는 것입니다.
이 이름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신성과 무궁한 능력 은 구원과 위로의 원천이 됩니다 .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자신의 능력으로 약속을 성취하시 며 , 언약을 보증하시는 분이십니다.
이후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 님 , 이사야에서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로 불리시며 자신을 알리시고 언약을 지켜나가시는 분 이십니다.
10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야 이렇게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 르신 것이 아니라 창세기 32 장에서 이미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
하지만 본문에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부를 것이라고 다시금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가 하신 말씀을 잊으시지 않으실텐데 왜 이렇게 말씀하셨는지에 대해 궁금하실 수 있습니다 .
이는 창세기 33장에서 야곱과 에서와의 갈등이 완전히 해결된 이후에야 야곱이 진정으로 이스라엘로 바뀌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가지기에 온전하지 못한 상태에 있었지 만 , 그의 형 에서와의 갈등이 해결된 이후에 다시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라 말씀해 주심으 로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14절에서 야곱은 독특하게도 돌 기둥을 세워서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야 곱이 돌 기둥을 세운 곳은 그가 에서를 피해 도망칠 때 이미 돌 기둥을 세워 하나님의 나타나 심을 기억한 벧엘이었습니다 .
야곱이 세운 돌 기둥을 마체바라고 하는데 , 독특한 점은 모세 오경의 율법에서 이 마체바가 항상 부정적인 것으로 묘사된다는 것입니다.
레위기 26 장 1절에 서 “너희 땅에 조각한 석상을 세우고 그에게 경배하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경고하십니다.
신 명기 16 장 21,22 절에서는 여호와의 제단 곁에 어떤 상도 세우지 말고, 자기를 위하여 주상을 세우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이런 것들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미워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
이와 같이 돌 기둥, 마체바에 대해 오경에서 부정적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마체바라는 것이 기본적 으로 가나안 족속들과 관련된 제사의 형태에 사용되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는 출애굽기 34 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 그들의 제단을 헐고 그들의 주상 을 깨뜨리고 그들의 아세라 상을 찍어버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부정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마체바를 야곱이 벌써 벧엘에만 두 번이나 세우고도 하나 님의 책망을 듣지 않은 이유는 야곱은 율법이 완성되기 이전에 이런 일들을 행했기 때문입니 다 .
탐욕이나 간음과 같은 다른 문제들이라면 율법이 완성되기 전이라 하더라도 책망받을 수 있었겠지만, 마체바와 같은 문제는 야곱 당시에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야곱은 돌 기둥을 세 워서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기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갑자기 야곱에게 축복하시며 약속하신 것이 아닙니다 .
하나님께서는 앞 서 자신을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나타내시며, 이전에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상기시키는 내용 으로 약속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이름 그대로 “ 전능한 하나님”으로 나타나시며, 야 곱의 조상으로부터 이어져온 언약을 계속해서 이어가실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잊지 않으시고, 그의 후손인 야곱과 언약을 이어가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통해 그 의 신실하심을 우리는 깨달을 수 있습니다.
창세기 12 장부터 마지막 50 장까지의 핵심 주제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것은 창세기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핵 심과도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아브라함 뿐만 아니라 그의 자손 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반복하여 나타나며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는 다른 약속보다 더 하나님께서 강하게 이루시겠다는 강조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이어가시기 위해 야곱에게 축복하시고 약속을 다시 확인하는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하신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야곱을 통해 서 지키셨고 , 그의 후손에 이르러서도 계속해서 지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28장에서 이미 벧엘에서 야곱을 만나셨습니다 .
이제 야곱이 큰 가족을 이루어서 밧단 아람에서 고향으로 돌아올 때 다시 벧엘에서 하나님은 야곱을 만나셨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 은 자신을 나타내시며 언약을 지키고 계십니다 .
이처럼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어떻게 보면 야곱은 전혀 알지 못했던 그런 약속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입장에서만 보면 언약을 굳이 지키지 않아야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먼저 찾기도 전에 먼저 그에게 찾아오셔서 야곱과도 언약을 맺어주시고, 그의 후손들을 통해 계속해서 그 언약을 이어가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야곱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던 하란으로 가는 길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
그리 고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신 약속을 마음에 품고 힘든 시기를 버텼을 것입니다.
야 곱이 외삼촌 집으로 갈 때 그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큰 가족을 이루게 하시고, 재물 역시 가지게 하신 것을 보고 야곱은 하나님을 더 바라보게 되 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상황에 이르러 그가 힘들 때 하나님을 만났던 벧엘에서 하나님은 그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전능한 하나님 ”이라고 말 씀하셨고 , 이전에 자신에게 하신 약속을 다시 언급하시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보이셨습니 다 .
그 때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신과 언제나 함께 하셨고, 언약을 잊지 않으시는 신실하신 하 나님이심을 온전히 깨달았을 것입니다.
이제는 이렇게 하나님께서 자신을 직접 계시하시고 보이시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신약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깨 달아 알 수 있는 근거는, 성경에서 보이신 하나님의 모습 가운데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
우리는 비록 하나님을 직접 볼 수도 없고 , 하 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을 수도 없습니다 .
하지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하고 , 우리가 잘 아는 그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성경 속에서 보이신 하나님의 모습은 우리가 직 접 하나님을 보지 않더라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수 있게끔 만들어 줍니다.
야곱의 인생에서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많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삶을 인도하시고, 언약을 이루어 나가셨 습니다 .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많을 수 있습니다 .
하지만 우리가 힘을 내서 달려갈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오늘 본문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 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도 언약을 맺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많은 말씀들 가운데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작정과 뜻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 야곱처럼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며 그 언약의 말씀들에 감사해야 합니다.
이사야 40 장에서 하나님은 “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 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 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고 말씀하십니다.
앙망하다라는 말은 ‘ 간절한 마음으 로 우러러보다 ’라는 의미입니다 .
즉 여호와 하나님을 간절한 마음으로 우러러보는 자에게 하나님은 새 힘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냥 새 힘이 아니라 독수리가 날개치며 하늘로 올라 가는 것과 같은 그런 새 힘을 주셔서, 우리가 달려갈지라도 기력이 떨어지지 않으며, 걸을 때 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이사야서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 고 나갈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쳐오더라도 우리의 삶을 인도하신다고 말씀하 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 그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하심으로 세상이 아닌 하나님을 의지 하며 살아가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5
.5 - .6
.6 - .7
.7 - .8
.8 - .9
>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