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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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기쁨의 이유를 찾아서
##Intro
**Illustration**
인간이라면 누구나 기쁘고 즐겁게 살고싶어 합니다.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기쁨은 하나님의 속성이며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형상대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기쁨은 인간의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의 흡족한 마음이나 느낌을 말합니다. 여러분, 기쁘고 즐거웠을 때를 한번 떠올려 보십시오. 원하는 대학에 합격 했을 때, 신혼 여행을 떠나는 순간, 아이를 출산하고 그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 첫 월급을 받았을 때, 회사에서 인정받고 승진했을 때! 우리는 기쁘고 행복한 감정을 느낍니다. 어쩌면 우리는 잠깐의 기쁨의 계속해서 맛보기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가 그 욕구들을 상실할 때, 기쁨의 이유들을 잃었을 때, 우리는 슬픔을 느낍니다. 며칠이면 사라지는 작은 슬픔도 있지만, 몇 년씩 이어지는 커다란 슬픔도 있습니다. 며칠 전 한국 뉴스를 우연히 보았습니다. 학교를 마친 8살 짜리 여자아이 두명이 소을 잡고 길을 가다가 음주운전 차에 치여 사망했다는 소식 이었습니다. 그 아이들 어머니의 찢어지는 절규와 고통이 그 슬픔이, 스피커 넘어로 들릴 때, 제 마음까지 아프게 만들었습니다.
**Need**
이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삶에 수많은 슬픔들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금품을 훔치려고 어머니와 유치원 아들을 살해한 이웃집 주민이 재판에 넘겨졌고, 지난 주 뉴스에서는 공사 현장에서 굴러내려온 설비에 초등학생 아이가 사망하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또 전쟁과 기근, 난민들의 소식 등 세계 곳곳에서 들려오는 가슴아픈 사연들이 있습니다. 간절히 원하건대, 퀸즈한인교회 성도님들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로 기쁜 일들만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는 세상이 왜이렇게 아프고 슬픈 일들이 많을까? 나도 이 세상의 일원인데! 어떻게 저런일이 일어날까! 언젠가는 나에게도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애통하는 마음과 동시에 걱정과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인류에게 일어난 비극, 곧 죄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성경은 아담을 통해 모든 인류에게 죄가 들어왔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로마서 5:12a)
그렇습니다. 죄의 결과로 인해 우리에게 사망이 들어왔고 그 사망은 모든 사람에게 피할 수 없는 심판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은 우리를 비롯한 죄인들이 사는 세상이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죄로 물든 이 세상과 내 삶을 우리 힘으로 컨트롤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죄로 물든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기쁨을 찾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기뻐할 수 없는 상실의 상황속에서도 과연 기쁨의 이유를 발견할 수 있을까요?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궁극적인 이유를 제시합니다. 이 기쁨은 잠시동안 찾아오고 사라지는 기쁨이 아닌 성령 하나님의 조명하심을 통해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영원한 기쁨입니다.
**오늘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
14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15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16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Back Ground
오늘 말씀에서 외치고 있는 스바냐는 남유다 요시아 왕 때의 선지자 였습니다. 요시아는 하나님의 율법책을 발견하고 대대적인 종교개편을 이뤄 그의 아버지 아몬이나 할아버지 므낫세 처럼 우상을 섬기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 만을 섬긴 신실한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요시아 왕을 축복하셔서 그가 죽기 전까지 유다를 지키십니다.
그러나 이 풍요로운 요시아 왕 때에, 아무도 멸망을 생각하지 못하는 안전한 때에, 스바냐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유다와 주변국들의 멸망을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또한 오늘 본문처럼 이스라엘의 회복을 선포했습니다.
주제 1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기뻐하라**
오늘 본문 14절에서 스바냐는 외칩니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왜 기뻐 하라고 합니까? 15절 전반부에 그 이유가 나옵니다.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니’ 기뻐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형벌과 원수는 바빌론을 가리킵니다. 이는 바빌론의 포로였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구원에 손에 해방되는 사건을 스바냐가 예언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무엇이 여러분에게 바빌론 입니까? 그것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상황이 될수도 있으며 아픈 질병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빌론에서 우리를 해방시킬 힘과 능력이 있으신 분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길었던 70년간의 포로 생활을 마치고 기원전 538년 이 예언대로 고향땅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분은 약속을 이루시고 자신의 말씀을 지킬 힘과 능력이 있는 분이심을 성경이 예언과 결과로서 증명한 것입니다.
여러분, 누군가를 돕는 다는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누군가를 돕기 위해서는 그만한 힘과 능력이 있어야 하며, 그것을 끝까지 수행할 끈기와 열정, 사랑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이럴 힘과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는 연약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릅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 삶의 형벌과 원수를 좇아내실 수 있는 권세를 가지신 분입니다.
15절에 말하기를 “이스라엘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바로 왕이! 여러분과 함께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삶의 형벌이나 원수 라고 생각하시는 어려움이 있습니까?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여러분의 왕으로 초대하십시오. 그분은 여러분 가운데에서 구원을 베풀 전능자 이십니다. 7절 전반부를 보십시오. 스바냐는 다시한번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우리에게 선언합니다. 1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성경에서 나오는 반복은 강조를 의미합니다. 그가 진짜 전능자 이시고, 너희 가원데서 구원을 베푸실 것이다! 이 말씀이 여러분의 삶에 능력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쁩니다! 전능하신 왕이 우리 가운데 계신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든것이 가능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여러분 가운데 계시는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그는 여러분을 모든 어려운 상황에서 구원하실 능력자 이십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만약 제가 이 나라 대통령의 아들이라면, 제가 이 나라에서 무슨일을 하던지, 어디에 있던지, 무슨일을 당할 때, 바이든 대통령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저를 지키고 돌보려고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하물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둔 우리는 어떨까요? 그분은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이 있으신 분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상황 가운데 그분을 의지하고 믿으며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 되시고,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제 2
기쁨의 이유2
**죄의 사슬을 끊으신 예수 그리스도**
**Transition**
그러나 이러한 구원의 사실 이전에 이스라엘의 심판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우상숭배와 불의를 저질렀고 요시아의 대대적인 종교개혁에도 불구하고 산당을 비롯한 우상 숭배의 잔재들이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Illustration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말 참 부모라면, 아이가 정직하고 바르게 성장하길 원하는 부모라면, 아이가 원하는대로, 제멋대로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죄를 지었다면, 정말 가슴아프지만 그를 법의 심판대에 세울 것입니다. 얼마전 제가 살고있는 도시 루이빌에서 일어난 총격 사건을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은행에서 일하던 청년은 그의 직장 상사와의 불화로 인해 총격 사건을 SNS에 예고하고 생중계 합니다. 그리고 그 일을 실행합니다. 그 청년의 부모는 그가 하려는 일을 알고 막으려고 필사적으로 애를 썼다고 합니다. 물론 그 노력은 실패했고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심각한 죄를 지은 자기 자식을 보는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저는 감히 그것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도 이와 같습니다.
**Exegesis **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살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70년의 바빌론 포로 생활동안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손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자녀들을 이런 고통가운데 내버려 둔 것입니다.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찢어졌겠습니까? 하지만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은 반드시 죄를 심판하는 분이시며 사랑하는 자녀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는 분이십니다.
스바냐 1장에는 이러한 하나님의 날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스바냐 1:2-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땅 위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 내가 사람과 짐승을 진멸하고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와 거치게 하는 것과 악인들을 아울러 진멸할 것이라 내가 사람을 땅 위에서 멸절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 땅 위의 모든것 이라는 말씀은 성경의 첫 책인 창세기에서 지구를 만드실때의 기록과 굉장히 유사합니다. 즉, 이 말씀은 이스라엘을 가르키는 것이 아닌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온 세상을 대상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2000년 전 이스라엘과 주변국 뿐만 아니라 지금,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굉장히 두려운 심판입니다.
이것이 왜 두렵습니까? 죽으면 끝 아닙니까? 아닙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죽음 후에 또 다른 심판이 있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요한계시록 20장 13절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모두 두려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죄 없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범죄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고, 또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Jesus Christ**
그러나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성경은 우리에게 심판을 피할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7절에서 나오는 구원은 단지 바벨론 으로부터의 구원 뿐만 아니라 장차 죄에서 우리를 건지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을 예표합니다. 뒤에 이어지는 19절 20절의 내용을 보면 그 구원의 날에 하나님의 영광을 함께 누릴 백성들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0”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의 사로 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에게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심판을 면죄받았기 때문에 기뻐합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모든 민족 가운데 주님께 칭찬과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아멘.
**Objection **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인간의 죄를 저울처럼 생각합니다. 죄를 몇번 지어도 선을 몇번 행하면 없던일이 된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의 죄는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기 때문에 그럴 힘이 없습니다. 범인은 재판을 진행할 수 없습니다.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없습니다. 갓난아이가 아이를 가르칠 수 없습니다! 재판장이 범인을 재판해야 하고 부모가 아이를 가르쳐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걸 아시고 선과 악을 정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 하셔야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길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믿는 것으로 정하셨습니다.
*Restatement*
그러므로 여러분,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이, 우리가 흘려야 하는 피를 대신하여 우리의 죄를 사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해야하는 일은 그저 그분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심판이 있으나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벌을 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전능자이자 재판장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므로! 우리는 재판에서 이미 승리를 선언합니다.
주제 3
우리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Illustration**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뻐해야할 이유가 한가지 더 있습니다.. 바로 그 전능자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기뻐하시고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포대기에 감싸며 자기 품안에 안습니다. 조용히, 그리고 잠잠히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안전하게 그리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속으로 기도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잠잠히 사랑하시는 모습입니다.
**Exegesis**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아멘!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때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분 한분을 볼때 이렇게 기뻐하신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옆에 있는 친구도, 내 가족도, 나의 진짜 모습과 내 안에 깊숙한 생각들을 알면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없을텐데! 하지만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를 자신의 아이처럼 잠잠히,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고 아낀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잠잠히라는 표현은 기쁨의 극적인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만드시고 7일째 잠잠히 휴식하신 것은 자신이 만든 세상을 잠잠히 바라보시며 기뻐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볼 때 그 잠잠함 속에서 우리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17절 후반부에는 즐거이 부르며 기뻐한다고 합니다. 영어 성경에는 singing 이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이것은 주님이 사랑하는 우리를 보며 노래 할만큼 기쁘다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우리는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때, 그 마음을 표현하고자 말에 음을 담습니다. 언어 만으로는 그 사랑이 표현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저도 지금의 아내에게 프로포즈 할 때 열심히 가사를 만들고 음율을 입혀서 프로포즈 곡을 만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노래를 부를때의 그 감정과 마음이 얼마나 사랑 가득한지, 그래야만 했는지!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더 큰 분이시며 사랑의 원천 이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사랑함으로 부를 때 그 목소리와 음율이 얼마나 아름다울지, 얼마나 큰 감동일지 저는 감히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그가 나를 기뻐하시고 즐거이 부르신다는 사실에 어떻게 기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태초부터 우리를 기뻐하시고 사랑하시기로 작정 하셨습니다.
신명기 7장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신 이유를 모세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 하셨나니,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여러분 우리는 새 언약 시대의 새 이스라엘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기뻐할만 해서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세상 가운데 가장 보잘것 없을 지라도 오직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해 우리를 기뻐하시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무슨일이 있어도 기뻐하십시오.
우리 하나님을 형편없는 하나님으로 만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를 기뻐하시는데, 우리가 어찌 잠잠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불평하며 세상을 낙심하며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우리 아버지를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 슬픔 가운데 살아가는 어린이가 있다면 우리는 아이의 부모에게 그 원인을 돌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이끌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사랑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고기가 먹고싶다고, 빵이 먹고싶다고! 불평하며 하나님을 원망 했습니다. 우리는 똑같은 죄를 다시 반복하지 맙시다. 오히려 날마다 하나님을 기뻐하고 그 기쁨 안에서 즐거워 하면서 우리의 기쁨의 이유를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라고 대답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Restatement of Themes **
스바냐를 통해 기쁨의 세가지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전능자로서 우리 가운데 함께 계시며 우리를 환난에서 구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죄를 용서하셨으므로 마지막 날에 심판받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그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Example*
제가 뉴욕에서 첫 설교를 한다고 하니까, 같이 학교다니는 친한 전도사님이 자신의 이야기를 쓰라고 조언해주었습니다. 그 전도사님은 인도네시아 선교사였고 현재 남침례 신학교에서 설교학 박사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6살과 3살짜리 두 아들이 있는데, 갑자기 아내가 1년 반 전에 유방암 4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처음에 그 가정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론을 만난 것처럼 두렵고 슬퍼했습니다. 우울증이 찾아왔고 좌절했고, 삶의 소망과 이유를 잃었습니다. 전도사님은 혼자 두 아이를 돌봐야 했고 생계도 유지해야했고, 학업도 계속 해야 했습니다. 그 가정은 마치 바빌론에게 멸망당하기 직전의 이스라엘 같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전도사님과 사모님, 우리 공동체는 하나님을 붙들고 날마다 기도했습니다. 우리를 여전히 기뻐하실 하나님을 믿으며, 말씀을 붙들고 주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러자 조금씩 조금씩, 암이 누그러지고 잡히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암세포가 먼지하나 보이지 않게 깨끗이 낫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은 힘과 능력이 넘치시는 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직 병과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꿰멘 상처들이 아물지를 않아서 아직도 가끔식 병원에 입원하곤 합니다. 그러나 지금 사모님은 고백합니다. ‘그 유방암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이전보다 더욱 깊이 느끼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이전에는 그저 그렇게 흘러가던 인생이, 이제는 뚜렷하게 하나님이 나를 붙들고 계시는 것을 느낀다고 말입니다.’
퀸즈 한인교회 성도 여러분, 이것이 여러분 삶의 고백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Application**
여러가지 어려움으로 삶이 무너졌습니까? 기뻐하십시오, 하나님이 더 단단한 집을 세우실 것입니다. 아픔으로 고통받고 있습니까? 그래도 기뻐하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의 육체가 아니라 영원히 살게될 영혼을 치유하는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삶의 왕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면 세상에서의 참된 기쁨과 자유함 뿐만 아니라 장차 오실 예수님과 함께 영원한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