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one Analysis
Overall tone of the sermon
This automated analysis scores the text on the likely presence of emotional, language, and social tones. There are no right or wrong scores; this is just an indication of tones readers or listeners may pick up from the text.
A score of 0.5 or higher indicates the tone is likely present.
Emotion Tone
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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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g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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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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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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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d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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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guage Tone
Analyti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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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fi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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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nta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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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al Tone
Open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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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cientious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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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raver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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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reeable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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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otional 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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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e of specific sentences
Tones
Emotion
Language
Social Tendencies
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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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2교구 새벽예배 시간을 통해서 십자가의 복음을 살펴보고있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단원인 믿음에 의한 삶의 2과 믿음의 성격의 후반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단순히 성경에 나와있는 내용들을 동의하는 수준이나, 이것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인격체이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당연히 우리 신앙의 본질과 큰 연관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믿음에 의한 삶이 신앙의 본질을 담는 그릇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인격체이신 주님을 신뢰하는 자들은 인격체이신 주님을 바라봅니다.
인격체이신 주님께 묻습니다.
인격체이신 주님께 듣고, 순종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은 단회적이거나, 선별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대할 때, 이런 표현들에 익숙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에는 이 사람이 믿을만 하고, 저런 일에는 저 사람이 믿을만 하다.
상황과 때에 따라서 더 믿을만한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향한 참된 믿음은 이것과 전혀 다릅니다.
모든 상황과 모든 환경과 모든 때에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하나님 말씀을 따르고, 저런 상황에서는 하나님보다 이 전문성이 있는 사람이, 전문가가 더 잘 알거라는 생각으로 사람을 따르는 것은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가 말로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시며, 하나님이 우리를 매순간 보호하시며, 인도하십니다 라고 고백할 수는 있지만, 정말로 매 순간마다 어떤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고 신뢰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합니다.
그렇기에 믿음은 매순간 하나님께 모든 것을 거는 것입니다.
단회적인 것이 아닌, 매번 새롭게 하나님께 모든 것을 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내 삶의 모든 주권을 드리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인 여호수아서가 참된 믿음의 성격에 대해 잘 보여줍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다음 세대들이 여리고 성을 눈 앞에 두었을 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신 말씀입니다.
여리고 성을 눈앞에 둔 이전 상황을 잠시 돌아보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미 요단강을 건널 때, 하나님께 모든 것을 거는 믿음을 보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고, 하나님 말씀대로 요단은 말랐으며, 하나님 말씀대로 이스라엘 전체가 요단강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놀랍게 하나님을 경험했으며,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았습니다.
이들의 기분이 어땠을지 상상해보세요.
요단을 건넌 이스라엘 군대의 사기는 고취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가득차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 앞에서 나타나는 이들의 사기와 자신감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 소식을 들은 가나안 족속들은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다고 성경은 표현합니다.
그런데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기가 고취되어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령하신 것이 할례를 행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할례를 행하면 회복하는데 시간이 걸립니다.
기세등등하며 고조되었던 이스라엘 군대의 사기가 자칫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이 회복의 시기에 다른 족속이 쳐들어온다면 대응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적진을 코앞에 두고 하나님께서는 할례를 명하시는데,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그 하나님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들의 목숨을 걸고 하는 순종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인격체이신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온 땅의 주이신 여호와를 신뢰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약속을 온전히 신뢰했습니다.
여호수아는 맹목적으로 어떤 글귀를, 선조로부터 전해져오는 약속을 신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인격체이신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들었으며, 그 인격체이신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목숨이 걸려있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할례를 행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복의 시기를 가진 후에 이제 여리고 성으로 가까이 나아가기 시작합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자신들이 어떤 방식으로 여리고 성을 무너뜨려야 할지 고민했을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아쉬운 그때에, 칼을 빼어 든 한 사람이 그들 앞에 나타나고, 여호수아는 그에게 묻습니다.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
여호수아가 너는 누구의 편이냐고 이야기 할 때, 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여호와의 군대대장이 와서 나는 너희 편도 아니고 저들의 편도 아니다.
나는 하나님의 편이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전쟁이 누구에게 속해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들을 위한 하나님이 아니고, 저들을 위한 하나님도 아니다.
하나님은 이 온 땅의 주이시다 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가 이 전쟁을 진두지휘하시며, 그가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에게 네가 하나님의 편에 서있으라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네 발에서 신을 벗고 종으로써 완전히 엎드려 주님의 주권에 순복하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엎드려 주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실행했습니다.
여리고 성이 눈 앞에 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방법을 말씀하십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방법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다시 한번 자신들의 모든 것을 걸어야 했습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말도 안되는 전략이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어떻게 했죠?
여호수아는 다시 한번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 하나님의 계획과 약속에 믿음으로 반응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결국 놀랍게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막연한 소망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청년의 때부터 모세와 함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였으며, 하나님을 아는 자였습니다.
그는 인격체이신 하나님을 신뢰했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행하실 것을 알았습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따르면서 인격체이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놀라운 승리를 경험한 일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주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과거의 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믿음은 매번 새롭게 우리의 모든 것을 걸고 하나님을 따르는 것임을 깨닫고, 우리의 삶을 돌아보며,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하나님께 반응 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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