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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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왕의 마음
[ 서론 ]
솔로몬은 우리에게 지혜를 상징하는 아이코닉한 인물입니다. 두 여인이 신생아의 친모임을 주장할 때 아이의 배를 갈라서 나누어 주라는 판결로 진짜 친모를 찾아준 재판으로 유명하며 스바의 여왕이 찾아와 지혜를 구하며 엄청난 보화를 바친 일화로도 유명합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세로도 우리의 귀감이 됩니다.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번제를 올렸던 인물이며 다윗에게도 허락되지 못했던 성전짓는 일을 허락받은 인물입니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혜를 구하여 하나님으로 부터 지혜뿐만 아니라 부귀영화도 받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복받은 자의 끝판왕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나라와도 화평한 관계에서 우위를 차지하며 가장 번영하고 강성한 나라의 왕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앞에 있는 10장14~29절 말씀은 솔로몬이 누린 번영이 어느정도 였는지를 개략적으로 보여주는 내용이 기록되어있습니다.
해마다 솔로몬에게 들어오는 금은 666달라트였는데, 그밖에도 상인들로부터 세금으로 들어온 것과 무역에서 얻은 수입과 아라비아의 모든 왕들과 국내의 지방 장관들이 보내오는 금들도 있었습니다. 달란트는 무게의 최대 단위로 시대와 나라마다 조금씩 그 가치가 달랐다. 헬라에서 은 1달란트는 6,000드라크마로 1드라크마는 노동자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그리고 금 1달란트는 은 1달란트의 15배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쉽게 말하면 노동자 1년 연봉을 3천만으로 가정할 때 금 666달란트는 6조원 정도에 해당하는 금액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엄청난 재정으로 금방패를 만들었습니다. 상아로 보좌를 만들고 그 위에 정금을 입혔습니다. 솔로몬이 마시는 모든 잔은 금잔 이었습니다. 은은 귀하게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땅 바닥의 돌같이 여겼습니다. 재산과 지혜가 세상 어느 왕보다 더 크다고 했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이 솔로몬의 마음에 주신 지혜를 들으며 얼굴을 보고 싶어했습니다. 얼굴이라도 보기 위해 예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원하는 것은 원숭이, 공작, 말 할 것없이 최고의 것을 수입했습니다.
우리가 되고 싶은 크리스챤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지금 보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꿈꾸는 그리스도인의 모습 그 끝판왕이 솔로몬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니면 우리의 자녀에게 바라라는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 바로 이 솔로몬의 모습이 아닐까요? 솔로몬이 이런 엄청난 부귀영화를 누리며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세상을 다스리는 왕들의 왕이 되기까지 그렇게 많은 고난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버지 다윗이 왕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겪었던 수많은 고난들과 비교하면 솔로몬의 삶은 꽃길 그 자체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이 있고, 지혜가 있고, 돈이 있고, 사람들의 사랑과 인정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성전을 지은 위대한 업적까지 그의 위대함을 거들어줍니다. 다윗 왕의 혈통을 잇는 왕들의 왕 솔로몬보다 더 우리의 마음을 만족시키는 모델이 있을 수 있을까요? 더이상 바랄 수 없는 완벽함. 이정도면 새롭게 하소서, 내가 매일 기쁘게 등 기독교 tv 프로그램에 날마다 출현해서 간증해도 모자랄것 같습니다.
그리고 11장에 오늘의 두번째 본문이 이어집니다.
[ 본론 ]
오늘 두번째 본문에는 솔로몬이 이방여인을 사랑하여 산당을 짓고 우상을 섬기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고 이스라엘이 두개의 나라로 찢어질것이라는 예언을 듣는 내용입니다.
피상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죄를 범해서 하나님께 벌을 받는 아주 분명하고 뚜렷한 메세지 입니다. 하지만 너무나 분명하고 뚜렷한 메세지 이기에 우리에게 너무 당연하고 뻔한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당연히 우상 숭배는 죄이고 벌을 받는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좀 더 나아가서 우상은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고 우선시 하는 모든것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수없이 들어왔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이 전하고 있는 분명한 메세지 입니다. 하지만 오늘 저와 함께 좀더 세밀하게 본문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0장까지 성경기자는 솔로몬이 얼마나 큰 부귀영화를 누렸는지 다윗왕국이 솔로몬때에 얼마나 번영했는지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주목할 점은 솔로몬이 그 많은 부귀영화로 여호와 하나님을 어떻게 섬겼는지에 대한 내용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주신것으로 온 이스라엘이 은을 돌같이 여길정도로 풍요로운 삶을 살았을뿐이고 더 나아가 그 많은 재물을 가지고 하나님이 왕에게 금하신 병마를 모으는 일까지 하였으며 더 심각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생활로 부터 빼 내온 애굽으로부터 바로 그 말과 병거를 수입 하였습니다.
신명기 17:16(NKRV)
16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모습은 언제나 불길한 암시가 됩니다. 11장에 기록된 솔로몬의 죄악이 이런 불길한 암시가 현실이 되어 모습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솔로몬의 죄악의 시작은 사랑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방여인에 대한 사랑입니다. 후궁이 7백명이고 첩이 3백명이 되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 많은 여인들과 혼인을 하였다는 것은 주변국들과의 정치적 평화를 위한 정략적 결혼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두번이나 그들을 사랑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금하신것을 어긴것입니다. 금지된것을 사랑한 것입니다. 3장 3절에는 분명히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한다고 되어있는데 본문에서 솔로몬은 이방 여인들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국제 결혼을 반대하시기 때문 일까요? 이방여인과의 혼인을 금하는 이유는 신명기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
신명기 7:3–4 (NKRV)
3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4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신명기 17:17 (NKRV)
17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왕으로써 해야할 일은 그다음 17~18절에 나와있습니다.
신명기 17:18 -19(NKRV)
18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19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하나님께서 하라고 명하신 것은 하지 않고 금하신 것들을 한 솔로몬은 이방 신들을 위한 산당을 지을 뿐만 아니라 풍요의 신인 아스다롯과 전쟁의신 그모스,별의 신인 밀곰을 따르는 왕이 됩니다.
자식을 제물로 드려 불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이 가증한 이방신을 따르는 솔로몬에게 더 이상 지혜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런 솔로몬의 모습은 여호와의 진노를 사고 나라를 신하에게 빼앗길것이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정리해봤는데 이 솔로몬의 이야기가 도데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솔로몬처럼 대단한 삶을 살고 있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솔로몬처럼 일부 다처제로 살고 있지도 않습니다.
더구나 형상을 가지 이방신들은 더더욱 우리와 거리가 먼이야기 입니다.
우리에겐 빼앗길 나라도 없습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와 무슨상관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친구를 미워하면 성적을 떨어트리는 벌을 받을 수도 있다는 교훈을 얻어가야 합니까?
하나님이 예배를 잘 드리라고 했는데 주일날 예배를 빠지면 직장 승진이 누락되고 아파트 값이 떨어질 수 있다는 교훈을 가져가야 합니까?
오늘 솔로몬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무슨 말씀을 들어야 할까요?
본문에 보면 마음이라는 단어가 5번이나 나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알기 어렵고 미묘한 것이 있다면 바로 사람의 마음입니다. 우리말 속담에도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단순한 감정의 영역이 아닙니다. 감정 뿐만 아니라 사람의 의지 이성이 모두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잠언4:23에서는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기 때문에 마음을 부지런히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은 영적 윤리적 삶의 근원이며, 우리의 자의식, 하나님과의 관계, 그의 율법에 대한 우리의 굴복의 자리이며 우리의 본성 전체의 자리입니다. 이성과 의지의 모든 것이 마음에 그 기원을 두고 있고 마음은 우리 자신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사용된 단어들중에서 보통명사가 4165개가 사용되었는데 그중에 마음이라는 단어는 28 번째로 많이 사용 되었습니다. 하나님 2602회, 말씀(언어) 1453회 , 생명(영혼) 757회, 마음 601회가 사용 되었습니다. 여자, 남자와 같은 단어를 제외하면 마음이란 단어는 굉장히 많이 사용 되고 있는 단어입니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과 배신은 바로 이 보이지 않는 마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서 불순종과 배신을 알아 차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 마음이 불순종과 배신의 행위로 나타나기까지의 변화도 눈에보이지 않고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솔로몬이 통치를 시작 할 때 즈음에는 여호와를 사랑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나이가 많은 때에 이방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이켰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어느 한순간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변하여도 솔로몬은 공개적으로 완전히 여호와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4절에 기록된 것처럼 그저 온전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의 마음이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11:4)
6절에서 알수 있듯이 솔로몬이 여호와를 따르기를 완전히 그만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따르는 것이 온전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 그의 아버지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따름 같이 따르지 아니하고’ (11:6)
솔로몬의 죄악은 단지 이방여인들을 위한 산당을 지어주는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아스다롯을 따르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따랐다. 십계명의 제 1계명을 어긴것이다.
이 모든 죄악이 솔로몬의 마음이 돌이켜졌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히브리어 ’나타’라는 단어가 4번이나 마음과 함께 등장하고 있는데 [נטה ] 는 무엇에서 방향이나 지향점을 바꾸게 하다, 엇나가거나 멀어지다에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이 변하는 것은 지향점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방향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9절에 솔로몬이 마음을 돌린것이 여호와를 떠난것이 됩니다. 솔로몬이 향한 방향이 여호와가 아닌 다른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진노는 바로 솔로몬의 방향 때문입니다. 9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진노는 어찌 보면 그렇게 놀랄 일이 아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이방 신을 따르면 진노하실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신명기 6:14–15 (NKRV)
14너희는 다른 신들 곧 네 사면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르지 말라
15너희 중에 계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신즉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진노하사 너를 지면에서 멸절시키실까 두려워하노라
그분의 진노는 질투에서 비롯되며 질투는 사랑의 특징이다. 즉 사랑은 바로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앞에 수없이 많은 죄를 저지른 이스라엘 백성도 돌이키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셨던 이유는 그들의 행위가 온전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의 방향이 온전했기때문입니다.
적당한 방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이 목표지점을 맞추기 위해서는 완벽히 그 타겟을 향해 있어야 합니다. 그 근처를 향해서 쏘았다고 해서 그 목표지점을 맞출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열차를 탈때에 상행선과 하행선만 있는 것이지 그 중간은 없습니다. 4절과 6절에 온전하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온전하지 못했다는 말을 들으면 100점은 되지 못했지만 90점은 된다는 느낌이 듭니다. 하나님께서는 90점은 용납하지 않으시는가? 너무 엄격하시고 매정해보일수 있습니다. 하지만 방향은 100점이냐 90점이냐의 문제일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께 향해 있는가? 하나님께 향해 있지 않은가? 이 두가지만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예배를 다 참석하는가? 주일 예배만 참석하는가? 의 문제가 아닙니다. 십일조만 하는가? 감사헌금도 하는가? 의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에서 양육을 받고 그 삶의 적용이 빠른가? 더딘가? 의 문제가 아닙니다. 배우자를 다 용서 하였는가? 거의다 용서 하였는가? 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삶의 변화가 더딜 수 있습니다. 실패하고 넘어질 수 있습니다. 다리에 힘이 없어 자꾸 주저 앉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바라 볼 수는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향해 있을 수 있습니다.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십시요.
하나님께 향하는 것은 하나님의 도움을 기대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께 향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하 하는 것입니다. 그 뜻을 알려고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그 뜻을 알았을 때 순종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았는데도 순종이 안될때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힘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애써 다시 노력하는 것입니다. 포기하면 괴롭지 않습니다. 다시 하나님을 향하려고 하고 다시 시도하기때문에 우리는 마음이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입니다.
광야에 높이 들린 놋뱀을 바라보는 자가 죽지않고 살게 되었습니다. 놋뱀을 바라보는 것은 멀리서도 가까이서도 할 수 있습니다. 고개를 들고 바라보면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바라는 것은 우리의 인격이 완벽해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에 질서가 잡히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일들이 모두 형통해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은 예수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를 바라보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구원의 은혜를 바라는 마음인것입니다. 나의 모습이 지독하게 변하지 않아 스스로 실망스러울 때에도 예수님을 바라보세요.
솔로몬의 마음이 돌아섰을 때 하나님께서 진노하셨다는 말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원하시고 기다리십니다.
[ 결론 ]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철저하게 배타적인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이와 같은 배타성은 현대인들의 정서와 어울리지 않는 측면이 있다. 우리의 마음은 여러갈래로 나눠져 있습니다. 주일날 한두시간만 그 마음을 교회로 향해 놓습니다. 그 이상 우리의 마음을 요구하면 지나치다고 생각합니다. 솔로몬의 마음은 왜 돌아섰나요? 이방여인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던 솔로몬이 이방여인을 사랑하였습니다. 천명에 이르는 이방여인들과 혼인을 하면서도 하나님께 드리던 제사는 다 드렸을 것입니다. 늘 살던 방식대로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방여인을 사랑함이 솔로몬의 마음을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게 했습니다. 그 지혜롭던 왕이 자식을 불태워 제사하는 몰렉신을 따르게 된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사랑은 누구를 , 무엇을 향해 있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은 하나님을 향해 있습니까? 아니면 정체를 알수 없지만 하나님 아닌 그 어떤것을 향해 있습니까?
마음을 돌이켜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그리스도를 의지하고 도움을 구하십시요. 하나님으로 부터 돌아선 마음을 보지 못하고 예배의 행위를 몸에 바르면서 스스로 속고 있지 않는지 살피십시요.
잠언 3:1 (NKRV)
1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잠언 3:3 (NKRV)
3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잠언 3:5 (NKRV)
5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잠언 4:23 (NKRV)
23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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