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가족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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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3: 12-17
오늘 본문은 본 서신의 저자라고 알려진 사도 바울이 옥중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 골로새서 교회 성도들에게 권면하고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한 공동체로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합당한 공동체이자 건강한 공동체로 세워져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서신을 쓰게 되었는데요. 서로 다른 공동체원들과 함께 하나의 건강한 공동체를 세워나갈 때 어떠한 원리와 방법으로 접근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이 오늘의 본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비록 이 본문이 교회 공동체를 대상으로 쓰였지만, 가정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허락하신 하나의 공동체라는 같은 맥락에서 이 본문을 살펴보면 매우 유익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통해 어떻게 우리 가정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며 행복한 가정으로 세워나갈 수 있을지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기준으로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권면할 때, 먼저 한 가지 조건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12절에 나온 바와 같이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행해야 한다는 것인데요. 이에 대한 내용이 바로 이어 나오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거룩하며 사랑을 받는 자라면, 긍휼과 자비, 겸손과 온유, 오래 참음, 서로를 용납하며 용서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이 거룩한 교회 공동체를 세워가는 자들의 정체성이자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기에 사도 바울은 권면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사도 바울은 단순히 권면에서 그치지 않고 이를 행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근거는 바로 주께서 받을 자격없던 우리에게 이같이 행하셨기 때문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거룩한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재였음에도 불구하고, 불순종으로 인해 창조의 목적을 잃어버린 채 아버지의 품을 떠나 제멋대로 살아가려는 자들이었으며, 죄로 인해 당장에라도 진노와 심판을 내리셔도 마땅한 자들이 우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허물 뿐인 우리들을 다시 아버지 안에서 살아가게 하시려고, 어떠한 자격과 조건도 요구하지 않으신 채 주권적인 아버지의 기쁘신 뜻을 따라 우리의 연약한 모습 그대로 인정해주시고 용납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믿는 주님이 이런 분이시기에 믿는 우리도 주님을 따라 행함이 마땅하며,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믿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이라는 것을 사도바울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덕목을 겸비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건강한 공동체로 온전히 세워간다는 것은 스스로 속이고 기만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가정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건강한 공동체로 온전히 세워져가기 위해서는, 가족 구성원 모두가 이러한 덕목을 겸비해야함이 마땅합니다. 주께서 우리의 이러한 연약한 모습 그대로 받아주신 것처럼, 가정 구성원을 바라볼 때 나의 기준과 생각에 맞지 않다 하더라도 있는 모습 그대로 용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러한 자세와 덕목을 겸비하지 않은 채 가족 구성원들을 대하게 된다면, 결국에는 주께서 나의 부끄러운 모습 그대로 받아주시고 용서하셨던 그 은혜를 망각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더 나아가 다른 가족 구성원 모두가 아버지의 거룩한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라는 사실과 그들을 향한 아버지의 기쁘신 뜻이 있음을 무시하거나 간과하는 교만을 범하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덕목을 갖추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우리 가정이 온전하고 건강한 공동체로 세워져가는 데 중요한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마지막으로 이러한 덕목들에 사랑을 더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는 결국 사랑에는 이러한 덕목들이 필연적으로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모범되시는 그리스도께서 낮은 곳에 낮은자의 모습으로 이 땅 가운데 오셔서 자격없는 우리들에 대하여 길이 참으시고, 받으신 고난과 보이신 순종을 통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임을 온전히, 그리고 완전히 증명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덕목들이 전제되지 않은 사랑은 진정한 의미로서의 사랑이라 불리울 수가 없으며, 사랑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게가 막중하고 큰 부담감을 안아야 하는지를 사도 바울은 밝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가 가정 안에서 다른 가족 구성원을 향하여 사랑을 표현한다는 것은, 이렇게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완전한 사랑을 우리도 따라 행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이러한 덕목들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랑을 온전히 깨닫지 못한 것이며, 결국에는 건강한 가정으로 세워나가는 데 있어 한계를 갖게 됩니다.
반면, 우리 가정이 이러한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서로 사랑하게 된다면, 하나의 온전한 공동체로서 굳건하게 세워지게 됩니다. 이러한 가정에 나타나는 특징은 15-17절을 보면 알 수 있는데, 바로 그리스도의 평강이 가정 가운데 함께 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말씀이 가정 가운데 풍성히 거하며, 무슨 일을 하든지간에 주 예수의 이름으로 행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가정이 서로 사랑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행복하고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온전한 공동체로 살아가길 원하지만, 이러한 일들이 우리 가정 가운데 나타나지 않고 있다면 반드시 점검이 필요합니다. 과연 가족 구성원 모두가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사랑을 온전히 믿음으로 따라 순종하려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분명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고,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도 없으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도 없습니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가족이라 부르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사랑한다고 표현하면서도 그 표현이 단순히 대상을 향한 자신의 기준과 욕심이 반영된 채 표출된 것이라면,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사랑을 믿음으로 따라 순종하려는 모습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가정이 온전한 공동체로 세워지기 위해 어떠한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15-17절 세 절 모두 말미에 사도 바울은 공동체 가운데 이러한 일들이 나타나게 되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올려드리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는 결국 이러한 일들이 나타나는 가정은 그 은혜를 알기에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올려드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가정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이것만큼 우리 가정이 행복해질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감사하는 삶을 통해 행복을 누리는 것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라 진정한 사랑을 실천했을 때 주어지는 것이며, 이러한 원리가 바로 아버지께서 가정 가운에 허락하신 질서입니다.
그래서 우리 가정이 진정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기뻐 받으시는 행복한 공동체로 세워지길 바란다면, 아버지께서 가정 가운데 허락하신 질서의 원리에 믿음으로 순종해야함이 마땅합니다. 이를 믿음으로 순종하지도 않으면서 행복한 가정을 꿈꾼다거나 복을 바란다면, 배후에서 역사하고 계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단순히 수단으로 삼는 교만을 범하는 것이나 다름없게 됩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라 우리 가정이 서로 사랑하면 풍성한 은혜 속에서 온전한 공동체로 세워지며, 이에 아버지께 감사를 돌리며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우리 가정이 가장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한 원리이자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께서 보이시고 우리에게 베푸신 완전한 사랑의 깊이를 절실히 깨닫고, 그 사랑으로 우리 가족을 서로 사랑하고 섬기며, 아버지께 온전히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시어 진정한 행복을 누리시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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